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편지에 있는 아이가 입었던 옷과 내가 즐겨입었던 티셔츠)

-------------------------------

 

엄마, 어느새 또 5월 8일이 돌아왔어요. 매년 5월 8일만 잘해드리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하지만 엄마, 제가 엄마 사랑하는 거 아시죠? 매년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시”를 준비했어요.

엄마. 가만히 오른 손으로 왼손을 쥐어보세요. 전 혼자 있을 때 그렇게 해요. 꼭 엄마의 손이 제 손을 굳게 잡고 있는 듯해요.

눈을 떠 보았습니다
칠흙 같은 어둠의 늪 속에서
홀로 허우적거리는 저를 보았습니다.

어둠과 하나가 되어가는 절망을 느끼며
두려움에 나의 두 눈을
꼭 감았습니다.
“아, 이제는 끝이로구나”

다시 눈을 떴을 때
어둠의 늪을 지나 환한 빛을 향해
당당히 걷고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빛에 도달했을 때
저는 비로소 느꼈습니다.
제 뒤에 있던 당신을.

당신을 느끼기 위해
눈을 살며시 감아보았습니다
저를 붙들어 주었던
당신의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당신의 눈물로
제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신
당신은 저의 분수십니다.

당신은 제 호수의
분수대이십니다.

은빛 실을 내어
저에게 새로운 삶을 입히시는
당신은 저의 분수대이십니다.
-----------------------------------------


나의 사랑하는 딸아이가 어릴 때 어머니날 카드에 쓴 시.
엄마가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빈 집에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지....그래서 엄마 손 대신 자신의 손으로 다른 편 손을 잡아주며 엄마를 느껴보던 아이....

 

다 지난 까마득한 옛일인데 아직도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딸이 내게 보낸 수 많은 카드들 중 어머니날이면 잊지않고 다시 꺼내보는 카드 중 하나가 이 편지(시)이다.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피아노 학원들 다녀오거나, 유치원에서 집에 오는 길에 길가에 핀 작은 꽃이나 작은 돌, 또는 예쁜 작은 카드를 만들어 "써프라이즈!!!" 라고 말하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게 자랑스럽게 건네곤 했었다. 

우리는 늘 서로에게 쪽지나 카드를 써주곤 했었지. 지금도 일년에 한 번 만났다 헤어질 때는 어딘가에 편지나 카드를 써서 서로에게 남기곤 한다. 언젠가 아이가 정말 힘들어 할때 내가 그냥 포스트 잇에 세상에서 네가 가장 예쁘고 아름답다고 적어 컴퓨터 모니터 앞에 붙어주었는데 일년 후 가 보니 그 낡은 포스트 잇을 그대로 붙여두고 있었다. 딸애가 유학을 떠나던 날 현관문에 붙여놓고 간 쪽지가 아직도 그곳에 붙어 있듯이.
우리에겐 정말 소중하고 보석같은 추억이 많다. 감사하다. 

 

엄마의 이제 성인이 딸에게 보내는 글.

나의 생명, 나의 딸,
이젠 엄마보다 훌쩍 커버려서 한참 올려다 봐야 하는 우리 딸. 그래도 엄마는 지금도 늘 네 손을 잡듯이 나의 두 손을 모으고 널 위해 기도한단다. 잊지마,  우리에겐 우리의 손을 절대 놓지 않으시고 꼭 잡고 함께 가시는 주님이 계심을.

Do you remember all the pretty letters you gave to me from time to time?
Do you remember you used to prepare a "surprise" for me? -- a little nameless flower, a little card.... anything that said "I love you, Mom"
I knew those little gifts were not just saying"I love you, Mom".  I knew they were telling me that "I needed You.  I missed Mom  all day long."  and that you were  alone and lonely.
I AM sorry, Dearest.   I've never been much of a mother, I know.  However, YOU have been always with me as part of my life.
This is one of your letters you gave me when you were so little!
I miss you so much!
080508

언제였던가

너희가 하늘을 나는 걸 봤단다.

바람에 실려

소중한 것 하나만 지닌 채

훨훨 길을 떠나는 모습이

마냥 기쁘게만 보였단다.

 

사람에게도 꼭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하잘것없는 것들을 모두 버리고 나면 나도

하늘 높이 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단다.

 

호시노 토미히로 - <민들레> 중에서

 

051414

Creativity & Technology in the Age of AI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유럽에서 가장 큰 디자인 컨퍼런스 중 하나인 OFFF

Creativity and Tech. in the age of AI (AI 시대에 창조성과 테크놀로지)를 주제로 3명이 Adobe 대표로 발표했다.

오디언스가 3000명가까이 모였다고 한다.

 

커퍼런스 발표 후 live webcast. 흥미롭고 재미있는 내용이다.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ㅡㅡ

흩날리는 꽃비를 흠뻑 맞으며 마냥 행복에 젖은 하루였다.

언제나 이맘때면 이형기의 시가 가슴을 울리곤 했었다.

찬란한 설렘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끼며 낙화속 '소풍'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스름길,

오늘은 나도 모르는 새, 맘 한구석에서 “물보면 흐르고 별보면 또렷한 마음은 어이면 늙으뇨.” 라는 영랑의 시 구절이 함께 따라 나와 혼자 웃었다. 조금은 쓸쓸히...낙화속을 걸으며 마냥 기쁘다가도 느끼는 묘한 마음이 이것이었나?

만물은 흔들리면서 - 오규원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 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오빠가 갑자기 하늘 나라로 가신지 벌써 4년이 되었다. 까마득해 보이기도 하고,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오늘 밤엔 저 먼 곳 별이 되신 보고픈 얼굴들이, 별이 되어 내 가슴에 뜨고 지는 분들이 자꾸만 그립다.
아버지, 엄마, 큰언니, 큰오빠....그리고 또 작은언니. 

떠나간 사람들이 남긴 빈 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길이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훗날 아쉬워할 일들을 아무 생각없이 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은 내 곁에 머물러 있을 거라 합리화하면서.....
아직은 시간이 남았다고, 내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더 급하다고 하면서...
------------

2015. 3. 24.

큰오빠가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신 지 일주일 째 되는 날이다.
물론 오래 앓으셨지만 갑자기 어느날 아침 떠나실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에게 아주 특별했던 큰오빠, 가족 중에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시고 보살펴주시고, 내가 아버지 같이 의지했던 오빠.
어린 시절 서울에서 내려올 때마다 동화책을 한 아름 사다 주시면 외도록 그 책을 있으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오빠 방에는 철학책, 시집, 화집, 문학전집 등 책으로 가득 찬 책장이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는
일어, 불어, 영어 등 외국어 책을 쑤알라 쑤알라 하면서 읽는 흉내를 내었던 기억이 난다.


오빠방 하얀 커버가 씌워진 안락의자에서 나는 엄마 품에 안긴 듯, 참 포근했었다. 오빠가 벽에 걸어 놓은 고흐, 고갱, 세잔, 르노와르, 마티스 등등의 그림들은 어린 내게도 얼마나 큰 경이로움과 알 수없는 위로와 기쁨을 주었던지. 오빠가 전축에서 들려주시던 클래식 음악들, 오빠가 즐겨 부르던 영화 "셰인"의 주제곡....

어린 시절 오빠는 가끔 나를 불러서 외국 시를 읽어주셨다. 10대의 시인이라면서 프랑스 여자아이의 시를 읽어주던 기억도 난다. 긴 겨울 밤 한 이불 속에서, 또는 짧은 여름 밤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별을 보면서 듣던 엄마의 구수한 옛날 얘기처럼 오빠의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내게는 참 따뜻하고 소중하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교내 글짓기대회 교장상은 물론이고, 시장, 그리고 도지사 상을 늘 받았던 기억이 닌다. 그 어린시절 내 꿈은 소설가였다. 그 꿈을 하얗게 잃어버린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그래서 나도 오빠처럼 대학교 때 모든 선택과목을 철학으로 했었을까? 


철학과 문학과 음악과 미술.....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가는 마음의 문을 열어준 오빠.

7남매의 막내로 그것도 다섯째 딸로 엄마 나이 40에 태어난 나(어쩌면 반갑지 않아서였을까?)-- 엄마는 간난아기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던거 같다. 어느 날 오빠가 안방에 들어가보니 핏덩이인 내가 빈 방에서 혼자 꼬므락거리면서 오빠를 쳐다보는데 갑자기 그렇게 측은할 수가 없으셨단다. 그때부터 오빠는 날 유난히 사랑하셨다. 크면서 유달리 애교가 많았던 나를 보며 오빠는 늘 우리집에 막내 없었으면 어떻게 할 뻔 했어요, 라고 하셨단다. 엄마 모유가 나오지 않아서였을까, 간난아기 때 몇일이고 밤 새 울기만 하여서 엄마는 얘가 이러다 죽으려나보다 하셨단다. (당시는 우리나라에 아이용 분유도 우유도 없을 때였다.) 그런데 어느날 오빠가 미군부대에서 나온 분유(당연히 전지분유)를 사오셔서 그걸 (젖병도 없던 시절이니) 그릇에 타서 수저로 떠 넣어주었더니 간난애가 한 대접을 다 받아먹고 그 날로부터 색색 잘 자더란다. 그래서 엄마는 그 때 미안했다고, 넌 어려서 젖을 주려서 몸이 약하다고 늘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 오빠가 명동 찻집에 친구들 만나려가면 나를 꼭 데리고 다니시면서 따뜻한 우유(역시 분유를 탄 것)을 시켜주셔서 그때 그 맛을 못 잊어서일까, 나는 유난히 따듯한 우유를 좋아한다. 아직도 여름에도 우유를 뜨겁게 데워 마시곤 한다.

결혼하고 뒤늦은 나이 유학을 떠났다 돌아왔을 때 친정 가까이 살면서 엄마가 우리 딸을 키워주셨기에, 오빠는 자연스레 우리 딸을 키워주신 셈이 되었다. 내가 수없이 이런 저런 일로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아플 때 마다, 무슨 교통사로라도 날 때마다, 성하지 않은 몸을 이끌고 기우뚱기우뚱 걸으시며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달려오셨던 오빠...... 내게는 은인인 오빠. 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하는 삶을 가르쳐주신 오빠. 병약하셨던 아버지 대신 내가 의지했던 오빠.

헌칠한 키에 넓은 이마, 오똑한 콧날, 멋스런 모습.
나이들어서 병원에 초췌한 모습으로 입원해 있을 때도, 요양병원에서도,  모두들 잘 생기셨다고 하던 오빠.
담배를 좋아하셔서 늘 손에서 구수한 옥수수 냄새가 났던 오빠.
머리가 유달리 뛰어나신 오빠.
옷을 멋스럽게 입었던 오빠.
미술재능도 뛰어나셔서 그림으로 중고시절 정부에서 보내줘 중국까지 다녀오신 오빠.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던 철학공부를 못하고, 예술공부도 못하고 맏이라서 실용적인 공부를 하셨어야 했던 오빠.
(결국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를 학사편입으로 나오시긴 했지만)
7남매를 다 보살펴주신 오빠. 책임감이 그 누구보다 뛰어나고 성실하셨던 오빠. (그래서 얼마나 버거운 삶이었을지... 그래서 그런 조건 때문에 원하는 결혼도 할 수 없었던 오빠)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 주변에 힘든 사람들을 늘 가족처럼 초대해서 함께 지내고 도와주던 오빠.
늘 아랫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했던 오빠.
그렇게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던 오빠.
꽃과 나무를 좋아하셨던 오빠.

이제는 우리 곁에 없다.
내 곁에 없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이리 허망히 가실 줄 알았으면 좀 더 자주 찾아뵐 걸.....

육신의 고통이, 통증이 이리 절대 고독인 걸 내가 그때는 왜 미처 몰랐을까?
왜 우리는 늘 나 살기 바쁘다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원히 곁에 있을 것처럼 착각을 선택하는 이기적인 삶을 사는 것일까?

오빠 사랑해요. 감사해요.
그리고... 너무 미안해요...
아픔 없는 그곳에서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너무 보고 싶어요.....

----

우리가 살면서 해야하는 세가지
그건 죽기 마련인 모든 것을 사랑하기,
당신의 삶이 거기에 기대고 있음을 깨닫고
그들을 가슴 깊이 끌어안기,
그리고 놓아보내야 할 때가 되었을 때
놓아 보내기.
(M. 올리버)



별을 낳는 것은 밤만이 아니다.
우리의 가슴에도 별이 뜬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슴도 밤이다.
그러나 우리의 가슴에 별이 뜨지 않는 날도 있다.
별이 뜨지 않는 어두운 밤이 있듯
우리가 우리의 가슴에 별을 띄우려면 조그마한 것이라도 꿈꾸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다른 것을 조용히 그리고 되도록 까맣게 지워야 한다.
그래야 별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러므로 별이 뜨는 가슴이란 떠오르는 별을 위하여 다른 것들을 잘 지워버린 세계이다.
떠오르는 별을 별이라 부르면서 잘 반짝이게 닦는 마음-이게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랑이 많은 마음일수록 별을 닦고 또 닦아 그닦는 일과
검정으로 까맣게 된 가슴이다.
그러므로 그 가슴 앞에서는 조금이라도 광채를 가진 사람이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므로 사랑은 남을 반짝이게 하는 가슴이다.
사랑으로 가득찬 곳에서는 언제나 별들이 떠있다.
낮에는 태양이 떠오르고 밤에는 별들이 가득하다.
그러므로 그곳에서는 누구나 반짝임을 꿈꾸고 또 꿈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가득찬 가슴에 투망을 하면 언제나
별들이 그물 가득 걸린다

[작은 별에 고독의 잔을 마신다- 오규원]

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1879~1944)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어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1926년 시집 <임의 침묵> (회동서관)

(c)2008E.Kim

from my lovely and precious daughter to mom


늘 보고싶지만 그렁그렁 맺힌 눈물처럼 유달리 그리운 날이 있다.
주섬주섬 딸아이가 11년 전 만들어 준 작은 책을 들여다 본다.


T. S. Eliot의 황무지(The Waste Land)를 그림으로 그려서 책으로 만들어  여름방학 때 가져왔었지.
이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제일 멋지고 감동적이고 소중한 책.
모든 페이지가 다 예술이지만  몇페이지만 올려본다.

Thank you. You are so spe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