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장옥관

 

웬일로 밤늦게 찾아온 친구를 배웅하고 불 끄고 자리에 누우니 비로소 스며든다 반투명 셀로판지 같은 귀 엷은 소리, 갸녈갸녈 건너오는 날개 비비는 소리, 달빛도 물너울로 밀려든다

 

아하, 들어올 수 없었구나!

 

전등 불빛 너무 환해서 들어올 수 없었구나 어둠은, 절절 끓는 난방이 낯설어서 발붙일 수 없었구나 추위는,

 

얼마나 망설이다 그냥 돌아갔을까

은결든 마음 풀어보지도 못하고 갔구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내 이야기에 멍만 안고 돌아갔겠구나

 

 

 

 

 

손님이 없어도 상점의 불빛은 켜져 있다 심야의,

심야극장의 필름은 돌아간다 손님이 없어도

화면 속의 여자는 운다 손님이 없어도

비는 내리고 손님이 없어도

커피 자판기의 불빛은

밤을 지샌다 손님이 없어도

택시는 달리고

손님이 없어도 육교는 젖은 몸을 떨며

늑골처럼 서 있다 손님이 없어도

............

지하철은 달리고

손님이 없어도

삼청공원의 복사꽃은

핀다 흐느끼듯 흐느끼듯

꽃이 피듯이 손님이 없어도

어두운 거리 상점들의 불빛은 켜져 있다

 

오정국, <손님이 없어도 불빛은 켜져 있다> 중에서  

종점 하나 전 - 나희덕

 

집이 가까워 오면

이상하게도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깨어 보면 늘 종점이었다

몇 남지 않은 사람들이

죽음 속을 내딛듯 골목으로 사라져 가고

한 정거장을 되짚어 돌아오던 밤길,

거기 내 어리석은 발길은 뿌리를 내렸다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쳐

늘 막다른 어둠에 이르러야 했던,

그제서야 터벅터벅 되돌아오던,

그 길의 보도블록들은 여기저기 꺼져 있었다

그래서 길은 기우뚱거렸다

잘못 길들여진 말처럼

집을 향한 우회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희미한 종점 다방의 불빛과

셔터를 내린 세탁소, 쌀집, 기름집의

작은 간판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낮은 지붕들을 지나

마지막 오르막길에 들어서면

지붕들 사이로 숨은 나의 집이 보였다

 

집은

종점보다는 가까운,

그러나 여전히 먼 곳에 있었다

by bhlee

 

 

그리운 것들이 모두 창 밖에 있다.

창--환상 그러나 절실한 현실

2018 하계 글쓰기문학치료워크숍

 

일시:

   6/21~7/19 (매주 목요일) 5주간  총10회 (매주 2회 연속 모임x 5주)

   1회: 13:00-15:00 

   2회: 15:30-17:30  (시간은 조금 연장될 수 있습니다.)

 

장소: 나사렛대학교 나사렛관 5층 516호 (나사렛관은 정문 바로 앞 건물입니다.)

 

찾아오시는 길: 

    KTX, 또는 기차 천안아산역에서  청량리행 전철로 한 정거장/ 나사렛대학교 역에서하차. (시간표 미리 확인하세요)

   전철 1호선 나사렛대학교 역 하차. (후문)

 

준비물:

   줄쳐지지 않은 공책 + 12가지 싸인펜이나 색연필, 펜

 

선착순 4분 신청받습니다.

 

신청 및 문의사항은 이메일이나, 블로그댓글이나 자유게시판에 비밀글로 남겨주세요.
journaltherapy@hanmail.net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때까지
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달력 속에서 뚝, 뚝,
꽃잎 떨어지는 날이면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와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
오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것이다.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아이- 이성복

 

저의 아이는 높은 계단을 올라가

문득 저를 내려다 봅니다

저 높이가 아이의 자랑이더라도

저에겐 불안입니다.


세월을 건너 눈과 눈이 마주칩니다
그리곤 이내 눈이 멀겠지요
우리가 손잡을 일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사연- 도종환

 

한평생을 살아도

말 못하는 게 있습니다.

모란이 그 짙은 입술로

다 말하지 않듯

바다가 해일로 속을

다 드러내 보일 때도

해초 그 깊은 곳은

하나도 쏟아 놓지 않듯

사랑의 새벽과 그믐밤에 대해

말 안하는 게 있습니다.

한평생을 살았어도

저 혼자 노을 속으로 가지고 가는

아리고 아픈 이야기들

하나씩 있습니다...

무서운 시간 - 윤동주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번도 손 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 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