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 Paper, Power!
솔직한 글쓰기 몸과 정신건강에 좋다

마음속 깊은 곳의 상처 글로 옮겨
천식·관절염 증상 완화등 긍정적 연구결과도



Claudia Kalb 기자



로리 갤러웨이(40)는 수십 년 동안 친아버지와 의붓 아버지를 총이나 폭탄으로 살해하는 악몽에 시달렸다. 그녀는 어렸을 적 몇 년 동안 성적 학대를 겪은 결과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가치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 정신적 충격에 대해 얘기만 해도 신체 반응이 금방 나타났다.

그녀는 “온몸은 물론 목소리까지 격렬히 떨리곤 했다”고 말했다. 잦은 편두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상담요법에다 항우울제까지 복용해 봤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갤러웨이는 몇 개월 전 색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어린 시절 받은 학대가 어떻게 스스로를 가치없는 사람으로 느끼게 만들었는지 30분씩 세 차례에 걸쳐 글로 쓴 것이다. 첫번째 글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세번째가 되자 그녀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짐을 느꼈다. 곧 떨림 증상은 물론 두통도 사라졌다. 그녀는 “글쓰기가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고백에 기초한 글쓰기는 적어도 르네상스 이래 존재했다. 그러나 새 연구에 따르면 그런 글쓰기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치유력이 강하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자신을 괴롭히는 경험을 글로 표현하는 사람은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것을 느낄 뿐 아니라 병원 신세를 지는 횟수가 줄어들고 질병 저항력도 강해진다는 사실이 지난 80년대 중반 이래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

최근에는 글쓰기와 건강의 연관성을 더 분명히 밝힌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美 의학협회보(JAMA) 최신호에 실린 연구 보고서는 글쓰기가 천식과 류머티스性 관절염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국 텍사스大(오스틴)의 심리학 교수로 진솔한 글쓰기 영역의 개척자인 제임스 페니베이커는 “믿기 어렵지만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은 건강에 유익한 일”이라고 말했다.

적응력이 강하고 건강한 사람이라도 살다보면 부담이 되는 정서적 문제를 안게 마련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에 따른 고뇌, 친구·가족과의 갈등, 실수와 실기(失機)에 대한 회한을 예로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연구진은 대상자들에게 사나흘 연속 하루 15∼20분씩 그런 경험을 기술하도록 주문하면서 문장을 다듬거나 격식을 차리는 데는 신경쓰지 말 것을 당부한다. 완벽한 수필을 써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고물 집하장으로 파고들어가 마음에 걸리는 경험을 글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페니베이커는 한 연구에서 46명의 대학생을 마음의 상처에 대해 글을 쓴 집단과 기숙사 방이 어떻게 보인다는 등 사소한 일에 대해 적는 집단으로 나눠 비교했다. 연구에 착수하기 전 각 집단이 대학 구내 진료소를 드나든 비율은 비슷했다.

그러나 글쓰기 이후 정신적 충격에 대해 쓴 집단은 대조군에 비해 진료소 출입 비율이 50%나 떨어졌다. 지난해 발표된 또다른 연구에서는 직접적인 생리학적 증거가 발견됐다. 글쓰기 덕에 혈액 내 질병을 막아내는 림프구가 증가한 것이다. 예비 연구단계에서는 글쓰기가 혈압을 다소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까지만 해도 이런 연구는 주로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환자들에게 글쓰기 효과를 시험한 것은 JAMA에 발표된 연구가 처음이다. 그 연구에 따르면 천식 환자의 경우 자동차 사고·신체적 학대·이혼·性적 문제 같은 경험에 대해 기술한 사람의 폐기능이 평균 19% 향상됐다.

류머티스性 관절염 환자의 경우 증상이 28% 호전됐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은 일을 글로 적은 환자들에게서는 그런 변화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노스 다코타 주립대의 심리학과 조교수로 이번 연구 보고서를 공동 작성한 조슈아 스미스는 “약물치료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심리적 욕구에도 관심을 기울이면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글쓰기에 단순한 카타르시스(감정 정화)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글쓰기 덕에 마음을 어지럽히는 상념들이 앞뒤가 맞는 이야기로 변형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경험에 대해 쓴다는 것은 그 경험으로 인한 정서적 충격을 둔화시키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노스 캐롤라이나州 채플 힐의 심리학자 테리 밴스가 말하는 ‘편지요법’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밴스는 98년 발간된 ‘마음의 편지’(가제·Letters Home)에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과 연관된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씀으로써 껄끄러운 관계나 갈등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소개했다.

그녀에 따르면 직접적인 대화는 감정폭발로 발전할 수 있지만 편지는 그럴 염려가 없다. 어느 환자는 가족 앞으로 편지를 띄운 결과 가족 간의 유대감이 돈독해졌을 뿐 아니라 자신의 우울증 치료에도 도움이 됐다며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일기를 쓰는 방법도 있다. 심리요법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기는 전통적인 대화요법의 강력한 보조수단이 될 수 있다. 콜로라도州 덴버의 심리요법 전문가 캐슬린 애덤스는 글쓰기를 하면 “자신의 마음을 실제로 읽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감과 자긍심을 키우고 대화요법의 효과까지 증대시킬 수 있다.

뉴욕 헌터大의 영문과 교수이자 신간 ‘치유 수단으로서의 글쓰기’(가제·Writing as a Way of Healing)의 저자인 루이스 디샐보는 자신이 앓고 있는 천식의 증상 및 그것으로 인한 정서쇠약에 대해 글을 쓴 결과 건강이 크게 호전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도 하루 두 번 천식약을 복용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상태에서 증상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글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만이 글쓰기 요법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련 책을 읽거나 글쓰기 프로그램에 등록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페니베이커는 글쓰기로 암을 치료할 순 없지만 건강에 ‘큰 효험’을 볼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글쓰기 효과를 직접 시험해보는 것이 어떨까.


출처/ 분당유생 카페 last updated 2004.01.16
http://cafe.naver.com/flashactionscript/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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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교회에서 전농동 지역주민을 위한 [제 1회 어린이 영어연극 축제]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연습기간도 워낙 짧아서 모노드라마 한 편, 그리고 백설공주를 각색하여 공연했습니다.
참가한 어린학생들 중에는 영어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정말 너무나 멋지게 해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이 연극이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을 뿐 아니라 영어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이 생겼을 것을 생각하니 참 뿌듯하고 행복했어요. 수줍고 잘 어울리지 못하던 아이들은 좀 더 적응력이 향상되고 친구도 사귀게 되었을 거에요. 앞으로도 방학때마다 지역주민들을 위한 봉사의 하나로 영어연극지도를 하려고 합니다.

1부: Mono Drama: The Happy Princess (모노드라마: 행복한 공주//원작: 오스카 와일드/ 행복한 왕자)
2부: SnowWhite ( 백설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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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사진은 추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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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ald Media

헤럴드 경제 >> 생생뉴스 >> 세상사는 이야기
2008.07.23 (수)

고달픈 심신 치료법 ‘저널테라피’ 를 아시나요

일요일 낮 서울 청량리 한 교회의 세미나실에 열 명 남짓한 사람이 모여앉았다. 이들 앞엔 색연필, 도화지, 일기장이 놓여 있다. ‘저널테라피’를 체험하고 배우려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마음에 드는 색깔의 색연필을 골라 도화지에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린다. 형상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저 낙서다. 그다음 치료사가 낙서에서 떠오르는 형상을 찾아내라고 한다. 어떤 이는 꽃, 어떤 이는 사람의 얼굴을 찾아냈다. 이 낙서에 대해 각자 스스로 감상문을 쓴다. 참석 경험이 적다는 한 참가자가 당황하자 치료사가 “생각을 하려 하지 말고 펜 가는 대로 순식간에 써내려 가라”고 주문한다.

그리고는 그 감상문에 대한 감상문을 또 쓰게 했다. 자신의 감정이 투영된 글을 직접 읽고 분석하면서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그런 속에서 때론 웃음, 때론 울음이 쏟아졌다. 논리나 이치에 맞는 글은 아니지만 감정을 충실히 담아낸 글이다. 글 쓴 당사자는 자기 글을 읽어보며 조금씩 내용도 감정도 변하는 걸 경험한다. 부치지 않고 쓰기만 한 편지 한 장, 감정 흐르는 대로 쓴 일기 한 토막이 놀라운 일을 해내는 것이다.

글쓰기를 이용해 심신의 병을 치유하는 ‘저널테라피(Journal Therapy)’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2000년께 국내 의과대학 등에서 도입됐지만 잠잠하다 최근 관련 학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보급, 응용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에서도 최근 ‘의사문학제’란 이름으로 이와 연관된 행사를 진행했다.

저널테라피는 일종의 문학치료다. 마음속이 복잡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일기를 쓰거나 낙서를 하면 마음이 진정되던 경험을 누구나 한두 번쯤 갖고 있게 마련이다. 저널테라피는 그런 원리에 착안해 지난 60년대 미국에서 자기계발과 자가치료의 한 방법으로 등장했다. 정신과 상담이 보편화된 미국이지만 비용 문제가 만만치 않아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국내에는 2000년대 들어서야 뒤늦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시, 소설 등 문학작품을 매개로 자주 사용하는 까닭에 문학치료의 하나로 간주되기도 한다.

미국 공인 문학/ 저널치료 전문가인 이봉희 나사렛대 교수(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 소장)는 “저널테라피는 의학적.임상적으로 검증된 기법으로서 미해결된 심리적 상처와 고통을 해결받을 뿐 아니라, 이를 익혀 습관화하면 일생 동안 여러 작은 문제점들을 해소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의학계에 보고된 저널테라피의 효과는 몸과 마음의 병을 아우른다. 영양주사로 연명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경우 앓던 우울증이 호전됐고, 류머티즘과 천식환자들의 질병 심각도가 현저하게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의학전문지 자마(JAMA)에 소개된 바 있다.

이봉희 교수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사례가 많다. 미혼 여성 안모(47) 씨는 27년간 어머니와 심각한 갈등을 겪으며 살았다.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싶은 심보로 결혼도 하지 않고 머리도 자르지 않았다. 직장에서도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자주 옮겨 다녔다. 그런 중 ‘저널테라피’를 받으면서 어머니와의 관계를 회복했다. 뿐만 아니다. 어두웠던 안색도 밝아지고 그간 겪던 탈모 증세도 사라졌다. 심지어 이마 주름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1년 뒤엔 아토피 피부염도 사라졌다.

30대 여성 직장인 김모 씨는 직장상사의 강압적이고 일방적.비협조적인 처사 때문에 두 달이 넘도록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저널테라피를 받으면서 직장상사와의 감정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교수는 이 밖에도 국내에서 탈모, 변비 증상이 개선되거나 금연, 금주에 성공하는 등 다양한 치유 사례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저널테라피는 애초에 자가치료로 개발된 만큼 누구나 혼자서 할 수 있다. 남을 의식하지 말고, 날짜를 기록하며 쓰는 것이 규칙 정도다. 하지만 일기조차 남을 의식하고 써온 사람들에게는 이조차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도 현실이다. 이때 관련 자습서적이나 저널테라피 전문가들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의뢰인이나 내담자들이 마음속 감정을 편안하게 글로 풀어내고 그 글을 통해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스스로 발견하고 해답을 찾을 때까지 여러 문학작품, 특히 시를 사용하여 글쓰기 주제를 던져주거나 가장 효과적인 저널기법 등을 조언해준다.  일기, 시나 소설 등 문학작품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반응을 글로 쓰고,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을 향한 보내지 않는 편지, 혹은 대화기법 저널, 목록, 순간포착, 등 글쓰기 형식은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바뀐다.

그렇다고 저널테라피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병을 앓고 있지 않은 일반인이 대상이며, 전문적인 의학치료의 보조수단일 뿐이다. 예컨대 저널테라피가 혈압을 낮춘 사례는 보고되고 있지만 고혈압 환자가 꾸준한 관리와 약 복용 없이 저널테라피만으로 혈압을 낮출 생각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심각한 우울증이 있다면 저널테라피를 먼저 시도할 게 아니라 정신과 상담이 우선이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는 저널테라피 등 문학치료가 일반인 뿐 아니라 정신과 환자와 약물중독자, 교도소 수감자 등에게 폭넓고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며 “국내에서는 경쟁과 성과 위주 교육에 시달리는 학생이나 직장인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용직 기자(yjc@heraldm.com)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8/07/23/200807230085.asp

패랭이꽃 | 2008.07.27 22:1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앗! 교수님
저는 사진에 나온 사람이 저인줄도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저더라구요. 신문에도 나고... ㅋㅋ 출세했당(?)
어떻게 예전 저희 사진을 쓰실 생각을 하셨는지...
아무튼 취재까지 해가셨다니 기도하시고 소망하시는 것들이 하나씩 이루어 지고 있는 것 같아 좋아요.
자세한건 잘 모르지만...
앞으로 더 발전하고 확고하게 자리매김하셔서 권위자(이미 권위자이시지만..)로 확실한 비젼을 이루어 나가세요.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생각이 잘안나네요. 치매 초기 증상 인가? ㅎㅎ)
NAPTKOREA | 2008.07.29 02:46 | PERMALINK | EDIT/DEL
그러네요. 신문에 나신 거 축하드려요^^

신문에 나고 매스컴타는 것이 내가 기도하고 소망한 것을 이루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ㅠㅠ
하영란 | 2008.07.29 10:08 | PERMALINK | EDIT/DEL
신문에 나고 매스컴타는 것이 소망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닌것 알죠. 그런뜻이 아니었는데...
문구를 보니 그렇게 보이네요.

제가 왜 축하를 받아요. 저는 우스개소리로 한건데...
축하받아야 할 분은 교수님이시죠.
하나님이 복에 복을 더하사 지경을 넓혀주실것을 기도합니다
bhlee | 2008.07.29 15:59 | PERMALINK | EDIT/DEL
알아요.그런뜻으로 한 말 아닌 거. 내가 그 말을 한 건, 세상은 겉에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PR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것도 무의미하다는 게 씁슬해서요. 어려서부터 모든 책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핀 이름없는 들풀하나도 귀하다고 했는데 살면서 그 꽃들이 귀하게 여김받는 일은 없다는 걸 배워가는 것이 슬퍼서요. 메스컴 타고, 자기를 알리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 세상이라는 게 힘들어서요. 이 늦은 나이에도 세상을 잘 모르는 게 힘들어서요.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건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말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구석에 숨어있는 제게 관심을 가져 주신 분들께 감사하죠.

이번 달에는 로터리클럽 포럼 두 곳과 남산포럼에 가서 글쓰기.문학치료 강의도 했어요. 국내 각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신 분들이 모이는 곳인데 정말 반응이 좋았어요. 특히 평생 글을 쓰시는 기자분들이 모인 곳에서 그렇게 좋은 반응이 나와서 참 기쁘더라구요.

늘 기도로 함께해주신 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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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 물질의 위험한 힘

최근에 나는 식중독을 두 달간 앓았습니다. 처음에는 식중독인 줄 모르고 한 달이나 지내다 보니 기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오래 앓아온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눈도 나빠지고 병이 여러 가지 겹치다 보니 몸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되도록이면 병원에 가지 않고 견디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병이 더 심하게 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살 만큼 산 사람으로서 자꾸 아프다고 말하자니 한편 민망한 일이기도 합니다.

몸이 아프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일을 못 하는 것입니다. 몸이 쇠약해지면 들지도 못하고 굽히지도 못하니 괴롭기 짝이 없습니다. 일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일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근원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일이 보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프다는 것, 죽는다는 것은 생명의 본질적인 작용인 일을 못 하는 것이기에 절망적입니다. 죽음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에 대해서 사람들은 두 가지로 추측합니다. 하나는 죽음과 더불어 생명이 완전히 물질화된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혼이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죽음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기에 두려운 것이 됩니다. 나는 죽음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해도 아무리 발버둥친다 한들 죽음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그동안 살아온 연륜에서 터득한 내 나름대로의 진리입니다.

세월이 흘러서 나이도 많아지고 건강도 예전만 못하니 세상을 비관하고 절망을 느낄 법도 한데 나는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인생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문학에 일생을 바쳐온 사람인데도 시간이 흐를수록 문학을 자꾸 낮춰 보는 시각을 갖게 됩니다. 나는 평소에 어떤 이데올로기도 생존을 능가할 수 없다고 말해왔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는 가치 있는 일이지만 살아가는 행위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습니다. 요즘에는 그러한 생각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살아 있는 것, 생명이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 요즘처럼 그렇게 소중할 때가 없습니다.

비단 인간의 생명뿐 아니라 꽃이라든가 짐승이라든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은 다 아름답습니다. 생명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능동적이기 때문입니다. 능동적인 것이 곧 생명 아니겠습니까. 세상은 물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피동적입니다. 피동적인 것은 물질의 속성이요, 능동적인 것은 생명의 속성입니다.

나는 요즘 피동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아무리 작은 박테리아라도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서 꼭 그만큼의 수명을 누리다가 죽습니다. 반면에 피동적인 물질은 죽지도 살지도 않습니다. 이 죽지도 살지도 않는 마성적인 힘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인간이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이 마성적인 힘이야말로 얼마나 무섭습니까? 대량 살상 무기라든지 지구 온난화처럼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직접적인 힘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나는 이 피동적인 물질 자체가 가진 영원함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또는 잘 다스리기만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의지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무 자체, 이 무로서의 물질 자체는 역으로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민족성이 희석되어가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옛날에 일본의 지배를 받을 때도 일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습니다. 나의 고향인 통영에 한 진사 집안이 있었는데, 그 집 딸들 중에 둘째 딸이 시집을 갔다 못 살고 돌아와서 일본 남자와 동서(同棲)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게 통영에서 유일한 경우였는데, 양반 집안에서 남부끄럽다고 가족들이 그녀를 아주 매몰차게 구박하고 홀대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요즘 세태는 어떻습니까? 도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농촌 같은 데서도 국제 결혼을 흔하게 보게 됩니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도 타이 여자가 한국 남자와 혼인해서 살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지구촌 시대라 해서 하루 만에 지구 반대편까지도 가는 세상이니, 한국 사람들의 의식도 많이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족성 대신에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이 크게 부각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나간 민족주의 시대에는 나와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 내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싸웠습니다. 그것은 높은 도덕률과 가치관을 요구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를 위해서, 아버지를 위해서 싸운다는 혈연적인 관념이 개입되어 있었습니다. 반면에 현대의 사람들은 이해관계 중심으로 살아가면서 그 같은 도덕률이나 가치관 대신에 건조하고 즉물적인 삶을 영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삶이 좋다면야 할 말이 없겠는데, 물질이 개입되어 있으니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세계가 활짝 열려 있어도 주판알을 튕기며 제 잇속만을 따지게 되니 더 비정한 면이 있습니다.

정신적 가치 대신에 물질이 힘을 발휘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어렵습니다. 자기 자신이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한다는 것은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는다는 뜻이 아니라 자존심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존심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귀하게 받드는 것을 말합니다.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나 모두 물질에 들린 삶을 살아가는 체계입니다. 스스로 멈출 줄 모르는 물질적 메커니즘에 사로잡힌 세계입니다. 나 역시 신문도 읽고 가끔 텔레비전 방송도 봅니다만 내가 한적하니까 하는 일이지 물질에 편향된 뉴스가 나의 삶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상업적인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간혹 상업적인 사고를 가진 문학인들을 볼 수 있는데, 진정한 문학은 결코 상업이 될 수 없습니다. 문학은 추상적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컵 같은 것이 아닙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정신의 산물을 가지고 어떻게 상업적인 계산을 한단 말입니까? 나는 독자를 위해서 글을 쓴다는 말도 우습게 생각합니다. 독자를 위해서 글을 쓴다면 종놈 신세 아닙니까? 독자들 입맛에 맞게 반찬 만들고 상차림을 해야 하니 영락없는 종놈 신세지 뭡니까. 문학은 오로지 정신의 산물인데, 그렇게 하면 올바른 문학이 탄생할 수 없습니다. 나는 출판사에서 저자 사인회를 하는 것도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방송국에서 가끔씩 출연 섭외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카메라를 의식하면서 이야기해야 하는 이중성 같은 게 느껴져서 거의 거절하고 맙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의 이중성을 볼 때처럼 기분 나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대신에 나는 내 영혼이 자유로운 시간을 더 얻는 기쁨을 누립니다.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물질만능주의에 따른 명예나 돈 같은 것은 별것 아닙니다. 자기가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최고입니다. 나의 삶은 내가 살아가는 그 순간까지만 내 것이지 그 후에는 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요즘 나는 시를 쓰고 있습니다. 예순 편 정도를 추려서 시집을 내려고 생각합니다. 생애 마지막 작업이라 생각하고, 가족사 같은, 내가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린 일들을 담아내려고 합니다. 한평생 소설을 써온 내게 시는 나의 직접적이고 날것 그대로의 순수한 목소리를 지닌 것입니다. 소설도 물론 그 알맹이는 진실한 것이지만, 목수가 집을 짓듯이 인위적으로 설계를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같은 돌멩이라 해도 큰 것과 작은 것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모든 존재는 질적으로 동등합니다. 다만 요즘의 내가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양식에 더 이끌리고, 물질적이고 인위적인 것의 위험한 힘을 더욱 경계하게 되는 것은 나이를 많이 먹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출처 : 아시아, 2008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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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ins.com[HEALTH Life]
기사 입력시간 : 2008-05-19 오전 1:10:43 

문학이 ‘건강의 보약’
치료효과 배가시키고 면역력도 높아져
글쓰기 많이 한 천식 환자들 ‘폐기능 좋아졌다’ 보고서도 

인간이 내면 세계의 진실까지 여과 없이 보여주는 순간은 언제일까. 바로 삶과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는 의료 현장이다. 투병과정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의 단골소재로 등장하는 이유다.

환자의 치료효과를 배가시킨다는 ‘문학 치료’가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시·소설·수필 등을 읽는 환자뿐 아니라 작가가 된 심정으로 글쓰기를 즐기는 환자에게서 놀라운 치료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최근 열린 ‘의사문학제(주제: 치유수단으로서의 문학, 좌장: 연세대 의대 손명세 교수)’에서 집중 조명된 문학치료의 현주소를 알아본다.

◇본질은 심신의 건강=질병을 앓는 환자는 불안하고 쉽게 우울해진다. 스트레스는 또 면역기능을 떨어뜨려 감기를 비롯해 각종 질병에 잘 걸리도록 한다. 이처럼 한 개체에 공존하는 물질세계(몸)와 초(超)물질세계(마음·정신)는 상호 영향을 미친다. 마음을 감동시키는 문학이 현대의학에 치료법으로 도입되는 이유다. 다른 사람의 투병기를 읽으며 함께 공감하고 환자 자신을 짓누르는 병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분노·긴장 등에서 벗어난다. 카타르시스를 통해 건강한 정신과 심리상태를 되찾는 것이다.

◇문학치료의 세 단계=문학치료가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진단 ^동기부여 ^치료 등 세 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진단 단계는 독서치료사 혹은 정신과 전문의가 환자의 정신 상태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과정. 이후 독서와 대화를 통해 환자의 정신세계에 자극을 주고 변화를 유도하는 동기부여 과정을 거친다. 이때 중요한 것은 환자에게 ‘적절한 문학작품’을 선정해 주는 일. 동기를 갖게 된 환자는 작품 속에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삶과 세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익힌다.

놀라운 글쓰기 효과=환자 스스로 글을 쓰는 과정도 치료 효과를 배가시킨다. 대표적인 예가 세계적인 의학전문지 자마(JAMA)에 발표된 류머티스 관절염과 천식환자를 대상으로 한 문학치료 효과다. 연구자들은 한 그룹에겐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경험을 매주 3일 연속으로 20분씩 쓰게 했고, 다른 그룹에겐 단순히 그날 계획을 쓰게 했다. 그리고 2주, 2개월, 4개월 뒤에 환자 상태를 평가했다. 결과는 4개월이 지나자 스트레스 경험을 썼던 천식 환자들은 폐기능(FEV1:1초에 숨을 몰아내쉬는 검사)이 평균 63.9%에서 76.3%로 의미있게(p<0.001) 증가했다. 물론 단순 기록 그룹에서는 폐기능 변화가 없었다. 류머티스 환자 역시 스트레스 상황을 글로 표현한 환자 그룹에선 질병 심각도(0~4점)가 1.65에서 1.19(28% 감소)로 의미있게 감소한 반면 대조군은 질병 심각도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쓰기는 정신질환도 호전시킨다. 일례로 입으로 음식을 못 먹고 주사기에 의존한 채 생명을 유지하는 환자와 보호자는 스트레스가 커 보호자의 63%, 환자의 33%가 반응성 우울증을 앓는다. 연구자들은 이들에게 매일 일기를 통해 치료과정의 고통과 사회활동에서의 소외감, 감염 위험에 대한 불안감, 경제적 곤란, 질병 악화에 대한 무력감 등을 쓰게 했다. 세 달 후 중증 우울증은 경증으로, 경증은 정상으로 회복되는 등 확연한 정신건강의 호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검사에 참여한 환자의 72.5%, 보호자의 67.5%가 일기를 쓰면서 현재 상태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해소돼 머리가 맑아졌다고 대답했다.

단 글쓰기도 심한 정신적 충격 상태를 경험한 아동학대 가해자, 전쟁에서 돌아온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환자에겐 악화 요인으로 작용하므로 권장되지 않는다.

◇만성병·난치병 환자는 더욱 필요=문학을 접하면서 좋아지는 심신 기능은 다양하다. 스트레스 감소와 면역력 향상은 물론 혈압강하, 폐기능 증가, 간기능 호전, 입원일 감소, 기분 향상, 심리적 안정, 우울증 호전 등이 따라온다. 따라서 일단 만성병이나 난치병을 앓는 환자는 좋은 문학 작품을 접하고, 매일 자신의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게 권장된다.

건강한 사람은 더욱 건강한 심신을 유지할 수 있다. 결근일 감소, 실업 후 빠른 재취직, 기억력 향상, 운동능력 향상, 성적 향상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황세희 기자 [sehee@joongang.co.kr] 
2008.05.19 01:10 입력 / 2008.06.16 16: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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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네 흰둥이가 똥을 눴어요.
흰둥이는 조그만 강아지니까 강아지똥이에요.
날아가던 참새 한 마리가 강아지똥을 콕콕쪼며 말했어요.
"똥! 똥! 에그, 더러워......"
"뭐야! 내가 똥이라고? 더럽다고?"
강아지똥은 화도 나고 서러워서 눈물이 나왔어요.


저만치 소달구지 바퀴 자국에서 뒹굴고 있던 흙덩이가 말했어요.
"똥을 똥이라 않고 그럼 뭐라 부르니?
넌 똥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개똥이야!"
강아지똥은 그만 "으앙!" 울음을 터뜨려 버렸어요.

"강아지똥아, 내가 잘못했어. 울지마."
"......"
"정말은 내가 너보다 더 흉측하고 더러울지 몰라...
지난 가뭄에, 내가 아기 고추를 죽게 해 버렸단다."
"어머나! 가여워라."


그 때 저쪽에서 소달구지가 덜컹거리며 오더니 갑자기 멈추었어요.
"아니, 이건 우리 밭 흙이잖아? 어제 싣고 오다가 떨어뜨린 모양이군."
소달구지 아저씨는 흙덩이를 소중하게 주워 담았어요.


소달구지가 흙덩이를 싣고 가 버리자 강아지똥 혼자 남았어요.
"난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 수 없을 텐데......"
강아지똥은 쓸쓸하게 혼자서 중얼 거렸어요.



겨울이 가고 봄이 왔어요.
어미닭이 병아리 열두 마리를 데리고 지나다가 강아지똥을 들여다 봤어요.
"암만 봐도 먹을 만한 건 아무것도 없어. 모두 찌꺼기뿐이야."

보슬보슬 봄비가 내렸어요. 강아지똥 앞에 파란 민들레 싹이 돋아났어요.
"너는 뭐니?"
강아지똥이 물었어요.
"난 예쁜 꽃을 피우는 민들레야."
"얼마만큼 예쁘니? 하늘의 별만큼 고우니?"
"그래, 방실방실 빛나."


"그런데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민들레가 말하면서 강아지똥을 봤어요.
"네가 거름이 돼 줘야 한단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 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
"어머나! 그러니? 정말 그러니?"
강아지똥은 얼마나 기뻤던지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아 버렸어요.


비는 사흘 동안 내렸어요.
강아지똥은 온 몸이 비에 맞아 자디잘게 부서졌어요.
부서진 채 땅속으로 스며들어가 민들레 뿌리로 모여들었어요.
줄기를 타고 올라가 꽃봉오리를 맺었어요.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민들레싹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어요.
향긋한 꽃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어요.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엔 귀여운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득 어려 있었어요.

참고: [강아지똥] - 권정생  글 / 정승각 그림
출처:http://blog.naver.com/myphotograph/60042819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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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이 아동문학계에서 영원히 빛나는 특별한 작품이 된 것은  정승각 선생님의 그림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분의 만남으로 강아지똥이 사랑스럽고 감동적인 존재로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쉬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승각 선생님은 이야기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던 기존의 삽화의 의미에서 벗어나  오히려 이야기에 생생한 생명을 불어넣으며, 그림 하나하나가 그대로 이야기가 되는 그림을 그리셨다.  선생님으로 인해 비로소 우리에게도 우리의 혼과 얼을 가진 우리만의 그림책 다운 그림책이 탄생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쉽게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서양화를 전공했던 선생님이 토속적인 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그림으로 표현해내기 위해서 얼마나 혼신의 힘을 기울이셨는지 그 사연들은 감동적이다.  도시를 떠나 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인 외가가 있던 시골을 찾으셨고,  심지어 꿈 속에도 강아지 똥이 되어보기도 하셨다 한다.  그뿐 아니라 예를 들면 강아지똥이 땅 속으로 스며드는 감동적인 그림은 몇 날 몇 일이고 밤새워 고심하다가, 마침내 자신이 강아지똥이 되는 최면을 걸고서야  완성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네이버에서 참고하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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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자료를 가져와 올리는 과정에서 정승각선생님의 그림이 아닌 그림들이 글 속에 마치 [강아지똥]의 그림인 것처럼 들어가 있어서 삭제하였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원작자인 선생님의 그림에 대한 명예를 홰손시키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인터넷은 역시 참 무섭습니다.  무책임한 잘못된 자료들이 너무 많이 유포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 2008.06.27 03:08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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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6.27 04:03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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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PTKOREA | 2008.06.27 16:05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정말 착하고 이쁜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남달리 수즙음 많고 생각이 깊고 뭔가 남다른데가 있어서 어려서부터 왕따를 당해왔습니다. 중학생이 되자 몇몇 덩치큰 아이들의 집단으로 부터 이유 없는 폭력에 끝없이 시달려야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그 아이들이 무서워 이 아이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짝이 되어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모여 깔깔거리면서 밥을 먹는 점심시간, 늘 혼자서 점심을 먹고, 삼삼오오 팔장을 끼고 조잘거리며 집으로 가는 하교시간에도 늘 혼자서 고개를 떨구고 집으로 와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아이의 짝이 급한 마음에 말을 걸었습니다.

"**야, 지우개 좀 빌려줄래?"
이 한마디에 그 아이는 그만 울지경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기뻐서, 누군가가 자기에게 말을 걸어준 게 너무 기뻐서, 그 아이가 최초로 자신에게 말을 걸어 준 친구였기 때문에 너무 기뻐서 그만 울컥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지우개 너 가져도 돼.... 아니 뭐든 필요하면 내 것 다 가져도 돼. 고마워 내게 지우개 빌려달라고 해서. 고마워, 내게 말을 걸어줘서. 고마워. 내가 살아있는 사람이란 것을, 네 옆에 앉아 있는 살아있는 사람인 것을 기억해주고 또 내게 알게 해줘서,.....

아이는 속으로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울음을 삼키면서.... 기쁨과 고통이 교차된 울음을 삼키면서....

오늘 새벽 문득 그 아이가 생각 나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습니다.
불현듯 [강아지똥]을 찾은 이유입니다.

가끔 이렇게 아름다운 동화를 읽고 자란 고운 아이들이 세상에서 너무 고통스런 갈등을 겪는 것을 바라봅니다. 세상은 다른 법칙으로 돌아가는 듯 합니다. 어른들조차 이런 아이들의 세계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런 동화는 어른들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미있는 것은 어른들은 이런 동화를 아이들에게는 열심히 읽히면서 자신들은 그렇게 살아가지 않습니다. 동화책 속에서 말해주는 귀하고 아름다운 삶과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세상에서 "귀한" 존재가 되는 삶은 늘 서로 모순됩니다.

부모와 선생님들의 교육과 마음의 치유가 아이들의 상처치유만큼, 아니 그보다 더 먼저 이루어져야 할 더 중요한 일임을 늘 역설하는 이유입니다.
| 2008.06.29 10:58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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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7.10 01:23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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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정 | 2012.04.23 20: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 이야기가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오는지..강아지 똥을 읽으면서 울컥울컥 울면서 읽었어요..
난 더러운 똥인데..어떻게 하면 착하게 살 수 있을까..아무짝에도 쓸 수 없을텐데..하는 이 구절은
정말 저를 빗대 얘기하는 것 같았어요..한 없이 낮은 자존감이 문제라는 얘길 많이 들었지만..
어떻게 하면 낮은 자존감을 높이고,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제가 제일 이해하기 힘든 말 중의 하나가..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예요..어떻게 하는 지 모르겠어요..
글을 또 써 봐야겠네요^^
bhlee | 2012.04.24 13:13 | PERMALINK | EDIT/DEL
그게 수 많은 사람들이 평생 씨름하는 일인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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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gly Duckling by A. A. Milne




























Jenny | 2008.06.06 14: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한 해 한 해 갈수록 연극이 왜 더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어릴 땐 몰랐는데... 나 아닌 전혀 다른 내가 되어볼 수 있는 기회.... 그땐 그 걸 너무 못 누렸어요...
그런 기회를 갖게 해 주셨을 때, 나를 버리면 큰 일 날 듯이, 그 한 역할에 내 모든 것을 던지는 것이 어찌나 두렵던지요.....
지금 생각하면 후회도 많이 되고 또 그립고... 그리고 연극이 얼마나 매력적인 경험인지
이 사진 한 장이 많은 생각과 느낌을 전해 주네요......
많은 게 그리워요..... 그냥 그냥........ 많은 게......
bhlee | 2008.06.08 00:58 | PERMALINK | EDIT/DEL
연극하고 싶어? 그러게. 분명 네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 네가 연극하길 바랬었지. 기억나? 첫 해는 네가 중간에 그만두었었고... 다음 해 다시 했었지. Delva역할. 연극은 자의식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정말 좋은 경험인데 그것이 안되는 사람들이 있더구나. 안타깝게도.

지난 날 보다 이제 앞으로 올 날들이 더 많으니까 그 그리움의 힘으로 오늘을 살자꾸나. 습관처럼 너무 자신을 혹사하지는 말고....

우리 언제 연극 OB팀 만들어서 해볼까? 영어연극말고 한국말 연극. 아니면 문학치료시간에 연극 한 번 할까? ^^
Jenny | 2008.06.10 21:4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진짜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해요....... 지금은 몸이 좀 힘들지만.... 애기 낳고 꼭 해보고 싶어요...
한국말 연극도 좋구요... 영어연극도 정말 해 보고싶어요... 옛날엔 왜 열심히 안했었나 정말 후회가 되거든요....
연극 준비하던 때 생각하면... 멀리있는 미옥이가 생각 많이 나요...
'어떻게 저 아이는 맡겨진 역에 자신을 과감히 던질 수 있는 걸까...' 늘 미옥이를 보면서 그렇게 안되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어했던 제 모습도 생각나구요... 지금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문학치료가 변화시킨 것 중에 놀라운 것이기도 해요....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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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5.19 05:05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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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5.19 10:02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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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bhlee





















어둠이 내리고 커튼을 치면 울아가가 갑자기 더 보구 싶다. 왜 우리 모두는 이렇게 늘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나. 함께 있으면 점점 아이에게 부담만 주게 될 나이가 되어간다.  이제는 내가 아이에게 더 보탤 것도 해줄 것도 없는데, 갈수록 나는 힘이 없어지고 행동도 느려지고 아이에게 아무 도움을 줄 수 없을 텐데... 날마다 아파서 아이 맘만 아프게 할텐데.... 그래도 아이가 그립다.
--
제비꽃이 진 길가엔 이름모르는 노란 풀꽃이 여린 웃음을 산들바람처럼 흔들고 있었다.  안녕~ 하고.

bhlee | 2008.05.01 22: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엄마.. 영원한 미완성의 이름.

평생 아이가 가장 필요할 때마다 나는 그애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
요 며칠간도 그렇다. 너무나 사랑한다면서....

"엄마아..!" 하고 뛰어들어와 안길 품이 없는 귀가 길의 아이들은 얼마나 쓸쓸한 것일지 알면서도 아이가 가장 예민한 사춘기 그 아이가 쓸쓸히 집에 들어오게 두었다. 핑키가 유일한 아이의 친구였겠지.

"아무리 멀리가도 돌아보면 늘 그자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어주는 유일한 존재"인 "엄마"ㅡ
그런 엄마이고 싶었는데 지나보면 가장 절실한 순간마다 나는 부재중이었던 것만 같다.
최선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늘 후회밖에 없다.
맘이 너무나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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