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함민복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가을날 맑아-나태주

 

잊었던 음악을 듣는다.

잊었던 골목을 찾고

잊었던 구름을 찾고

잊었던 너를 찾는다

아, 너 거기

그렇게 있어줘서

얼마나 고마운가 좋은가

나도 여기 그대로 있단다

안심해라 손을 흔든다

photo by bhlee

 

모순: 우연 그 기묘한 필연 - bhlee 

열어보고 또 열어본다
창에 비친 내 그림자에
열어보고 또 열어본다
지나는 바람이 조용히 흔들리는 소리에
열어보고 또 열어본다
숨죽인 빗방울의 흘러내림에

아, 이젠 그만
굳게 닫아 잠그고
벽을 향해 돌아 누었다
그 눈감은 찰라의 절망 그 사이로
그가 다녀갔다

잠긴 문 앞에서
돌아갔다

아, 난 오늘도
열어보고 또 열어본다
절망하는 그 순간
당신과 나를 놓쳐버리는
그 어리석은 찰라까지

——
올해 초 찍었던 이 사진을 늘 그렇듯 ‘우연히’ 발견했는데 또 우연히

정말 오래 전 쓴 이 글을  얼마전 두 주에 걸친 특강/워크숍 자료를 찾다가 외장하드에서 발견했다.

 

우연,  그 기묘한 필연

코스모스 - 이형기

 

언제나 트이고 싶은 마음에
하야니 꽃피는 코스모스였다.

돌아서며 돌아서며 연신 부딪치는
물결 같은 그리움이었다.

송두리째ㅡ희망도, 절망도,
불타지 못하는 육신

머리를 박고 쓰러진 코스모스는
귀뚜리 우는 섬돌가에
몸부림쳐 새겨진 어룽이었다.

그러기에 더욱
흐느끼지 않는 설움 홀로 달래며
목이 가늘도록 참아내련다.

까마득한 하늘가에
내 가슴이 파랗게 부셔지는 날
코스모스는 지리.   

 

ㅡㅡ 

가을하늘이 숨이 막히도록 푸르게 점점 높아만 갑니다. 어느새 한해도 이 가을이 질 때 함께 저물어갈 것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은 물처럼 내 손에 잡히지 않지만 우리에겐 잊히지 않는 이야기들이 시간의 굽이굽이마다 꽃으로 피어납니다. 

가을이면 생각나는 꽃은 국화와 코스모스입니다. 싸늘한 국화의 향기가 쓸쓸함과 외로움, 고독함의 냄새와 닮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코스모스는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트이고 싶은 마음, 목이 가늘도록 참아내던 우리 가슴 깊은 곳의 이루지 못한 '간절함'을 그리움이란 설움으로 말없이 피워내고 있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남은 한 해, 나의 그 간절함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고 싶습니다.  돌아서며 돌아서며 연신 부딪치는 물결이 오늘도 목이 가늘도록 날 바라보며 손짓하고 있는 데 나는 무심히 등 돌리고 부지런히 세상의 물결을 쫓아 떠밀려가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요. 이 한해가 저물기 전에,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문득 뒤돌아 달려가 그 그리움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리움은 내 가슴 깊은 속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이며 온전히 꽃피워야할 '나의 참 모습'입니다. 고달프고 외로운 나그네로 세상에 살되 영원한 고향을 기억하며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나를 일깨워 살아있게 하는 손짓입니다. 저 까마득한 하늘가에 내가 파랗게 파랗게 부셔져 하늘과 나,  하나가 되는 그날을 위해..
-[ 덴버 중앙일보 칼럼, <내 마음의 작은 새>중에서] 
04

 

여름 한때 -천양희 

 

 

   비 갠 하늘에서 땡볕이 내려온다. 촘촘한 나뭇잎이 화들짝 잠이 깬다. 

공터가 물끄러미 길을 엿보는데, 두 살 배기 아기가 뒤뚱뒤뚱 걸어간다

  생생한 생(生)! 우주가 저렇게 뭉클하다

  고통만이 내 선생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몸 한쪽이 조금 기우뚱한다

 

  바람이 간혹 숲 속에서 달려나온다. 놀란 새들이 공처럼

튀어오르고, 가파른 언덕이 헐떡거린다.

웬 기(氣)가 ― 저렇게 기막히다

 

  발밑에 밟히는 시름꽃들, 삶이란

  원래 기막힌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나는 다시

  숨을 쉬며 부푼다. 살아 붐빈다.

그래도 

 

사랑했다

좋았다

헤어졌다

그래도 고마웠다.

 

네가 나를 버리는 바람에 

내가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었다. 

 

ㅡ나태주 

 

 

9월이 오면 - 안도현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9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9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 [그대에게 가고 싶다](1991,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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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김진호

꽃밭 한가운데 엄마가 있어
그녀의 주변엔 꽃밭이 있어
아름답게 자란 꽃밭이 있어
티브이를 켜고 잠이 들어버리는 일이
어느새 익숙해진 한 사람
티브이 속에서 나오는 수많은 얘기에
혼자서 울고 웃는 한 사람
엄마의 사진엔 꽃밭이 있어
꽃밭 한가운데 엄마가 있어
그녀의 주변엔 꽃밭이 있어
아름답게 자란 꽃밭이 있어
초록빛 머금은 새싹이었지
붉은빛 머금은 꽃송이였지
나를 찾던 벌과 사랑을 했지
그 추억 그리워 꽃밭에 있지
나는 다시 피어날 수 없지만
나를 찾던 벌도 사라졌지만
나의 사랑 너의 얼굴에 남아
너를 안을 때 난 꽃밭에 있어
———

봄-2007.추억

 
 
해리: 여러분 누구에게나 사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거껏해야 외부적인 사건의 충격이 있었을 정도겠지요. 말하자면 잠든 채 인생을 살아온 것입니다. 악몽에 소스라쳐 깨어 본 일이란 없지요. 눈을 크게 뜨고 살자면 인생이란 사실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십니다. 하수도에서 나오는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악취를... 밤중 3시 그 오래된 침실에서 들리는 무언의 슬픔의 목소리를.
... 나는 오래된 집(古屋)입니다.  독한 냄새가 풍기고 새벽에 신음하는 소리 들리는, 거기에 모든 과거가 존재하는.  거기에서 모든 타락은 다시 회복될 수 없습니다.  ...과거에 대해선 다만 지난 것만이 여러분의 눈에 띄고, 언제나 현존하는 것은 보이질 않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혼잡한 사막에서, 짙은 안개 속에서, 갑자기 느끼는 고독, 거기에 숱한 생명들은 방향도 없이 움직이고 있지요.  방향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딜 가든 그 煙霧 속을 뱅뱅 돌며 방황하는 수밖에ㅡ 목적도 없이, 행위의 원칙도 없이,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그 중간 지대에서, 고뇌의 국부마취에 감각을 잃고 자신의 기계적인 행동도 보지 못한 채, 그러는 동안에 오염은 서서히 피부를 뜷고 더욱 깊이 파고 들어 살을 더럽히고, 뼈까지도 변색시키지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고 달리 옮길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이는 억지로 도망치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사막을 들끊는 군중 속에서 유령에게 맞고 채이면서 고독을 면치 못합니다.  대서양 한 복판에서 구름 한 점 없는 그날 밤, 나는 그 여자를 갑판에서 밀어뜨려 버렸습니다ㅡㅡ 그러나 그것은 다만 불붙은 바퀴를 순간적으로 멈추게 하려고 무의미한 방향을 역전시킨 데에 지나지 않습니다.
...
그여자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당장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늘 생각했지요.  내가 어딜 가든 그여자는 나와 함께 있을 것이고, 내가 무엇을 하든 그 여자는 죽지 않으리라고.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
나는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압니다.  우선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런 무서운 일이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하고 그 하나의 사건만을 따로 떼어서 생각하지요. 그것을 견디기 어렵기때문에 그러는 거지요.   그래서 여러분은 내가 망상에 빠져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지요. 병든 것은 내 양심이 아니고 내 정신이 아니고 내가 살아가야 할 세계, 그것입니다.
....
나는 잠을 두려워합니다. 잠이란 쫓기다가 드디어 붙잡히는 최후의 상태 그것이죠. 아니 깨어있는 것 그것도 무섭습니다.  

아가사: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몇가지 있어....  너는 설명 중에 겨우 그 일의 몇가지 단편에만 잡착하는 것 같아.  네가  아는 것을 자꾸 표시하고 싶어하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것이 있기 때문이지. 알아야 할 것이 더 많이 있는 거다. 그 점을  단단히 파악해야 해. 자유에 이르는 길은 그것이니.
....

코러스: 
우리는 모두가 자기만은 만인에게 씌워진 굴레에서
특별한 예외인 듯 보이려 한다.
...
우리는 남이 좋게 생각해주는 것을 기뻐한다.
그것도 결국은 내 스스로 나를 좋게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어떤 설명에도 만족할 판.  다만
지하실이나 닫힌 창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을 때
스스로 안심되기를 바랄 뿐.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행동하는 것인가?  마치 문이 갑자기 열리고, 커튼이 쳐지고
지하실에서 어떤 무서운 것이 나타나고, 지붕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듯이.
그리하여 우리는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비현실인지 분간 못할 지경에 이른 듯이.
단단히 맘 먹어라. 단단히 견뎌라.
세상은 우리가 늘 생각하던 그대로라고 주장해야 한다.
                                                                   (T. S. 엘리엇- 희곡 [가족의 재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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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번역하고도 수업에서 가르쳐보지도 못한 아이스킬로스의 그리스 비극 '에우메니데스(복수의 여신들)'를 바탕으로  엘리엇이 독특한 시극으로  만든 작품이다.  마그리트의 그림- (보이지 않는) '비밀배우' - 에서 내가 들은 말이 무엇이기에 갑자기 이 드라마가 생각이 났는지.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카페] 중에서 

 

너무 어렵게 말하지 말자- 과도한 자기연출

 

“왜 내가 솔직하게 말하면 사람들은 당황해할까요? 왜 나는 화를 내면 안 될까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웃으면서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 나의 분노에 불을 지핀 그들은 아무도 비난받지 않아요. 하지만 내가 분노하면 사람들은 괴물이라도 바라보듯 놀라서 나를 쳐다봐요. 그들이 소리 없는 총을 쏘았다면, 나는 소리 나는 총을 쏘았기 때문일까요? 나는 그들의 그 철가면 같은 얼굴이 두려워요. 그러면서 왜 나는 그들처럼 사회성이 없을까 하는 깊은 자괴감이 들기도 해요.”

문학치료에 참여한 어느 분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이 분노하는 대상들처럼 오늘도 우리는 계산된 말과 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얼마나 성공했을까요? 오늘날은 금연, 금주, 다이어트, 감정표현의 자제 등 욕구의 억제로 가득 차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페니베이커(Pennebaker) 박사는 억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몇 가지 남지 않은 흥미로운 일들 중 하나는 우리의 충동을 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경시하는 일이다. 이제 새로운 자기 독선의 시대가 도래했다.”

 

타인을 의식하며 타인을 사는 우리들

요즘 우리가 부러워하는 처세술 중 하나가 바로 포커페이스(poker face)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감정 변화를 상대에게 읽히지 않고 방어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자는 “교묘한 말과 보기 좋게 꾸민 얼굴에는 어진 사람이 적다”고 했습니다. 이런 교언영색(巧言令色)도 화려한 말과 얼굴 속에 자신의 진심을 숨긴다는 면에서 포커페이스와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말끝마다 웃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얼마나 타인을 의식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으면 말의 끄트머리를 꼭 웃음으로 포장할까요?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서 그렇게 웃는 걸까요? 이런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진솔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세련되지 못하고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어떤 분은 직장에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 때, (짠지 싱거운지) “간을 보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소설가 온다 리쿠의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있으면 그걸 보고 있던 누군가가 찬물을 끼얹는 법이다. 멋진 일에 가슴이 설렐 때면 반드시 누군가가 '그따위 시시한 것' 하고 속삭인다. 그렇게 해서 까치발을 하다가 주저앉고 손을 내밀다가 뒤로 빼고 조금씩 뭔가를 포기하고 뭔가 조금씩 차갑게 굳어가면서 나는 어른이라는 '특별한 생물'이 될 것이다.

- 온다 리쿠, 《굽이치는 강가에서》 중에서

 

어른이 될수록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세상은 그런 사람을 비웃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모뿐만 아니라 목소리마저 모두 짙은 화장으로 감춘 채 세상으로 나갑니다. 그 가면 뒤에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귀는 이미 마비된 지 오래입니다. 성공의 기준도, 행복의 기준도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환상 속에 삽니다. 말과 행동뿐 아니라 내 생각까지도 세상의 저울에 달아서 계산하며 사는지 모릅니다. 어쩌다 화장을 지우고 맑은 거울 앞에 앉을 때면 점점 더 깊은 외로움과 대면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내 안의 진실을 외면하면서 얻은 대가는 바로 외로움과 단절감입니다. 이것은 마치 ‘나’와 ‘내’가 서로 등을 대고 앉아서 대면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김왕노의 시는 이런 우리 삶의 “빤한” 비애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사람과 어울리려 사람을 사칭하였고

나는 꽃과 어울리려 꽃을 사칭하였고

나는 바람처럼 살려고 바람을 사칭하였고

나는 늘 사철나무 같은 청춘이라며 사철나무를 사칭하였고

차라리 죽음을 사칭하여야 마땅할

그러나 내일이 오면 나는 그 무엇을 또 사칭해야 한다

슬프지만 버릴 수 없는 삶의 이 빤한 방법 앞에 머리 조아리며

- 김왕노, <사칭(詐稱)>

 

여기서 “차라리 죽음을 사칭하여야 마땅할”이란 말은, 내가 아닌 나로 사는 것, 즉 나의 죽음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것은 나의 진실한 내면을 외면한 채 타인의 눈에 맞춰서 다른 얼굴을 사칭하며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대면하지 못하는 일, 그래서 또 다른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대할 수밖에 없는 이런 삶은 스스로를 지치고 외롭게 만듭니다. 그리고 능수능란하게 가면을 바꿔 쓰지도 못하는 자신을 비난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가면을 벗고 그 누구도 ‘사칭’하지 않으며 사람들을 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면으로 가려진 나의 모습에 익숙한 사람들은 슬금슬금 나를 멀리합니다. 절망한 나는 또다시 새로운 가면을 골라잡습니다. 더욱 능수능란하게 가면을 쓰고는 또 다른 얼굴을 사칭합니다. 자신의 내면과 멀어진 나는 점점 더 외로워집니다.

그러니 너무 어렵게 말하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끔은 바보처럼 맨 얼굴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이런 저런 계산으로 상대에게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이제 용기 내어 마주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부끄럼 없이 내 마음 속 감정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외롭다고, 슬프다고, 두렵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실패했다고, 용서해달라고, 용서하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당신이 필요하다고, 사랑한다고도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의 눈앞에서 외면했던 나 자신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점점 힘을 잃고 작아지는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활짝 귀를 열고 싶습니다.

 

너무 어렵게 이야기하며 살지 말자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있는 그대로만 이야기하고 살자

- 강재현, <너무 어렵게 이야기하며 살지 말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