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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내 마음의 오지랖>
에효... 오늘은 이런저런 오지랖으로 하루가 저물어가 버리고 있다. 어둑해지는 시간, 집에 오다가 웬 할아버지가 지하철 입구에서 “이리 가면 H아파트 건너편 맞나요”한다. 네.. 하고 가려다가 "건너편"이라는 애매한 말이 그만 덜컥 맘이 걸려서 뒤돌아섰다. "그런데 어디 가시는데요?"
외모는 깔끔해 보이시는 그 할아버지 어디로 가는지도 몰라서 휴대폰을 뒤적뒤적 거리시기를 2-3분. 결국 메시지를 찾아 H아파트 건너편으로 오면 찾을 수 있다고 했다고만 하신다. 전철역에서 10여분은 족히 걸리는 H아파트, 그 아파트가 얼마나 긴데 정확히 건너편 어디로 가시냐고 또 묻는다. 기억을 못 해 간신히 또 한참을 걸려서 메시지를 찾더니 [평생학습관]이라 하신다. 더 자세히 묻고 알아낸 것은 검도부 제자가 그 아파트 건너편에 있으니 그곳으로 오라고 했다는 거다. 그 장소가 내가 지나다가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아주 좁은 골목에 있고 눈에 띄지도 않아서 찾기 쉽지 않은 곳이다. 사람들에게 물어도 아마 모를 거다. 네이버 지도로 찾아서 보여드려도 알지 못하시겠기에 그 제자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했다. 마중 나오라고 하겠다고. 또 전화번호를 찾지 못하신다. 할 수 없이 내가 그분의 폰(나와 다른)을 달라 해서 겨우 메시지에서 번호를 찾았다. 그랬더니 또 나보고 걸어 달라 신다. "선생님이 전화하셔야 해요." 결국 통화가 되어 그 선생 성함 대면서 제자에게 어디 어디로 모시러 오라고 하고 근처 큰길에 모셔다 주었다. “거기 골목이라 혼자 못 찾으시니까 꼭 여기서 기다리세요” 하고. 나도 바빠서 급히 돌아섰다.
그런데 길을 건너자 그만 맘이 아프기 시작한다. "선생님 잘못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무 걱정 마세요. 돌아가실 때도 길 안내해 달라고 하세요 꼭!!!" 이 말을 못 해서. 이래서 또 난 기력이 빠져서 멍하니 있다. 오늘도 하루가 그냥 가버리고 있고... -------------- 오지랖: 본래 뜻은 웃옷이나 윗도리의 앞자락이며, ‘오지랖이 넓다’는 옷자락이 넓게 펼쳐지듯 남의 일에 주제넘게 간섭하는 모습을 비유합니다. ‘오지랖이 넓다’는 말은 오늘날에도 종종 쓴다. 그런데 이 말이 그다지 좋은 뜻은 아니다. 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몸이나 다른 옷을 넓게 겹으로 감싸게 되는데, 간섭할 필요도 없는 일에 주제넘게 간섭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그런데 또 한편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가슴이 넓다는 말이다. 즉 남을 배려하고 감싸는 마음의 폭이 넓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지랖이 넓은 것이 미덕이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서 남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귀찮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때, 이를 경계하여 ‘오지랖이 넓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오지랖이 넓은 게 문제가 아니라, 제 몸과 관계없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눈길도 주지 않는 세태가 더 문제다. 오히려 사람들의 오지랖이 너무 좁다는 데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지랖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2004/2011 박남일)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가장 따뜻했던 계란 하나]
늘 기운이 없었던 고3. 얼굴도 머리도 노랗고 말랐던 나.
그래도 모두 잠든 밤, 밤새워 혼자 공부해 보겠다고
난방도 없는 외풍 센 마루에 나와 상을 펴고 쪼그리고 앉아 밤을 새우던 때,
새벽이면 아득하게 힘이 빠져나가고 오슬오슬 추위와 허기로 떨곤 했다.
어느 새벽, 마당 건너 사랑방에서 화장실을 다녀오던 작은 오빠가
드르륵 문을 열고 아무 말없이 들여 밀고 간 따듯한 계란프라이 하나.
당시 우리들에겐 유일한 고급 도시락 반찬이었던 계란 하나ㅡ
그 고소한 냄새의 계란 맛이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다만 그걸 먹고 나니 갑자기 자꾸 감기던 눈이 뜨이던
신기한 기억만 또렷할 뿐.
불 켜진 마루를 보고, 동생을 위해 말없이 부엌에 가서
석유풍로를 켜고 계란을 부쳐다 준 오빠의 마음,
어려서 큰오빠의 사랑을 받던 나보다는
외로울까 언니만을 챙기던 작은 오빠의 그 말없는 배려에
지쳐 한기에 떨던 내 외로운 가슴이 얼마나 따듯해졌던지 그 온기를 기억할 뿐.
가장 따듯했던 그날의 계란프라이 하나ㅡ
지금도 내 맘 오슬오슬 시린 날이면
말없이 찾아와 주는 따듯한 기억
ㅡㅡㅡㅡ
지난 주 특강 준비하려고 보니, 지난달에도 특강때문에 작업했던 PPT가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혼자 해결하려 끙끙대다가 다음날 서비스센터로. 기기문제가 아니라는건 알았다. 그래도 혹시 도움을 기대했지만 전~혀 아니었다.할 수없이 78된 오빠에게 SOS. 지난달 이사 간 먼 곳에서 밤늦게 찾아와 해결해주고 갔다.
오빠는 내가 미국가서 긴 기간 집을 비우는 때면 빈 집에 와서 화분도 살펴주고 말없이 여기저기 고장난 거 다 손봐준다. 회사일도 바쁜데 음악과 함께 사는 나를 위해 내가 아끼는 정말 오래된 맥킨토시 앰프도 어렵게 충주까지 수리해 줄 수 있는 사람 찾아가서 다 고쳐다 주고, 현관문 손잡이 잠금장치 수리해놓고. 이 모든 걸 아무 말없이…. 내가 귀국하는 날이면 늘 비행기도 멀미를 해서 고통받는 나를 위해 시간 맞춰서 문 앞에 죽을 배달해놓는다. (난 거의 28년 차이 났던 이젠 하늘에 계신 큰오빠 사랑도 엄청받았는데 정말 복이 많다. 그저 감사하다. )
키크고 영국 신사같이 멋쟁이였던 오빠가
이제 나이들어 띄엄띄엄 걸어가는 굽은 뒷모습, 벗겨진 뒷 머리가 왜케 아프고 슬픈지…. 뒷모습에 대고 오빠부부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기만 기도한다.
------------- <"가장 따듯했던 계란 하나"는 아주 오래 전 썼던 일기이다. 남들에겐 고마움을 잘 표현하는 나도 가장 가까운 내 가족에겐 왜 못했을까? (울딸에겐 예외~^^)
맘은 혼자 간직하면 안되고 표현하고 나눠야 할 거 같아서 쑥스럽지만 저 글을 오빠에게 보내려한다. 더이상 뒤늦은 후회하지 않으려고. "오글거리지? ㅋㅋ" 라고 덧붙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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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전화 - 김수원 (2024 시민공모작)
아픈 데는 없니 그게 사랑한다는 말이다 별일 없니 걱정된다는 말이다
바쁘니 보고 싶다는 말이다 나는 괜찮아 외롭다는 말이다
문득 전화가 뚝 끊어지는 것은 울고 있다는 말이다 많이 아프다는 말이다
위로받고 싶다는 말이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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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bhlee 11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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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소중했던가 - 이성복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나에게 원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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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달처럼
밤엔 해처럼
그렇게 살아도 좋으리…
----------- AhnSS
산은 산, 물은 물처럼, 낮엔 해, 밤엔 달인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선생님 말씀 중에 어둠속에 빛이 있으면 더 이상 어둠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밤에 해가 있으면 밤이 낮이되고 낮이 밤이 되는, 혁명적인 상황이네요^^
선생님 미적 감각은 따라갈 수가 없네요, 어쩜 이런 사진을 찍으실 수 있는지요!
-->bhlee
고마워. 맑고 밝은 하늘을 기다려도 기다려고 인색하던 가을이 요몇일간 마침내 가을 햇살을 환히 내려주니 참 감사했지? 길고 긴 겨울이 오기 전..... 사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이란 말이 우리에겐 참 익숙하지.
노래도 있고 ㅡ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하지만 그냥 난 빛과 어둠 너머에 그것에 가려, 또는 우리의 시각과 고정된 의식에 의해 보이지 않는, 그렇지만 여전히 거기 있는 소중한 존재에 대해 생각해봤어. 낮 달과 밤의 해처럼…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FBk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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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언젠가 이런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도도히 버티던 안나푸르나 봉도 결국 인간 앞에 무릎을 꿇었다. 히말라야 정상 등반에 성공할 때마다 언론은 대대적인 보도를 합니다. 이때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 바로 ‘정복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엄밀히 생각하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루어낸 승리지, 자연과 싸워서 이기거나 정복해서 얻은 승리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승리를 내 밖의 어떤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여길까요? 더군다나 자연은 우리와 싸우기 위해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자연과 사람을 꼭 싸워 이겨야 하는 경쟁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이 이기적인 가치관은 우리의 마음을 씁쓸하게 합니다. 이런 씁쓸한 표현 말고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저 멀리서 우리를 기다리던, 너무 높고 험한 곳에 존재해서 만날 수 없었던 봉우리를 드디어 만나러갔다고요. 그 만남을 위해 모험을 했고, 드디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등정 과정에서 실패한 사람들, 때로는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모두 "정복"에 실패한 낙오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마치 무슨 침략 전쟁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모두 같은 승리자입니다. 그들 역시 ‘산이 거기 있어서’ 만나러 갔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매 순간 살아 있었던 분들입니다. 이런 도전은 그 자체로 이미 승리입니다. 만일 우리의 행동을 모두 결과로만 판단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우리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거나, 심하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지 모릅니다. 봉우리에 오르지 못하면 그동안의 내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입니다. 저 높고 험한 산에 오르는 일이 결국엔 다시 내려오기 위함이듯 우리들의 모든 여행은 역설적이게도 결국 집으로 향하는 일입니다. 집으로 향하는 외출이 곧 여행입니다. 다만 집으로 다시 돌아온 우리는 예전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내가 되어 있습니다. 힘겨운 여정을 거쳐 오는 동안 우리는 한 걸음 더 ‘나’를 실현시키며 한층 성숙한 ‘나’와 만나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토끼는 낮잠을 자서 거북이에게 졌다.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에서 발췌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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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함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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