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울음 끝에 -박재삼

  막바지 뙤약볕 속
  한창 매미 울음은
  한여름 무더위를 그 절정까지 올려놓고는
  이렇게 다시 조용할 수 있는가,
  지금은 아무 기척도 없이
  정적(靜寂)의 소리인 듯 쟁쟁쟁
  천지가 하는 별의별
  희한한 그늘의 소리에
  멍청히 빨려들게 하구나.

  사랑도 어쩌면
  그와 같은 것인가
  소나기처럼 숨이 차게
  정수리부터 목물로 들이 붓더니
  얼마 후에는
  그것이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맑은 구름만 눈이 부시게
  하늘 위에 펼치기만 하노니.

   - [울음이 타는 가을 강] (1987, 미래사)

얼마 전 산에 같이 간 20년 넘는 사랑하는 제자가 말했다.
“신기해요. 선생님은 어떻게 죽어가는 꽃이 눈에 띄세요? 그런 사람 선생님 밖에 없을 거예요. 호호호...”
내가 초록초록으로 온 세상이 물든 속에서 숨어있는 죽어가는 꽃과 나뭇잎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일이 생각났다. 화창한 봄날, 사방에 눈이 부시도록 꽃망울이 터져 나오던 날, 몇몇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러 갔었다. (물론 나는 사진을 어떻게 잘 찍는 것인지 배우지 못했다.) 신기하기도 하지. 온갖 아름다운 빛깔로 세상을 덮은 꽃들 틈에서 그때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은 그 화려한 생명의 탄성 속에 가만히 묻혀있던 침묵이었다. 죽은 나무, 죽은 꽃들이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 죽은 꽃들의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마음이 가는 대로 그냥 그 꽃들을 열심히 찍었다. 그때 (엄청 그림 잘 그리는) 화가인 내 친구가 말했다. 참 이상하다면서. 야, 누가 그런 어두운 사진을 좋아하겠니? 왜 이 아름다운 봄에 그런 사진을 찍어? 누가 그런 사진을 벽에 걸어놓고 싶겠어..
그 친구는 언젠가 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샤갈의 그림을 이야기하자 (하얀색의 "비데부스크를 넘어서"라는 그림) 그때도 뜻밖이라고 말했다. "너가 어떤 그림을 고를지 무척 궁금했는데 뜻밖이네." 색채의 마술사 샤갈의 그림 중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 어찌 그것 하나일까. 다만 그때는 그 그림이 가장 내 가슴에 울림을 주고 있었다. 그 비스듬한 귀향과 노스탤지어에 때문에. (후에 정말 뜻밖에 세상을 떠난 그가 고통 속에서 남긴 마지막 그림도 역시 더욱 밝고 열정이 가득한 아름다운 색감의 그림이어서 나를 더욱 감동시켰다.)
그 친구 말이 맞다. 지극 당연한 말이다.
나도 봄이 되면 꽃들 속에서 환하게 살아나는 내 몸과 마음을 생생하게 체험하니까. 맞는 말이다. 초록으로 우거진 숲에서 뜨거운 열정의 계절을, 지금을, 현재를 맘껏 누리고 취해야지 왜 곧 찾아올 긴긴 가을과 겨울을 미리 기억하려 하는 것일까. 이상할 수밖에.
그런데 분명한 것은 내가 발견하는 그 죽은 잎이나 꽃은 여름을 잊는다던가, 현재를 누리지 못한다던가 하는 마음과는 무관한 것이다. 어둠을 기억하지 않는 빛의 감사가 있을까? 죽음을 망각한 삶의 감사와 환희가 있을까? 그리고 그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여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죽어서도 누군가에게 베풀고 있다는 것을 늘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명 속에 소외된 죽음과 희생을 기억하는 것, 웃음 뒤에 숨겨진 아픔을 기억해주고 알아주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생명을, 꽃을, 초록을, 삶의 봄과 여름을 감사하며 누리는 나의 방식이라면 이상한 것일까?

기쁨과 희망은 의지의 문제다

- 긍정적 의지

 

 

우리는 기쁨이나 희망, 감사나 사랑 등을 모두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감정입니다. 하지만 감정 이상의 것이기도 합니다. 만약 기쁨이 마냥 샘솟듯 솟아나오는 감정일 뿐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자주 당황하게 될까요? 기뻐할 일보다 좌절하고 낙담할 일이 훨씬 더 많으니 말입니다. 기쁨은 순간일 뿐이고 슬픔은 영원히 마르지 않고 흐르는 강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시인 하진은 슬픔을 인생에서 유일하게 영원히 살아 있는 물줄기라고 말했을까요.

만일 사랑이 단지 가슴을 두근두근 설레게 하거나 상대를 애틋하게 느끼게 하는 감정일 뿐이라면, 사랑은 얼마나 덧없이 짧은 사건일까요. , 감사하는 마음이 단지 그 조건과 이유가 있을 때만 우러나오는 감정일 뿐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감사할 일이 적어질까요. 그 감사의 조건은 또 얼마나 주관적이며 이기적일까요. 브레히트가 경험했듯이 때로 운이 좋았다고 감사하던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질 수도 있고, 그 감사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로지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던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Ich, der Überlebende>

 

기쁨과 희망은 단순한 감정 이상의 힘겨운 노력

 

오래전, 힘든 시간을 보내던 딸아이는 한 가닥이라도 좋으니 희망의 빛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엄마, 오늘 친구가 내게 생일선물로 뭐 갖고 싶은지 물었어. 그래서 내가 희망이 있다는 증거 한 가지라도 갖고 싶다고 말했어.”

그러자 아이의 친구가 말했다고 합니다.

가끔 내가 희망이 없어지고 삶에 대해 회의적일 때마다 난 네 안에서 희망을 보고 힘이 나곤 해. 그렇게 가끔은 네 안의 하나님이 나를 안아주시더라.”

딸아이가 다시 내게 말했습니다.

엄마, 누군가가 나처럼 회의와 절망 속에 있으면서도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돼.

 

기쁨이나 감사, 희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상의 힘겨운 노력이자 의지이며 지혜입니다 "모든 지혜는 두 마디로 요약된다. 기다림과 희망이다"라는 A. 뒤마(Duma)의 말이 기억납니다. 생태주의 작가 바버라 킹솔버(Barbara Kingsolver)는 최악의 날들에 절망의 잿빛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찬란한 사물"을 골똘히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때 바라본 찬란한 사물은 빨간 제라늄 꽃이었고, 노란 원피스를 입은 어린 딸이었으며 초승달과 광활한 밤하늘이었습니다.

 

내가 다시 삶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나는 그것들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마치 뇌졸중 환자가 움직이지 못하는 몸의 기능을 회복하려고 두뇌의 새로운 부분을 훈련시키듯이 나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에게 기쁨을 가르쳤다. (킹솔버투손의 만조에서)

 

그는 절망에서 벗어나 다시 삶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복적으로자신에게 기쁨을 가르쳤습니다.’ 킹솔버는 이것을 마치 마비된 두뇌의 새로운 부분을 훈련시키는 것과 같았다고 말합니다. 이보다 더 정확한 비유가 있을까요? 릴케는 우리 슬픔의 대부분은 마비된 순간들이라고 했습니다. 절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상병 시인의 새처럼, 절망한 사람들은 더 이상 감정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마비된 상태입니다.

 

저 새는 날지 않고 울지 않고

내내 움직일 줄 모른다.

상처가 매우 깊은 모양이다.

- 천상병, <3> 중에서

 

이처럼 절망한 사람들은 절망의 심연 속에 가라앉아 움직이지 못합니다. 심연이란 말은 독일어로 압그룬트(Abgrund)’, 즉 존재의 기반을 잃어버린, 또는 삶의 이유를 상실한 것을 의미합니다. 내 삶이 그 어디에도 없는 부재중이라고 여겨지는 것, 이것이 바로 절망입니다. 그래서 여림 시인의 말대로 지금 나의 삶은 부재중이오니 희망을 알려주시면 어디로든 곧장 달려가겠습니다라고 호소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신에게 기뻐하는 법을 가르치기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작가 빅터 프랭클이 유태인 포로수용소 아우슈비츠에 있었을 때입니다. 한 작곡가가 희망에 찬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달 후면 모든 게 끝날 거야. 꿈을 꿨는데 다음 달 330일에 독일군이 항복했거든." 하지만 330일이 되어도 모든 것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러자 시름시름 앓던 작곡가는 그만 바로 다음 날인 1945331일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지요.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9454, 히틀러는 자살을 하고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는 그 일로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수감자들을 보면서 누구보다 체력이 뛰어나고 민첩하게 살아가는 요령을 터득한 사람들이 가장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놀랍게도 겉보기에는 나약하고 어수룩해 보여도 붉은 노을의 장엄함과 동료의 흥얼거리는 노래 소리, 들꽃 같은 아주 작은 것에 감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도 병든 동료에게 자신의 음식을 기꺼이 나눠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어떤 최악의 조건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의지와 노력으로 절망의 심연에서 마비되기를 거부하고, 자신에게 기뻐하는 법을 가르치고 훈련한 인간 영혼의 승리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찾은 삶의 의미와 희망은 생의 작은 것에서 찬란함을 찾아내어 감탄하는 따뜻한 감성과 강한 긍정적 의지에 있었습니다. 이처럼 외부 환경과 상관없이 스스로 삶의 의미와 살아갈 이유를 부여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를 프랭클은 최후의 자유라고 말합니다.

 

감사와 기쁨, 희망과 사랑을 느낄 수 없다고 절망할 때, 그것들이 자연스런 감정 이상의 의지이자 노력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과 안개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그 한가운데서 포기하지 않고 기뻐하는 능력을 나 자신에게 가르치겠습니다. 그것이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는 눈을 기르는 일처럼, 내 작은 손바닥에 무한을 담는 것처럼 놀랍고 멋진 일임을 기억하고자 노력하고 싶습니다- 반복적으로!

 

(c)이봉희 / 출처: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 카페/ 생각속의 집]

 

흔들린다 - 함민복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대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은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띄우는 일이었구나

여름날 저녁 - 심재휘
 
내가 그 여름을 떠나면서
여름은 언제나 헛된 저녁이었다
저물녘이면 헐렁한 반바지에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아무렇게나 자란
풀들의 길을 따라
내일을 희롱하며 내가 걷고 있었다 그럴 때면
바람이 터진 기억의 솔기를 자꾸 꿰매며
나를 밀어내는 탓인지 그 때의 들풀 냄새가
나는 듯 할뿐이어서 더욱 손을 내저어 보는데
그럴수록 멀찍이 물러서는
냇물과 산그늘이 있었고
다만 저녁의 푸른 집들만 도드라져서
손 앞에서 잡힐 것만 같았다 여름날 저녁
세상의 모든 윤곽선들은 반듯하였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오늘의 일과를 마치며
집으로 돌아가는 간선도로의 질주 아래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추억의 박제가
또 산산이 깨어져 있었다

Chuck Mangione - Feels So Good with vocals by Don Potter

Album '70 Miles Young' 2003 ( Here only for therapeutic and/or educational purposes.)

 

https://youtu.be/kIgw3Byk_BY

 

Chuck Mangione의 가슴에 파고드는 트럼펫 연주를 Don Potter가 노래를 하는 이 곡을 참 좋아했었다.
 
There's no place for me to hide
로 시작하는 Don Potter의 첫 음성이
내 가슴을 흔들었지.
 
There’s no place for me to hide
the thoughts of all the times I've cried
and felt this pain that I have known
because I needed just to hear that special something.....
Your name is music to my heart....
 
우리 모두에게는 어딘가 숨을 곳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편히 내려놓을 수 있는 곳.
 
김용택 시인이 말하듯
"어디 울 곳"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어도 필요한 안전지대.
 
내 가슴에 음악이 되어 들리는 이름들을 떠올려본다—
나에게 안전한 숨을 곳이 되어준 이름
내가 생을 마치는 날 내 곁에 음악으로 남을 이름
 
어스름이 내려오는 저녁 시간엔
트럼펫 소리가 참 잘 어울린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다.
역시 좋다..

바다와 나비 - 김기림(1939)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오늘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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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프로그램은 아이 양육을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지만, 어느새 내가 상처입었던 그 방식으로 아이를 대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절망하는 양육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 아이를 양육하는 양육자에게 도움이 되고 양육자 자신도 치유받는 글쓰기치료 실습이 포함됩니다.
(실습 중 쓰는 글을 비밀이 보장됩니다.)
❍ 프로그램 내용: 1)당신 모습 그대로 오십시오   2)내면 가족, 내면 아이    3)엄마의 기대가 나를 아프게 해요
❍ 프로그램 내용은 참여자 분들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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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정말 삶에서 가장 놀라운 축복중 하나입니다. 축복인 이유는 당연히 그 놀라운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함께하는 기적 같은 시간들 때문이지요. 어떤 것도 당연한 것이 없는 힘겹고도 아름다운 생명의 성장을 바라보는 경이로움 때문입니다.

(반드시 어린 자녀를 둔 부모가 아니어도 됩니다. 남들이 외면한 내면의 나도 내가 가장 먼저 양육해야 하는 아이이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가 축복인 이유는 부모가 진정한 사랑, 가장 순수하고 힘겨운 사랑을 배우는 놀라운 과정이기 때문에 축복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느 누군가를 위해서 그렇게 오래 고통받고(인내하고), 온유하고, 무례히 행하지 않고, 기꺼이 나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랑을 해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경우라도 포기하지 않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소망하며, 모든 것을 견디는, 그래서 그 과정에서 부모 자신이 놀라운 성장을 이루는 여정이기에 가장 감사한 축복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양육을 위해서 많이 공부하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지적으로 안다고 해도 많은 분들이 어느새 내가 자란 방식으로 (상처 입었던 그 방식으로) 아이를 대하고 있는 자신을 만나고 소스라치게 절망하게 되지요. 어느 날 내 슬픔과 아픔을 가장 사랑하는 어린 아이에게 대물림하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어느새 아이 속에서 상처 입은 나의 모습을 만나게 되는 절망을 경험하기도 하지요.
 
왜 머리로는 아는데 안 될까요.... 이 워크숍은 이 질문에서 시작하겠습니다.

먼 곳이 생겨난다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며 먼 곳이 생겨난다
  ㅡ문태준

 

 

@NewYork

<그대 가까이 2 - 이성복>
          
자꾸만 발꿈치를 들어 보아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때로 기다림이 길어지면
원망하는 생각이 들어요
까마득한 하늘에 새털구름이
떠가고 무슨 노래를 불러
당신의 귓가에 닿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만나지 않았으니
헤어질 리 없고 헤어지지
않았어도 손 잡을 수 없으니
이렇게 기다림이 깊어지면
원망하는 생각이 늘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