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박정대>

 

고통이 습관처럼 밀려올 때 가만히 눈을 감으면 바다가 보일 거야
석양빛에 물든 검은 갈색의 바다, 출렁이는 저 물의 大地

누군가 말을 타고 아주 멀리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 보일거야
그럴 때, 먼지처럼 자욱이 일어나던 生은 다시 장엄한 음악처럼 거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되돌아오기도 하지

북소리, 네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를 들어봐
고독이 왜 그렇게 장엄하게 울릴 수 있는지 네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어봐

너를 뛰쳐나갔던 마음들이 왜 결국은 다시 네 가슴속으로 되돌아오는지
네 가슴속으로 되돌아온 것들이 어떻게 서로 차가운 살갗을 비벼대며 또다시 한 줄기 뜨거운 불꽃으로 피어나는지

고통이 습관처럼 너를 찾아올 때 그 고통과 함께 손잡고 걸어가 봐
고통과 깊게 입맞춤하며 고독이 널 사랑할 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너만의 보폭으로 걸어가 봐

석양빛에 물든 저 검은 갈색의 바다까지만
장엄한 음악까지만

[아무르 기타, 문학과사상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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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 도종환]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모두들 인사말처럼 바쁘다고 하였고
헤어지기 위한 악수를 더 많이 하며 총총히 돌아서 갔다

그들은 모두 낯선 거리를 지치도록 헤매거나
볕 안 드는 사무실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하였다

부는 바람 소리와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지는 노을과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밤이 깊어서야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돌아와
돌아오기가 무섭게 지쳐 쓰러지곤 하였다

모두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의 몸에서 조금씩 사람의 냄새가 사라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터전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쓰지 못한 편지는 끝내 쓰지 못하고 말리라

 

오늘 하지 않고 생각 속으로 미루어둔 따뜻한 말 한마디는
결국 생각과 함께 잊혀지고 내일도 우리는 여전히 바쁠 것이다
내일도 우리는 어두운 골목길을 지친 걸음으로 혼자 돌아올 것이다


------

오늘을 살지 못하면 내일도 없다.
내일은 언제나 오늘 다음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평생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중에....라고 하면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목표를 위해서는 현재를 인내하고 참아야한다는 것이 너무 깊이 학습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목표지향적이고 성과지향적인 세상이 내게 원하는 것은 늘 내일만 바라보고 현재를 건너뛰라는 듯했다.

그래서 Carpe Diem이라는 말을 한다. 오늘을 즐겨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오늘을 즐기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귀중한 순간임을 잊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내일을 위해서 내가 살아있는 이 순간을, 오늘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게 이 소중한 오늘이 단지 "내일의 전날"일 뿐인 것은 아닐까. 그 내일이 또 ‘오늘’이 될 텐데.

내일 쓰려고 오늘 쓰지 않은 편지는 영원히 쓰지 못할 것이다.
오늘을 살지 못하면, 나는 그저 영원한 귀가길에 있을 뿐 집에는 영영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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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과수원으로 오세요
석류꽃 만발한 곳, 햇살과 포도주와 연인들이 있어요.
당신이 혹 안 오신다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있겠어요.
당신이 혹 오신다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있겠어요.

                                             (루미/ 이봉희 역)

 

 

photo fr gardening books-Virginia Woolf's garden
(used here only for therapeutic purp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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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 본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꼽으라면 당연히 모네의 정원 지베르니를 빼 놓을 수 없겠지만... 그보다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티니 컬리지의 정원이 더 먼저 떠오른다.

 

그 곳은 "아, 좋다"라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고요함과 숙연함을 느끼게 하던 공간으로 내 가슴에 남아있다. 아무도 없는 어둑한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안개처럼 어둠이 내리는 그곳에서 같이 수업 듣던 일본에서 온 학생(선생)과 함께 아무 말 없이 한 동안 앉아 있다가 온 기억이 난다. 휴식과 사색의 공간! 사람들의 의미 없는 소음에 지친 요즘, 나도 그런 의미 없는 말을 하고 있는 요즘, 그 곳에 다시 가고 싶다.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도!

 

그런데 시인은 말한다.
이 가슴 벅찬 아름다움이 당신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니 당신이 있다면 또 이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말이 없어도 좋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더욱 그리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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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아프다고 말하지 못할까?

- 상처의 대물림

   

영화 <다크나이트>를 보면 악의 상징인 조커가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과 같은 고통을 당하면 그 누구라도 자신과 같은 악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고자합니다. 시민들의 희망인 고담시의 정의로운 검사 하비덴트는 그런 조커에게 희생되고 맙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서 조커와 똑같은 악의 화신이 되는 것이지요. 영화에서 보여주는 하비덴트의 이중적인 얼굴, 즉 반은 손상되기 이전의 온전한 모습, 나머지 반은 화상을 입고 괴물로 변한 얼굴은, 조커가 원하던 대로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고 만 안타까운(그러나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 건강의 중요성이 일깨워지면서 상담과 치료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의료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야뿐 아니라 자가치료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특히 미술, 음악, 연극 등의 예술치료에 이어 문학치료와 글쓰기치료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지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왜 이런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나는 아프지 않은데, 치료 따위가 왜 필요하냐는 것이지요.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자연스럽게 관계의 문제로 고통 받는 경험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피할 수 없는 이 고통스런 관계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발견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은 악하기 이전에 심히 병들었다는 것을, 가해자는 가해자가 되기 이전에 먼저 피해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그렇게밖에 살아남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저 사람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고 말합니다. 참 슬픈 말입니다. 이 말에는 그냥 거짓말을 쉽게 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저 사람은 거짓이 생존의 수단()이라는 뜻이며,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달리 살아가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그도 가해자이기 이전에 하비덴트처럼(그리고 조커처럼) 피해자인 것입니다. 가해자의 뒤에는 반드시 또 다른 가해자(특히 어린 시절의 가정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악의 승리는 상대의 파멸 혹은 선의 파멸이 아니라 상대를 또 다른 악으로 만든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나는 흡혈귀론이라고 말합니다. 흡혈귀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단순히 누군가를 죽게 하지 않습니다. 흡혈귀는 자기에게 물린자를 또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켜야만 살 수 있는 상태, 즉 자신과 똑같은 또 하나의 악을 만들고야 맙니다. 이렇게 악은 대물림되듯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그는 괴물과 싸웠으나 괴물이 되지 않았다는 니체의 말은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이 병들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병을 전염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성복 시인의 말했듯이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 점치는 노인과 교통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 이성복, <그날> 중에서

 

나보다 더 약한 상대를 희생자로 삼는다.

어떤 부모도 자신의 질병을 자녀에게 대물림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독감에 걸렸을 때 자녀 앞에서 대놓고 재채기를 하거나 기침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부모도 자녀의 입에 일부러 담배연기를 일부러 불어넣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독감 균보다, 담배연기보다 더 치명적인 파괴적 언어의 독을 아이들 앞에서 재채기처럼, 담배연기처럼 마구 쏟아내고 뿜어냅니다. 내가 들었던 더없이 끔찍한 그 말들을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고스란히 그 누군가에게 다시 퍼부어댑니다. 내가 가장 싫어했던 부모의 잔소리나 비난을 무의식중에 나의 자녀에게 똑같이 반복하는 경우는 아주 흔한 일입니다.

우리는 내가 받았던 유형과 무형의 폭력을 그 누구에겐가 다시 휘두릅니다. 이때 그 누군가는 나에게 다시 복수할 힘이 없는 안전한 상대, 즉 나보다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녀보다 더 연약한 존재들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악은 무엇보다 부모에게서 (사실은 우리가 누구보다 먼저 보호해주어야 할) 자녀에게로 대물림됩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복수의 대상을 찾지 못한 경우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복수를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찌른 칼을 뽑아서 다시 내가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입니다. 이는 곧 우울증이 되고 자존감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폴 리쾨르(Paul Ricoeur)돌출된 악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악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나만의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나를 병들게 한 그 불행이 그대로 그 누군가에게 대물림되기 때문입니다. 치료받지 못한 희생자인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가해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건강해져야 한다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정신분열증에 걸린 어머니가 자주 발작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예고 없이 발작을 일으키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아이는 매번 공포에 질렸지만 아무에게서도 어머니의 그런 행동에 대해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소년은 자라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아주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두려워하는 어린 딸의 모습을 보며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이건 꾸며낸 이야기야. 아빠가 곁에 있잖아라고 위로해주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정말 딸을 보호해주는 다정한 아버지일까요? 그는 자기 아이의 두려움을 교묘하게 조종하면서 자신이 강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라고 심리학자 엘리스 밀러(Alice Miller)는 말합니다. 그의 의식적인 소망은 자신에게 박탈되었던 것, 즉 보호와 위로, 공포에 대한 설명을 딸아이에게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아버지가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전해준 것은 바로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두려움과 재난의 예측 그리고 대답을 듣지 못한 질문의 대물림이었습니다.

 

왜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이토록 두렵게 하는 거지?”

 

그래서 우리에게 치료가 필요한 것입니다. 부모 자신이 먼저 과거 속 고통의 거미줄을 거두어내고, 자신과 자신의 행복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도록 건강하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나는 불행하면서 자녀에게 행복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가 먼저 행복하면 자녀는 자연히 행복해집니다. 나의 고통을 가장 사랑하는 자녀와 가족, 또는 그 누군가 무고한 사람에게 반복해서 악을 전파하는 불행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는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당신의 정원에서 악마를 쫓아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악마를 당신 아들의 정원에서 다시 발견할 것입니다.”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료 카페>(생각속의 집) 중에서

저작권이 있으므로 정확한 출처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음.

| 2019.11.21 20:06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 | 2019.11.24 23:24 신고 | PERMALINK | EDIT/DEL
에궁.. 저도 그래요 선생님.
완벽한 사람은 없잖아요. 완벽한 엄마도 없고요. 그런 엄마 마음을 아이에게 표현하셔도 좋을 듯 해요.
그리고 저도 정말 아이 말대로 선생님이 충분히 좋은 엄마셨으리라 생각해요.
윤임경 | 2019.11.21 20:08 | PERMALINK | EDIT/DEL | REPLY
교수님 혹시 이 글,대학원 문학치료 까페에 옮겨도 되는지요??
bhlee | 2019.11.22 21:49 | PERMALINK | EDIT/DEL
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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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정진규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 정진규 (1939~2017)/시집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1990 (문학세계)

 

 

존재하지만 우리가 보는 별은 그것의 실체는 아니므로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별...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빛이 절실한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별ㅡ
그것은 절실한 희망일까, 용기일까...........

그건 이미 모두가 보는 별이 아니다.
오직 어둠 속에서 절실한 이들만이 낳을 수 있는 아름다운 반짝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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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 나희덕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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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lee120516

 

[천상병 -약속]

 

한 그루 나무도 없이
서러운 길 위에서
무엇으로 내가 서 있는가

새로운 길도 아닌
먼 길
이 길은 가도가도 황토길인데

노을과 같이
내일과 같이
필연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

---------

 

<약속>
아주 오래 전 천상병 시인의 <약속>이라는 시를 읽고 끄적끄적 일기장에 그림을 그렸었다.

가로등과 기다림ㅡ
약속.... 누구와의 약속이든 그건 어쩌면 다만 약속을 기억한 사람, 그걸 잊지 않는 사람의 슬픈 풍경 같은 기다림인지 모른다.

...

그림을 보니 내가 인적이 없어 굳이 서 있을 필요도 없는, 길을 밝혀줄 필요도 없는 가로등을 그렸다.
게다가 전구가 없는 가로등을! 

 


오늘 밤엔 저 가로등에 전구를 끼워줘야겠다.
보이지 않는 길 잃은 한 영혼이 어떤 외딴 길 끝에서 이 작은 빛을 보고 안도하며 길을 찾을 수 있게..
집을 찾을 수 있게..

| 2007.03.10 17:3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약속 | 2007.10.01 09: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약속. 그건 뭘까. 나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적이 수없이 많다. 상대가 일방적으로 정한 경우에 특히 그렇다. 하지만 못지키는 경우 반드시 미리 이야기를 한다. 물론 내가 까막히 잊은, 잊은지 조차 잊은 약속도 있겠지 싶다. 그가 한 약속은 무슨 의미일까. 늘 기다린다. 언제까지, 라는 말을 믿고. 하지만 맘이 바뀌거나 그러기 싫으면 언제나 달라질 수 있는 그 약속들. 그의 약속은 그 약속을 하는 순간 그냥 그러겠다는 의견일 뿐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빈 길에서 늘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어느 새 10월이다. 나는 아직 빈 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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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슬픔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모습으로

당신 눈 앞을 가로막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그리고 믿어야합니다.

삶이 당신을 결코 잊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의 손을 꼭 잡고 있다는 것을.

결코 당신의 손을 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 라이너 마리아 릴케

히히 | 2021.01.19 07:14 | PERMALINK | EDIT/DEL | REPLY
힘든데, 참 좋은 글을 발견했네요 감사합니다.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 | 2021.01.20 03:07 신고 | PERMALINK | EDIT/DEL
요즘 많이 힘드시죠...
위로와 힘이 되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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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un Shiji(1926-2013)  

 



[슬픔 -김용택 ] 


외딴 곳
집이 없었다
짧은 겨울날이
침침했다
어디 울 곳이
없었다

 

---

지난 주에는 갑자기 눈보라가 쳤습니다. 슬픈 재즈 같이 젖은 눈이 아프다는 소리도 없이 잿빛 바람에 마구 휩쓸려 불려 다녔습니다. 누군들 곱고 하얗게 내려 쌓이고 싶지 않을까요.

세상은 온통 고장 난 시계처럼 하루 종일 희미한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가슴속의 다 타고난 재가 불어오고, 불려 다녔습니다. 공연히 해묵은 아픔이 가슴을 적셨습니다. 이 작은 냉기에도 마음이 또 다시 위축됩니다. 하루하루 손에 남은 건 녹아버린 눈송이 같은 젖은 방울 몇 점 뿐.
해 놓은 일도, 남겨진 것도 없이 무산된 계획만 헛손질하며 가버리는 하루, 하루, 그리고 또하루....


늘 손잡아 주던 엄마가 이젠 혼자가라고 나를 남겨둔 정류장 앞에 선 어린아이처럼 초조하고 불안하기도 합니다. 이런 흐린 날은 어려서부터 공연히 서둘러 집에 가고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시인은 집이 없었다고 합니다.
외딴 곳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삶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익숙하던 길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잿빛 바람이 불고 날은 쉽게 어둑어둑해지는 겨울날이 우리 삶의 여정에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외딴 곳, 침침한 곳에서 시인이 집을 찾는 이유는 울 곳이 필요해서입니다. 우리 모두 길을 잃은 듯 외로운 날, 서로에게 집이 되어주면 좋겠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이슬을 막아주는 지붕이 되고 기대어 울 수 있는 벽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는 동으로 난 작은 창이 되어 이 외딴 세상에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런 희망으로 시를 감히 고쳐 읽어 봅니다.  "
외딴 곳, 짧은 겨울날이 침침했다. 작은 창에 불이 켜졌다. 나는 그대의 가슴에, 그대는 내 가슴에  집을 짓고  이름 없는 설움을 비워내며 조용히 울었다." (2005 bhlee, 문학칼럼 중에서)


| 2011.07.16 00:51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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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비 내리고 -편지1 >  - 나희덕

 

우리가 후끈 피어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caldera66 | 2007.03.06 22:3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시를 읽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보듬어 안아주고싶습니다.
내일 아침 해가 뜨면 가슴에 품은 향기 훨훨 날려보내라 일러주고싶습니다
송아지 | 2007.03.06 22: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당신이 힘드실까봐...당신이 힘드실까봐 나는 말을 못한다. 당신이 힘드실까봐 내가 힘들고 만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하는 일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음. 바보짓이라고 생각하며 지나고 후회하지만 난 내 목소리를 아직 잘 내지 못한다. 왜 남의 걱정을 먼저 해주는 걸까? 그 사람을 진정으로 염려해서도 아닌 것 같다. 나를 사랑할 줄 몰라서일까? 나의 요구는 늘 무시되어 왔었나? 왜 내가 힘든 건 돌아보지않나...왜 지려고 하는지 원래 마음은 그게 아닌데 져버리는게 편하게 되어버렸다. 내 것을 요구하는게 미안한 걸까? 나쁜 걸까?
송아지 | 2007.03.06 23:06 | PERMALINK | EDIT/DEL
후기: 어제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 때문에 한 통화가 생각났다. 분명히 그쪽에서 잘못 한 것인데...환불 내지는 교환해달라고 해야지 맘 먹고 있었는데 결국은 '그냥 어떻게 해볼께요'하고 전화를 끊고 말았다. 전화하는 동안은 내가 요구할 수 있는건 떠오르지도 않았다. 일부를 교환해줄까 하는 의사를 저쪽에서 보였지만 그 사람이 부담할 배송비가 걱정되어 그러라는 말도 못했다. 바보같다. 바보... '나의 요구는 늘 무시되어 왔었나'라는 말을 가지고 또 나를 들여다보면 할 말이 많겠지...그런데 그럴 힘이 없다...
naptkorea | 2007.03.07 14:46 | PERMALINK | EDIT/DEL
가녀린 어깨가 제 맘을 짠하게 했습니다. 그 많은 이야기를 그 작은 어깨에 다 얹고 용감히 사셨네요.

저도 거절을 못하고 당하고 되갚아주지도 못하고는 돌아서면 바보바보 하면서 제 머리를 쥐어박는 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런 저를 인정하기로 했어요. 모두가 이기려구 눈에 해드라이트를 켜고 고속주행하는 세상에 저 하나 오솔길로 털털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간다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늘 자책하는 것은 아마도 남들이 선택한 길이 다 옳아보이는 것은 홀로 남겨지는 것이 너무 외롭기 때문에 내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인양 날 질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홀로 도태되는 것은 참 고통스런 일니니까 혼돈이 오기 때문이지만 우리에겐 늘 세상에 없는 특별한 지도가 있잖아요. 보물섬으로 가는 지도요. (아 마그리트그림에 보물섬 시리즈도 있는데.)

(그래서 세상은 무리를 지어 힘을 만들고 다른 이들을 그 무리에서 배타시킴으로써 집단의 힘에 굴복하게 만들지요. 도태시키고 왕따를 시키는 이런 폭력은 독방감옥형과 같은 것이지요. 결국 모두 견디어내지 못하고 무리에 섞이려 애를 쓰지요. 열심히 일한 댓가보다는 사람과 관계를 잘 맺어야 직장에서도 기회가 오니까요.


괴롭고 외로웠던 지난 일들은 그 어느 것도 송아지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날마다 스스로에게 말해주세요.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요. 모두가 다 서로 피해자이며 가해자가 되어서 아픈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그 사실이지 "그럼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는게 아니니까요. )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잖아요. 남에게 수없이 비수를 꽂으며 승승장구하는 사람들보다 송아지처럼 묵묵히 일하고 모든 것을 다 주고 가는 삶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요. 그게 우리에게 지도를 주시고 그 길을 따라 먼저 걸어간 분의 발자국이잖아요. 그것이, 그 외로움과 억울함과 고통이 우리들의 긍지라고 생각해요. 세상이 이해할 수없는 보물섬으로 들어가는 신분증이요.

과거의 치료는 현재의 내 모습을 바꿔준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현재의 내 모습을 사랑하지 못하게 괴롭히는 과거의 목소리들에게서 날 해방시키는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나의 인생은 나의 것, 오직 나의 것입니다.

사실 인생은 이래저래 참 힘겹고 괴롭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고통)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 하지지요. 환란을 당하는 것이 정상이다 라는 것이지요. 세상에서 너희가 당하는 불시험을 이상한일 당하는 것처럼 여기지 말라 고도 하시지요.(베드로전서) 심지어 "여러가지 [색깔의] 시험을 당하거는 기뻐하라"(야고보)고 까지 하십니다. 참 이상합니다.

이런저런 사람들과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와 득실을 따지고 바라보는 순간 물위를 걷다가 파도를 바라본 순간 물에 빠지던 베드로처럼 저도 그만 세상에 익사하고 말더라구요.


기억도 안 나는데 우리 제자가 제가 한말을 제게 되돌려 주었어요ㅡ"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해야할 것은 세상 속에 내 영혼이 실종되는 것이야."

오늘은 내 생애에 나를 실종되지 않게 인도해주신 분들을 기억하고 그분들께 감사하는 편지를 일기에 써보고 싶어요.

내 안에 빼앗긴 것만 기억하고 내가 받은 수많은 사랑과 선물을 감사하는 맘이 없는 것도 참 슬픈 일인거 같습니다.

힘내세요. 우리 같이 모두 같이 보물섬으로 가요.
naptkorea | 2007.03.07 14:43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리고 송아지님, 잘하셨어요. 그게 뭐 그리 큰 바보짓도 아니잖아요... 내가 손해보면 누군가 그 만큼 득을 보는 것이라 생각하세요.

누구나 알고 있어요.
사실은 "당신이 아프실까봐" 내가 힘들고 마는 일을 서로 서로 한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관계는 없을 거에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바보"취급당하는 세상이 잘못된 거랍니다. 세상에서는 그러면 바보라고 가르친답니다. 송아지님은 바보가 아니어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긍지를 가시세요.

다만 내가 꼭 해야할 정당한 요구라면 상대의 말에 압도되지 않게 미리 메모를 해서 그걸 보고 상대에게 내 요구와 의사를 표현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상대의 말에 응수하고 반응하지 말고 내가 해야할 말을 하는 거지요. 특히 말꼬리 잡고 트집잡는 "이상한나라" 사람들이 있어요. 그때는 상대의 말에 내가 반응하지 말고 내가 쓴 목록표를 보며 상대에게 말을 해도 좋을 거에요. 요새는 이메일이 있으니까 편리하기도 하구요.

저도 대화하기 전 밤새 머리 속에 쌓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합법적인" 모든 목록표를 상대가 말도 안되는 엉뚱한 괴변으로 반박하면 하얗게 망각하고 한마디도 못한답니다. 밤새 쌓은 만리장성이 일순간 무너지는 거지요 ㅠㅠ 그런 상식에서 벗어난 언어와 논리에 순간적으로 대처할 "언어"가 내 속에는 없더라구요. 그러니 그것도 내 잘못은 아니지요. 그 사람과 내가 사는 세계가 서로 너무 다른 것일 뿐이지요. 싸움도 서로 맘이 맞아야 하더라구요. 서로 너무 다르면 입만 딱 벌리고 하얗게 머리가 충격을 받고는 마비되고 말지요. 바이러스 먹은 컴퓨터처럼요... ㅎㅎ

정말 중요한 어떤 일들이 아니라면 자책하지 마시고 발로 뻥뻥 차버리세요.

정말 잘하신 거에요.
우리에겐 우리의 언어를 쓰는 칭구들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해요~~
송아지 | 2007.03.07 23:57 | PERMALINK | EDIT/DEL
어제는 이래저래 피곤했었는데 오늘 선생님의 답글을 읽으니 긍지가 막 솟아나네요^^
정말 생각하기에 달린 것 같아요. 덕분에 남에게 별로 욕 먹으며 살진 않으니까...답답하다는 소리는 들을지 모르겠지만.

감사한 제목으로도 나를 많이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시시한(?) 이야기였지만 공감해주고 다독여주는 분들이 있어 기쁘네요. 같이 자전거를 타고 보물섬으로 갈 친구들...(영화 ET의 한 장면이 생각나네요)

뻥뻥 차고 부셔버리고...태권도라도 배워야할까봐요. 얍!^^*
솜사탕 | 2007.03.07 23:2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욕심과 이기심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데서 오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다. 당신이 힘드실까봐 아프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향기 또한 마음껏 내품지도 못하고 마지막 한 방울 마져 떨어지지 못하고 메달려 있는 것은 고통이기 보다는 차라리 배려와 사랑이라 여겨진다. 내가 마음대로 항기로울 수 없는 것도 나의 고통이라기 보다는 눈부신 사랑의 모습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당신이 힘들어 하실까봐 서로 조심해주고 배려해주는 아름다운 눈부신 사랑이 그리운 세상이다.
그런가요 | 2007.03.09 21:51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당신은 내가 힘들까봐 아프다는 내색도 하지 않습니다. 나도 당신이 아플까봐 힘들다는 내색도 하지 못합니다. 당신은 페이지 가득 쓴 말들을 다 지우고 단 한 마디를 써서 보냅니다. 잘 견디고 있나요? 나는 잘 견디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보낸 전설처럼 신비한 그 한마디 심어 고이고이 키웁니다. 때론 따사롭고 행복한 햇살과 때론 의심의 폭풍과 때론 모진 침묵의 겨울을 견디며 꽃을 피웁니다. 잘 견디고 있나요 라고 나도 묻고 싶지만 이제 너무 오랜 계절이 지나 묻기가 두렵습니다. 나는 여전히 당신이 힘들까봐 맘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혹...당신도, 내가 아플까봐 맘껏 힘들다고 내색도 못하는 것인가요,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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