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옴마!
엄마, 나는 크리스마스 하면 나 초등학교 때 엄마가 TV세트 앞에 이쁘게 포장해서 선물 잔뜩 올려놨던 기억이 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난 너무나 엄마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선물 받았는데 역으로 내가 엄마한테는 (특히 유학오기 전까지) 아픈 상처만 많이 줬던 기억이 나서 참 많은 후회가 돼.  엄마, 우리는 명절 때 왁자지껄한 적이 없었지만 이제 내 가슴속에 남는 것은 그때의 쓸쓸했던 것이 아니라, 엄마가 그런 나를 위해서 얼마나 가슴 아파하고 채워주려고 노력했는지야. 그리고 엄마의 그 사랑이야 말로 내게는 가장 감사한 선물이고 내가 받은 가장 큰 축복이야.  엄마, 이 사실을 이렇게 뒤늦게야 깨달아서 너무 미안해. 우리 옴마 늘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우주 최고로.  우리 좀 이따 만나~~~  2011 크리스마스 옴마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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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자료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추억의 카드 편지. 
내가 여기저기서 받은 손편지들이 박스로 넘친다. 버릴 수 없는 마음이 가득해서 간직한 것들이...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는 추억은 언제나 선물 같은 조우이다. 
이상도 하지. 내가 뭔가 해준 건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자꾸 못해준 것만 기억난다. 
서로서로 그런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인가 보다.  준 것이 아니라 받은 것만 생각나는 거.... 

많이 보고 싶지만 멀리서 그리워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우린 서로 보고 싶단 말도 자제한다...... 왜 그러는지 서로 안다.....) 

photo by bhlee


나의 마음은 비어있다
오직 네가 와서
가득 채워 주기를 기다리는 뜻으로
이것을 하나 마련하였다

소리치는 것보다
차라리 눈을 감고 인내의 한 때
그리고 멀리
떠나가면 그만인 구름 같은 마음을

아아 이 조그만 면적에 기대서
나는 나의 반평생을 저울질 한다.
.........

귀를 기울이면 가랑잎이 지는데
조심스런 네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비어있는 내 마음의 갈구의 표지(標識)
창에 불이 켜 있는 것을 보아라.


<"이형기- 창2"  일부>

<지나친 내 마음의 오지랖>

 

에효... 오늘은 이런저런 오지랖으로 하루가 저물어가 버리고 있다. 

어둑해지는 시간, 집에 오다가 웬 할아버지가 지하철 입구에서 “이리 가면 H아파트 건너편 맞나요”한다. 네.. 하고 가려다가 "건너편"이라는 애매한 말이 그만 덜컥 맘이 걸려서 뒤돌아섰다. "그런데 어디 가시는데요?"

 

외모는 깔끔해 보이시는 그 할아버지 어디로 가는지도 몰라서 휴대폰을 뒤적뒤적 거리시기를 2-3분. 결국 메시지를 찾아 H아파트 건너편으로 오면 찾을 수 있다고 했다고만 하신다. 전철역에서 10여분은 족히 걸리는 H아파트, 그 아파트가 얼마나 긴데 정확히 건너편 어디로 가시냐고 또 묻는다. 기억을 못 해 간신히 또 한참을 걸려서 메시지를 찾더니 [평생학습관]이라 하신다. 더 자세히 묻고 알아낸 것은 검도부 제자가 그 아파트 건너편에 있으니 그곳으로 오라고 했다는 거다.

그 장소가 내가 지나다가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아주 좁은 골목에 있고 눈에 띄지도 않아서 찾기 쉽지 않은 곳이다. 사람들에게 물어도 아마 모를 거다. 네이버 지도로 찾아서 보여드려도 알지 못하시겠기에 그 제자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했다. 마중 나오라고 하겠다고. 또 전화번호를 찾지 못하신다. 할 수 없이 내가 그분의 폰(나와 다른)을 달라 해서 겨우 메시지에서 번호를 찾았다. 그랬더니 또 나보고 걸어 달라 신다. "선생님이 전화하셔야 해요."  결국 통화가 되어 그 선생 성함 대면서 제자에게 어디 어디로 모시러 오라고 하고 근처 큰길에 모셔다 주었다. “거기 골목이라 혼자 못 찾으시니까 꼭 여기서 기다리세요” 하고. 나도 바빠서 급히 돌아섰다.

 

그런데 길을 건너자 그만 맘이 아프기 시작한다.

"선생님 잘못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무 걱정 마세요. 돌아가실 때도 길 안내해 달라고 하세요 꼭!!!" 이 말을 못 해서.
내가 계획했던 시간이 어그러진 게 아까운 게 아니라 "선생님 잘못 아니라고, 괜찮다"라고 말해주지 못한 게 내내 맘에 걸려서....
귀도 어두운 그분께 “어딘데요?”라고 큰 소리로 계속 물은 게 꼭 추궁(?)한 거 같아 맘에 걸려서.

얼마나 초조하셨을까? 
겁에 질려 자신감이 없어져서 다음에 또 밖에 나가기 두려워하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젊은 시절 검도선생으로 일하던 그 꼿꼿하던 시절이, 그 추억이 그리워
제자가 오라는 초대에 용기내어 
이렇게 추적추적 겨울비 오는  저녁시간  낯선 길을 혼자 찾아나셨을 텐데....
자꾸자꾸  마음이 쓰인다. 괜찮다고 누구나 다 그렇다고 말해드릴 걸...
(물론, 제자가 잘못했네요. 모시러 온다고 했어야죠...라고 했지만..)

이래서 또 난 기력이 빠져서 멍하니 있다. 오늘도 하루가 그냥 가버리고 있고...
늘 이런 내 “마음의 오지랖”-- 그 후유증이 문제다. 이런 아픔이 문제다.

아마... 검도부 제자들 만나서 다시 힘을 얻고 가셨을 거야. 내 삶이 그래도 헛된 것은 아니었다고 위로받으시며...
그렇게 나도 나를 다독인다--너무 미안해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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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오지랖이란 말을 쓰고 나니, 이게 내 문제를 제대로 표현한 말일까, 궁금하여 새삼 뜻을 찾아본다.)

오지랖: 본래 뜻은 웃옷이나 윗도리의 앞자락이며, ‘오지랖이 넓다’는 옷자락이 넓게 펼쳐지듯 남의 일에 주제넘게 간섭하는 모습을 비유합니다. ‘오지랖이 넓다’는 말은 오늘날에도 종종 쓴다. 그런데 이 말이 그다지 좋은 뜻은 아니다. 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몸이나 다른 옷을 넓게 겹으로 감싸게 되는데, 간섭할 필요도 없는 일에 주제넘게 간섭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그런데 또 한편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가슴이 넓다는 말이다. 즉 남을 배려하고 감싸는 마음의 폭이 넓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지랖이 넓은 것이 미덕이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서 남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귀찮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때, 이를 경계하여 ‘오지랖이 넓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오지랖이 넓은 게 문제가 아니라, 제 몸과 관계없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눈길도 주지 않는 세태가 더 문제다. 오히려 사람들의 오지랖이 너무 좁다는 데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지랖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2004/2011 박남일)

[가장 따뜻했던 계란 하나]
 
늘 기운이 없었던 고3. 얼굴도 머리도 노랗고 말랐던 나.
그래도 모두 잠든 밤, 밤새워 혼자 공부해 보겠다고
난방도 없는 외풍 센 마루에 나와 상을 펴고 쪼그리고 앉아 밤을 새우던 때,
새벽이면 아득하게 힘이 빠져나가고 오슬오슬 추위와 허기로 떨곤 했다.
어느 새벽, 마당 건너 사랑방에서 화장실을 다녀오던 작은 오빠가
드르륵 문을 열고 아무 말없이 들여 밀고 간 따듯한 계란프라이 하나.
당시 우리들에겐 유일한 고급 도시락 반찬이었던 계란 하나ㅡ
그 고소한 냄새의 계란 맛이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다만 그걸 먹고 나니 갑자기 자꾸 감기던 눈이 뜨이던
신기한 기억만 또렷할 뿐.
불 켜진 마루를 보고, 동생을 위해 말없이 부엌에 가서
석유풍로를 켜고 계란을 부쳐다 준 오빠의 마음,
어려서 큰오빠의 사랑을 받던 나보다는
외로울까 언니만을 챙기던 작은 오빠의 그 말없는 배려에
지쳐 한기에 떨던 내 외로운 가슴이 얼마나 따듯해졌던지 그 온기를 기억할 뿐.
 
가장 따듯했던 그날의 계란프라이 하나ㅡ
지금도 내 맘 오슬오슬 시린 날이면
말없이 찾아와 주는 따듯한 기억
ㅡㅡㅡㅡ
지난 주 특강 준비하려고 보니, 지난달에도 특강때문에 작업했던 PPT가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혼자 해결하려 끙끙대다가 다음날 서비스센터로. 기기문제가 아니라는건 알았다. 그래도 혹시 도움을 기대했지만 전~혀 아니었다.할 수없이 78된 오빠에게 SOS. 지난달 이사 간 먼 곳에서 밤늦게 찾아와 해결해주고 갔다.
 
오빠는 내가 미국가서 긴 기간 집을 비우는 때면 빈 집에 와서 화분도 살펴주고 말없이 여기저기 고장난 거 다 손봐준다.  회사일도 바쁜데 음악과 함께 사는 나를 위해 내가 아끼는 정말 오래된 맥킨토시 앰프도 어렵게 충주까지 수리해 줄 수 있는 사람 찾아가서 다 고쳐다 주고,  현관문 손잡이 잠금장치 수리해놓고. 이 모든 걸 아무 말없이….  내가 귀국하는 날이면 늘 비행기도 멀미를 해서 고통받는 나를 위해 시간 맞춰서 문 앞에 죽을 배달해놓는다. (난 거의 28년 차이 났던 이젠 하늘에 계신 큰오빠 사랑도 엄청받았는데 정말 복이 많다. 그저 감사하다. )


사진도 잘 찍고… 예술적 재능이 풍부한 수학천재 오빠. 어려서 천재소리 듣던 오빠가 참 아깝다!! 세상엔 타고난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슬픈 삶이 얼마나 많은가. 

키크고 영국 신사같이 멋쟁이였던 오빠가
이제 나이들어 띄엄띄엄 걸어가는 굽은 뒷모습, 벗겨진 뒷 머리가 왜케 아프고 슬픈지…. 뒷모습에 대고 오빠부부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기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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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따듯했던 계란 하나"는 아주 오래 전 썼던 일기이다. 남들에겐 고마움을 잘 표현하는 나도 가장 가까운 내 가족에겐 왜 못했을까? (울딸에겐 예외~^^) 
맘은 혼자 간직하면 안되고 표현하고 나눠야 할 거 같아서 쑥스럽지만 저 글을 오빠에게 보내려한다. 더이상 뒤늦은 후회하지 않으려고. "오글거리지? ㅋㅋ" 라고 덧붙여서^^>

 

아버지의 전화 - 김수원 (2024 시민공모작)

 

아픈 데는 없니

그게 사랑한다는 말이다

별일 없니

걱정된다는 말이다

 

바쁘니

보고 싶다는 말이다

나는 괜찮아

외롭다는 말이다 

 

문득 전화가 뚝 끊어지는 것은 

울고 있다는 말이다

많이 아프다는 말이다

 

위로받고 싶다는 말이다 

슬픔 

사랑한다며 
아름다운 여린 꽃 
아프게 꺾어 
손에 들고 
가시밭을 걷는다, 그 
빛 앞에 
쪼개지는 어둠 


(bhlee 112125)MP
ㅡㅡㅡ

아름답고 예뻐서 지켜주려는 마음? 충고? 그게 얼마나 잘못된 관심과 욕심일까?  
더한 아픔과 상처를 내면서 지켜주려고 꽃을 꺾는 일이 사랑일까? 
척박해도, 추워도, 때로 목말라도  제 땅에서 견디며 뿌리내려야 하는데
그렇게 단단히 성장해야 하는데 끝까지 살려낼 수도 지켜줄 수도 없으면서 상처만 주는 무지한 사랑, 
그 어둠을 비춰주는 빛이 가시 같이 아프다. 
ㅡㅡ
photo by bhlee

나무 

소중한 방문객을 만나러 가는 길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만나러 가는 길)*
잎하나 내 발 앞에 날아와 앉았다.
붉게 물들어 가는 제 몸 한쪽엔
고집스럽게  나는 물들지않겠다
자신을 지키는 노란 빛이 당당하다. 

그 작은 잎 데려다 마음에 심었다 
마른 잎 속 작은 나무가 가지를 뻗고 있다. 
해와 달을 그렸다.  
갑자기 영원 같은 공간에 서 있다 
내가 서있다
떨어진 잎이 아닌 나무로. 

 <bhlee 111325>
 
*정현승 시인을 인용했음 
ㅡㅡㅡㅡㅡ
나도 모르게 해와 달을 그려넣다가 내가 장욱진을 흉내내나보다 혼자 웃었다. 
내가 처음 장욱진 그림을 만났던 그 먼 옛날, 나의 첫 탄성은 그의 그림 속 시/공간을 초월한 순수한 세상이었다. 
해와 달이 공존하는 세상. 자연과 사람과 선한 동물이 나무 속에, 나무 위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세상.  
ㅡㅡㅡㅡㅡ

by bhlee



그렇게 소중했던가 - 이성복

버스가 지리산 휴게소에서 십 분 간 쉴 때,
흘러간 뽕짝 들으며 가판대 도색잡지나 뒤적이다가,
자판기 커피 뽑아 한 모금 마시는데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종이컵 커피가 출렁거려 불에 데인 듯 뜨거워도,
한사코 버스를 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가쁜 숨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
회청색 여름 양복은 온통 커피 얼룩.
화끈거리는 손등 손바닥으로 쓸며,
바닥에 남은 커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소중했던가,
그냥 두고 올 생각 왜 못 했던가.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 삶은 꿈이다.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 가는
그 일이란다” ㅡ김남조

11월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곁을 내주지 않고 인색하던 눈부신 가을하늘이 드디어 찾아와주었다.  감사하다!
길고 긴 겨울이 오기 전 마지막 아름다움....

지난 3일간 매일 연이어 세 분이 하늘로 떠나신 소식을 들었다. 이 나이에 점점 자주 마주하게 될 현실이다.  그래도 먹먹했다.

마지막은 그것이 무엇이든 비록 순리이고  아름다울지라도 “슬픔"이다.  가을이 조금씩 떠나가는 11월, 오늘 산책 길에 더더욱 내 마음을 물들인 노을처럼.

노을로 가는 길이 “천천히” 라고 일러준다.
이 말이  이젠 속도가 아니라 한 걸음도 의미있게..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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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 by bhlee(110225)

낮엔 달처럼
밤엔 해처럼
그렇게 살아도 좋으리…

 
photos by bhlee(1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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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nSS
산은 산, 물은 물처럼, 낮엔 해, 밤엔 달인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선생님 말씀 중에 어둠속에 빛이 있으면 더 이상 어둠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밤에 해가 있으면 밤이 낮이되고 낮이 밤이 되는, 혁명적인 상황이네요^^
선생님 미적 감각은 따라갈 수가 없네요, 어쩜 이런 사진을 찍으실 수 있는지요!

-->bhlee
고마워.
맑고 밝은 하늘을 기다려도 기다려고 인색하던 가을이  요몇일간 마침내 가을 햇살을 환히 내려주니 참 감사했지?
길고 긴 겨울이 오기 전..... 

사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이란 말이 우리에겐 참 익숙하지. 
노래도 있고 ㅡ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하지만 그냥 난 빛과 어둠 너머에 그것에 가려,
또는 우리의 시각과 고정된 의식에 의해 보이지 않는, 그렇지만
여전히 거기 있는 소중한 존재에 대해 생각해봤어.
낮 달과 밤의 해처럼…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FBk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