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bhlee0105

 


어스름. 땅거미... 그리고 꿈결

하늘은 항상 땅보다 천천히 어두워진다.

땅 위에 어둠이 덮인 후에도 아직은 바라볼 무엇이
하늘에는 있다.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흐린 날도, 비오는 날도, 

나는 밤이면

늘 하늘을 바라보곤 한다.

이런 시간이면 떠오르는 노래-
김광석의 <거리에서>

길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뒤돌아선 표지판 앞에서

길을 물었습니다

당신께로 가는 길을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먼 길을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쓸쓸한 길을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낮은 길을

얼굴 없는 표지판 앞에서

침묵하는 표지판 앞에서

울음 터질 것 같은 가슴으로 물었습니다

당신께로 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Trail Rodge Rd. Mt Rocky2004

(사진/글-bhlee)
사진이 없어져서 (늘 내가 모든 자료를 그렇게 잃어버리듯이) 한 제자의 페북에서 가져왔던 거다.
정말 아쉽다. 처음 내가 찍었던 것과 너무 다르고 다 흐려져버린 20년 넘은 사진.

얼굴 없이 돌아선 표지판이 원본과 달리 이 사진에는 잘 나오지 않는구나. 
그래 그것도 그런대로 의미가 있지. 그게 길이지.... 
오래되어 낡은 지도처럼.  

오래되어 빛바랜 추억처럼 

"방황한다고 모두가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 톨킨

 

photo bhlee

----------------

KKSup님: 맞아요, 방황의 길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하니까요.

-->
BHL: 맞습니다 선생님. 길이 열릴거에요.
내가 생각한 내게 간절했던 길이 아니어도 또 열린 다른 길이 ‘나의 길’인 것을 알 수 있는 지혜와
그걸 받아들이고 성실히 걸어가는 성숙함을 올해에 나에게 기대하고자 합니다.
어느날 그 길이 끝나고 돌아보며 감사할 것을 아니까요^^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 한다

가만히 눈을 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참 좋은 당신 - 김 용 택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좋은
당신.

-------------------

 

너무나 잘 알려진 시이다.

생각만 해도

좋은

당신

나는 어떤 사람이 참 좋은가?

늘 환히 웃어주는 자?

누가 늘 환히 웃을까?

 

시인은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ㅡ그는 어둠을 건너온 자라고 말한다. 

그의 웃음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어둠을 아는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이다. 
그의 존재가 어둠을 밝히는 깨끗한 빛이다. 
그게 그의 웃음이다. 


어둠을 건너 온 자... 어둠을 아는 자,  그래서 

삶이 끝나는 날까지 수없이 지나야할 어둠의 길목과 터널마다 

그 자신이 빛이 된 사람,

참 좋은 당신. 

[덕담 한마디- 김지하]

 

    새해에는 빛 봐라
    사방문 활짝 열어제쳐도
    동지 섣달
    어두운 가슴속에서 빛 봐라
    샘물 넘쳐흘러라
    아이들 싱싱하게 뛰놀고
    동백잎 더욱 푸르러라
    몰아치는 서북풍 속에서도
    온통 벌거벗고 싱그레 웃어라
    뚜벅뚜벅 새벽을 밟고 오는 빛 속에
    내 가슴 사랑으로 가득 차라
    그 사랑 속에
    죽었던 모든 이들 벌떡 일어서고
    시들어가는 모든 목숨들
    나름나름 빛 봐라
    하나같이 똑 하나같이
    생명 넘쳐흘러라
    사방문 활짝 열어제쳐도
    동지 섣달
    어두운 가슴속에서
    빛 봐라
    빛 봐라
    빛 봐라

나는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 이기철

  

나팔꽃 새 움이 모자처럼 볼록하게 흙을 들어 올리는 걸 보면 나는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질까 두렵다

어미 새가 벌레를 물고 와 새끼 새의 입에 넣어주는 걸 보면 나는 세상이 너무 따뜻해질까 두렵다

 

몸에 난 상처가 아물면 나는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저 추운 가지에 매달려 겨울 넘긴 까치집을 보면 나는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이 도시의 남쪽으로 강물이 흐르고 강둑엔 벼룩나물 새 잎이 돋고 동쪽엔 살구꽃이 피고

서쪽엔 초등학교 새 건물이 들어서고 북쪽엔 공장이 지어지는 것을 보면

나는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서문시장 화재에 아직 덜 타고 남은 포목을 안고 나오는 상인의 급한 얼굴을 보면

찔레꽃 같이 얼굴 하얀 이학년이 가방을 메고 교문을 들어가는 걸 보면

눈 오는 날 공원의 벤치에 석상처럼 부둥켜안고 있는 가난한 남녀를 보면

나는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이 세상 여리고 부드러운 것만 사랑한 셈이다

이제 좀 거칠어지자고 다짐한 것도 여러 번, 자고 나면 다시 제 자리에 와 있는 나는

아, 나는 이 세상 하찮은 것이 모두 애인이 될까 두렵다

흙으로 그릇을 빚는데

그 안에 빈자리가 있어

그릇으로 쓰네

- 노자 [도덕경] 11장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연식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

그러므로 있음은 이로움을 위한 것이고 

없음은 쓸모를 위한 것이다.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고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

 

-------------

조용히 하나씩 비워야하는 시간

비움도 "빚는 일"임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즐거운 편지 -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맬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사랑하는 옴마!
엄마, 나는 크리스마스 하면 나 초등학교 때 엄마가 TV세트 앞에 이쁘게 포장해서 선물 잔뜩 올려놨던 기억이 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난 너무나 엄마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선물 받았는데 역으로 내가 엄마한테는 (특히 유학오기 전까지) 아픈 상처만 많이 줬던 기억이 나서 참 많은 후회가 돼.  엄마, 우리는 명절 때 왁자지껄한 적이 없었지만 이제 내 가슴속에 남는 것은 그때의 쓸쓸했던 것이 아니라, 엄마가 그런 나를 위해서 얼마나 가슴 아파하고 채워주려고 노력했는지야. 그리고 엄마의 그 사랑이야 말로 내게는 가장 감사한 선물이고 내가 받은 가장 큰 축복이야.  엄마, 이 사실을 이렇게 뒤늦게야 깨달아서 너무 미안해. 우리 옴마 늘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우주 최고로.  우리 좀 이따 만나~~~  2011 크리스마스 옴마딸.
----

늘 그렇듯 자료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추억의 카드 편지. 
내가 여기저기서 받은 손편지들이 박스로 넘친다. 버릴 수 없는 마음이 가득해서 간직한 것들이...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는 추억은 언제나 선물 같은 조우이다. 
이상도 하지. 내가 뭔가 해준 건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자꾸 못해준 것만 기억난다. 
서로서로 그런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인가 보다.  준 것이 아니라 받은 것만 생각나는 거.... 

많이 보고 싶지만 멀리서 그리워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우린 서로 보고 싶단 말도 자제한다...... 왜 그러는지 서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