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나약하며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면 안된단 말입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편히 쉬게 하리라.
보라. 내가 문밖에서 기다리노니

수필 [내가 그때 거기 있었다] 중에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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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때로 음악회에 가면 연주자와 악기와의 그 놀라운 교류를 바라보며 환희를 느낀다.  모든 것에서 완전히 격리된 그들만의 일치, 그리고 그 일치가 만들어 내는 음. 그들이 얼마나 서로 일치가 되어있는가가 음의 질을 좌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건 오디오로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과 감동이다. 무엇보다도 피아니시모 같은 소리를 낼 때 연주가들의 땀이, 정말 진한 땀이 솟는 절제된 연주는 아름다움의 극치 같다. 절제야말로 힘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가장 큰 힘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름대로 음악을 사랑하지만 전공자도 아니고 짝사랑이어서 어디 나가서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연주들 중의 하나를 예로 들라면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꼽을 수 있다. 그 음악만큼 연주자와 음악이 일치된 것도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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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운전하면서 차안에서 음악을 듣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허가받은 자유시간이 고속도로 운전이다. 특히 밤 자정이 가까운 시간 퇴근길의 고속도로에서 듣는 음악은 내가 나를 떠나 음악과 하나가 되는 환희의 순간들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카잘스와  요요마를 기분에 따라 바꿔가며 듣는다든지, 1004번 파르티타 샤콘느를 듣거나, 아니 때로 비탈리의 샤콘느를 들을 때,  드보르작의 첼로 콘체르트를 한 음도 놓칠 수 없이 전 악장에 온전히 날 내어 맡길 때,  너무 맘이 비장한 날은 모차르트의 리퀴엠을, 특히 라크리모사(물론 이건 모차르트가 완성한 곡은 아니지만)를 들을 때, 아니면 비발디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더 할 나위 없이 좋고,  기분전환으로 파바로티의 성가곡, 아니면 다른 이들이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열정으로 부르는 "패션(Passion)" 이라든가, 카루소,  또는  마리아 칼라스가 아니라면 이네사 갈란테가 부른 아이다의 정결한 여신이라든가, 아니면 군둘라 야노비츠가 부르는(다른 사람은 안된다)  피가로의 결혼 3막의 아리아 "그리운 그 시절은 가고, 즐겁던 시절은 잠시 뿐"만 들어도 어떤 때는 "좋아서 죽고싶다"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어떻게 그 리스트를 다 열거할 수 있단 말인가. 

 

내 마음에 하루종일 음악이 흐르지 못하고 이것 저것 불협화음으로 괴로울 때는 나도 올페우스처럼 지옥 같은 내 절망의 심연에 대고 "나의 에우리디체를 돌려다오"라고 한 두 번 노래했던가? 음악을 듣다가 흥분되어 하루동안의 모든 고통스런 맘의 응어리와 피로를 다 잊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 날밤 퇴근길에도 너무 지쳐서 언제나처럼 커피를 진하게 보온병 가득 타서 비상약처럼 곁에 두고 고속도로를 운전을 하고 있었다. 우연히 FM을 틀었는데 마침 미샤 마이스키 공연 실황을 중계하고 있었다. 음악회에 가보지 못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음악학과 교수는 내가 CD나 테이프, FM에서 고전 음악을 듣는 것을 보면서 자기는 그런 것으로는 음악을 도저히 못 듣는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지만 내겐 그것도 좋아서 좁은 운전공간에 온 우주라도 함께 곁에 있어주는 양 충만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 날은 반 수면상태에서 운전하면서 아무 기대도 없이 듣고 있었다. 그런데 마이스키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는 차츰 나를 피로의 늪에서 끌어내어 넓은 광야로 달리게 만들고 있었다.  특히 A 장조 3번 소나타는 압권이었다. 마이스키의 저음은 놀랍고도 화려한 노크였다. 나도 돌봐주지 못한, 내 관심이 미치지도 못하는 내 깊은 가슴속 바닥까지 찾아가 노크를 해주는 기분이었다. 

그 깊은 속에서 문을 열고 맅케의 "소년"이 달려 나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밤중에 야생마를 타고 달리는 소년, 나는 그런 소년이 되고 싶다"는 릴케의 시를 외우며 단숨에 말을 달리듯, 몸이 날아갈 듯 고속도로를 달려왔었다. 마이스키를 들어보긴 처음이었다. 한복을 입은 멋진 모습의 그가 신문에 화재가 되고 내한공연도 몇 번 있었지만 내가 모든 것 다 잊고 귀 막고 눈감고 일에만 매달려 살아온 지 너무 오래되었으니 그의 음반을 사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오래 묵은 좋아하는 음악을 꺼내 듣고 또 듣는 기쁨과 달리 이렇게 뜻밖의 아름다운 인연을 만나는 기쁨은 잊을 수가 없는 감동이다. 지금 마이스키를 듣는다면 아마 그 첫 대면의 흥분을 느낄 수는 없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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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모든 음악의 아다지오 악장만 들었었는데 요즘은 바뀌었다.   오늘은 스케르죠와 알레그로 악장을 듣고 싶다.  그리고는  이제 일을 하자.  힘을 내야지...   세상의 하루가 밝아오고 나의 하루가 저물기 전에 일을 해야지.


Beethoven Cello Sonata #3, Scherzo Allegro Molto & Allegro Vivace by Mischa Maisky, Martha Argerich

https://youtu.be/rgd2l1ebRR0

 

 





You are special.


You needed me, Sung by Anne Murray

내가 눈물 흘렸을 때 당신이 닦아 주었고

내가 혼동 중에 방황할 때 당신은 내 의심을 씻어주었습니다.

내 영혼을 팔았지만 당신이 내게 되찾아 주었고

날 높이 올려 존귀함 주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내가 필요했습니다.


당신은 내게 다시 홀로 설 힘을 주었고

내 혼자 힘으로 세상과 맞설 수 있게 해주었고

날 높이 올려 존중해 주니 너무 높아 영원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필요했어요,
당신은 내가 필요했어요.

바로 당신이라는 게 믿을 수가 없어요, 그게 사실이라는 게,

나 당신이 필요했는데 당신이 바로 거기 있었습니다.

난 당신을 떠나지 않아요, 내가 왜 바보같이 떠나겠어요?

마침내 진정으로 나를 염려해주는 그런 사람 찾았는데.


내가 추울 때 당신은 내 손 잡아주었고

길을 잃었을 때 날 집으로 데려다 주었고

막다른 길목에 몰렸을 때 내게 희망을 주었으며

나의 거짓도 진실로 다시 바꾸어 주었습니다

날 친구라고 부르기까지 하면서.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에요.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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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가사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힘들고 지치고 넘어지고 외로운 것은 나였는데... 그런 내게 "당신이"  다가와 손 내밀어주었는데, 내가 그렇게 절실히 바라고 필요로 하던  "당신"이었는데...  오히려 "당신이 나를 필요로 했었다(You needed me)"고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린 말하죠. '난 당신없인 안돼.'
그거 아세요?  부모님도 나 없인 안되는 것을요.  밤낮 속썩이고 실망만 시키는 연약한 내가 부모님을 필요로 하는 줄 알았는데 뭐든 다 하실 수 있는 어른인 부모님이 바로 날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심바에게 고백하던 아버지의 고백을 기억하세요?  그 누구도 감히 대적하지 못할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동물의 왕인 아버지 사자가 '오늘 두려워서 죽는 줄 알았다.'고  "사랑하는 널 잃을까봐 두려웠다고" 고백하는 것을..  )

하나님도 우리 없인 안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아십니까? '난 네가 필요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이때 피곤, 곤비는 영어로 sick and tired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지쳐서 진력이 난다는 뜻입니다. 실망하고 포기하고 싶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주님은 내게 피곤해하지 않으십니다.  나도 자꾸 나에게 실망하고 지쳐가는데 그래서 자존감도 용기도 희망도 다 사그라져 그저 누워버리고 싶은데  주님은 아니랍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나보다도 더 잘 이미 "나의 불가능성과 나의 나약함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 대신 내 안에서 그의 일 (착한일, 선한일, 나를 주님 닮아가게 키우는 구원의 완성-빌립보서)을 시작하시고 이루어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자여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나의 가는 길이 이렇게 캄캄하고, 외롭고, 고단하고 힘들어도 주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어제의 나와 하나도 달라진 거 없는 것처럼  또 실패를 반복하는데 주님은 나를 붙들고 계시다 합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어디 곁에 있다는 말인가 하고 대뜸 반발심이 일지 않습니까?

시편 23편에서의 고백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쉴만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며...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害)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여호와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심이라.

가만히 보십시오.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에 그가 탄탄대로로 걸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쉴 만한 물가로 인도받는 그 길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valley of the shadow of death)"입니다.  그런데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죽을 것 같이 힘든 그늘진 골짜기에서 그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바로 "害(해)" 이기 때문이며 그 해로 부터 보호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해란 손해보고 세상에서 실패하고 외면당하는 것이 아니라 Evil, 즉 악을 말합니다.  내가 악으로 부터 보호받는 것 이것이 "부족함이 없는 삶" 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도달할 쉴만한 물가, 평화를 의미합니다.  이 비밀을 깨달아 안 사람들은 인생길에서 피곤하고 곤비하고 넘어지고 자빠지되 여호와의 지팡이(인도)와 막대기(보호)로 인해 독수리처럼 날개치는 존재인 것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바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패자 같고 이름없는 존재이며 외톨이인 우리가 가진 "그럼에도"의 권리와 승리와 힘의 "비밀"입니다.  세상과 나의 삶과 나를 새롭게 보는 눈입니다.

나의 귀한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강하다는 게 무엇인줄 아느냐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이것이 바로 그 친구가 말한 웃을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신음소리까지 다 듣고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힘이되는 지요.  그런데 그 누군가가 나보다 더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침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다. (이사야 40)


오래 먼 숲을 헤쳐 온 피곤한
상처들은 모두 신음 소리를 낸다
산다는 것은 책임이라구.
바람이라구. 끝이 안 보이는 여정.
그래. 그래 이제 알아들을 것 같다
갑자기 다가서는 가는 바람의 허리.

같이 있어도 같이 있지 않고
같이 없어도 같이 있는, 알지?
겨울 밤 언 강의 어둠 뒤로
숨었다가 나타나는 숲의 상처들.

그래서 이렇게 환하게 보이는 것인가.
지워 버릴 수 없는 그 해의 뜨거운 손
수분을 다 빼앗긴 눈밭의 시야.
부정의 단단한 껍질이 된
우리 변명은 잠 속에서
밤새 내리는 눈먼 폭설처럼
흐느끼며 피 흘리며 쌓이고 있다.


[상처 - 마종기]

Ain't No Mountain High 라는 이름도 시적인 상('산도 가로막지 못할' 활약상이라 할 수 있다)을 받은 Kay와 함께. 같이 공부하던 제인, 부르스, 그리고 Kay's team facilitator인  Joy 외에 teleconference 에서 목소리만 들었던 시카고에서 온 케이트와 수잔, 멜라  모두 만났다. 너무나 좋은 친구들.

그리고 공로상을 받은 Caryn과 함께.
Caryn은 영문학교수. 자신의 학교에 Transformative Language Art라는 학과를 창설하여 공로상을 받았다. Caryn의 세션에 참가해서 captured moment 식의 시를 썼었다. 대학교때 나의 연극에 장미꽃 23송이를 가지고 온 사건에 대해서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서...  어린왕자의 장미와 연결지어 시를 썼던거 같다. 그리고 발표했는데 그 후 지나갈 때 잘 모르는 얼굴들이 웃으며 다가와  아까 너의 시가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악수를 하고 칭찬을 해주어서 정말 당황했었다. 어디 있는지 한번 찾아봐야 겠다.  돌아와서는 또 학교일과 학교 행사들, 연극 공연들.. 그리고 남은 과제들을 쫓아 앞으로 나가느라고 너무 바빠서 그때 공부했던것들이 하나도 정리되지 못한 채 그대로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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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hleen Adams의 workshop. 

이 세션에서 내가 썼던 시를 회장인 Perie Longo(시인, 교수)가 듣고 추천하여 NAPT Museletter에 실리게 되었었다.  (이 사진은 다른 참여자가 찍은 것으로  케이 옆에 내가 있었는데  사진에 나는 나오지 않는다. )

내가 했던 세미나는 사진이 없다. 
나의 워크샵에 참석한 사람 8명 중 한명을 제외한 전원이 세미나/워크샵의 평가에 최고점수(most satisfying)를 주었고 한명은 very satisfying을 주었다. 모두 끝난 뒤 가지 않고 남아서 일일이 나를 포옹하면서 칭찬해주었다. 한명은 자신이 쓴 평가를 직접 보여주면서 자신은 일부러 일반대학이 아닌 특수 대안학교를 갔는데 만일 당신같은 교수가 있으면 당장 그 학교를 갔을 것이라면서 한국의 당신학교 학생들은 참 복받은 것이라고 최고의 격려를 해주었다.  또 다른 중학교 선생은 자신이 고민하던 문제의 치료를 받았다고 감사하다고 했고.  그 선생의 이름을 잊었는데..  다른 사진에 피리 비슷한 악기를 연주한 그분이다.  사실 난 나의 교육 신념에도 불구하고 늘 힘들었는데 이들의 반응에 정말 많은 용기를 얻고 돌아왔다. 

이 워크숍도 내가 미리 오래전에 준비한 대로 하지 않고 그 전날 새벽 2시부터 다시 준비한 내용으로 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다.. 나의 영어로 그렇게 실수하나 없이 강의와 치료 워크샵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2007 Portland Conf. 에서 하기로 한 나의 두번째 세미나발표가 두렵다. 늘 그렇듯..  그리고 늘 그렇듯 나는 또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Marie와 함께.  그리고 Joy, Shiela.  Shiela는 내 발표장소에 여러 시설들을 준비해주고
참 많이 도움을 주었던 대회준비위원이었는데 작년가을 NAPT일을 그만두었다.
오랜동안 보고 싶을 거다.

Kay의 trainee들 중 이번에 CPT자격증을 받는 사람들을 축하하기 위한 모임.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소중한 친구들. 나의 가장 귀한 친구 제인. 제인은 심리학전공 석사이다. 수잔. 멜라. 또 다른 수잔과 호텔에서 같이 방을 쓴, 그리고 수업을 같이 들었던 캐롤라인. 그리고 작지만 노르만디 엘리스(CPT)의 호탕한 웃는 모습이 사진에 보인다. 저녁에 food court에서 같이 보낸 친구들 중 제인 옆 스테파니는 내게 미로걷기의 의미를 가르쳐준 친구, 그리고  내 곁에는 영국에서 온 선생, 그 곁은 루마니아출신으로 지금은 미국에 와 지내고 있다. 이름은 듣고도 잊었다. 맨 아래 Richard는 초등학교 선생. Keeping the Pulse of Poerty in the Classroom이라는 그의 seminar에 내가 참석했었다.

이렇게 밝게 웃는 사람들의 가슴에 모두 다 예외없이 이런 저런 눈물단지들이 묻혀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수업을 해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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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Louis NAPT Conference.
내가 세미나 발표자로 참석했던 전미시/문학치료학회이다. 

사실 수업사진을 찍는 것은 삼가해야할 일이다. 모두들 조용히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끌어내야 하는 워크샵시간들인데 돌아다니면서 셔터를 누르는 일은 외국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더 폭넓게 배우고 느끼고 변화를 체험하고 싶어 미국 전역에서 직장휴가를 얻고 시간을 쪼개어 찾아와서 각 세션마다 수업료를 내고 듣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 몰입해야하는 세션 중 일어나서 이리저리 사진을 찍으면 무척 당혹스럽다.  내가 수업받은 학교에서는 교실 옆방에서 웃음이 자주 터지면서 소리가 들리자 곧 바로 학생들의 요청에 의해 방을 옮겼던 경우도 있다.  핸드폰소리가 연신터지는 우리나라 수업과는 다르며 치료세션은 아무리 웃음이 터지는 자유로운 분위기라도 여느 수업과는 좀 다르다.

여기 얼굴들은 나의 친구들이거나 케이를 멘토로하는 trainee들의 모임이다. Bruce  옆의 페리(Perie)는 교수이면서 시인. 이번에 회장이 되었다.  난 그녀의 시를 무척 좋아한다.  특히 Fishing with My Father, Grandma's Mirracle... 

페리는 나와 함께 케이 애덤스의 세션에 참여하였는데 그 세션에서 내가 썼던 시 "NAPT-Never Say Never Land"를 듣고 추천하여 NAPT Museletter에 실리게 되었었다. 그리고 내가 쓴 그녀의 시에 대한 FC을 읽고 너무나 좋아하면서 나에게 자신의 시집을 보내주었다.

John Fox(시인)는 지난번 학회장(하지만 NFBPT의 문학치료사 자격증 소유자는 아니다).  Leia(워싱턴에서 왔다), 그리고  Joy옆에 Linda도 나의 CPT 동창생(?)이다.  Joy(RPT)도 시인이다.  목걸이 이름표에 붙은 파란색은 처음 참석한 사람. 초록색은 세미나 발표자, 빨간색은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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