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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내내 교수님 수업을 듣고 있으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너무나 챙피 했지만 고장난 수도 꼭지처럼 컨트롤 할수 없는 감정에 한때는 교수님 수업 들어갈때마다 굳게 다짐을 하고 수업에 임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절대 울지 말자...'

 

요즘은 저를 들어내고 표현한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또 한번 절실히 느낍니다. 말은 하고 싶었지만 실수의 두려움이 항상 저를 가로막습니다. 남편은 실수하는 자기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이 용기를 얻는 다면서 본인은 그래서 더 일부러 실수를 한다고, 남들에게 좋은 일하는 거라며 얘기합니다.

 

"실수 할 권리가 있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 저를 위한 말씀 같았습니다. 

교수님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이냐며 물어보실때 저는 리차드 기어가 과거를 떠올리며 

교회의 닫혀진 문을 여는 장면에서 그 사람이 과거의 경험을 또다시 겪게 되면 어쩌나... 

그 교회안의 사람들이 죽었으면 어쩌나 마음을 조리며 보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저를 들어내는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은 다시 한번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였습니다. 

그래서 조금 우울합니다. 제 자신에게 진것 같아서... 

저를 그럴 듯 하게 포장 하려는 ... 알면서도 제자신을 깨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서 걸어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다행이다' 그 정도의 감정에서 그치고 말았습니다. 

교수님의 해석을 들으며 어느순간엔가 닫혀 버린 제 생각 폭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의 수업은 문학, 영화 , 아니 보여지는 모든 삶의 시각을

새롭게 눈뜨게 하는 그런 능력을 일깨워 주시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입니다.

 

어느샌가 우울했던 마음이 없어졌네요. 교수님! 

늦었지만 저녁해야 겠어요.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럼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200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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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가진 힘은 예측할 수 없이 우리 가슴에 찾아와 우리를 깨웁니다. 마치 사랑이 찾아오듯이요. 첨엔 두려움을 주기도하고 거부반응이 생기기도 하고 그러다 'the story of an hour'의 주인공에게 찾아온 각성의 순간처럼 거부를 포기하는 순간 사랑처럼 밀려오지요.

 

단 한명이라도 수업을 통해 힘을 얻는 선생님이 계시다니 참 다행이네요.
담엔 두려워하지 말고 말하세요. 정답이 없다고 했잖아요. 제가 읽는 방식은 하나의 방법일 뿐이니까 저처럼 읽지 않아도 되어요.^^ 남편분이 수업도 같이 청강하고 참 아내를 아끼는 모습이 아름다웠어요.

어린이날, 날은 흐리지만 꽃핀 야외에서 아이들과 예쁜 추억 많이 담아오세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그림: Q. Buchholz(here only for educational and/or therapeutic purposes)

 

[겨울바다 -김남조]

겨울바다에 가보았지
未知(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 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바다에 가보았지
忍苦(인고)의 물이
水深(수심)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도종환 - 폭설

폭설이 내렸어요 이십 년만에 내리는
큰눈이라 했어요 그 겨울 나는 다시
사랑에 대해서 생각했지요
때묻은 내 마음의 돌담과 바람뿐인
삶의 빈 벌판 쓸쓸한 가지를 분지를 듯
눈은 쌓였어요
길을 내러 나갔지요
누군가 이 길을 걸어오기라도 할 것처럼
내게 오는 길을 쓸러 나갔지요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먼지를 털고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던 내 가슴 속
빈 방을 새로 닦기도 했어요
내가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내 사랑 누군가에게 화살처럼 날아가 꽂히기보다는
소리 없이 내려서 두텁게 쌓이는 눈과 같으리라 느꼈어요
새벽 강물처럼 내 사랑도 흐르다
저 홀로 아프게 자란 나무들 만나면
물안개로 몸을 바꿔 그 곁에 조용히 머물고
욕심없이 자라는 새떼를 만나면
내 마음도 그렇게 깃을 치며 하늘을 오를 것 같았어요
구원과 절망을 똑같이 생각했어요
이 땅의 더러운 것들을 덮은 뒤 더러운 것들과 함께
녹으며 한동안은 때묻은 채 길에 쓰러져 있을
마지막 목숨이 다하기 전까지의 그 눈들의 남은 시간을
그러나 다시는 절망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어요
눈물 없는 길이 없는 이 세상에
고통 없는 길이 없는 이 세상에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가 사랑하는 일도 또한 그러하겠지만
눈물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지 않기로 했어요
내가 다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다시 삶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며
더 이상 어두워지지 말자는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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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더러운 것들을 덮은 뒤 더러운 것들과 함께 녹으며 한동안은 때묻은 채 길에 쓰러져 있을" 그 눈들의 "남은 시간," ㅡ 그것이 차마 고통스러 힘들어했었습니다. 이 땅의 때묻음, 세상의 나약함은 덮는다고 가린다고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녹지 않는 눈 같은 환상이라도 있어 내 눈을 덮어주길 바란 것일까요? 어둠에 그을린 세상을 온몸으로 덮고 함께 녹아 길에 쓰러져 그 최후를 맞이하는 눈...그것을 다시는 절망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이 겨울에는 질척이는 외롭고 응달진 골목을 걸을 때 그 속에 함께 녹아 내린 희디 흰 눈의 눈물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코스모스 - 이형기

 

언제나 트이고 싶은 마음에
하야니 꽃피는 코스모스였다.

돌아서며 돌아서며 연신 부딪치는
물결 같은 그리움이었다.

송두리째ㅡ희망도, 절망도,
불타지 못하는 육신

머리를 박고 쓰러진 코스모스는
귀뚜리 우는 섬돌가에
몸부림쳐 새겨진 어룽이었다.

그러기에 더욱
흐느끼지 않는 설움 홀로 달래며
목이 가늘도록 참아내련다.

까마득한 하늘가에
내 가슴이 파랗게 부셔지는 날
코스모스는 지리.   

 

ㅡㅡ 

가을하늘이 숨이 막히도록 푸르게 점점 높아만 갑니다. 어느새 한해도 이 가을이 질 때 함께 저물어갈 것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은 물처럼 내 손에 잡히지 않지만 우리에겐 잊히지 않는 이야기들이 시간의 굽이굽이마다 꽃으로 피어납니다. 

가을이면 생각나는 꽃은 국화와 코스모스입니다. 싸늘한 국화의 향기가 쓸쓸함과 외로움, 고독함의 냄새와 닮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코스모스는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트이고 싶은 마음, 목이 가늘도록 참아내던 우리 가슴 깊은 곳의 이루지 못한 '간절함'을 그리움이란 설움으로 말없이 피워내고 있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남은 한 해, 나의 그 간절함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고 싶습니다.  돌아서며 돌아서며 연신 부딪치는 물결이 오늘도 목이 가늘도록 날 바라보며 손짓하고 있는 데 나는 무심히 등 돌리고 부지런히 세상의 물결을 쫓아 떠밀려가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요. 이 한해가 저물기 전에,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문득 뒤돌아 달려가 그 그리움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리움은 내 가슴 깊은 속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이며 온전히 꽃피워야할 '나의 참 모습'입니다. 고달프고 외로운 나그네로 세상에 살되 영원한 고향을 기억하며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나를 일깨워 살아있게 하는 손짓입니다. 저 까마득한 하늘가에 내가 파랗게 파랗게 부셔져 하늘과 나,  하나가 되는 그날을 위해..
-[ 덴버 중앙일보 칼럼, <내 마음의 작은 새>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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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lee

못- 천양희

벽에다 못 하나 박았다. 벽이 울렸다.
박힌 것은 못인데 벽이 다 울렸다.
그 소리 벽을 들어올렸다.
못 하나 받으려고 벽은 버텼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종일 못을 박았다.

벽에서 못 하나 뽑았다. 벽이 울렸다.
뽑힌 것은 못인데 벽이 다 울렸다.
그 소리 마음을 들어올렸다.
못 하나 보내려고 벽은 버텼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종일 못을 뽑았다.

 

113009

이름 부르기 - 마종기

 

우리는 아직도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검은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 앉아
막막한 소리로 거듭 울어대면
어느 틈에 비슷한 새 한 마리 날아와
시치미 떼고 옆가지에 앉았다.
가까이서 날개로 바람도 만들었다.

아직도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그 새가 언제부턴가 오지 않는다.
아무리 이름 불러도 보이지 않는다.

한적하고 가문 밤에는 잠꼬대가 되어
같은 가지에서 자기 새를 찾는 새.

방 안  가득 무거운 편견이 가라앉고
멀리 이끼 낀 기적소리가 낯설게
밤과 밤 사이를 뚫다가 사라진다.
가로등이 하나씩 꺼지는 게 보인다.
부서진 마음도 보도에 굴러다닌다.

이름까지 감추고 모두 혼자가 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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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제 이름 석자 무엇이 부끄러워, 아니 두려워 어둠에 감추고 익명의 존재들이 되었을까. 

그래서 같은 가지에서 서로를 불러도 더 이상 대답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걸까.  함께 있어도

각자 혼자가 되어버린 우리는 이제 어떤 이름으로 서로를 불러야 할까?  020214

 

나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가
왜 이름을 감추게 되었을까?

 

 

(c)Photos by bhlee 102419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 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 속에 지니는 일이다.

 

- 이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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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지키는 것은 약속을 한 사람의 몫인데
오히려 그 약속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은 기다리는 사람의 일이 되었다. 

어쩌면 약속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는데...

비가 오면 편지를 쓰겠다던 친구가 있었다. 
그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혹여 비 오는 날에 어쩌다 문득 그 약속을 기억할까?

 

사랑이란?
--길들이기와 길들여지기

“왜 서로 사랑했는데 그 사람은 떠나고 나만 여기에 남아 있을까요?
우리는 함께 사랑한 것이 아니었나요?
그렇다면 우리의 사랑은 대체 무엇이었죠?
사랑이 길들이기라면 그것은 서로를 함께 길들이는 것 아닌가요?
길들여져 남겨진 사람은 또 어떻게 혼자서 살아가야 하나요? “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 같은 질문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사랑이란 서로를 길들여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여우는 누군가가 내게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를 위해 보낸 시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여우가 말했다.
“넌 아직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네가 없어도 조금도 불편하지 않아. 너 역시 마찬가지일 거야. 난 너에게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야.”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에서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입니다. 그리고 여우 덕분에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는 여우를 떠나 자신의 장미에게 돌아가려고 합니다. 어린왕자는 자신의 장미가 특별한 이유를 그를 위해 보낸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우에게는 어린 왕자와의 짧은 만남이 어린왕자와 장미와의 만남 못지않게 중요하고 긴 ‘시간’입니다.

이별의 순간, 어린 왕자는 홀로 남겨지는 여우에게 말합니다. 너를 길들인 것, 그것은 네가 원한 것이었다고. 그러니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는 떠나가 버립니다. 출발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여우는 말했다.

“아아! 난 울음이 나올 것 같아.”
“그건 네 잘못이야. 나는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널 길들여 주길 원한 건 바로 너잖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그래.” 여우가 말했다.
“그런데 넌 울려고 하잖아!” 어린왕자가 말했다.
“그래. 정말 그래.” 여우가 말했다.
“그러니 넌 얻은 게 아무것도 없잖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얻은 게 있지. 저 밀밭의 색깔이 있으니까.”

물론 여우의 고통은 지난날의 행복에 이미 포함된 것인지 모릅니다. 여우는 “지난날의 행복의 일부”로 존재했던 현재의 고통을, 그런 사랑을 선택한 것입니다.
여우도 언젠가는 어린왕자가 떠날 거라고, 그 미래의 고통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현재의 행복을 선택했고, 자신을 길들여달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고독하고 외로운 여우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지 모릅니다. 이제 홀로 남겨진 여우는 어린왕자의 금발을 닮은 밀밭을 보면서 어린왕자를 기다릴 것입니다. 나타나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미 습관이 된, 그의 말대로 ‘길들여진’ 기다림과 그리움이 없다면 여우는 어떤 희망으로 하루를 살 수 있을까요? 그런 여우를 어린왕자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혹시 부담스러워할까요? 그래서 밀밭을 피해 멀리 도망치지는 않을까요?

함께 길들이기를 연습했는데 여우는 남겨지고, 어린왕자는 자신의 장미를 찾아 떠납니다. 이처럼 길들이기란 서로 함께 이뤄가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어린왕자의 금발을 닮은 밀밭이 유달리 바람에 일렁이는 날이면 여우는 바보 같이 두 팔을 벌리고 어린왕자를 만나러 달려갈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어린왕자의 금발이 아닌 밀밭에서 소리 없이 울어버릴지 모릅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밀밭 한구석이 들썩이고 있다면 그것은 바람이 아닌 여우의 울음 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어린 왕자를 만나고 돌아오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시간을 되살려내는 건 사랑의 힘이니까요. 상대방이 떠났다 해도 그때의 시간과 장소 그리고 열정 속에서 그 사람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마치 예술작품처럼 변치 않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추억입니다.

--출처: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 카페]]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bhlee 역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두 길을 다 갈 수 없는 한사람의 나그네인지라
아쉬운 맘으로 그 곳에 서서
한쪽 길이 덤불 속으로 굽어든 끝까지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웠지만
어쩌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은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이 지난 자취가 없었으니까요.
비록 그 길로 가면 그 길도 낡아져
결국 또 다른 길과 같아지겠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은 모두 아무도 밟지 않아
더럽혀지지 않은 낙엽에 묻혀 있었습니다.
아, 나는 훗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또 다른 길로 계속 이어지는 것을 알기에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도.

먼 먼 훗날에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을 쉬며 말하겠지요.
어느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노라고
그리고 나는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택하였다고,
그래서 모든 게 달라졌다고.

(trans./bhlee)

 

시의 제목을 '가지 않은 길'이라고 해야할지 그동안 모두들 번역한대로 '가지 못한 길'이라고 해야할지 망설였다.

하지만 시의 내용과 또 마지막 연을 봐도 인생에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이므로 그냥 나는  

"가지 않은 길"이라고 번역했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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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bhlee8819/at Khuvsgul

 

 

 

가을- 함민복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