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크기ㅡ소인국에서 거인으로 살기

(©이봉희 2011)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철학의 여러 문제들The Problems of Philosophy》이라는 저서를 통해 철학의 실용성과 가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하나의 발견과 발명으로 눈에 보이는 변화와 사람들의 삶에 실용적 유익을 가져오지만 철학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철학은 모든 확실하고 과학적인 답을 찾은 질문들이 학문(science/과학)화 되고 난 후 잔재된 답이 없고, 비실용적인 질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고통에도 불구하고 왜 살아야 하는가, 인간의 영혼은 육체가 소멸한 후 함께 소멸하는 것일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삶에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왜 불행할까, 왜 인간은 실존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는가와 같은 질문들입니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쪼개듯 쓸데없어 보이며 답도 없는 이런 질문들은 인간의 존재와 삶의 궁극적 가치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직접적이지는 않아도 결국 인간을 변화시키는 간접적인 실용적 가치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답이 없어도 우리는 이런 질문을 계속해야 하고, 그 질문에 대한 생각을 멈춰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참된 앎이란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생각처럼 우주를 인간 이성과 지식의 한계 속으로 축소해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러셀은 참된 앎이란 “자아(사고의 주체)와 비자아(사고의 대상)와의 결합”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사고의 대상이 광대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 만큼 커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현상의 세계를 뛰어넘는 보다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나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고민할 때, 우리는 그 거대한 문제와 “하나가 되어” 자아가 확대됩니다. 이런 “자아의 확대(enlargement of self)”야말로 철학의 궁극적인 선(ultimate good)이며 가치라는 것입니다.

 

[자아의 확대, 거인되기]

어떻게 문학이 문제 해결과 자아 성장으로 이끄는 치료적 힘을 지니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문학의 선(善)과 가치도 철학처럼 우리를 보다 더 큰 존재로 확대해주고 성장시켜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학도 철학과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다만 문학은 동일한 질문들을 통해 좀더 시적(詩的)으로 세계의 광대함과 아름다움, 생의 수수께끼에 다가갑니다. 문학의 치료적 힘은 무엇보다 문학 속의 시적 요소들이 우리 정서에 미치는 영향력에서 옵니다. 시란 인간 조건에 대한 특별한 언술이지요. T. S. 엘리엇의 말대로 우리의 삶은 대부분 “우리 자신으로부터의 끊임없는 도피”이기 때문에 시는 때로 보다 더 심오한 이름 없는 감각들을, 우리 존재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우리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이름 없는 느낌들을 우리가 좀더 잘 인식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늘 이런 말을 해주곤 합니다. 문학수업을 듣고 문학에 대한 지식을 얼마나 얻었는가에 수업을 잘했는지 아닌지 초점을 두지 말고 내 생각의 눈이 얼마나 커졌는가를 살펴보라고. 즉, 문학을 통해 내 생각에 자극을 받고 그 생각이 조금이라도 확대되었는지,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커져서 자연과 사물, 그리고 내 곁의 사람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는지를 말입니다.

 

이런 자아의 확대를 우리가 ‘거인이 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문학이 갖는 치료의 힘을 '소인국의 걸리버론'이라고 부릅니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중 소인국 릴리푸트 이야기는 동화로도 각색되어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지요. 소인국에 도착한 걸리버를 소인국 사람들이 아무리 결박해도 그는 떨치고 일어납니다. 소인국끼리 전쟁이 났을 때도 걸리버는 수없는 화살에 맞습니다. 하지만 아프고 상처가 나더라고 그는 쓰러지거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바로 이렇게 소인국 릴리푸트에서 걸리버로 살아가는 게 궁극적인 문제 해결이며 치료입니다. 어른이 되면 아이가 아무리 싸움을 걸어와도 더 이상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서로 다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와 싸우는 어른은 아이처럼 너무나 작은 소인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보다 더 크게 내 존재를 키우기]

에리히 프롬은 <현대 인간의 조건Present Human Condition>이라는 글에서 우리가 참으로 인간다워질 때 우리의 문제는 “원래의 크기대로 줄어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문제의 원래 크기는 작은 것이었다는 아주 적절한 지적입니다. 거인이어야 하는 우리가 소인으로 살아가면 같은 문제라도 커다란 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내가 거인으로 성장한다면, 즉 내가 회복된다면 그 산처럼 보이던 돌(문제)은 내가 쉽게 들어서 치울 수 있는 작은 돌이 됩니다. 궁극적으로 나의 갈 길을 가로막거나 나를 쓰러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은 상대방이 변화하거나, 세상이 바뀌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상대가 바뀌어도 내가 변화하지 않으면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변화하면 상대와 세상이 바뀌지 않아도 나는 그렇게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만일 문제 해결이 반드시 내 밖의 조건이 바뀌어야만 가능하다면 세상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나를 고문하고 가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자유롭기를 원하면 나 스스로 ‘자유인’이 되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유인이 되면 감옥에 갇혀서도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내가 자유인이 되기 전에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합니다. 외부 조건에 의해 내게 자유가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흥미롭게도 감옥에서 고통을 받는 사도 바울이 감옥 밖의 사람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자유하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유인이기 때문입니다.  에밀리 디킨슨도 말합니다. 자유도, 나를 스스로 고문하고 가두는 것도, 모두 나 자신이 판단하기 마련이라고. “나의 의식”이라고 말입니다.

 

어떤 고문대도 나를 고문할 수는 없어

내 자유로운 영혼을

이 죽음으로 사라질 뼈 뒤에

더 담대한 뼈가 숨어 있으니

 

톱으로 켤 수도 없고

커다란 칼로 찌를 수도 없지

두 몸이 함께 존재하기에

하나를 묶으면 또 다른 하나는 날아가니

 

독수리도 당신보다

더 쉽게

자신의 둥지를 떠나

하늘을 얻지는 못하리라

 

당신 스스로가

당신을 고문하는 적이 아닌 한

당신을 가두는 것은 의식이다

자유도 그렇다

-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어떤 고문대도 나를>

 

[상대가 아닌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독성적 관계

세상이 뒤집히지 않는 한 절대 변할 것 같지 않은 그 누군가와의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관계를 저널치료사인 카파키오니(Capacchione)는 ‘독성적’ 관계라고 부릅니다. 나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사람, 내 안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기운을 빼앗는 사람, 내가 못났다고 끊임없이 자책하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말 한 마디로 내 자신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내 안의 의심과 두려움, 자기 비난이 스스로를 사로잡게 만듭니다. 많은 경우 그런 사람들은 가까운 가족이나 직장 동료일 때가 많습니다. 피할 수 없이 함께 공존해야 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그들에게 아무리 당신이 잘못되었다고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말해도 좀체 달라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어느 삼십대 대학원생은 시어머니와 9년 동안 고통스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문제가 드러나기 전까지만 해도 시어머니는 그냥 상냥하고 배려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결혼과 함께 혼수 문제로 며느리에 대한 불만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친정부모에 대한 비난까지는 참겠는데, 손자들까지 미워하는 시어머니 때문에 그녀는 9년간 지옥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다음은 그녀가 쓴 글의 일부입니다.

 

쌓여만 갔던 상처도 5년쯤 지나면서부터는 무뎌졌고 상처투성이였던 가슴도 절대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과거로 묻어두었다. 하지만 잊었다 싶었는데도 나도 모르게 어머니께 들었던 부정적인 언어들을 내 아이들에게 쏟아 붓는 내 거친 모습을 보며 놀랐다. “넌 생각이 있니 없니? 네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뭔데?” 그렇게 날 왜소하게 만들었던 언어들을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내 자신도 싫고 어머니도 미웠다.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만들고 말았다. 그것도 남이 아닌 내 가족에게……. 문학치료 시간을 통해 무겁게 엉켜버린 그 실타래가 언젠가는 내가 풀어야 할 숙제며 그 때가 바로 지금이란 걸 깨달았다. 내게서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분노 그리고 내게 행해진 ‘폭력’은 내가 잊었다고 착각하며 가슴 속에 깊이 묻어둔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새 나는 그 상처와 분노와 폭력을 가장 사랑하는 아이에게 대물림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러 가지 저널기법을 사용해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상처를 드러내고, 묵은 감정을 털어내고, 대화하고, 관점을 바꿔보며 3개월간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9년이나 고통 받던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거짓말처럼 해소되기 시작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용서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더 놀라운 것은 그녀 혼자 용서한 것뿐인데 시어머니도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1년 후 그녀는 자신의 변화를 편지로 보내왔습니다.

 

놀랍게도 9년 동안 가슴 한쪽에 무겁게 짓누르며 아파했던 상처 덩어리가 언젠가부터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더 이상 미움도 아픔도 없이 가벼워진 맘을 느낄 수 있다. 그 후론 어떠한 일에도 어머니와 싸워본 일이 없다. 서로 진정한 마음이 오가면서 시어머니는 내게 딸처럼 생각하고 대하겠다는 다짐까지 해보이셨다. 신기한 것은 글쓰기치료를 배울 때 교수님께 들은 것처럼 '치료는 나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시어머니의 성격은 그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어머니를 바라보는 나의 생각이 변한 것이다. 내가 달라지니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해묵은 문제가 해결되었다. 문학치료에서 관계의 치료는 상대가 변하는 게 아니라 내가 변함으로 시작된다고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즉흥적인 표현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지만……. 관계가 회복되니 상처받는 일도 드물다. 그보다는 하나 더 챙겨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시어머니의 맘이 느껴질 뿐이다.

 

[거인처럼 이기는 삶을 살기]

세상에 문제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유토피아(Utopia)는 그리스 말의 ‘ou(not, 아니다)’와 ‘topos(place, 장소)’가 합해진 말로 ‘no place’, 즉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즉 고통과 문제가 없는 유토피아란 이 세상에는 없는 이상향일 뿐입니다. 성경에도 “세상에서는 너희가 고통스런 일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당연히 고통과 문제가 있기 마련이므로 다만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말합니다. 좁은 시야에 갇혀 영원히 자라지 않는 소인으로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일까요.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나의 내면을 성장시켜서 세상을 이기는 걸리버로, 세상의 고통이 감당치 못할 거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출처: [내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카페]/생각속의 집)

by Chagall-Solitude(1933)/here for therapeutic purposes only

 

깊은 생각에 잠긴 채, 탈리스를 두른 나이를 알 수 없는 수염 난 유대인이 풀밭에 앉아 있다. 왼손에 들고 있는 토라 두루마리는 펼치지 않은 채. 어쩌면 그의 조상들의 종교적 전통과 유산은 그의 비참함에 아무런 위안도 치유도 되지 않는 듯하다.


그 옆에 누워 있는 슬프고 순한 눈을 한 암소는 외로운 주인을 위해 음악이라도 연주하려는 것일까?  어떤 이는 이 장면이 호세아의 말을 상기시킨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뒤로 미끄러지는 암소처럼 뒤로 미끄러진다."(호세아 4:16) 이들은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 샤갈의 사람들을 상징한다.

이 노인은 미래를 알 수 없는 가운데 세상을 떠도는 영원한 방랑자 유대인, 아하스베루스(Ahasverus)로 보인다.  그래도 부드러운 애정이 느껴지는 저 멀리 보이는 시골마을도 그 지평선 너머에서 검은 폭풍우 구름이 모여들고 있고, 그 어둠이 빛에 둘러싸인 하늘의 천사마저 위협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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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asverus는 "방랑하는 유대인"으로 알려져있는 전설 속 인물이다.

13세기 전설에 의하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 골고다로 가는 고통스런 길에서 그를 조롱했던 (혹은 찔렀던) 사람으로 재림 때까지 영원히 떠돌며 살도록 저주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내게도 넘어질 권리가 있다

- 실패의 힘

Ⓒ이봉희

 

어느 날 직장에 다니는 제자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선생님, 요즘 들어 마치 제가 먼지처럼 회사에 붙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몇 가지 실수로 요즘 많이 힘들었거든요. 게다가 제가 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일이어서 특별히 내세울 게 없어요. 그래서 성과 위주로 능력을 평가하는 인사고과에서 늘 뒤처지고 말아요. 모두가 인정받는 곳에서 저만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부끄럽고 외로워요. 실수를 할까봐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하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있어요. 모두들 어떻게든 잘하려고 열심인데,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무의미한 존재로 어정쩡하게 회사에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먼지처럼, 오물처럼 말이에요. 요즘은 대체 내가 누구인지 혼돈이 와요."(글쓴이의 허락하에 사용함)

편지를 읽고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내 자신이 먼지처럼 작게 여겨지는 순간들, 누구나 살면서 때때로 느껴지는 감정입니다. 해변의 수많은 모래알 중 하나처럼 작고 초라한 존재. 세상 사람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는데 유독 나만 실패자인 듯 우울하고 힘 빠지는 날도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호승, <햇살에게>


 

하지만 정호승 시인은 그런 먼지를 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이른 아침 먼지를 보는 일이 뭐 그리 감사할까 싶은데도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먼지처럼 무시하고 쓸어버릴 수 있는 일상의 아주 작은 존재들을 볼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그것들을 통해 나 역시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나도 실패할 수 있다

- 중략-


 

축복(benediction)은 라틴어의 ‘누군가에 대해 좋은(bene) 말을 한다(dictio)’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욕구 중 하나는 바로 타인에게서 ‘좋은 말’을 듣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헤겔(Hegel)은 인간이 존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인정”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생명력이 되는 ‘좋은 말’이란, 나의 업적이나 재능, 혹은 성공에 대한 인정이나 칭찬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입니다. ‘먼지 같은 나’라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 누구에게서도 ‘좋은 말’을 듣지 못한다면, 즉 인정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햇살을 받지 못한 새싹처럼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꽃을 피우고, 열매나 씨앗을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안에 존재하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생명력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시들시들 말라버리고 말 것입니다.

 

나를 그대로 긍정하고 축복하기

 

헨리 나우엔(Henri Nowen)은 누군가를 축복하는 일은 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긍정이란 당신은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그 존재 자체에 대해 “예스”라고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서로를 인정해주고 축복해주어야 합니다. 항상 서로를 찬란하게 비춰주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햇살 같은 축복이 절실할 때는 자신이 먼지처럼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그럴 때 축복의 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먼지처럼 작은 존재이지만, 동시에 별처럼 반짝이는 존재입니다. 작은 문틈으로도 축복 같은 햇살이 찾아와 나와 함께해주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오늘의 햇살로, 또 내일은 내일의 햇살로 절망의 순간에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그 찬란한 빛이 날마다 우리를 축복해주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예스”라고 긍정해주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발을 헛디뎌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잘해보려고 애썼지만 실패의 쓴맛을 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먼지처럼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진다면 마야 안젤루(Maya Angelou)의 시처럼 이렇게 말해보세요.

 

당신들 나를 땅에 눕혀 짓밟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 먼지처럼 일어나리라

(……)

자꾸 솟는 달처럼 해처럼

어김없이 밀려오는 조수처럼

높이 솟는 희망처럼

그래도 나, 솟아오르리라

- 마야 안젤루, <그래도 나는 일어서리라Still I Rise> 중에서

 

그리고 사무엘 베케트의 말처럼 자신에게 이렇게 격려해주세요. “끊임없는 시도, 끊임없는 실패, 그 무슨 상관인가.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훌륭히 실패하라.”   더불어 나를 긍정해주고 축복해주는 사람들과 교감하고 교류를 나눠보세요. 적극적으로 그런 모임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내가 나를 긍정해주는 연습을 부단히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 Ⓒ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중에서)

꽃샘 - 정희성

 

봄이 봄다워지기 전에

언제고 한 번은 이렇게

몸살을 하는가보다

이 나이에 내가 무슨

꽃을 피울까마는

어디서 남몰래 꽃이 피고 있기에

뼈마디가 이렇게 저린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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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함께 하는 아픔은

꽃을 피우는 일일까?

꽃을 피우는 것은 내가

"나"다워지는 일일까?

"나"다워지는 일은 평생

완성이 없는 일이기에 

이 아픔도 몸살도 끝이 없나보다

그러니 아픔도

감사한 일 아닌가 

오늘의 약속 - 나태주

덩치 큰 이야기, 무거운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조그만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아침에 일어나 낯선 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든지
길을 가다 담장 너머 아이들 떠들며 노는 소리가 들려 잠시 발을 멈췄다든지
매미 소리가 하늘 속으로 강물을 만들며 흘러가는 것을 문득 느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남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우리들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지난간 밤 쉽게 잠이 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든지
하루 종일 보고픈 마음이 떠나지 않아 가슴이 뻐근했다든지
모처럼 개인 밤하늘 사이로 별 하나 찾아내어 숨겨놓은 소원을 빌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실은 우리들 이야기만 하기에도 시간이 많지 않은 걸 우리는 잘 알아요
그래요, 우리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오래 헤어져 살면서도 스스로 행복해지기로 해요
그게 오늘의 약속이에요.

 

흔들린다 - 함민복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대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은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띄우는 일이었구나

안부 - 나태주 

 

오래

보고 싶었다

 

오래 

만나지 못했다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photo by bhlee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올른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아침 - 정현종]

입김 - 신형건

  미처
  내가 그걸 왜 몰랐을까?
  추운 겨울날
  몸을 움츠리고 종종걸음 치다가
  문득, 너랑 마주쳤을 때
  반가운 말보다 먼저

  네 입에서 피어나던
  하얀 입김!
  그래, 네 가슴은 따뜻하구나
  참 따뜻하구나.

   - 2010년 시집 <입김> (푸른책들)

03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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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 shall not live in vain;
If I can ease one life the aching,
Or cool one pain,
Or help one fainting robin
Unto his nest again,
I shall not live in vain. - Emily Dickinson

 

만일 내가 단 한 사람의 마음이

부서지는 걸 막을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된 게 아닐텐데

만일 내가 한 생명의 아픔을 덜어주거나

한 사람의 고통을 식혀주거나, 아니면...
죽어가는 로빈새를
다시 둥지에 올라가게 도와줄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된 게 아닐텐데

 

 -에밀리 디킨슨

 

오늘 아침에 반박자 걸음으로 일어나 사랑하는 17년 전 제자 제니의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문학치료사/심리상담사가 되기 전 내 원래 전공, 내가 사랑하던 셰익스피어 수업은 참 많은 추억을 남겨준 수업이었다.  이 때도 이미 교실에서는 여전히 학생들 마음에 치유와 변화가 일어났던...

내가 문학과 글쓰기를 활용하는 문학치료사와 상담사의 길로 가도록 나를 향한 뜻은 긴 세월 준비 시키신 듯하다.

사랑스럽고 귀한 제니. 사랑과 배려가 넘치고 미술 영어 작곡 피아노 봐이올린 첼로 노래... 못하는 것이 없었던 제니. 그런데 난 그의 지치도록 타오르는 열정 뒤에 숨겨진 작은 어린아이, 외롭고 두렵고 힘겨운 아이를 보았다. 문학 수업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던 제니. 나중에 알고 보니 수업때마다 눈물이 나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던 제니.  수업이 끝나면 친구도 만나고 싶지 않고 혼자 있고 싶었고 긴긴 일기를 쓰게 되더라는 제니.

 

졸업 후 캔버스 앞에서 한 점도 찍을 수 없다고 어느날 문학치료를 받으러 찾아왔던 그녀. 진정한 자신을 찾고 생애 가장 중요한 선택을 했던 그녀.

 

이제는 자신만큼 재주꾼이고 사려깊으며 사랑스런 아들의 엄마가 되어 사랑하는 남편과 알콩달콩 행복한 그녀. 여전히 열정적이고 따듯하고 멋진 선생이 된 그녀. 나의 소중한 제자, 제니!! 글씨마저 예술인 그녀가 도장도 여러개 새겨 함께 보내주었다.

고마워 제니야!! 

넌 늘 감동이야.

네가 가장 소중한 '선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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