[가장 따뜻했던 계란 하나]
 
늘 기운이 없었던 고3. 얼굴도 머리도 노랗고 말랐던 나.
그래도 모두 잠든 밤, 밤새워 혼자 공부해 보겠다고
난방도 없는 외풍 센 마루에 나와 상을 펴고 쪼그리고 앉아 밤을 새우던 때,
새벽이면 아득하게 힘이 빠져나가고 오슬오슬 추위와 허기로 떨곤 했다.
어느 새벽, 마당 건너 사랑방에서 화장실을 다녀오던 작은 오빠가
드르륵 문을 열고 아무 말없이 들여 밀고 간 따듯한 계란프라이 하나.
당시 우리들에겐 유일한 고급 도시락 반찬이었던 계란 하나ㅡ
그 고소한 냄새의 계란 맛이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다만 그걸 먹고 나니 갑자기 자꾸 감기던 눈이 뜨이던
신기한 기억만 또렷할 뿐.
불 켜진 마루를 보고, 동생을 위해 말없이 부엌에 가서
석유풍로를 켜고 계란을 부쳐다 준 오빠의 마음,
어려서 큰오빠의 사랑을 받던 나보다는
외로울까 언니만을 챙기던 작은 오빠의 그 말없는 배려에
지쳐 한기에 떨던 내 외로운 가슴이 얼마나 따듯해졌던지 그 온기를 기억할 뿐.
 
가장 따듯했던 그날의 계란프라이 하나ㅡ
지금도 내 맘 오슬오슬 시린 날이면
말없이 찾아와 주는 따듯한 기억
ㅡㅡㅡㅡ
지난 주 특강 준비하려고 보니, 지난달에도 특강때문에 작업했던 PPT가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혼자 해결하려 끙끙대다가 다음날 서비스센터로. 기기문제가 아니라는건 알았다. 그래도 혹시 도움을 기대했지만 전~혀 아니었다.할 수없이 78된 오빠에게 SOS. 지난달 이사 간 먼 곳에서 밤늦게 찾아와 해결해주고 갔다.
 
오빠는 내가 미국가서 긴 기간 집을 비우는 때면 빈 집에 와서 화분도 살펴주고 말없이 여기저기 고장난 거 다 손봐준다.  회사일도 바쁜데 음악과 함께 사는 나를 위해 내가 아끼는 정말 오래된 맥킨토시 앰프도 어렵게 충주까지 수리해 줄 수 있는 사람 찾아가서 다 고쳐다 주고,  현관문 손잡이 잠금장치 수리해놓고. 이 모든 걸 아무 말없이….  내가 귀국하는 날이면 늘 비행기도 멀미를 해서 고통받는 나를 위해 시간 맞춰서 문 앞에 죽을 배달해놓는다. (난 거의 28년 차이 났던 이젠 하늘에 계신 큰오빠 사랑도 엄청받았는데 정말 복이 많다. 그저 감사하다. )


사진도 잘 찍고… 예술적 재능이 풍부한 수학천재 오빠. 어려서 천재소리 듣던 오빠가 참 아깝다!! 세상엔 타고난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슬픈 삶이 얼마나 많은가. 

키크고 영국 신사같이 멋쟁이였던 오빠가
이제 나이들어 띄엄띄엄 걸어가는 굽은 뒷모습, 벗겨진 뒷 머리가 왜케 아프고 슬픈지…. 뒷모습에 대고 오빠부부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기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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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따듯했던 계란 하나"는 아주 오래 전 썼던 일기이다. 남들에겐 고마움을 잘 표현하는 나도 가장 가까운 내 가족에겐 왜 못했을까? (울딸에겐 예외~^^) 
맘은 혼자 간직하면 안되고 표현하고 나눠야 할 거 같아서 쑥스럽지만 저 글을 오빠에게 보내려한다. 더이상 뒤늦은 후회하지 않으려고. "오글거리지? ㅋㅋ" 라고 덧붙여서^^>

 

 

 

지금 나는 가시 뿐인 아픔이라도

어느 날 꽃으로 피어나리라

 

 

글 이봉희(C)2017

나사렛대학교 대학원 문학치료학과 교수

미국공인문학치료전문가(CPT)/공인저널치료전문가(CJT)

상담심리사/ 내 마음을 만지다저자

 

 

 

 

            자신감은 어떤 모습이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데서 나옵니다. 때로 초라하고 

            비참한   순간에도 내 속에 꺼지지 않고 남아있는 힘과 가능성을 찾고 그것을 믿어주는 것

            자신감은 결과와 무관히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 천상병, ‘나무

 

 

흔히 사람들은 자신감을 가지라고 격려합니다.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무엇인가 성취했을 때?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공을 통해서만 자신감이 생긴다면, 자신감을 갖기란 얼마나 힘이 들까요? 그 자신감은 얼마나 위태로울까요? 세상에는 성공하는 순간보다 실패하고 실수하는 순간들이 더 많은데 말입니다. 그 누구도 실패나 좌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신감은 때로 극복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상실한 것들을 인내하면서, 실패하는 나를 포용하는 마음에서부터 생길 수 있습니다.

 

나의 초는 양쪽에서 불타고 있습니다.

밤이 채 가기 전 다 타버리겠지만

, 내 적들과 오, 내 친구들이여,

나의 초는 아름다운 빛을 냅니다!

-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멀레이(미국 시인·극작가)

 

시인은 자신의 삶을 양초에 빗대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초는 어쩌면 버거운 고통과 현실 때문에, 마치 양쪽으로 타들어가는 초처럼 버티기 힘들거나 곧 꺼져버릴 듯 위태롭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 시인은 주눅 들거나 비관하거나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촛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 시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빛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삶에 대한 긍지에서 나옵니다. 이처럼 자신감은 어떤 모습이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데서 나옵니다. 고통 받고 있는 나, 세상에서 패배한 나, 뒤돌아오면 회한으로 가득한 나, 그런 내 모습을 너그럽게 포용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타오르기를 포기하지 않는 나에 대한 긍지가 바로 자신감입니다.


    "겁쟁이들이 제일 먼저 포기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 후부터는 다른 모든 것은 쉽게 저버릴 수 있다."   - 맥카시(미국 소설가비평가) 

 

자신감은 결과와 무관히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초라한 나의 모습을 대할 때마다 이것이 나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따듯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친 나를 받아주고 품어주는 마음이 자신감입니다. 지금 이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님을 참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아직 내게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됩니다. “끝났다고 울지 않고 이제 시작이라고 웃을 수 있는자신감이 생깁니다. 자신감은 결과에 관계없이 노력하고 투쟁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입니다. 단순히 고통스런 상황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 이상의 마음입니다. 바이런이 쓴 시를 보면 이해가 될지 모릅니다.

 

내 영혼이 고통 속으로 이끌려가는 것을 느끼지만그렇다고 그것의 노예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쫓는 수많은 격심한 고통이 있다.그것들은 나를 짓누를 수는 있지만, 나를 업신여기지는 못하리라.

그것들이 나를 고문할 수는 있겠지만, 하지만 나를 굴복시키진 못하리라 -바이런(영국 시인)

 

그렇기에 병상에 있던 미국 작가 피츠제럴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행복과 기쁨이 아니라 투쟁에서 나오는 보다 깊은 만족감에 있다라고요. 그 깊은 만족감이 나에 대한 긍지이며 사랑이며 자신감입니다. 큰소리만 치는 것이 용기가 아니듯이 말입니다. 하루가 끝나는 순간 실패한 자신을 바라보면서 내일 다시 시작할거야.” 라고 말하는 조용한 목소리가 자신감입니다. 때로 초라하고 비참한 순간에도 내 속에 꺼지지 않고 남아있는 아름다운 힘과 가능성을 찾고 그것을 믿어주는, 나의 존재에 대한 따뜻한 긍정과 사랑입니다. 지금 나는 가시뿐인 아픔이라도 어느 날 꽃으로 피어나리라는 나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자신감이 나오는 것입니다.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 김승희, '장미와 가시' 중 일부

 

(C)2017이봉희 저작권이 있으며 일부 혹은 전부를 사전 승인 없이 인용하거나 사용할 수 없음.

HATO 원고: 병원 환자들과 장기요양환자들, 그리고 가족을 위한 잡지에 기고한 글임.


 

출처: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 카페: 내 마음을 만지다

기대가 클수록 사랑은 멀어진다

“선생님, 사람은 무엇으로 살까요?” 

한 학생이 편지로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갈까요. 물론 기본적인 육체적 욕구가 충족되어야 하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분명 그 이상의 어떤 힘이 필요합니다. 바로 사랑의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등장하는 천사 미하일이 이 지상에 내려와 찾은 답 또한 바로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끝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이란 말로 넘쳐납니다. 하지만 바닷물처럼 넘실대는 사랑이라는 말 속에 빠져 살면서도 모두들 정작 사랑에 목말라하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사랑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 고정희, <사랑법 첫째> 중에서

 

왜 사랑은 항상 내 기대에 못 미칠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한없이 쓸쓸하다면 그 원인 중 하나는 그 사람이 내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기대한다는 것,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먼저 이 한 가지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누구도 나와 같은 존재일 수 없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타인이 나의 기대를 채울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늘 어딘가 비어 있다고 느낄 때 문득 느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은 그 누구도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그저 자신의 방식으로밖에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줄 수 없는 것을 달라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저 나의 일방적인 기대에 불과합니다. 나 역시도 상대의 기대를 온전하게 채워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은 채 상대가 항상 나의 기대에 맞춰주기를 요구합니다. 때로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상대에게 대신 밀어놓고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원망을 그에게 전가시키기도 합니다.

생전에 어머니는 나와 내 딸을 참으로 사랑하셨습니다. 불편하신 일흔의 몸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손녀를 돌봐주러 집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오셔서는 늘 원치 않는 일만 하셨습니다. 식구도 적은데 날마다 밥솥 한가득 밥을 해놓으시거나 냄비가 넘치도록 국을 끓여놓으시고는 먹으라고 권하셨습니다. 정작 어머니께 원한 것은 바빠서 치우지 못한 채 출근하는 집을 간단히 정리해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날마다 다 먹지도 못하는 밥을 가득가득 해놓으시며 오히려 집안일을 더 만들어놓고 계셨습니다. 제발 밥 좀 많이 해놓으시지 말라고, 차라리 아무것도 하시지 말라고 말씀을 드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일 년이 넘도록 같은 일로 다투다가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것을. 어머니는 당신이 주실 수 있는 것밖에는 줄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머니를 통해 그것이 우리 모두의 사랑의 방식임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상대를 사랑해도 내가 가진 것, 내가 줄 수 있는 것밖에는 줄 수 없습니다. 그 이후로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밥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상대도 나에게 뭔가를 기대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기대합니다. 부모에게, 자녀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대하고 실망합니다. 우리의 언어 습관을 살펴보면 얼마나 자연스럽게 또 일방적으로 기대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남편으로서 그 정도밖에 못하니?” “어떻게 선생님이 저럴 수 있지?” “어쩌면 넌 친구라면서 그럴 수가 있니?” 등등. 흔히 말하는 어떻게 누구누구가 이럴 수 있는가에서 보듯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대하기를 당연시하고, 그 기대를 꼭 충족시켜주기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꼭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상대도 나에게 그런 기대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영화를 보면서 남성은 영화 속 여주인공의 모습을 자신의 아내나 여자 친구에게 기대합니다. 여성 역시 남자주인공의 모습을 자신의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기대합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때 우리는 상대에 대한 자신의 기대를 쉽게 포기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상대의 기대는 쉽게 무시합니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지배이지 결코 사랑이 아닙니다.

때로는 그 기대가 선한 의도일 때도 있습니다. 영화 <조이럭 클럽>의 등장인물인 준은 울면서 엄마에게 고백합니다. 어려서부터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서 늘 괴로웠다고, 그래서 상처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엄마 : 난 뭘 기대한 게 아니야. 네게 뭘 바란 적이 없어. 다만 희망을 가졌을 뿐이야. 네게 최선의 것을 희망하고 있을 뿐이야. 희망을 갖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야.

준 : 아니라구요? 난 그 때문에 상처를 받아요. 엄마가 내가 해낼 수 없는 무언가를 희망할 때마다 상처가 된단 말이에요. 엄마, 그것이 날 아프게 해요. 엄마가 무엇을 희망하든 난 내 모습 이상이 될 수 없어요. 그런데 엄만 그걸 모르세요. 엄마는 내 진짜 모습을 알지 못해요.

 

어느 사십대 주부와 문학치료 모임에서 이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자녀에 대한 자신의 일방적인 기대와 강요가 아이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주었다는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후기를 썼습니다.

 

아이는 그동안 무진장 노력하고 있고 엄마를 사랑한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는데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내 기대 안에서만 아이를 보려고 했다. 내 시야 안에서만 아이를 봐왔다. 갑자기 울컥하며 목이 멘다. 네가 잘되기를 바란다면서 내 기대로만 널 대했던 나를 보며 네가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목이 멘다.

 

나의 기대를 온전하게 채워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많은 연인과 부부들이 일방적인 기대로 서로에게 실망하고는 섣부르게 돌아서거나 이별을 고합니다. 이혼을 결심한 어느 젊은 부부 역시 늘 상대에 대한 일방적인 자신의 요구만을 강요하다보니 마주보기만 하면 서로 폭언을 퍼붓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가 문학치료를 통해 각자의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대를 차분하게 서로 글로 쓰고 주고받으면서 각자 스스로를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기대를 낳은 각자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상대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이혼의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소중한 사랑과 그 사랑의 보금자리를 지켜내는 일은 적의 공격과 침략으로부터 성(城)을 지키는 것 이상의 힘겨운 싸움입니다. 무엇보다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겹습니다. 나의 기대를 포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사랑할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사랑은 지독한 자기희생이면서 동시에 그만큼 지독한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기대 때문에 (상대가 누구든) 소중한 나의 ‘그대’를 잃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항상 사랑에도 노력해야 합니다. 상대의 사랑의 방식을, 그리고 그가 줄 수 있는 것 외의 것을 바라지 않도록 말입니다. 나도 그럴테니까요.  ‘내 기대’를 ‘그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 또한 그대도 ‘그대의 기대’와 ‘나’를 바꾸지 않기를 바라며 함께 노력하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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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법 첫째 - 고정희 (전문)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덩이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하여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

 

장욱진- 밤과 노인


[원시(遠視)- 오세영]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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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직 젊은 사람들이 늙었다 말하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듣는다.
내 나이 이별이란
멀어지는 일이 아니라
머얼리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들을  눈이 시리도록 기억하는 일이다
가물가물 멀어져가는 것들을 그 어디쯤엔가 새겨놓고 더듬어보는 일이다.
머얼리서 바라다 보던 그 얼굴들을
식어가는 가슴에 꼬옥 품고 감사하는 일이다.

아버지의 전화 - 김수원 (2024 시민공모작)

 

아픈 데는 없니

그게 사랑한다는 말이다

별일 없니

걱정된다는 말이다

 

바쁘니

보고 싶다는 말이다

나는 괜찮아

외롭다는 말이다 

 

문득 전화가 뚝 끊어지는 것은 

울고 있다는 말이다

많이 아프다는 말이다

 

위로받고 싶다는 말이다 

슬픔 

사랑한다며 
아름다운 여린 꽃 
아프게 꺾어 
손에 들고 
가시밭을 걷는다, 그 
빛 앞에 
쪼개지는 어둠 


(bhlee 112125)MP
ㅡㅡㅡ

아름답고 예뻐서 지켜주려는 마음? 충고? 그게 얼마나 잘못된 관심과 욕심일까?  
더한 아픔과 상처를 내면서 지켜주려고 꽃을 꺾는 일이 사랑일까? 
척박해도, 추워도, 때로 목말라도  제 땅에서 견디며 뿌리내려야 하는데
그렇게 단단히 성장해야 하는데 끝까지 살려낼 수도 지켜줄 수도 없으면서 상처만 주는 무지한 사랑, 
그 어둠을 비춰주는 빛이 가시 같이 아프다. 
ㅡㅡ
photo by bhlee

나무 

소중한 방문객을 만나러 가는 길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만나러 가는 길)*
잎하나 내 발 앞에 날아와 앉았다.
붉게 물들어 가는 제 몸 한쪽엔
고집스럽게  나는 물들지않겠다
자신을 지키는 노란 빛이 당당하다. 

그 작은 잎 데려다 마음에 심었다 
마른 잎 속 작은 나무가 가지를 뻗고 있다. 
해와 달을 그렸다.  
갑자기 영원 같은 공간에 서 있다 
내가 서있다
떨어진 잎이 아닌 나무로. 

 <bhlee 111325>
 
*정현승 시인을 인용했음 
ㅡㅡㅡㅡㅡ
나도 모르게 해와 달을 그려넣다가 내가 장욱진을 흉내내나보다 혼자 웃었다. 
내가 처음 장욱진 그림을 만났던 그 먼 옛날, 나의 첫 탄성은 그의 그림 속 시/공간을 초월한 순수한 세상이었다. 
해와 달이 공존하는 세상. 자연과 사람과 선한 동물이 나무 속에, 나무 위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세상.  
ㅡㅡㅡㅡㅡ

by bhlee



그렇게 소중했던가 - 이성복

버스가 지리산 휴게소에서 십 분 간 쉴 때,
흘러간 뽕짝 들으며 가판대 도색잡지나 뒤적이다가,
자판기 커피 뽑아 한 모금 마시는데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종이컵 커피가 출렁거려 불에 데인 듯 뜨거워도,
한사코 버스를 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가쁜 숨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
회청색 여름 양복은 온통 커피 얼룩.
화끈거리는 손등 손바닥으로 쓸며,
바닥에 남은 커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소중했던가,
그냥 두고 올 생각 왜 못 했던가.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 삶은 꿈이다.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 가는
그 일이란다” ㅡ김남조

11월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곁을 내주지 않고 인색하던 눈부신 가을하늘이 드디어 찾아와주었다.  감사하다!
길고 긴 겨울이 오기 전 마지막 아름다움....

지난 3일간 매일 연이어 세 분이 하늘로 떠나신 소식을 들었다. 이 나이에 점점 자주 마주하게 될 현실이다.  그래도 먹먹했다.

마지막은 그것이 무엇이든 비록 순리이고  아름다울지라도 “슬픔"이다.  가을이 조금씩 떠나가는 11월, 오늘 산책 길에 더더욱 내 마음을 물들인 노을처럼.

노을로 가는 길이 “천천히” 라고 일러준다.
이 말이  이젠 속도가 아니라 한 걸음도 의미있게..로 읽힌다.
ㅡㅡㅡ
photos by bhlee(110225)

낮엔 달처럼
밤엔 해처럼
그렇게 살아도 좋으리…

 
photos by bhlee(1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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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nSS
산은 산, 물은 물처럼, 낮엔 해, 밤엔 달인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선생님 말씀 중에 어둠속에 빛이 있으면 더 이상 어둠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밤에 해가 있으면 밤이 낮이되고 낮이 밤이 되는, 혁명적인 상황이네요^^
선생님 미적 감각은 따라갈 수가 없네요, 어쩜 이런 사진을 찍으실 수 있는지요!

-->bhlee
고마워.
맑고 밝은 하늘을 기다려도 기다려고 인색하던 가을이  요몇일간 마침내 가을 햇살을 환히 내려주니 참 감사했지?
길고 긴 겨울이 오기 전..... 

사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이란 말이 우리에겐 참 익숙하지. 
노래도 있고 ㅡ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하지만 그냥 난 빛과 어둠 너머에 그것에 가려,
또는 우리의 시각과 고정된 의식에 의해 보이지 않는, 그렇지만
여전히 거기 있는 소중한 존재에 대해 생각해봤어.
낮 달과 밤의 해처럼…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FBk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