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마스크 Death Mask -허만하>

  바다 위에서 눈은
  부드럽게 죽는다.

  죽음을 덮으며 
  눈은 내리지만

  눈은 다시
  부드럽게 죽는다

  부드럽게 감겨 있는
  눈시울의 바다.

  얼굴 위에 쌓인
  눈의 무게는
  보지 못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1999/솔출판사)

물레방아가 있는 좁다란 오솔길로 두꺼비 한 마리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맨드라미처럼 생긴 볏이 붉은 해처럼 고운 수탉 한 마리가 두꺼비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두껍아, 너 혼자서 참 외롭겠구나. 내가 친구가 되어 줄께. 두툴두툴 네 징그러운 몸뚱이를 보면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을 거야. 게다가 네 발로 어기적 어기적 걸아가는 모습은 바보같이 보이거든, 아무도 널 좋아할 사람은 없는 게 마땅해. 난 이렇게 멋지게 잘 생겼다고 모두들 칭찬을 한단다. 그래서 다투어 친구가 되려 하지만 그건 도리어 귀찮은 일이야. 친구란 마음이 맞아야 된다는 걸 난 알고 있거든."

수탉은 친절하게 두꺼비와 나란히 걸아가면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두꺼비는 조금 부끄러운 듯이 웃었습니다.

"고맙다, 수탉아."

둘은 시냇물이 흐르는 둑길을 걸었습니다. 걸으면서 수탉은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보리알, 과자 부스러기, 죽은 메뚜기의 시체, 여러 가지 벌레들이랑, 길바닥엔 먹을 것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것을 주워 먹느라 수탉은 숫제 아래만 내려다보고 걸었습니다. 반대로 두꺼비는 그 큰 눈으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한나절을 함께 걸었어도 둘은 얘기 한마디 나눌 수 없었습니다. 두꺼비가 잠깐 멈춰 서더니, 수탉을 향해 말했습니다.

"너처럼 잘 생긴 친구와 걷는 것은 좋지만, 줄곧 땅만 내려다보고 먹을 것만 찾는 너하고는 아무래도 사랑하는 친구가 될 수 없어. 먹을 것이란 세끼 필요한 양식만 있으면 그만이야."

그러고 나서, 두꺼비는 주저하지 않고 혼자서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수탉은 멍청해진 채 그 자리에 서서, 두꺼비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권정생-[ 아기 소나무와 권정생 동화나라 ]중에서

흰 바람벽이 있어(1941) -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 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아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여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양천문화재단 특강] 문학치료- 잃어버린 언어의 발견 

- 강의일시:  2021. 9. 10~9. 24  3주간 매주 금요일 10:00-12:00

- 강의장소: 방아다리문학도서관(코로나 상황에 따라 비대면 전환)

- 강사: 이봉희 교수([내 마음을 만지다] 저자) CPT/CJT
          미국공인문학치료전문가/공인저널치료전문가/상담심리사

          나사렛대학교 재활복지대학원 문학치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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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글을 통해 듣게 된

그동안 가슴에 소리없이 묻혀있던 자신의 목소리에 그만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
3주간의 강의 내내 고개를 들지 못하고 흐느끼시던 00님, 그분이 듣고 싶은 단 한마디는 "미안하다"였다.
늘 그렇지만 시간이 짧다...
후기에서도 모두들 시간을 늘렸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하셨다. 

내년 봄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나 뵐 수 있기를....

 

 

 

 

 

서울시 간호사협회 보수교육 2021-2 <예술심리치료의 이해>

9/16/2021

 

 

<용서의 의자 -정호승​>

 

나의 지구에는

용서의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의자에 앉기만 하면 누구나

용서할 수 있고 용서받을 수 있는

절대고독의 의자 하나

쌩떽쥐뻬리의 어린 왕자가 해질녘

어느 작은 별에 앉아 있던 의자도 아니고

법정 스님이 오대산 오두막에 홀로 살면서

손수 만드신 못생긴 나무 의자도 아닌

못이 툭 튀어나와 살짝 엉덩이를 들고 앉아야 하는

앉을 때마다 삐걱삐걱 눈물의 소리가 나는

작은 의자 하나

누군가가 만들어 놓고

다른 별로 떠났다

여름의 끝 - 박연준
 
 
오래된 시간 앞에서 새로 돋아난 시간이 움츠린다
머리에 조그만 뿔이 두 개 돋아나고
자꾸 만지작거린다
결국 도깨비가 되었구나, 내 사랑
 
신발이 없어지고 발바닥이 조금 단단해졌다
일렁이는 거울을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수천 조각으로 너울거리는 거울 속에
엉덩이를 비추어 보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두 손으로 만든 손우물 위에
흐르는 당신을 올려놓는 일
쏟아져도, 쏟아져도 자꾸 올려놓는 일
 
배 뒤집혀 죽어 있는 풀벌레들,
촘촘히 늘어선 참한 죽음이
여름의 끝이었다고
징— 징— 징—
파닥이는 종소리
 

팽나무 식구 - 문태준

  작은 언덕에 사방으로 열린 집이 있었다
  낮에 흩어졌던 새들이 큰 팽나무에 날아와 앉았다
  한 놈 한 놈 한 곳을 향해 웅크려 있다
  일제히 응시하는 것들은 구슬프고 무섭다
  가난한 애비를 둔 식구들처럼
  무리에는 볼이 튼 어린 새도 있다
  어두워지자 팽나무가 제 식구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출처: [맨발, 2003/창비]

<고독 - 릴케>

 

고독과 외로움은 마치 비와 같아

바다로부터 저녁을 향해 올라온다.

멀리 외딴 벌판으로부터 달려와

오랜 제 처소인 하늘로 올라가서는

그 하늘을 떠날 때야 비로소 도시 위로 떨어져 내린다.

 

뒤엉킨 시간에 고독은 비 되어 내린다

모든 거리마다 새벽을 향해 얼굴을 뒤척일 때,

아무것도 찾지 못한 두 육체가

실망과 슬픔으로 서로 등 돌리고 누울 때,

서로 경멸하는 두 사람이

한 잠자리에 들어야만할 때ㅡ

그 시간 고독은 강과 하나 되어 흐른다.

2021.5.31. 

<The Bustle in a House - Emily Dickinson>

The Bustle in a House
The Morning after Death
Is solemnest of industries
Enacted opon Earth –

The Sweeping up the Heart
And putting Love away
We shall not want to use again
Until Eternity –
____
5월의 마지막 날 언니가 떠났다...

엄마 내가 이모 기도하는 데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이라는 찬송이 귀에 들렸어.  엊그제 딸이 또 다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달린 채 말했다. 

사실은 (딸은 전혀 몰랐지만) 그게 울 언니가 제일 좋아하던 찬송가였다.  너무 아파하지말라고, 너무 슬퍼말라고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주는 언니의 메시지 같아서 큰 위로가 되었다. 

너무나 고통스럽게 너무나 급히 떠난 언니.. 코로나로 면회도 불가능하고 2주 격리까지 있어 가볼 수도 없이 멀리서 안타깝고 측은하고 미안하고 보고 싶고 만나지도 못하고 그냥 보내드릴 생각에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뉴욕으로 떠나기 전 언니를 만나고 오는 날 유달리 몇달 사이 창백하고 소녀 같이 작아진 언니가 현관 문고리 잡고 배웅하면서 “너마저 가면 난 어쩌냐..” 하셨던 게 내내 가슴에 걸리고 맘이 아팠었다. 늘 다녀오는 여행이었는데 왜 이번에는 그런 말을 하셨는지... "언니 가긴... 곧 돌아올거야.  늘 그랬잖아... 식사 잘하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 오늘 길이 왜 그리 무겁고 안쓰럽고 불안하던지... 

바로 지난 주에도 보내 드린 우리 아가 사진들 보면서 너무 좋아서 까꿍까꿍하고 난리가 났다고 전해들었는데. 그래서 또 맘이 짠 했는데... 몇일사이 손도 쓸 수 없이 열었다 닫았다만 반복하고 저혈압 패혈증 투석 또 2차 수술 시도... 대체 그리 괴사가 된 몸을 어찌 견디며 지내신 것일까... 너무 불쌍하고 딱하고 미안하고 .... 

언니가 중환자실에서 그리 쓸쓸히 홀로 가셨지만  결코 "홀로"가 아니었을거라고,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베드로처럼 “주여 여기가 좋아오니...”하며 고통스런 이 땅에서의 삶을 다 내려놓고 평안히 눈부신 빛속에 안겨 가셨으리라 믿고 감사한다.  
하느님이 언니를 더이상 고통속에 두지 않으시려고 딱해서 얼른 안고 가셨을거라고.... 혼자가 아니었을거라고...  
쓸쓸하고 외롭지도 두렵지도 않았을거라고... 
언니는 가서 아버지 엄마 큰언니 큰오빠 모두 만났을거라고.......  그리 믿으면서도 왜 이리 아프고 슬플까. 

그래... 상실의 아픔과 슬픔 그리움 미안함 회한... 그 모든 것은 남겨진 자가 짊어질 사랑의 대가이며 감사히 지니며 살아갈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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