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보도, 기고 외'에 해당되는 글 43건
일상의 재발견 - 살아있다는 건 멋진 일이야. 8 | 2025.04.22
아픔을 피하려다 웃음까지 잃어버렸다- 고통의 재인식 | 2025.04.10 존재의 크기, 문제의 크기: 걸리버 되기 4 | 2025.04.04 축복: 내 모습 그대로 긍정해주기- 먼지 같은 나 | 2025.03.27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서 -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2 | 2025.03.15 내 마음을 만지다 -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카페 52 | 2024.12.11 길들이기와 길들여지기 - 사랑 2 | 2024.10.18 너무 어렵게 말하지 말자- 과도한 자기연출 4 | 2024.09.03 주말을여는 책-내일신문 /헤럴드경제,"각질이 돼버린 묻어둔상처" | 2024.05.07 내 안의 모든 나이 4 | 2024.05.01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말한다- 소통의 한계 | 2024.04.27 침묵의 언어 | 2024.04.19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T. S. 엘리엇 6 | 2024.04.03 선인장과 가시 | 2023.09.09 기쁨과 희망은 감정 이상의 힘겨운 노력 | 2023.08.15 문학치료사 어떻게 되었을까? - 이봉희 1 | 2022.09.30 상처는 천천히 녹여낸다 | 2022.07.07 상처의 대물림 - 왜 나는 아프다고 말하지 못할까 4 | 2021.02.21 당신이 필요해요 - 존재의 가치 | 2020.03.30 동안(童顔), 그리고 마스크 1 | 2018.12.29 살아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 일상의 재발견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얼마나 느끼고 있을까요? 그것도 매순간을 감사한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의 <살아 있는 건 멋진 거야!>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난 지금도 여기 이렇게 살아 있지. 아마도 계속 살아갈 거야. 내 사랑, 아가씨를 위해 죽을 수도 있었겠지만 난 살려고 태어난 것 아니겠어.
외치는 내 소리 당신이 듣게 될지도 모르고 우는 내 모습 당신이 보게 될지도 모르지만 나 죽는 걸 보게 되는 일은, 사랑하는 아가씨, 앞으로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살아 있는 건 멋진 거야! 포도주처럼 멋진 거야! 살아 있는 건 멋진 거야! - 랭스턴 휴즈, 〈살아 있는 건 멋진 거야!Life is Fine〉 중에서
시의 주인공(시적 화자)은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생명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죽음만은 생각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일종의 다짐 같은 것이지요. 간혹 울어버릴 수도 있고 소리 지를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결코 죽지는 않겠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Life is fine”이라고. 나는 이 Life라는 말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모두들 번역한 대로 “인생”으로 번역하고 보니 시인의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생이 고통스러워서 죽음까지 생각한 사람이, 살면서 다시 울어버릴 수도 있고 소리 지를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갑자기 인생은 아름답다고, 인생은 포도주와 같다고 말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삶이 고달플지라도 “살아 있는 건 멋진 거야(좋은 거야)”라고 생명의 소중함을 말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꼭 극적이어야 멋진 인생일까?
미국의 극작가 손턴 와일더(Thornton Wilder)의 《우리 마을》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을 의미 있게 보여줍니다. 즉 사람들이 태어나고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고 죽음을 맞이하며 그 죽은 자들이 또 산자들을 바라보는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그린 극입니다. 이 작품을 읽은 후 학생들의 반응은 한결같았습니다. 아무런 ‘극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하고 진부한 일상이 지루하다고 말입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좀 더 ‘극적’이기를 기대하는 우리에게 이런 평범한 하루하루를 그린 극은 지루하고 무의미하며 실망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극중에서 에밀리는 다릅니다. 세상을 떠난 그는 단 하루만이라도 이 세상에 다시 돌아와 자신의 생을, 평범했던 열두살의 생일 하루만이라도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다시 살게 된 그 하루 동안 엄마와 가족과 이웃의 말 한마디, 엄마가 아끼는 꽃 한 송이, 그리고 무심코 지나쳤던 하루의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뒤늦게 깨달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아, 너는 인간들이 깨닫기엔 너무도 멋진 곳이구나.”
그리고는 극중 스테이지 매니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살면서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것도 매순간순간을요.”
그러자 스테이지 매니저가 대답합니다. “아니, 없지. 어쩌면 성자나 시인 중에는 있을지 몰라.”
극 중에서 죽은 자로 나오는 사이먼이라는 인물은 에밀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너도 알았구나. 그게 살아 있다는 거야. 무지의 구름 속을 걸어 다니는 것.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짓밟으면서 살아가는 것. 마치 백만 년이라도 살 듯 시간을 낭비하면서 사는 것. 이런 저런 이기적인 열정에 자신을 맡기고 사는 것. 이제는 알겠지. 그게 바로 네가 돌아가고 싶어 했던 삶이라는 것을. 무지와 몽매함. - 손턴 와일더, 《우리 마을Our Town》중에서
극적이고 가슴 뛰는 일들을 기대하느라, 내가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날들을 기다리느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소중한 것들을 놓치면서 살고 있을까요? 작은 일상이 주는 의미와 기쁨과 감사를 얼마나 자주 망각하고 사는지 모릅니다. 작은 일들의 그 우주적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세상을 향해, 사람들을 향해,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해 그저 싸울 태세로 달려듭니다. 절망과 끝없는 경쟁을 되풀이하면서 말입니다.
오늘도 나는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한 후배가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치료를 받는 순간순간 자신이 물 없는 어항에 갇힌 물고기인 것만 같았다고 합니다. 그 끔찍한 순간을 겪다가도 여전히 숨을 쉬고 있는 자신을 느낄 때마다 살아 있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병원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 뒤뚱거리며 걸어가거나 휠체어를 탄 환자들을 바라보면서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아프고 나니 세상이 다시 보여요. 기어가는 벌레 하나도 너무 소중하고, 그 생명력이 무척이나 부러워요. 살아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 알겠어요.” 그런데 벌레는 알까요? 거대한 존재들 틈에서 무심코 밟히기라도 하면 이내 사라지고 말 자신의 운명이 절망스러울 때, 힘겹게 온몸으로 기어 다녀야 하는 그 삶이 부질없게 느껴질 때, 세상의 누군가는 자신을 지켜보며 살아 있음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를 벌레처럼 작고 힘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은 알까요? 내가 살아서 존재하는 그 자체가 포도주처럼 더 없이 멋진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고통스럽기만 한 몇 년간의 암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그 후배는 오히려 감사함을 배우고 행복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암이 완치되고 나서 다시 교만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면서 그럴 때마다 다시 겸손과 감사의 마음을 되새긴다고 합니다. 후배를 만나고 돌아오는 날이면, 그동안 잊어버렸던 것들을 떠올리며 나 역시 감사의 마음을 갖습니다. 내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 그래서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를…….
와일더는 “우리는 자신이 가진 보물을 가슴으로 느끼는 순간에만 참으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보물 1호는 바로 오늘도 내가 살아 있다는 그 사실입니다. 욕심의 키가 커져서 사는 일이 버겁게만 느껴질 때,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해봅니다. “살아 있는 건 참 좋은 거야!” 쓸쓸해도 오늘 또 하루 감사해하며 살아 있을 것입니다. 장정일 시인의 말대로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기 때문입니다.
(c)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 카페] 중에서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아픔을 피하려다 웃음까지 잃어버렸다 - 고통의 재인식 (Ⓒ2011이봉희)
어느 여름날, 난(蘭) 하나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꽃을 피우던 난이 겨울이 되자 어느새 가지가 노랗게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만 손을 놓아버렸나 생각하면서도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겨울이 지나도록 볕 좋은 창 앞에 열심히 놓아두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어버린 가지를 달고 있는 뿌리가 새 가지를 내어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원래 피어오른 줄기가 말라버리자 어느새 뿌리는 그 곁으로 하나의 새 가지를 준비하고 있었나봅니다. 말라버렸다고 줄기를 가위로 싹둑, 잘라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뿌리 채 뽑아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작은 꽃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죽어가는 가지에도 새 가지를 내고 꽃을 피우는 뿌리의 생명력이 있다고.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문득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 줄 때도 사실은 참 아픈 거래 - 이해인 <꽃이 필 때> 중에서
살아 있으니 아픈 것이다 아픔은 선인장의 가시처럼 생명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박경리 씨의 말이 생각납니다. 20년간 《토지》를 쓰면서 참 힘든 일도, 고통스런 기억도 많지 않았냐는 기자의 물음에 박경리 씨는 망설임 없이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산다는 게 고통 아닌가요? 인간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고통을 겪지 않나요? 내 생각엔 생명이 있다는 자체가, 산다는 게 고통인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생명은 앓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앓음 알음’이라는 것, 앓아가면서 알아가는 여행길이라는 것을.
괴테는 “모든 색채는 빛의 고통이다”라고 말합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색채들은 빛의 고통에 의해 존재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삶뿐 아니라 자연 속에서도 아픔 없이 존재하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그런데도 나는 사는 동안 뜨겁게 타오르는 노을과 시린 새벽빛과 소나기 뒤의 그 장엄한 하늘빛을 보면서 한 번도 빛의 고통을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묘한 빛깔의 많은 꽃들을 보며 감탄만 했지, 그것을 피워내는 아픔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때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면서 책상 앞에 “난 이미 죽었는데 왜 아직도 아픈 걸까?”라고 써 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아프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프지 않겠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죽은 자로 살겠다는 뜻입니다. 인간도 우주도 그 모든 생명은 아픔과 함께 하는 것인데 우리는 아픔으로부터 피하고만 싶어 합니다. 그래서 너무나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죽은 자처럼 살고자 모든 느낌을 차단합니다. 마취제를 맞으면 아픔이야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 마취된 시간 동안 죽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부분마취를 하고 수술을 했던 어떤 분이 말했습니다. 의식이 또렷해서 의사들의 메스소리가 들리는데, 자신의 몸에서 아무 통증이 느껴지지 않자 자신이 온전히 살아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고 합니다. 마취제는 통증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약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마취 상태로 있다가는 다시는 깨어날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통증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다가 의식마저 무감각하게 죽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김수영 시인의 <사령(死靈)> 중 한 구절을 중얼거려봅니다.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 김수영, <사령> 중에서
아픔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마취에서 깨어나는 순간, 다시 살아나는 그 순간에 느껴지는 고통은 아직은 죽지 않았다는, 살아 있다는 감사한 깨우침입니다. 아픔으로 인해 우리는 종종 이건 사는 게 아니라고, 이건 삶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픔은 오히려 살아 있다고, “깨어서” 살고 싶다고 외치는 온몸의 아우성이기도 합니다.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고통스런 기억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어기제는 고통뿐 아니라 생의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것들까지 함께 차단합니다. 그럼으로써 타인에 대한 깊은 친밀감과 사랑, 신뢰감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방어기제는 우리의 깊은 내면을 감옥으로 만들어 우리의 참자아를 고립시킵니다. 딸아이가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때 쓴 가슴 아픈 고백처럼 말입니다.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다가 이제 난 기쁨마저도 느낄 수 없게 되어버렸어. 내가 진 거야.”
아픔을 아파하지 마세요. 아픔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특권입니다. 우리는 이 아픔을 대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아픔과 절망의 끝에서 어느 날 활짝 터지는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리라는 것을. 고치를 벗어난 나비처럼 영롱한 빛으로 날아가게 되리라는 것을. 나만의 아름다운 색깔로 세상을 그리게 되리라는 것을. 그 순간 왜냐고 묻던 모든 항거와 의구심의 무게는 꿈처럼 가볍게 흩어져버리겠지요. 그때 우리는 조용히 웃음 지으며 끄덕일 것입니다. 왠지 몰라도 이제는 문제되지 않으며, 이제는 고백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모든 게 다 협력해서 선한 결과를 이루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픔의 순간에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고 말하겠지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름 없이 피고 지는 꽃들과 내 아픔을 함께 느끼는 보이지 않는 무한한 사랑이 내 곁에 함께 존재했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픔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힘이 될 수 있었다고, 감사하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겠지요. 아프지만 나는 아픔보다 더 용감했다고 말입니다. Ⓒ2011이봉희
출처: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 카페]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존재의 크기ㅡ소인국에서 거인으로 살기 (©이봉희 2011)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철학의 여러 문제들The Problems of Philosophy》이라는 저서를 통해 철학의 실용성과 가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하나의 발견과 발명으로 눈에 보이는 변화와 사람들의 삶에 실용적 유익을 가져오지만 철학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철학은 모든 확실하고 과학적인 답을 찾은 질문들이 학문(science/과학)화 되고 난 후 잔재된 답이 없고, 비실용적인 질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고통에도 불구하고 왜 살아야 하는가, 인간의 영혼은 육체가 소멸한 후 함께 소멸하는 것일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삶에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왜 불행할까, 왜 인간은 실존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는가와 같은 질문들입니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쪼개듯 쓸데없어 보이며 답도 없는 이런 질문들은 인간의 존재와 삶의 궁극적 가치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직접적이지는 않아도 결국 인간을 변화시키는 간접적인 실용적 가치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답이 없어도 우리는 이런 질문을 계속해야 하고, 그 질문에 대한 생각을 멈춰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참된 앎이란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생각처럼 우주를 인간 이성과 지식의 한계 속으로 축소해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러셀은 참된 앎이란 “자아(사고의 주체)와 비자아(사고의 대상)와의 결합”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사고의 대상이 광대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 만큼 커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현상의 세계를 뛰어넘는 보다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나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고민할 때, 우리는 그 거대한 문제와 “하나가 되어” 자아가 확대됩니다. 이런 “자아의 확대(enlargement of self)”야말로 철학의 궁극적인 선(ultimate good)이며 가치라는 것입니다.
[자아의 확대, 거인되기] 어떻게 문학이 문제 해결과 자아 성장으로 이끄는 치료적 힘을 지니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문학의 선(善)과 가치도 철학처럼 우리를 보다 더 큰 존재로 확대해주고 성장시켜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학도 철학과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다만 문학은 동일한 질문들을 통해 좀더 시적(詩的)으로 세계의 광대함과 아름다움, 생의 수수께끼에 다가갑니다. 문학의 치료적 힘은 무엇보다 문학 속의 시적 요소들이 우리 정서에 미치는 영향력에서 옵니다. 시란 인간 조건에 대한 특별한 언술이지요. T. S. 엘리엇의 말대로 우리의 삶은 대부분 “우리 자신으로부터의 끊임없는 도피”이기 때문에 시는 때로 보다 더 심오한 이름 없는 감각들을, 우리 존재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우리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이름 없는 느낌들을 우리가 좀더 잘 인식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늘 이런 말을 해주곤 합니다. 문학수업을 듣고 문학에 대한 지식을 얼마나 얻었는가에 수업을 잘했는지 아닌지 초점을 두지 말고 내 생각의 눈이 얼마나 커졌는가를 살펴보라고. 즉, 문학을 통해 내 생각에 자극을 받고 그 생각이 조금이라도 확대되었는지,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커져서 자연과 사물, 그리고 내 곁의 사람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는지를 말입니다.
이런 자아의 확대를 우리가 ‘거인이 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문학이 갖는 치료의 힘을 '소인국의 걸리버론'이라고 부릅니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중 소인국 릴리푸트 이야기는 동화로도 각색되어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지요. 소인국에 도착한 걸리버를 소인국 사람들이 아무리 결박해도 그는 떨치고 일어납니다. 소인국끼리 전쟁이 났을 때도 걸리버는 수없는 화살에 맞습니다. 하지만 아프고 상처가 나더라고 그는 쓰러지거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바로 이렇게 소인국 릴리푸트에서 걸리버로 살아가는 게 궁극적인 문제 해결이며 치료입니다. 어른이 되면 아이가 아무리 싸움을 걸어와도 더 이상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서로 다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와 싸우는 어른은 아이처럼 너무나 작은 소인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보다 더 크게 내 존재를 키우기] 에리히 프롬은 <현대 인간의 조건Present Human Condition>이라는 글에서 우리가 참으로 인간다워질 때 우리의 문제는 “원래의 크기대로 줄어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문제의 원래 크기는 작은 것이었다는 아주 적절한 지적입니다. 거인이어야 하는 우리가 소인으로 살아가면 같은 문제라도 커다란 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내가 거인으로 성장한다면, 즉 내가 회복된다면 그 산처럼 보이던 돌(문제)은 내가 쉽게 들어서 치울 수 있는 작은 돌이 됩니다. 궁극적으로 나의 갈 길을 가로막거나 나를 쓰러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은 상대방이 변화하거나, 세상이 바뀌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상대가 바뀌어도 내가 변화하지 않으면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변화하면 상대와 세상이 바뀌지 않아도 나는 그렇게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만일 문제 해결이 반드시 내 밖의 조건이 바뀌어야만 가능하다면 세상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나를 고문하고 가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자유롭기를 원하면 나 스스로 ‘자유인’이 되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유인이 되면 감옥에 갇혀서도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내가 자유인이 되기 전에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합니다. 외부 조건에 의해 내게 자유가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흥미롭게도 감옥에서 고통을 받는 사도 바울이 감옥 밖의 사람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자유하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유인이기 때문입니다. 에밀리 디킨슨도 말합니다. 자유도, 나를 스스로 고문하고 가두는 것도, 모두 나 자신이 판단하기 마련이라고. “나의 의식”이라고 말입니다.
어떤 고문대도 나를 고문할 수는 없어 내 자유로운 영혼을 이 죽음으로 사라질 뼈 뒤에 더 담대한 뼈가 숨어 있으니
톱으로 켤 수도 없고 커다란 칼로 찌를 수도 없지 두 몸이 함께 존재하기에 하나를 묶으면 또 다른 하나는 날아가니
독수리도 당신보다 더 쉽게 자신의 둥지를 떠나 하늘을 얻지는 못하리라
당신 스스로가 당신을 고문하는 적이 아닌 한 당신을 가두는 것은 의식이다 자유도 그렇다 -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어떤 고문대도 나를>
[상대가 아닌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독성적 관계 세상이 뒤집히지 않는 한 절대 변할 것 같지 않은 그 누군가와의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관계를 저널치료사인 카파키오니(Capacchione)는 ‘독성적’ 관계라고 부릅니다. 나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사람, 내 안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기운을 빼앗는 사람, 내가 못났다고 끊임없이 자책하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말 한 마디로 내 자신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내 안의 의심과 두려움, 자기 비난이 스스로를 사로잡게 만듭니다. 많은 경우 그런 사람들은 가까운 가족이나 직장 동료일 때가 많습니다. 피할 수 없이 함께 공존해야 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그들에게 아무리 당신이 잘못되었다고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말해도 좀체 달라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어느 삼십대 대학원생은 시어머니와 9년 동안 고통스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문제가 드러나기 전까지만 해도 시어머니는 그냥 상냥하고 배려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결혼과 함께 혼수 문제로 며느리에 대한 불만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친정부모에 대한 비난까지는 참겠는데, 손자들까지 미워하는 시어머니 때문에 그녀는 9년간 지옥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다음은 그녀가 쓴 글의 일부입니다.
쌓여만 갔던 상처도 5년쯤 지나면서부터는 무뎌졌고 상처투성이였던 가슴도 절대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과거로 묻어두었다. 하지만 잊었다 싶었는데도 나도 모르게 어머니께 들었던 부정적인 언어들을 내 아이들에게 쏟아 붓는 내 거친 모습을 보며 놀랐다. “넌 생각이 있니 없니? 네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뭔데?” 그렇게 날 왜소하게 만들었던 언어들을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내 자신도 싫고 어머니도 미웠다.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만들고 말았다. 그것도 남이 아닌 내 가족에게……. 문학치료 시간을 통해 무겁게 엉켜버린 그 실타래가 언젠가는 내가 풀어야 할 숙제며 그 때가 바로 지금이란 걸 깨달았다. 내게서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분노 그리고 내게 행해진 ‘폭력’은 내가 잊었다고 착각하며 가슴 속에 깊이 묻어둔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새 나는 그 상처와 분노와 폭력을 가장 사랑하는 아이에게 대물림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러 가지 저널기법을 사용해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상처를 드러내고, 묵은 감정을 털어내고, 대화하고, 관점을 바꿔보며 3개월간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9년이나 고통 받던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거짓말처럼 해소되기 시작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용서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더 놀라운 것은 그녀 혼자 용서한 것뿐인데 시어머니도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1년 후 그녀는 자신의 변화를 편지로 보내왔습니다.
놀랍게도 9년 동안 가슴 한쪽에 무겁게 짓누르며 아파했던 상처 덩어리가 언젠가부터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더 이상 미움도 아픔도 없이 가벼워진 맘을 느낄 수 있다. 그 후론 어떠한 일에도 어머니와 싸워본 일이 없다. 서로 진정한 마음이 오가면서 시어머니는 내게 딸처럼 생각하고 대하겠다는 다짐까지 해보이셨다. 신기한 것은 글쓰기치료를 배울 때 교수님께 들은 것처럼 '치료는 나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시어머니의 성격은 그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어머니를 바라보는 나의 생각이 변한 것이다. 내가 달라지니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해묵은 문제가 해결되었다. 문학치료에서 관계의 치료는 상대가 변하는 게 아니라 내가 변함으로 시작된다고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즉흥적인 표현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지만……. 관계가 회복되니 상처받는 일도 드물다. 그보다는 하나 더 챙겨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시어머니의 맘이 느껴질 뿐이다.
[거인처럼 이기는 삶을 살기] 세상에 문제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유토피아(Utopia)는 그리스 말의 ‘ou(not, 아니다)’와 ‘topos(place, 장소)’가 합해진 말로 ‘no place’, 즉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즉 고통과 문제가 없는 유토피아란 이 세상에는 없는 이상향일 뿐입니다. 성경에도 “세상에서는 너희가 고통스런 일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당연히 고통과 문제가 있기 마련이므로 다만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말합니다. 좁은 시야에 갇혀 영원히 자라지 않는 소인으로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일까요.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나의 내면을 성장시켜서 세상을 이기는 걸리버로, 세상의 고통이 감당치 못할 거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출처: [내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카페]/생각속의 집)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내게도 넘어질 권리가 있다 - 실패의 힘 Ⓒ이봉희
어느 날 직장에 다니는 제자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선생님, 요즘 들어 마치 제가 먼지처럼 회사에 붙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몇 가지 실수로 요즘 많이 힘들었거든요. 게다가 제가 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일이어서 특별히 내세울 게 없어요. 그래서 성과 위주로 능력을 평가하는 인사고과에서 늘 뒤처지고 말아요. 모두가 인정받는 곳에서 저만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부끄럽고 외로워요. 실수를 할까봐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하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있어요. 모두들 어떻게든 잘하려고 열심인데,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무의미한 존재로 어정쩡하게 회사에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먼지처럼, 오물처럼 말이에요. 요즘은 대체 내가 누구인지 혼돈이 와요."(글쓴이의 허락하에 사용함) 편지를 읽고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내 자신이 먼지처럼 작게 여겨지는 순간들, 누구나 살면서 때때로 느껴지는 감정입니다. 해변의 수많은 모래알 중 하나처럼 작고 초라한 존재. 세상 사람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는데 유독 나만 실패자인 듯 우울하고 힘 빠지는 날도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호승, <햇살에게>
하지만 정호승 시인은 그런 먼지를 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이른 아침 먼지를 보는 일이 뭐 그리 감사할까 싶은데도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먼지처럼 무시하고 쓸어버릴 수 있는 일상의 아주 작은 존재들을 볼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그것들을 통해 나 역시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나도 실패할 수 있다 - 중략-
축복(benediction)은 라틴어의 ‘누군가에 대해 좋은(bene) 말을 한다(dictio)’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욕구 중 하나는 바로 타인에게서 ‘좋은 말’을 듣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헤겔(Hegel)은 인간이 존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인정”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생명력이 되는 ‘좋은 말’이란, 나의 업적이나 재능, 혹은 성공에 대한 인정이나 칭찬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입니다. ‘먼지 같은 나’라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 누구에게서도 ‘좋은 말’을 듣지 못한다면, 즉 인정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햇살을 받지 못한 새싹처럼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꽃을 피우고, 열매나 씨앗을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안에 존재하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생명력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시들시들 말라버리고 말 것입니다.
나를 그대로 긍정하고 축복하기
헨리 나우엔(Henri Nowen)은 누군가를 축복하는 일은 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긍정이란 당신은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그 존재 자체에 대해 “예스”라고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서로를 인정해주고 축복해주어야 합니다. 항상 서로를 찬란하게 비춰주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햇살 같은 축복이 절실할 때는 자신이 먼지처럼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그럴 때 축복의 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먼지처럼 작은 존재이지만, 동시에 별처럼 반짝이는 존재입니다. 작은 문틈으로도 축복 같은 햇살이 찾아와 나와 함께해주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오늘의 햇살로, 또 내일은 내일의 햇살로 절망의 순간에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그 찬란한 빛이 날마다 우리를 축복해주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예스”라고 긍정해주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발을 헛디뎌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잘해보려고 애썼지만 실패의 쓴맛을 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먼지처럼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진다면 마야 안젤루(Maya Angelou)의 시처럼 이렇게 말해보세요.
당신들 나를 땅에 눕혀 짓밟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 먼지처럼 일어나리라 (……) 자꾸 솟는 달처럼 해처럼 어김없이 밀려오는 조수처럼 높이 솟는 희망처럼 그래도 나, 솟아오르리라 - 마야 안젤루, <그래도 나는 일어서리라Still I Rise> 중에서
그리고 사무엘 베케트의 말처럼 자신에게 이렇게 격려해주세요. “끊임없는 시도, 끊임없는 실패, 그 무슨 상관인가.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훌륭히 실패하라.” 더불어 나를 긍정해주고 축복해주는 사람들과 교감하고 교류를 나눠보세요. 적극적으로 그런 모임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내가 나를 긍정해주는 연습을 부단히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 Ⓒ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중에서)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 상실의 회복 (c)2011이봉희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잘 알려진 작가 쉘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의 《잃어버린 조각The Missing Piece》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치 누군가 동그란 피자의 한 조각을 슬쩍 먹어치운 것처럼 이가 빠진 동그라미가 그 주인공입니다. 동그라미는 그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하지만 완벽한 원이 아니어서 빨리 굴러갈 수 없습니다. 동그라미는 완벽해지기 위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열심히 자신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여러 조각을 대보아도 잘 맞지 않습니다. 어떤 조각은 너무 크고, 다른 조각은 너무 작습니다. 또 어떤 것은 서로 모양이 맞지 않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자신에게 꼭 맞는 조각을 만나서 완벽한 동그라미가 된 주인공은 기쁨이 넘쳐납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빠르게 굴러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신없이 바삐 굴러가다보니 꽃의 향기를 맡을 수도 없고, 지나가는 벌레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고, 행복한 노래를 부를 수도 없습니다. 결국 동그라미는 “아, 이런 거였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오랫동안 찾아다니던 조각을 내려놓은 뒤 다시 불완전한 채로 덜컹거리며 천천히 길을 떠납니다. 물론 잃어버린 조각은 길 위에 혼자 남겨지게 됩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욕망하는 이유 우리도 내 안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잃어버린 조각을 찾고 있지는 않나요? 나의 빈 곳과 꼭 맞는 조각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어렵사리 잃어버린 조각을 만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꼭 붙잡아주지 않아서 그만 조각이 떠나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만난 조각은 놓치지 않으려고 집착하다가 또다시 실패했을지도 모릅니다. 신화에서 말하기를, 인간은 태초에 남녀가 결합된 양성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은 인간을 반으로 쪼개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다지요. 반으로 나뉜 인간은 스스로 불완전함을 느끼고는 완전성을 갈망하며 자신들의 반쪽을 영원히 찾아다닌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완전성을 향한 충동과 갈망을 남녀 간의 사랑의 욕구로 비유한 것입니다.
동그라미는 그렇게 찾아다니던 자신의 조각을 찾았지만, 이내 다시 내려놓습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빈 곳을 채우러 길을 떠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하게 찾는 탐구 욕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욕망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욕망(desire)은 라틴어로 ‘별(sire)이 없음(별에서 멀어짐)’을 뜻합니다. 별이란 본질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이란 본질적으로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간절하게 원하던 것을 찾았다고 해서 완성은 아닙니다. 누구나 경험했듯이 인간은 끝없이 욕망하는 존재입니다. 하나의 욕구 충족은 완성이 아니라 또 다른 것을 욕망하는 시작입니다. 즉, 욕망의 대상만 바뀔 뿐이지요. 어렵사리 찾아낸 조각을 도로 내려놓고는 또다시 자신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길을 떠나는 동그라미처럼 말입니다. 본질상 채워질 수 없는 것을 끝없이 욕망하며 사는 존재, 영원히 한 구석이 비어 있는 존재, 그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사랑하는 사이도 서로에게 허기져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도 왜 여전히 공허함을 느낄까요? 폴 발레리(Paul Valery)는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했다. 그런데, 아직 고독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는 더 한층 고독을 알게 하기 위해 짝을 만들어주었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공허함은 카뮈의 《페스트》에서 의사 류가 말하듯 인간이 한 조각의 관념이 아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인간은 인식하는 존재이며 육체뿐 아니라 정신과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무리 상대를 사랑해도 한 조각 관념처럼 상대를 온전히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육체를 소유할 수는 있어도 그 순간조차 자유로운 그의 의식이나 영혼까지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소유욕은 (실버스타인의 이야기에서처럼) 상대를 부서지게 할 수 있습니다. 한때는 나와 일치를 이루었던 사람이 점점 정신과 영혼이 성숙해져서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조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그 변해버린 모습 앞에서 우리는 다시 외로워집니다. 세상에 완벽하고 영원한 ‘나의 잃어버린 조각’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서로에게 영원히 허기져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릴케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이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강도 높고도 심오한 고독입니다. 무엇보다 사랑한다는 것은 전혀 융합이나 헌신 그리고 상대와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개인이 성숙하기 위한, 자기 안에서 무엇이 되기 위한, 하나의 세계가 되기 위한, 즉 상대를 위해 자체로서 하나의 세계가 되기 위한 숭고한 동기입니다. 사랑은 개인에게 주어지는 위대하고도 가혹한 요구입니다. -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중에서
실버스타인은 5년 뒤《잃어버린 조각》의 후편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발표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잃어버린 조각이 큰 동그라미를 만나다The Missing Piece Meets the Big O》는 첫 번째 책의 끝부분에 홀로 남겨진 그 잃어버린 조각이 주인공입니다. 피자의 한 조각처럼 생긴 그 잃어버린 조각은 모가 나서 홀로 굴러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서서 마냥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자신에게 꼭 맞는 동그라미를 만나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한 부분을 잃어버린 불완전한 동그라미가 찾아와야만 그와 하나가 되어 온전한 동그라미로 굴러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만날 수가 없습니다. 무심히 지나가는 동그라미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번쩍이는 치장을 하고 아름답게 꾸며도 보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습니다. 수많은 동그라미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자신을 원하는 동그라미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긴 외로움과 기다림 끝에 잃어버린 조각은 드디어 자신에게 꼭 맞는 동그라미를 만났습니다. 둘은 하나의 완전한 원이 되어 행복해하며 함께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잃어버린 조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조금씩 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더 이상 동그라미와 맞지 않게 되어, 결국 잃어버린 조각은 동그라미에게서 떨어져 나옵니다. 그는 또다시 홀로 남겨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커다란 동그라미, O를 만납니다. 잃어버린 조각은 그에게 매달려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합니다. 하지만 O는 이렇게 말합니다.
“넌 나와 함께 굴러갈 수 없어. 하지만 어쩌면 너 혼자 구를 수는 있겠지.” “나 혼자? 잃어버린 조각은 혼자서 구를 수 없어.” “노력이라도 한번 해봤니?”
자신을 데려갈 동그라미를 기다리다 지친 조각은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스스로 일어서기를 시도합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혼자 힘으로 굴러보려 애를 씁니다. 그렇게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는 동안 모난 부분들이 조금씩 닳아서 잃어버린 조각은 자그마한 o가 됩니다. 작은 동그라미가 된 잃어버린 조각은 이제 스스로 구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전에 만났던 커다란 O를 다시 만났습니다. 마침내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굴러갑니다.
내 안의 공허함, 어떻게 채울까? 실버스타인은 동그라미가 떨어뜨리고 간, 그래서 다시 길에 홀로 남은 잃어버린 조각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그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이 놀라운 두 권의 그림책은 우리가 생의 여정 중에 겪는 다양한 관계들을 간결하고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버려진 잃어버린 조각은 이별과 상실의 상처를 입고 남겨진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꼼짝하지 못한 채 자신을 완벽한 O로 완성시켜줄 다른 O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하나의 조각일 뿐인 존재. 그런 조각이 희망과 절망을 오가면서 차차 상처에서 회복되는 모습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회복이란 상대가 나를 품어주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내 스스로 완벽한 동그라미가 되어 다른 동그라미와 함께 굴러가는 것이라고. 결국 내 안의 결핍은 누군가에 의해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채워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쓸쓸함은 남습니다. 인간이란 그저 각자가 완벽한 원이 되어 안전한 거리를 유지한 채 동반자로 굴러가야 할까요? 딸아이는 어릴 때 이 이야기를 읽고는 “그래, 내가 완전해야 남과 온전히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거야”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도대체 어른이 된다는 게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답니다. 타인과의 모든 접점을 잃어버린 채 스스로 누구 하나 품어주지 못하는 원이 되는 것, 결국 그렇게 살아가는 법을 깨닫는 것이 어른인가, 그래서 앞으로 굴러가는 것밖에 모르는 외로운 바보가 되는 것이 어른인가, 하고 말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본질적으로 외롭고 절망적으로 지어졌단 말인가”라는 질문에 나도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카뮈의 말을 떠올릴 뿐입니다. “우주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것은 거대한 고독뿐이다.”
인간은 공허하고 고독합니다. 실버스타인은 단순한, 그러나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이 두 권의 그림책에서 우리 존재의 쓸쓸함과 모순, 그리고 공허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진실 앞에 우리는 공감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런 공허함을 나의 실존과 삶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인도의 철학가 오쇼 라즈니쉬(Osho Rajneesh)의 말처럼 “어느 누구도 그대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 없다. 그대는 자신의 공허함과 마주해야 한다. 그것을 안고 살아가면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c)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 카페] 중에서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교수의 문학치유 카페]가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에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교수의 문학치유 카페] (생각속의 집)가 출간되었습니다. 추천사를 써준 저널치료의 대가이며 문학치료전문가, 나의 멘토, 수퍼바이저이며 동료이고 의자매인 Kathleen Adams에게 감사드립니다. 그 외 추천해주신 이해인수녀님, 이시형박사님, 채정호박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이 책을 낸 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최근까지도 [내 마음을 만지다]가 여전히 잊히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시고 위로받으시고 힘을 얻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감사와 함께 죄송한 마음이 늘 가슴 한편에 있습니다. 오래전 출판사로 어떤 나이 많으신 독자 어르신께서 일부러 찾아오셔서 이 책으로 삶이 달라졌다고 다음 책이 혹시 언제 나오느냐고 묻고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한 후에도 몇 년간 계속 대학원에서 문학치료 수업과 논문지도 등 혼자 도맡아 했던 거 같습니다. 그 이후로는 너무 몸이 지쳤고, 또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국을 떠나 있기도 했습니다. 어서 다시 힘을 얻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제 저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귀한 독자들이 올려주셨던 예전의 리뷰들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때 이후로는 우연한 경우가 아니고는 리뷰를 읽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의 감동적이고 진솔한 마음을 기억하면서 더더욱 어서 힘을 얻어야겠다고 또 다짐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024. 3. NY에서) --------------------------
[추천사] 위로와 평화를 전합니다 -캐슬린 애덤스(RPT/TWI대표/CJTInc.미국저널치료센터장/전 NAPT<전미문학치료학회> 회장) 선생에게 가장 큰 선물은 선생의 스승이 되는 학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학생이 쓴 책입니다. 저자는 나의 대학과 센터에 명예와 자부심을 가져다 준 특별한 학생이었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동안 그는 문학치료라는 분야에서 다양한 생각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인간의 고통에 대한 탁월한 직관과 이해력으로 누구보다 환영 받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봉희교수는 2007년 NAPT(전미문학치료학회) 총회에서 한국최초의 공인문학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NAPT의 공식 한국대표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에서 달빛마저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를 떠나지 않고 고통스럽게 하는 수많은 갈등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책에서 위로와 평화를 얻기 바랍니다. 이 책에서 전하는 따뜻한 선물을 깊이 호흡하시기 바랍니다. --(캐슬린 애덤스 Kathleen Adams) =======
인생이란 길 위에서 누구나 예외없이 안팎으로 크고 작은 아픔들을 경험합니다. 아픔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아픔을 대면하는 이들의 태도 역시 다양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아파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모습이 밝아지기도 어두워지기도 합니다. 이봉희 교수의 책<마음을 만.지.다>는 우리가 고통이나 상처를 피하기보다 제대로 직시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동행함으로써 재발견되는 삶의 기쁨과 행복에 대해 말해 줍니다. 문학치료사인 작가의 학문적인 지식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얻은 구체적인 체험들이 조화를 이루어 더욱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다가오는 이 책을 내가 받은 편지라 여기고 읽어보십시오. 자신의 아픔을 잘 길들이고 객관화 하는 법, 남의 아픔을 보듬고 헤아리는 법, 나부터 변화되어야 하는 중요성을 더 깊이 알아듣고 마침내는 아픔 또한 축복임을 고백할 수 있게 해 주는 치유의 지침서인 이 책을 나 역시 아픈 사람으로서 아픈 사람 모두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살아가면서 마음의 상처 한 번 안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크든 작든 상처는 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열 사람의 칭찬보다 단 한 사람의 비난이 더 기억에 남는 법입니다. 우리의 뇌는 플러스 요인보다 마이너스 요인에 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번의 아픈 기억을 이겨내려면 열 번의 좋은 기억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내 마음이 커져야 합니다. 소인국에 도착한 걸리버가 수많은 화살을 맞으면서도 다시 일어서듯 말입니다. 세상의 문제들보다 내가 더 크게 변신하는 비법. 그것은 마음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이 책은 ‘마음의 거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려줍니다. 거친 세상 속에서 마음의 힘을 키워가고 싶은 모든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 이시형박사(정신과 전문의, 세로토닌 문화원장)
세상에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어쩌면 마음이 아픈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화가 날 때, 슬플 때, 용서하지 못할 때, 기다려야 할 때,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는 말을 하고, 풀어내며, 마음을 달래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이 책은 이럴 때 책읽기와 글쓰기가 놀라울 정도의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오직 성공만을 강요하는 이 시대에 소중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더 행복하게 해주는 책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책을 덮을 때 내 마음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상처로부터 회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것을 확신합니다. -------------------------------------------------------------------------------- woolf62님의 리뷰입니다. (출처: 네이버/yes24)
“왜 갑자기 이렇게 눈물이 나지요?” 문학치료사인 이봉희 교수가 20년 이상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이라고 한다. 자기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그 많은 눈물은 왜 갑자기 봇물처럼 터져 나온 것일까? 내 이야기를 진실로 들어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제대로 눈물 흘리지 못했던 이유는 내 말에 귀기울여줄 단 한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 해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일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 혹시 들어준다 해도 감정의 언어를 이해할 능력이 없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할 사람이 내게는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들은 어쩌면 부모한테는 할 수 없는 말이었고, 아내에게 못할 말이었고, 남편에게 못할 말, 자식한테는 터놓을 수 없는 말들이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우리는 말 한번 못하고 꾸역꾸역 가슴 속에 담아놓고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렇게 살아왔기에, 내 말을 들어주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변함없이 공감해주는 저자 앞에서 많은 이들이 감정적으로 무장 해제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오랜 세월 묻어두었던 마음속의 감정 덩어리들은 그렇게 눈물과 함께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 타인으로부터 위로받았다고 느낄까. 섣불리 나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하는 사람에게 도리어 상처를 받던 기억이 더 많지 않았나. 위로하려 했던 그 말이 왜 우리에게 상처가 될까. 아무리 내 몸처럼 사랑하는 상대라도 우리가 그 상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의 보잘것없는 ‘능력’으로 상대의 문제를 진단하거나 해결해주려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란 그저 함께 아파해주는 것 뿐 이란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임을 알기 때문일까. 베테랑 문학치료사인 이봉희 교수의 모토는 너무도 겸손하다. ‘이해하려 하지 마라. 다만 함께 하자. 도우려 하지 마라. 다만 사랑하자.’ 다만 함께 해주기 위해, 저자는 자신의 말로 설교하기보다는 소설과 시와 영화와 그림과 음악의 한 조각을 우리 앞에 슬그머니 내민다. 지금 내가 아파하는 것과 비슷한 지점을 지나간 그 어떤 사람이 느꼈을 마음의 행로를 보여줌으로써, 나 혼자만이 아픈 것은 아니라고 위로한다. 그렇게 우리를 위해 골라준 한 조각 위로는 강력하다.
나무가 꽃을 피우고 지금 아픈 우리의 이 고통이 실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이라고 선언하는 이 시는 고통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이 아님을, 죽음 같은 이 시간 속에 생명력이 있음을 깨닫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추스르고 일어날 힘을 준다. 나에게 고통을 안겨준 사람에 대한 미움과 분노로 몸부림치는 나의 모습도, 영화 <밀양>의 바탕이 된 이청준 소설 <벌레 이야기>속에 오버랩된다.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가 있어요?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가 없어도. 그런데 주님께선 내게서 그럴 빼앗아가 버리신 거예요. 나는 주님에게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불공평한 일들과 억울한 일들과 애정 결핍을 경험할 때, 우리는 자신의 상처에 압도되고 매몰된다. 때문에 우리는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집에 태어난 것일까’,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며 운명을 탓하게 된다.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에 갇힌 우리에게 저자는 의외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왜 불행만 탓하느냐고, 당신의 행복에도 의문을 가져보았느냐고? 우리는 불행할 때만 운명을 운운하지만 내가 누리는 축복이나 행복에 대해서는 운명을 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나는 운명의 실수로 이렇게 부잣집에 태어났을까? 왜 나는 운명의 실수로 이렇게 잘 생겼을까? 대체 나는 무슨 운명의 실수로 이렇게 남보다 머리가 뛰어난 걸까? 이런 질문을 할 때 우리는 내게 주어진 고통속의 축복을 알게 되고, 내가 받은 축복을 나눌 권리와 책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상처 입은 자들은 종종 제가 받은 고통에만 돋보기를 들이대는 자기중심성에 빠진다. 저자가 던지는 이 질문은 그 과도한 불균형을 깨뜨리는 직방의 질문 아닌가? 내 앞에 던져진 불행 앞에서 오그라들기만 하던 나의 자아는 이봉희 교수의 이 느닷없는 질문 하나로 인해, 순간 기를 펴고 확장된다. 아무 공로도 없이 받은 축복은 마치 나의 권리인 듯 당연히 누려온 삶을 반성하게 된다.
이렇게 자기문제에 함몰된 우리의 시각을 한순간에 전환시킨 저자는 문제보다 더 크게 내 존재를 키워보라고 제안한다. 문제 해결은 상대가 변화하거나 세상이 바뀌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상대가 바뀌어도 내가 변화하지 않으면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고. 내가 변화해버리면 상대와 세상이 바뀌지 않아도 내가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 그렇게 문제보다 내가 더 커버리라고.
문학치료사로서 수많은 이들의 마음과 동행해 온 저자의 마음창고에는 아파하는 우리의 마음 갈피에 딱 맞는 말들이 수없이 저장되어있는 것 같다. 적재적소에 내게 필요한 말들을 맞춤처럼 꺼내 주며 위로해주는 것을 보면. 탁월한 공감능력, 함께 아파해주겠다는 애정 어린 의지 때문일까? 이봉희 교수는 우리 마음의 비밀 문을 정확하게 찾아낸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 앞에서 그토록 큰 위로를 받고 눈물 흘렸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자기가 아픈 지도 몰랐던 사람, 아팠어도 아프다고 누군가에게 말해보지도 못한 사람들. 당신의 말을 경청하는 그녀에게 다가가 한 마디 건네볼 일이다. 그녀는 분명히 당신도 몰랐던 당신의 취약한 부분을 감싸주며 그 안에 고인 상처를 토해내게 할 것이다. 혹은 당신 스스로에게조차 발설한 적 없는 당신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종이 위에 표현하게 해줄 것이다. 뜨거운 눈물과 함께 당신의 상처는 치유될 것이다. ------
---------------------- b*****f님 리뷰 작가의 말처럼 외부요인에 자신이 만들어내는 갈등까지 더해져 내면에선 더 많은 괴로움이 추가되고 그로인해 힘든 시간이 길어지는거 같다. 어떤 일들은 현재의 일이 아닌데 어느 순간 문득 다른 느낌의 깨달음으로 내면에서 떠오르면서 새롭게 해석되어 현실에 영향을 주게되는 또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단 걸 얘기할 땐 삶에 대한 성찰이 깊은 작가란 느낌과 그게 주는 야릇한 슬픔에 찌릿하기도 했다.
마음의 족쇄를 풀고 자유로워지는 많은 실마리를 저자는 들려주는데 완벽한 결말이 없다 느껴지는 불교의 번뇌같은 삶의 연속을 독자인 난 상상하게 되었었다.
어떤 책은 너무 단순하고 명쾌해 믿음을 반감시키는데 이 책은 생각치 못했던 너무 깊은 교감으로 독자를 크게 흔들고 그 진실의 솔직함이 무지한 삶속 환상을 완전히 분해해버려 순간 어른아이를 진짜 어른으로 깨워버리는 듯한 비장함을 느꼈었다.
시나 고전 등 여러 문학작품이 적절한 분량으로 짧게 등장해 작가의 긴 이야기들이 흘러가는데 방해되지 않고 적재적소에 첨부됐던게 읽으며 참 좋았던 것 또한 참 흔치않은 좋은 경험이기도 했다.
이런 느낌은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따라가는 게 독자로써 너무 만족스러울 때 오는 기분좋은 현상.
책에서 모파상의 '목걸이'를 얘기할 때 그 여주인공이 목걸이를 잃어버림으로 인해 남은 인생동안 벌을 받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힘든 일을 겪어야했을 때 과연 그녀는 그런 일을 겪어 마땅했던 사람이었는가 독자에게 물었을 때, 난 그 작품을 어릴 때 읽으며 우울한 감정 정도는 경험했지만 과연 무엇을 느꼈고 어떤 기억으로 그 작품을 간직해 왔었는지 작가가 툭 던지는 이런 모파상의 '목걸이'가 주는 질문같은 걸 받으며 책과 계속 정신적인 씨름을 했다는 여운이 남는다.
종교서적이 아님에도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는 게 놀라울 뿐이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글의 깊이에 감동받아서....그리고 공개된 리뷰여서 일부를 가져왔습니다. 고맙습니다. ---------------------------------------------
https://www.journaltherapy.org/2791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사랑이란?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카페] 중에서
너무 어렵게 말하지 말자- 과도한 자기연출
“왜 내가 솔직하게 말하면 사람들은 당황해할까요? 왜 나는 화를 내면 안 될까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웃으면서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 나의 분노에 불을 지핀 그들은 아무도 비난받지 않아요. 하지만 내가 분노하면 사람들은 괴물이라도 바라보듯 놀라서 나를 쳐다봐요. 그들이 소리 없는 총을 쏘았다면, 나는 소리 나는 총을 쏘았기 때문일까요? 나는 그들의 그 철가면 같은 얼굴이 두려워요. 그러면서 왜 나는 그들처럼 사회성이 없을까 하는 깊은 자괴감이 들기도 해요.” 문학치료에 참여한 어느 분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이 분노하는 대상들처럼 오늘도 우리는 계산된 말과 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얼마나 성공했을까요? 오늘날은 금연, 금주, 다이어트, 감정표현의 자제 등 욕구의 억제로 가득 차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페니베이커(Pennebaker) 박사는 억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몇 가지 남지 않은 흥미로운 일들 중 하나는 우리의 충동을 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경시하는 일이다. 이제 새로운 자기 독선의 시대가 도래했다.”
타인을 의식하며 타인을 사는 우리들 요즘 우리가 부러워하는 처세술 중 하나가 바로 포커페이스(poker face)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감정 변화를 상대에게 읽히지 않고 방어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자는 “교묘한 말과 보기 좋게 꾸민 얼굴에는 어진 사람이 적다”고 했습니다. 이런 교언영색(巧言令色)도 화려한 말과 얼굴 속에 자신의 진심을 숨긴다는 면에서 포커페이스와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말끝마다 웃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얼마나 타인을 의식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으면 말의 끄트머리를 꼭 웃음으로 포장할까요?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서 그렇게 웃는 걸까요? 이런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진솔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세련되지 못하고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어떤 분은 직장에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 때, (짠지 싱거운지) “간을 보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소설가 온다 리쿠의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있으면 그걸 보고 있던 누군가가 찬물을 끼얹는 법이다. 멋진 일에 가슴이 설렐 때면 반드시 누군가가 '그따위 시시한 것' 하고 속삭인다. 그렇게 해서 까치발을 하다가 주저앉고 손을 내밀다가 뒤로 빼고 조금씩 뭔가를 포기하고 뭔가 조금씩 차갑게 굳어가면서 나는 어른이라는 '특별한 생물'이 될 것이다. - 온다 리쿠, 《굽이치는 강가에서》 중에서
어른이 될수록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세상은 그런 사람을 비웃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모뿐만 아니라 목소리마저 모두 짙은 화장으로 감춘 채 세상으로 나갑니다. 그 가면 뒤에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귀는 이미 마비된 지 오래입니다. 성공의 기준도, 행복의 기준도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환상 속에 삽니다. 말과 행동뿐 아니라 내 생각까지도 세상의 저울에 달아서 계산하며 사는지 모릅니다. 어쩌다 화장을 지우고 맑은 거울 앞에 앉을 때면 점점 더 깊은 외로움과 대면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내 안의 진실을 외면하면서 얻은 대가는 바로 외로움과 단절감입니다. 이것은 마치 ‘나’와 ‘내’가 서로 등을 대고 앉아서 대면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김왕노의 시는 이런 우리 삶의 “빤한” 비애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사람과 어울리려 사람을 사칭하였고 나는 꽃과 어울리려 꽃을 사칭하였고 나는 바람처럼 살려고 바람을 사칭하였고 나는 늘 사철나무 같은 청춘이라며 사철나무를 사칭하였고 차라리 죽음을 사칭하여야 마땅할 그러나 내일이 오면 나는 그 무엇을 또 사칭해야 한다 슬프지만 버릴 수 없는 삶의 이 빤한 방법 앞에 머리 조아리며 - 김왕노, <사칭(詐稱)>
여기서 “차라리 죽음을 사칭하여야 마땅할”이란 말은, 내가 아닌 나로 사는 것, 즉 나의 죽음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것은 나의 진실한 내면을 외면한 채 타인의 눈에 맞춰서 다른 얼굴을 사칭하며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대면하지 못하는 일, 그래서 또 다른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대할 수밖에 없는 이런 삶은 스스로를 지치고 외롭게 만듭니다. 그리고 능수능란하게 가면을 바꿔 쓰지도 못하는 자신을 비난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가면을 벗고 그 누구도 ‘사칭’하지 않으며 사람들을 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면으로 가려진 나의 모습에 익숙한 사람들은 슬금슬금 나를 멀리합니다. 절망한 나는 또다시 새로운 가면을 골라잡습니다. 더욱 능수능란하게 가면을 쓰고는 또 다른 얼굴을 사칭합니다. 자신의 내면과 멀어진 나는 점점 더 외로워집니다. 그러니 너무 어렵게 말하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끔은 바보처럼 맨 얼굴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이런 저런 계산으로 상대에게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이제 용기 내어 마주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부끄럼 없이 내 마음 속 감정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외롭다고, 슬프다고, 두렵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실패했다고, 용서해달라고, 용서하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당신이 필요하다고, 사랑한다고도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의 눈앞에서 외면했던 나 자신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점점 힘을 잃고 작아지는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활짝 귀를 열고 싶습니다.
너무 어렵게 이야기하며 살지 말자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있는 그대로만 이야기하고 살자 - 강재현, <너무 어렵게 이야기하며 살지 말자> 중에서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주말을 여는 책 | ‘내 마음을 만지다’] 마음의 상처와 고통, 읽고 쓰면서 치유하기
================= -----------
美공인문학치료전문가 이봉희 교수가 펴낸 에세이 ‘내 마음을 만지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선생님은 숨을 내쉬고 눈을 내리깔았다. 마치 공중에 퍼지는 모습을 지켜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중에서>
--------------- 5월이 터질듯 피어오르는 날이면 쉰이 넘은 나이에도 어김없이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때론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5월의 설렘은 청년들의 특권인 것만 같아서 가을 중턱에 들어선 나이에 느끼는 그런 [철] 모르는 감정을 숨겨야 할 것만 같은 부끄러운 맘이 들기까지 합니다. 자라오면서, 그리고 세상 속 세월을 거치면서 가장 흔히 하는 말 중 하나는 철이 들어야 한다는 말, 철이 없다는 말, 철 모르는 어린아이 같다는 말.. 이 아닐까 합니다. 인생도 계절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사철이 나뉘어 있기 때문일까요. 다만 계절은 돌아오지만 인생은 겨울이 지나도 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만 다르기에 한편 서글프고, 또 한편으로 그렇기에 우리의 하루하루가 더더욱 의미 있고 소중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리교수처럼 우리 안에 내 인생의 사계절을 모두 품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순수함을 잃지 않는 어린아이의 맘을 간직하고, 그 눈에 호기심이 별처럼 반짝이며 때로는 젊은 청년의 열정으로 내가 뿌리 내린 곳보다 더 아름답고 높고 깊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도전정신이 아직도 살아 숨 쉬며, 그러면서도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잘 제어하고 나의 옮길 발걸음과 내 몸과 맘을 앉혀놓을 자리를 분별하는 지혜를 가진 노년이 함께 내 안에 공존하고 있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인생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문득 감상주의적 환상과 순수함을 혼돈하거나, 자기 사랑으로 가득 찬 이기적 호기심과 심리적 불안정을 모험심으로 착각하거나, 때로는 쌓아 놓은 정보와 지식이 지혜인 양 허세를 부리거나, 세월과 성숙함이 저절로 비례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연륜을 내세워 허망한 자기 자랑과 주장만 화석처럼 굳어지는 그런 노년이 될까 봐 무척 두렵습니다. 젊음이란 의지와 상상력이며 활력이 넘치는 감성이며, 삶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이라는 사무엘 울먼의 유명한 글, [젊음]에서의 말도 결국은 우리 속에 살아 공존하는 모든 계절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울만은 60살 노인이든 16살 청소년이든 우리들의 가슴 한 복판에는 무선 전신국이 있다고 합니다. 그 무선전신국이 인간과 저 높은 초월자에게서 오는 아름다움, 희망, 환호, 용기의 메시지를 수신하는 한 우리는 주름과 관계없이 청년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청년이라도 이미 수 십 년을 더 늙어버린 주름투성이 노인과 다를 바 없는 것이라 합니다.
오늘 무너지도록 부신 햇살아래서 내 영혼의 안테나를 저 5월의 하늘, 그 가슴 한복판을 향해 높이 올리며 소리쳐 말하렵니다. [내 나이를 물어 무엇하랴. 나는 5월에 있다](피천득)라고... [이봉희- 덴버 중앙일보 문학칼럼 중에서 2005]
2007. 6. 1.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말한다 - 소통의 한계
딸아이가 오래전 외국에서 외롭게 공부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나는 도심의 늑대 같아. 혼자서 인간들 속에 살고 있는…….” “오늘 말로 하는 대화는 딱 한 마디 했어. 내 목소리를 잊을 지경이야.” 우리는 종종 대화를 포기하고 차라리 외로움을 택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소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고장 난 피아노 건반처럼 제 음을 전달할 수 없거나 서로 불협화음을 내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나의 말이 상대에게 낯선 나라의 말처럼 소통되지 않는다는 좌절 때문입니다. 누군가와의 소통이 더없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소통 수단은 대부분 언어에 의존합니다. 그런데 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가 참 불완전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그보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각자 타인 앞에서 해석하고 번역해야 하는 하나의 언어로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서로 다른 자신만의 사전으로 상대의 말을 해석하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언어 이상의 의사소통 수단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자주 있습니다.
나는 조용조용 설명한다. 당신은 고함치는 말로 듣는다. 당신은 새로운 방법으로 시도한다. 나는 오래된 상처가 들추어짐을 느낀다. ....... 나는 비둘기다. 당신은 매로 보인다. 당신은 올리브 가지를 내민다. 나는 가시를 느낀다. - R, 맥거프, <당신과 나> 중에서
상대의 말과 그 속내는 똑같을까? 우리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고, 전화 통화를 하고, 또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그게 짧은 글이든 목소리든 언어는 그 사람을 여지없이 드러내준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너무 수식어가 화려해서 읽으면서 살얼음을 딛듯 아슬아슬한 경우도 있습니다. 대체 이 사람은 언제부터 나를 얼마나 안다고 이렇게 살갑게 대하는 걸까? 한두 번 보았다고 마치 나를 다 알기라도 한 듯 온갖 아름다운 말로 나를 포장하는데, 왜 그러는 걸까? 미사여구로 상대를 잔뜩 포장해놓고는 “내 마음과 똑같았어요. 마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시는 것 같았어요”라는 말로 상대에게 되돌려주기도 합니다. 그런 진심이 의심스런 말을 들을 때면 빌려 입은 옷을 입고 무대에 선 것처럼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혼자 지나치게 흥분했던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혼자 토라져서 사라져버린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맘대로 투사해 상대를 영웅처럼 바라보다가 결국 실망했다며 평가절하하고 떠나가 버립니다. 때로는 자신의 일방적인 감정을 소화하지도 못한 채 분풀이를 하는 언어도 있습니다. 아무리 이런저런 이모티콘을 사용하고, 말끝마다 웃음으로 포장해도 자신의 날 감정은 그 포장 속에서도 진한 냄새를 풍겨옵니다.
그래서일까요. 한 사람의 말투는 그 사람의 인격뿐 아니라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감히 단언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예쁘게 꾸며도 그 뒤의 이기적인 계산을, 아무리 친절히 말해도 그 뒤의 적대감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웃으며 말해도 그 뒤의 두려움을, 아무리 당당하게 말해도 그 뒤의 패배감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잔인하게 말해도 그 뒤의 사랑은, 아무리 무뚝뚝하게 말해도 그 뒤의 관심은 묻어둘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숨겨둔 사랑과 관심보다는 당장 내 뇌리에 깊숙이 파고드는 뾰족한 언어의 칼에 얼마나 아파하는지요. 하지만 그 안의 사랑과 관심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상처 입고 되돌아가기에 너무 늦어버립니다.
나도 내가 하는 말을 모른다 타인뿐 아니라 자신의 언어 습관을 객관적으로 안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는 곧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안다는 자체가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내가 다르다는 사실은 종종 우리를 당혹하게 합니다. 이 괴리는 자신의 사진을 볼 때의 첫 느낌, 즉 낯설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잘 나타납니다. 더 놀라운 것은 남들에게는 사진 속의 내가 그들이 보는 실제의 나와 달라 보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시각의 괴리만이 아닙니다. 청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처음으로 방송극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내 목소리가 어찌나 낯설던지 어린 마음에 그냥 밖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리고는 창문 밖에서 간이 오그라드는 심정으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경험은 어른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던 때였습니다. 엄마가 곁에 없어도 아이가 엄마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도록 나는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녹음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녹음이 끝난 후 들어본 목소리는 너무나 끔찍하고 낯선 목소리여서 무척이나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 낯설음이 주는 당혹감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남편과 아이는 그게 내 목소리라고 인정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타인이 알고 있는 나와 내가 알고 있는 나. 둘 중 어느 쪽이 더 진실한 나의 모습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과 목소리, 성격 그리고 습관화된 나의 말투들이 타인이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소통의 한계 앞에서 한 번 더 자신을 성찰할 수 있습니다.
동명의 자서전을 영화화한 《내 책상 위의 천사》로 잘 알려진 작가 쟈넷 프레임(Janet Frame)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은 언제나 이야기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글로 써서 찢어버리지 않고 친구에게 전달한 이야기다. 들어주어서 고맙다고, 내 마음의 귀에 분별력 있는 열쇠 구멍을 내주어서 고맙다고 그 보상으로 해준 이야기다.” 그렇기에 시인이며 작가인 로오드(Audre Lorde)의 “중요한 것은 말로 표현되어야 한다. 상처 받아 멍들고 오해받을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언어화하고 서로 나누어야 한다”는 말처럼 대화를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고장 난 피아노 건반처럼 화음을 낼 수 없는 존재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연약하고 오해를 불러오더라도 언어는 우리가 가진 최고의 소통입니다. -중략-
상대의 말에 자주 상처 받지는 않나요? 이런 언어의 한계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타인과 소통할 수 있을까요? 언젠가 친구와 했던 약속이 기억납니다. 우리가 혹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한다면 그건 진심이 아니라 언어의 한계임을 서로 굳게 믿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로 인해 무척 맘이 상한 오늘, 나는 신뢰를 갖기로 합니다. 내가 받은 상처는 그 사람 자신도 모르는 언어습관이나 언어의 한계 때문에 생긴 것이지, 그 사람의 본심이거나 의도는 아니라고 믿으며, 그가 준 상처와 언어의 불완전함을 포용하기로 합니다. 언어가 나아갈 수 없는 한계 앞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해결책은 대화의 단절이 아니라 바로 상대에 대한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C)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중에서
https://www.journaltherapy.org/3632- "여러개의 언어를 알았으면 했지"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다- 무언의 소통
“내 안에 더 많은 것이 존재한다”는 상징주의를 이야기할 때 즐겨 인용하는 중세시대의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표현하는 것 이상의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표현하지 않은 말들은 어디에 숨었을까요?
셰익스피어의 극에서 무(nothing)는 없음, 아무것도 아님, 혹은 결핍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불리는 ‘그 무엇(something called nothing)’을 뜻합니다. 《햄릿》, 《리어왕》, 《오셀로》 등 이 모든 비극에서 주인공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nothing’의 말이 단순한 없음이나 무의미를 뜻하는 부정어가 아니라 보다 능동적인 긍정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무엇(something)’을 소통하지 못하는 데서 극의 비극성이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리어왕은 세 딸들에게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보라고 합니다. 그럼 땅을 나눠주겠다고 제안한 것이지요. 땅을 물려받고 싶은 욕심에 두 딸들은 전혀 마음에도 없는 거창하기만 한 거짓 사랑을 고백합니다. 반면 셋째 딸 코오딜리어는 진정으로 아버지 리어왕을 사랑하는 딸입니다. 두 언니의 사랑 고백을 듣고 있는 코오딜리어는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만일 ‘사랑’이란 말이 언니들이 말하는 ‘사랑’을 표현하는 말이라면, 자신의 사랑을 언니들이 사용한 것과 같은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코오딜리어는 아버지의 신뢰와 기대를 저버리고 “너는 얼마나 나를 사랑하느냐”는 기대에 부푼 왕의 질문에 “할 말이 없다(Nothing)”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그 말 뒤에 숨은 코오딜리어의 진정한 사랑의 고백을 알아차릴 수 없는 리어왕은 실망과 배반감으로 셋째 딸을 추방하고 맙니다. 그때부터 리어왕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뒤늦게야 겉으로 드러난 언어 뒤에 숨은 무언의 진실에 하나씩 눈 떠가지만 이미 때늦은 깨달음일 뿐입니다.
침묵도 하나의 언어다
“고백을 해야 할까?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를 처음 읽게 되었을 때 내가 당황했다는 것을……. 나는 처음에는 그가 말하는 침묵이 그 무엇의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능동적인 그 무엇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프랑스의 형이상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이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The World of Silence》를 읽고 한 말입니다. 피카르트는 말합니다. “인간은 말을 통해서 침묵의 소리를 듣게 된다. 진정한 말은 침묵의 반향인 것이다”라고. 피카르트가 말하는 침묵의 깊은 철학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는 일상 언어에 숨어 있는 말들, 침묵한 의미들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무언(침묵)도 엄연한 하나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머어윈의 시처럼 그 언어들은 “어둠 속에 깨어서 우리를 듣고 있습니다.”
이 연필 안에 말들이 웅크리고 있다 한번도 쓰인 적 없는 말해진 적 없는 배운 적 없는 말들이
숨어 있다
어둠, 그 어둠 속에 깨어서 우리를 듣고 있다 - 머어윈, <쓰이지 않은 말> 중에서
우리가 하는 말 중에는 의미 없는 말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말이지만 동시에 소음입니다. 소음이 ‘의미 없는 목소리(meaningless voice)’라면, 침묵의 언어는 ‘목소리가 없는 의미(voiceless meaning)’입니다. 그 언어가 목소리를 갖지 못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알면서도 말하지 않은(unspoken) 침묵의 언어, 또는 말할 수 없어서(unspeakable) 하지 못하는 침묵도 있습니다. 또 스스로도 내 마음 깊은 곳의 진정한 목소리를 듣지 못해서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말 속에 그 말과는 다른 진정한 나의 마음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프로이드는 말의 실수도 무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글을 쓰다보면 내가 의도하지 않은 단어를 쓸 때가 있습니다. 실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우연인 것 같은 실수 속에서 나의 무의식이 건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나는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을까?
독일의 한 해석학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한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는 퇴근하면서 아내에게 “머리가 아파”라고 하소연합니다. 이때 아내가 “그래요?” 하고 진통제만 가져다준다면 아내는 남편의 말 뒤에서 침묵하고 있는 진정한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입니다. 어쩌면 남편도 그 말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때 남편이 하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머리가 아파”가 아니라 “당신의 위로가 필요해. 나를 좀 돌봐줘”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만일 아내가 남편의 말 뒤에 숨어 있는 침묵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면 아내는 ‘남편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는’ 남편의 욕구를 채워줄 것입니다. “당신 오늘도 밖에서 일하느라 정말 수고 많았어요”라며 다른 날보다 더 특별한 위로를 해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편도 자신이 정말 위로받고 싶어서 그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르면서도 아내가 그저 진통제를 내밀 때 뭔가 허전하고 마음이 허전하겠지요. 괜히 답답하겠지요.)
어린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직장을 다니는 엄마가 있었습니다. 낮 동안에도 수시로 아이가 궁금하고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친 몸으로 퇴근해 친정에 가면 어린아이가 드라마에서처럼 달려 나오며 “엄마아아~~” 하고 매달리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는 엄마를 반기기는커녕 언제부턴가 “스티커!” 하면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얼굴은 외면한 채 말입니다. 스티커를 사가지 못하는 날이면 아이는 이내 토라져서 작은 일로도 투정을 부리거나 떼를 썼습니다. 스티커에 대한 끈질긴 집착은 오랫동안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외국에 출장을 갔다 오면서도 엄마는 스티커를 사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단순히 스티커에만 집착했던 것일까요?
스티커를 달라는 아이의 투정은 바로 “엄마, 하루 종일 어디 갔다 왔어? 엄마가 날 두고 가버렸을까 얼마나 불안했는지 알아?”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 내면의 그런 두려움을 알지도 못합니다. 그저 그 당시 자신이 좋아하는 스티커가 엄마의 ‘사랑의 표시’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집착합니다. 어쩌면 스티커는 부재의 시간 동안 엄마가 자신을 기억했다는 증거품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이야기해주면 부모들은 아. 그렇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아이에게 반응할까요? 아마 대부분 아이에게 눈높이로 앉아서 부드럽게 말할지 모릅니다. “00야, 네가 원하는 건 스티커가 아니란다”라고.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말해주어도 아이에게는 소용없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스티커를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스티커만 준다면 사랑을 갈망하는 아이의 욕구는 영원히 충족되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엄마는 아이가 말한 스티커와 함께 표현되지 못한 말의 의미인 사랑을 듬뿍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불안 속에는 엄마의 부재 뿐 아니라 무엇보다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fear of the unknown), 즉 엄마가 대체 자신을 두고 어디에 가 있는지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이 더 큰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아이가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주말에 자신이 낮에 무엇을 하는지 직장에 데려가 보여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우리 00이가 할머니댁에 가 있는 동안 엄마는 지금 우리가 가는 이 길로 차 타고 학교에 가는 거야.... 여기가 엄마가 학생들 가르치는 교실이야....“ 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엄마가 안 보이는 동안 불안하지 않고 ‘엄마가 지금쯤 어디 있겠지’ 하고 선명하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퇴근길에 스티커는 물론 사랑도 열심히 ‘표현’해주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와 함께 15분 정도 뒹굴며 놀아주고 꼭 안아주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어느 때부터인가 아이는 그렇게 집착하던 스티커를 달라고 조르지 않았습니다.
나의 속마음은 누가 알아줄까?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도 그 욕구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다른 곳에 그 욕구를 전이시켜 거짓 욕망에 집착합니다. 배가 부르면서도, 비만으로 건강을 해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초콜릿이나 군것질을 달고 살거나, 술이나 게임 등에 집착하는 경우입니다. 그 순간 초콜릿을 먹지 말라거나 게임을 하지 말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효과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그 사람이 진정 원하는 것을 탐구하도록 도와주고 그것을 먼저 해결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거짓 욕망에 대한 강박증은 사라집니다. 이런 강박증은 때로 사람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보이기도 합니다.
친정어머니는 우리딸을 유달리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지나치셔서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전화를 하셔서는 “오늘은 애한테 뭐 먹였니?”라고 물어보셨습니다. 불고기를 해주었다고 하면 “야채를 먹여야지!” 하고 화를 내셨습니다. 다음 날 야채 반찬을 해주었다고 하면 “고기를 먹여야지!” 하고 또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무슨 대답을 해도 만족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어머니가 말만 시작하면 다 듣기도 전에 벌써 화부터 났습니다. 때로는 전화수화기를 귀에서 멀리 내려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안톤 체홉의 <비탄>이라는 단편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의 한 구절에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인공 포타포브는 이제는 너무 늙어 일하기 어려운 마부입니다. 그는 얼마 전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가 늙어서 말〔馬〕을 제대로 몰지 못하자 마차에 탄 젊은 청년들이 노인에게 심한 모욕을 주며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 모욕적인 행동에 분노를 느끼지 않고 다만 소리로만 듣습니다. 그리고는 “허허, 참 유쾌한 젊은이들이야” 하고 웃어버립니다.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만 말을 듣기만 한다는 그 장면은 소설의 주제와 무관하게 “아하!” 하며 머릿속을 강타했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어머니의 말을 일일이 들리는 대로 해석해서 감정적으로 반응했을까? 그냥 단순히 소리로만 들으면 되는데.’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은 고기를 먹여도, 야채를 먹여도, 그 무엇을 해도 성에 차지 않을 만큼 아이를 사랑한다는 말의 표현임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얼마나 네 딸을 사랑하는지 알지?’라는 (어머니 자신도 모르는) 어머니의 소리 없는 진심이 무시당하자 어머니는 나름대로 욕구불만이 쌓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진심을 알아달라고 점점 더 심하게 잔소리를 하신 것입니다.
그 후부터는 어머니의 간섭과 잔소리에도 나는 평화로워졌습니다. 그렇게밖에는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어머니가 안쓰럽기도 하고, 또 아이처럼 귀엽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알았어, 알았어요!! 울 엄마, 손녀 사랑은 알아줘야 한다니까”라며 웃으며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게 찾아온 평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느 날부터인가 어머니의 간섭과 잔소리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어머니의 진정한 마음을 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간섭과 잔소리로밖에는 표현하지 못한 자신의 진정한 사랑과 욕구를 알아주자 어머니는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의 변화로 어머니도 변하셨던 것입니다.
내 속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날이면 새삼 삶이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때로는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해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융(Jung)은 “고독은 내 곁에 아무도 없을 때가 아니라 자신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의사소통 할 수 없을 때 온다”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서로를 신뢰하고 배려할 때,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말 너머 말없이 침묵하는 말에 귀 기울일 수 있습니다. 자신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서로의 욕구를 읽어주고 들어준다면 그것이 진정한 공감과 경청이며 그럴 때 우리의 삶은 훨씬 더 따뜻해질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 카페] 중에서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지난주 올 들어 첫 꽃을 보았습니다. 캠퍼스 길가에 노란 수선화 두 송이가 수줍은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곁에는 어느새 푸르러진 풀 섶 속에 작은 제비꽃이 숨어 있는 것도 보였습니다. 보아주는 이 있든 없든 말없이 성실히 피어있는 작은 꽃과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나도 '살아서 살아있고' 싶어졌습니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은 대개 공격적이기 쉽습니다. 말투나 행동에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어서(배려 받지 못하고 자랐으므로) 나쁜 의도가 없는데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곤 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은 전혀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또 스스로 상처를 입습니다. “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까?”하며 이유를 모른 채 아파합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인식하지 못하다보니, 자신 때문에 불편해하는 사람에게 또다시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실 선인장 꽃처럼 여린 살을 가졌습니다. 다만 살아남기 위해서 가시를 달고 사는 것이지요. 그것이 자신을 보호할 유일한 생존법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시로 남들에게 상처를 주는 줄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 카페 『내 마음을 만지다』 중에서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기쁨과 희망은 의지의 문제다 - 긍정적 의지
우리는 기쁨이나 희망, 감사나 사랑 등을 모두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감정입니다. 하지만 감정 이상의 것이기도 합니다. 만약 기쁨이 마냥 샘솟듯 솟아나오는 감정일 뿐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자주 당황하게 될까요? 기뻐할 일보다 좌절하고 낙담할 일이 훨씬 더 많으니 말입니다. 기쁨은 순간일 뿐이고 슬픔은 영원히 마르지 않고 흐르는 강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시인 하진은 슬픔을 “인생에서 유일하게 영원히 살아 있는 물줄기”라고 말했을까요. 만일 사랑이 단지 가슴을 두근두근 설레게 하거나 상대를 애틋하게 느끼게 하는 감정일 뿐이라면, 사랑은 얼마나 덧없이 짧은 사건일까요. 또, 감사하는 마음이 단지 그 조건과 이유가 있을 때만 우러나오는 감정일 뿐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감사할 일이 적어질까요. 그 감사의 조건은 또 얼마나 주관적이며 이기적일까요. 브레히트가 경험했듯이 때로 운이 좋았다고 감사하던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질 수도 있고, 그 감사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로지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던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Ich, der Überlebende>
기쁨과 희망은 단순한 감정 이상의 힘겨운 노력
오래전, 힘든 시간을 보내던 딸아이는 한 가닥이라도 좋으니 희망의 빛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엄마, 오늘 친구가 내게 생일선물로 뭐 갖고 싶은지 물었어. 그래서 내가 희망이 있다는 증거 한 가지라도 갖고 싶다고 말했어.” 그러자 아이의 친구가 말했다고 합니다. “가끔 내가 희망이 없어지고 삶에 대해 회의적일 때마다 난 네 안에서 희망을 보고 힘이 나곤 해. 그렇게 가끔은 네 안의 하나님이 나를 안아주시더라.” 딸아이가 다시 내게 말했습니다. 엄마, 누군가가 나처럼 회의와 절망 속에 있으면서도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돼.
기쁨이나 감사, 희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상의 힘겨운 노력이자 의지이며 지혜입니다. "모든 지혜는 두 마디로 요약된다. 기다림과 희망이다"라는 A. 뒤마(Duma)의 말이 기억납니다. 생태주의 작가 바버라 킹솔버(Barbara Kingsolver)는 최악의 날들에 절망의 잿빛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찬란한 사물"을 골똘히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때 바라본 찬란한 사물은 빨간 제라늄 꽃이었고, 노란 원피스를 입은 어린 딸이었으며 초승달과 광활한 밤하늘이었습니다.
내가 다시 삶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나는 그것들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마치 뇌졸중 환자가 움직이지 못하는 몸의 기능을 회복하려고 두뇌의 새로운 부분을 훈련시키듯이 나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에게 기쁨을 가르쳤다. (킹솔버《투손의 만조》에서)
그는 절망에서 벗어나 다시 삶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자신에게 ‘기쁨을 가르쳤습니다.’ 킹솔버는 이것을 마치 마비된 두뇌의 새로운 부분을 훈련시키는 것과 같았다고 말합니다. 이보다 더 정확한 비유가 있을까요? 릴케는 우리 슬픔의 대부분은 마비된 순간들이라고 했습니다. 절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상병 시인의 새처럼, 절망한 사람들은 더 이상 감정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마비된 상태입니다.
저 새는 날지 않고 울지 않고 내내 움직일 줄 모른다. 상처가 매우 깊은 모양이다. - 천상병, <새 3> 중에서
이처럼 절망한 사람들은 절망의 심연 속에 가라앉아 움직이지 못합니다. 심연이란 말은 독일어로 ‘압그룬트(Abgrund)’, 즉 존재의 기반을 잃어버린, 또는 삶의 이유를 상실한 것을 의미합니다. 내 삶이 그 어디에도 없는 부재중이라고 여겨지는 것, 이것이 바로 절망입니다. 그래서 여림 시인의 말대로 “지금 나의 삶은 부재중이오니 희망을 알려주시면 어디로든 곧장 달려가겠습니다”라고 호소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신에게 기뻐하는 법을 가르치기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작가 빅터 프랭클이 유태인 포로수용소 아우슈비츠에 있었을 때입니다. 한 작곡가가 희망에 찬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달 후면 모든 게 끝날 거야. 꿈을 꿨는데 다음 달 3월 30일에 독일군이 항복했거든." 하지만 3월 30일이 되어도 모든 것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러자 시름시름 앓던 작곡가는 그만 바로 다음 날인 1945년 3월 31일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지요.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945년 4월, 히틀러는 자살을 하고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는 그 일로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수감자들을 보면서 누구보다 체력이 뛰어나고 민첩하게 살아가는 요령을 터득한 사람들이 가장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놀랍게도 겉보기에는 나약하고 어수룩해 보여도 붉은 노을의 장엄함과 동료의 흥얼거리는 노래 소리, 들꽃 같은 아주 작은 것에 감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도 병든 동료에게 자신의 음식을 기꺼이 나눠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어떤 최악의 조건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의지와 노력으로 절망의 심연에서 마비되기를 거부하고, 자신에게 기뻐하는 법을 가르치고 훈련한 인간 영혼의 승리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찾은 삶의 의미와 희망은 생의 작은 것에서 찬란함을 찾아내어 감탄하는 따뜻한 감성과 강한 긍정적 의지에 있었습니다. 이처럼 외부 환경과 상관없이 스스로 삶의 의미와 살아갈 이유를 부여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를 프랭클은 “최후의 자유”라고 말합니다.
감사와 기쁨, 희망과 사랑을 느낄 수 없다고 절망할 때, 그것들이 자연스런 감정 이상의 의지이자 노력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과 안개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그 한가운데서 포기하지 않고 기뻐하는 능력을 나 자신에게 가르치겠습니다. 그것이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는 눈을 기르는 일처럼, 내 작은 손바닥에 무한을 담는 것처럼 놀랍고 멋진 일임을 기억하고자 노력하고 싶습니다- 반복적으로!
(c)이봉희 / 출처: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 카페/ 생각속의 집]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문학치료사 어떻게 되었을까? (출처: 캠퍼스멘토 잡지 2020.8./ 예술치료사 어떻게 되었을까?)
-문학치료 국내 유일 미국공인문학치료전문가(CPT/CJT) 이봉희 교수
>>교수님의 어린 시절을 들려주세요. 저는 7남매중 막내였어요.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엄마와, 저보다 18살이나 많은 큰오빠였고요. 당시 서울에서 S대를 다녔던 오빠는 집(청주)에 내려 올 때마다 동화책을 한보따리씩 사다 주었는데 그 책을 외우다시피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오빠의 방에는 늘 철학책, 시집, 문학전집 뿐 아니라 당시로서 정말 구하기 어려운 수입 명화집이 가득했어요. 전축에서는 고전음악이 흘러나왔고, 벽에는 고흐, 샤갈, 마티스, 세잔, 피카소, 고갱, 르노아르 등 화가의 그림들이 걸려있었죠. 그런 오빠 방에서 알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며 자랐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도 가끔 남들처럼 입시준비와 공부를 해야 하는 시간에 하염없이 베토벤을 듣거나 책상 앞 벽에 걸린 고흐의 그림을 바라보며 밤을 새기도 한 기억이 나네요.
여름밤이면 마당 툇마루에 엄마의 무릎을 베고 엄마가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를 듣곤 했어요. 그때 저의 꿈은 국문과를 나와서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고, 초등학교 때는 교내 글짓기상은 물론 시장이나 도지사 상을 타곤 했던 기억이 나는데 앞서 말한 내용들이 저에게는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눈을 뜨게 해준 것 같아요.
저희 집에 딸이 다섯인데, 엄마는 딸이어서 차별하신 적이 없었어요. 여자는 이래야 한다, 라고 하신 적도 없었고요. 엄마는 대가족 큰살림에 고달프신데도 꽃이나 새, 책읽기를 무척 좋아하셨어요. 집 뒷마당 커다란 꽃밭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있었고, 마루가 긴 집 벽에는 새장이 빼곡이 있어서 카나리라, 잉꼬 등등 새들을 키우셨죠. 그리고도 틈만 나면 낮이든 밤이든 한국문학전집을 소리내어 읽곤 하셨어요. 새벽이면 잠결에 들려오는 엄마의 책 읽는 소리, 그리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클래식음악과 명언들을 읽어주던 프로그램-이 늘 저와 함께 했고 그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곤 했어요. (주로 듣던 그 라디오의 곡이 타이스의 명상곡이나 생상의 백조라는 걸 후에 알았죠.)
그리고 6학년 때 청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어요. 사춘기 시절 친구들은 그 당시 아이돌이던 클리프 리차드라는 가수에게 흠뻑 빠져 있거나, 남학생들이나 다른 소녀다운(?) 관심거리가 많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제 관심을 끈 건 연약한 사람들(나와 같은 나이에 공장에 다니는 여학생들, 아침 만원버스에 매달려 승객을 태우는 우리또래 여자 차장들, 그리고 노인들, 힘겹게 리어커를 끌며 언덕을 올라가는 나이든 노동자들 같은)이었어요.
>>그때 가장 많이 하신 생각은 무엇인가요? 나는 왜 존재하게 되었으며 삶을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삶의 조건들, 삶의 부조리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했던 거 같아요.
>>학창시절에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윤리를 가르치러 오셨던 대학교 철학 강사 선생님이 계셨어요. 그 선생님은 제가 갖고 있는 삶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해주실 수 있을 거 같았죠. 그래서 교무실에서 주소를 얻어 서울 지리도 잘 모르는데 낯선 변두리 지역에 있는 선생님댁을 찾아갔어요. 한옥 선생님댁 마당에 서서 선생님을 부르자 그 선생님께서 안방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셨어요. 90도로 인사하고 그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질문을 했어요. "선생님, 사람은 왜 살죠?"라고요. 그런 저 자신에게 그 선생님보다 오히려 제가 더 놀랐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들어오라고 하셨죠. 그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쇼펜하우어의 말이었지만) 사람에게는 살고자 하는 맹목적 의지(will to live)가 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 대답보다 그날 제게 해주신 말씀이 요즘은 더 자주 기억이 나요. "내가 너를 기억한단다. 네가 교무실을 왔다 갔다 할 때, 얼굴에 고통의 빛이 있어서."라는 내용이었어요. 그 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제가 교수가 되고 교실에서 학생들을 대할 때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된 것 같아요.
>>현재의 직업을 꿈 꾸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저는 단순히 공부 잘하는 학생, 소위 모범생보다는 삶과 자신에 대한 의문과 답을 찾기 위해 싸우고,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기 위해 고민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 더 마음이 갔어요. 성장하기 위해 스스로 투쟁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 교수가 되어 영문학을 가르칠 때에도 제 친구들이나 학생들, 주변 사람들은 제게 어려운 일이나 가족의 비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곤 했어요. 저는 마치 상담사처럼 힘겨운 이들의 고민과 비밀 이야기를 들어 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아마 이런 어려서부터의 삶의 경험들이 이후 영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을 때에도 제 수업방식을 일반 수업과 다르게 했고, 결국 학창시절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심리상담사와 문학치료사의 길을 가도록 이끄는 준비과정이었는지도 모르죠.
>>지금의 모습이 있기까지의 학창시절의 모습을 들려주세요. 제가 학교를 다닐 시기에는 중고등학교가 평준화되기 전이었어요. 그래서 중학교 진학 때부터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입시를 봐야했어요. 대학은 예비고사를 보고 본고사를 학교별로 치러야 하는 시절이었죠. 소위 상위 3대 학교인 숙명여중고는 대학교를 성적 때문에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었어요. 어느 대학교를 들어가느냐가 문제일 뿐이었죠. 학생 때 제가 가장 잘하던 과목은 영어였어요. 어쩌다 한두 문제 틀리는 경우 외에는 늘 만점을 받았는데 지리나 역사처럼 단순히 외우는 과목을 잘 하지 못했어요. 특히 몇 번 결석하고 나니 수학은 전혀 따라갈 수도 없어서 제게는 가장 힘겨운 과목이었던 것 같아요. 과외를 받을 형편이 못되어서 수학은 혼자의 힘으로 따라갈 수도 없었고요. 또한 당시 학교 교사들에게 국영수는 물론 과학까지 다 과외를 받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방과 후에는 외톨이가 되기 일쑤였고 그런 고독은 자연스레 저를 철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시기와 시간을 주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가난이나 고독이 제 자존감을 낮추거나 저를 주눅 들게 하지는 않았어요. 이런 사춘기의 경험들도 훗날 제가 치료사가 되고 특히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 경험들이었던 것 같아요. 불행(특히 나의 선택이 아닌)하다고 실패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었죠. 그리고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도 알게 되었죠. 고등학교 때 읽은 루이제 린저의 책의 한 구절 “나는 왜 연약하며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안 된단 말입니까?”에서 그만 눈물이 나왔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말은 때로 오해를 낳고 또는 털어놓은 걸 후회하기도 하죠. 그래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치료가 아주 효과적이고 독특한 치료법이라고 늘 실감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대학교 진학시 계열 및 전공 선택 저는 문학이 좋아서 영문과를 가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등록금 때문에 S대를 가야했고 실력이 모자라 전혀 원치 않는 전공을 선택하다보니 관심도 없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입시에 실패했어요.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제게 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당시 2차 대학이던 성균관대 영문과를 수석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4년내내 장학금을 받아서 등록금 걱정은 없었지요. 영자 신문사와 영어연극, 아르바이트 등 정말 열심히 살았던 거 같아요. 졸업은 전체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는데, 그게 다 제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또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공부할 수 있었던 이유 때문이라 생각해요. 2차 대학을 들어가고 첫 동창회에 갔었는데 소위 SKY대학을 못 간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동창회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왔던 기억이 나요.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우산도 없이 그 비를 맞으며 집까지 거의 3시간 가까이 걸어오면서 내가 왜 불행하고 슬픈가 생각해보았어요. 내가 실패한 S대학은 원하던 학과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건 세상이 내가 S대를 실패해서 나를 실패자로 본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3시간 동안 넘게 내 몸과 마음을 적신 눈물 같은 봄비 속을 걸으며 깨달은 것은 그 세상의 잣대가 틀렸다면 내가 세상의 평가를 버리면 된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자유를 느꼈죠. 그 후 오히려 고등학교 때보다 더 일찍 새벽같이 학교를 갔고 빈 강의실에서 혼자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었죠. 이제 나는 어른이고 내 삶의 주인은 나이며 내가 책임지는 선택을 하는 것이므로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죠.
>>학생들이 학과와 학교를 선택할 때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으신가요? 저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의 권유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부모님과 솔직히 대화하면서 전공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첫 페이지에서 이렇게 말하죠. “내 진정한 자아 속에서 솟아나오려고 하는 것 나는 그것을 살아보려고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내 진정한 내면의 열정과 소리는 정말로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해요. 치료사라는 직업도 마찬가지에요. 왜냐하면 지금 치료사들, 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도 그러한 과정이 없다면 흔들리기 때문이에요. 특히 상담심리사와 마찬가지로 예술치료사의 경우 정말 왜 치료사가 되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누군가를 돕는 일은 내 문제를 해결 받고 싶어서 그 전공을 선택하는 것 이상의 전문성과 미션이 필요하니까요, 사실 40살에 새로운 대학원에 도전해서 수료한 적이 있었어요. (이제 보니 3개의 다른 전공으로 3개의 대학원을 다녔었네요. 문학치료까지 하면 4개의 전공이네요..) 현실적인 이유로 택한 전문경영인과정이었는데요. 그 공부를 하면서 또 한 번 절실히 깨달았어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해야 내 잠재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으며, 힘든 상황도 더 잘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세상에서의 성공 여부와 무관히 내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요.
>>학창시절 교내 외 활동 에피소드 중학생일 때는 가정형편 문제도 있었지만 부모님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서고 싶어서 중3때 중1학생 영어를 가르치는 일도 했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 학생을 소개시켜주시고 도와주신 선생님께 지금도 마음으로 감사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때는 연극을 하면서 소극적이던 제가 많이 적극적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연극연습 합숙을 통해서 편식도 고치게 되었고요. 미국대사관 문화원에서 하는 영어회화 팀에서 활동하면서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를 번역하기도 했었죠. 대학 때도 영자신문사 외에 영어연극(연기와 연출) 활동을 했었는데 그때의 경험이 아마 제가 영문학 중에서도 셰익스피어 전공으로 학위를 받게 된 계기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늘 철학에 관심이 있었고 영문학 외에는 모든 선택과목을 거의 다 철학과 과목을 선택했었어요. 그 외 방학 때면 늘 선후배들과 함께 배낭을 메고 산에 가거나 여행을 자주 갔었어요. 대학교 1학년때는 방학 내내 전축 앞에서 클래식음악만 듣고 보낸 적도 있었네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저널테라피(글쓰기치료)와 비슷한 것이더라고요. 일상에서 느끼는 내 마음과 느낌을 적는 습관은 직장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었죠. 출근하면 (늘 일찍 출근해서) 일단 짧게라도 일기를 쓰고 일을 시작했었어요. 이런 모든 게 문학치료사가 되는데 큰 도움이 된 걸 이제는 알겠어요. 게다가 저는 시를 무척 좋아해서 시간만 되면 서점에 가서 시집을 골라서 마음에 드는 시 구절을 공책에 적어보곤 했었어요. 제 삶에서 시와 문학과 글쓰기, 그리고 음악(고전음악)과 그림은 늘 저를 치유해주는 상담사와 친구의 역할을 했던 거 같아요.
>>졸업 후 어떤 일을 하셨어요? 저는 유학을 가고 싶었어요.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삶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서 공부를 더 하고 싶었죠. 유학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4학년 2학기말부터 체이스 맨하탄 은행(록펠러가 한국에 왔을 때 악수했던 기억도 나네요)과 중국대사관(대사비서)에서 일을 했어요. 결혼 후 서른이 넘어서야 원하던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뜻밖에 아기를 갖게 되었어요. 남편은 미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출산 후 공부를 시작했기에 간난 아기와 단 둘이 남아서 아는 사람 한 사람도 없는 곳에서 유학생활을 하게 되었고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제가 공부한 곳은 USC(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인데 대학원 영문학과에 영어가 외국어인 동양인은 제가 처음이라고 했어요. 먼저 돌아가는 남편과 함께 돌도 안 지난 6개월 된 아기를 한국에 보낼 수도 없는 형편이었고 아기 옆에는 엄마가 있어야한다는 생각에 제가 데리고 공부했죠. 수업하다 기숙사로 뛰어와서 모유를 먹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베이비 씨터를 구할 수 없어서 아기를 데리고 대학원 수업을 가기도 했었죠. 제 생에 가장 힘겨웠던 자신과의 싸움의 시간이었어요.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정말 멋지게 지혜롭게 자라준 사랑하는 딸에게 그저 늘 미안하고 감사하죠.)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의 대학 강사 시절 때는 어떠셨어요? 그렇게 원하던 영문학과 유학이었는데 물론 감사하고 좋았죠.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문학에서 제가 찾던 답을 찾았다기보다는 내 삶과 마음의 문제와는 조금 무관해 보이는 지식위주의 평론과 문학읽기에 회의에 빠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문학을 내 자신의 눈과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고, 문학작품이 하나씩 그날그날의 내 삶과 연결이 되기 시작했어요. 자연스럽게 강의가 달라지고 학생들의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죠. 심지어 시간강사일 때 같은 과목을 다른 두 분의 교수님들과 같이 개설했는데 제 시간이 제일 먼저 50명인원이 마감이 되어서 교무처에서 이상하다 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학생들도 머리에만 머무는 인지적 교육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경험과 연결된 문학수업방식에 목말랐던 거 같아요. 저의 교육철학은 “우리는 지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칼 로저스의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에 진심으로 동감하고 지식을 감정과 경험에 연결시키는 통합적 교육을 하고자 한 것이었어요. 이런 수업방식이 결국 많은 학생들이 제가 교수가 아닌 연구실이 없는 시간강사임에도 저를 개인적으로 찾아오게 했고 또 다시 자신들의 고민을 상담하게 했고(연구실이 없으니 커피숍이나 학교 벤치에서), 수업 중에 눈물을 흘리거나 편지를 보내는 일이 생기게 되었죠. 제가 10대 때, 그리고 대학생 때도 그랬던 것처럼 학생들이 얼마나 의지할 멘토가 필요했으면 그랬을까요? 그리고 그 학생들과 한 명, 두 명, 만나다가 30명 가까이 제 집에 일요일마다 모여서 같이 공부하고 대화하고 개인적으로 상담하는 일을 10년 가까이 하게 되었어요. 특히 집을 떠나 서울에서 자취하는 외로운 학생들을 명절 때가 되면 불러서 함께 송편도 빚고 떡국도 먹고 했었죠. 정말 돌이켜보면 저는 오래전부터 그때는 알지도 못했던 문학치료사와 심리상담사가 되기 위한 길을 한걸음씩 걷고 있었던 거 같아요.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끝냈기 때문에 취업에 어려움이 있었죠. 긴 강사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그때가 참 행복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마흔 다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천안의 나사렛대학교 영어학과에 교수가 되었죠. 마침 총장님이 외국인이어서 성별이나 나이에 대한 편견이 없으셨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미있는 것은 제가 교수로 첫 출근했을 때 신임교수에게 인사하러 학생들이 여러 명 저를 찾아왔어요. 그리고 그들 중 한 대표아이가 한 말은 “저희는 영어를 배우러 왔지 문학 배우러 이 과에 온 게 아니에요. 저희는 문학을 증오해요”라는 말이었어요. 그때 제 기분이 어땠을까요? 서울에서 문학을 강의할 때 인기 만점이던 저였는데 실망했을까요? 사실은 정말 기뻤어요. “내가 제대로 찾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만큼 저는 서울에서의 강의 경험과 학생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문학의 치유적 힘,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힘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첫 수업 시간, 학생들에게 “문학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주었죠. 그리고 수업 때마다 늘 미리 수업에 읽을 문학작품(주로 단편소설)을 읽고 작품에 대한 감상평을 써오게 했는데, 감상문을 쓸 때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반응’을 자유롭게 써오라는 과제를 주었죠. 만일 남의 이야기를 카피해오면 과제점수 0점. 자신만의 생각과 이야기를 써오면 만점이라고 기준을 정확히 알려주었죠(때로 영어가 어려워 내용을 전혀 다르게 오역해서 읽었다 하더라도 말이죠). 물론 당연히 이후에는 수업 때 객관적으로 문학에 접근하는 법을 강의했지만 그 이전에 반드시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개인적인 반응과 목소리를 마음껏 표현하고 서로 맘껏 토론하게 했어요. 그리고 학생들의 과제에 일일이 댓글을 달아주고 공감해주면서 소통하기 시작했죠. (사실 여러과목을 강의하면서 몇십명의 과제를 다 읽고 하나하나 댓글을 써주는 것은 여간 시간이 많이 들고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수업이 거듭될수록 학생들의 태도와 반응들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설마 교수가 내 과제를 읽을까 하고 대충 형식적으로 써오던 학생들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죠. 많은 학생들이 문학을 통해 자신 마음속에 억압되어 있거나 잠재되어있던 감정들, 아픔, 상처,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을 하나씩 만나고 자유롭게 안전한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자신들의 독특한 생각과 경험이 평가받거나 비난받지 않고 어떤 것이라도 존중되는 것을 매시간 경험하게 되자 학생들은 차차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아가게 되고 자존감도 높아지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또한 15년간 매년 드라마 수업시간에는 영어연극을 공연하고 학생들은 이런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와 협동, 창조 작업을 통해서 성격이나 대인관계의 변화 뿐 아니라 잠재된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기도 했죠. 이게 바로 문학치료적인 수업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그럼 본격적으로 문학치료사의 길을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앞에서 말했던 20여년 동안의 문학수업을 통해 경험한 학생들의 변화가 핵심이었던 것 같아요. 심지어 문학을 증오한다고까지 (얼마나 문학이 어렵게 느껴졌으면 두려워서 그랬을까요?) 선언했던 학생들이 교실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또는 졸업생들의 편지를 받으면서 문학과 글쓰기의 치유적 힘에 대해 확신이 들었죠. (물론 나 자신 어려서부터 써온 일기의 치유적 힘이 있었지만 제게는 그게 너무 자연스런 일이어서 미처 깨닫지 못했었거든요.) 그래서 교수로서 정년퇴임을 하기 전에 남은 내 삶을 무엇에, 어떤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하여 살아갈까 고민하다가 문학치료라는 학문을 개발해야겠다 생각했죠. 그리고 미국에서는 이미 200년 전부터 의사들을 중심으로 병원에서 문학치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과 미국이 세계적으로 문학치료와 글쓰기치료가 가장 오래전부터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시행되며 학교, 병원, 상담, 복지, 재활, 아동, 심리치료 등 수많은 분야에서 정착된 분야임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연구년 때 문학치료를 공부하기 위해 떠났죠. 그런데 J-1(교환교수비자)비자를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일단 모든 짐을 챙겨서 여행비자로 무작정 갔어요. 큰 위험을 감수한 거죠.
제가 살면서 깨닫는 것은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다음에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늦는다는 거예요. 간절하면, 내 마음과 열정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다음 확신이 서면 용기내서 일을 시작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생기기 마련인 어려움은 그때그때마다 해결하자는 용기로 살아왔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제 경우 그렇게 간절한 확신과 열망이 있으면 길이 열리는 경험을 많이 했어요. 정말 드라마틱한 일들과 인연을 통해 덴버에 정착하고 덴버대학원 연구교수 비자를 받게 되었죠. 그곳에서 미리 국제전화로 인터뷰한 제 멘토이며 수퍼바이저 그리고 동료이며 의자매가 된 저널치료의 세계적 대가인 K. 애덤스를 만나 수업과 수련을 받게 되었고요. 모두들 문학치료 하나 배우러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날아온 저를 신기하게 생각했어요. 제가 문학치료사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한 최초의 동양인이었거든요.
>>영문학 유학 후 다시 떠난 문학치료 유학 후 후기를 들려주세요. 제가 한국에서 가르치던 방법이 결국 문학치료적인 수업이었음을 알고 반가웠어요. 공부하러가서 몇 달 후 전미문학치료학회에서 (저의 수업 경험에 의한 확신이 있었기에) 세션을 맡아 진행하겠다고 신청하게 되었죠. 그리고 선정이 되었고요. 저의 경험과 확신이 그런 용기를 내게 한 것 같아요. 미국의 전미문학치료학회(NAPT)는 일 년에 한번 일주일간 열리는데 큰 호텔을 빌려서 미국 전 지역에서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참여해요. 세션도 수 십 개가 되고 사람들이 각 세션마다 참여비를 내고 선택을 하죠. 그러니 웬 문학치료사도 아닌 한국 사람의 수업에 누가 등록을 하겠어요. 그런데 호기심으로 참여한 8명의 참여자들이 모두 다 놀라운 반응을 보였어요. (세션당 보통 10-15명 정도 참여합니다.) 일일이 악수하면서 감동적인 인사를 하였고 어떤 분은 당신 같은 교수가 있으면 내가 당장 그 학교에 다녔을 거라는 칭찬을 해주었죠. 그 후 2년 뒤 다시 학회에서 워크숍을 하게 되자 그 세션에는 수많은 상담사와 교수들이 등록을 해서 정말 기뻤어요. 수업 중 저를 주제로 시를 써서 주신 교수도 있었고 제 발표와 워크숍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한결 같이 가장 높은 최고점의 평가를 해주어서 너무나 기쁘고 또 감사했죠.
그 후 자격증 취득 시에는 우수 치료사례로 인해 미국 전미문학치료학회(NAPT)에서 “기쁨의 씨앗상” 수상도 하고 NAPT공식한국대표(Official Representative)로도 역임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한민국사회공헌대상(교육부문), 파워코리아대상(신지식인)등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자격증 취득 후에는 열심히 활동을 했어요. 일단 애덤스의 저널치료센터 한국지소인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를 열었고요. 지난 15년간 12권의 역저서와 수많은 문학치료 논문들, 그리고 기고문과 칼럼 등을 써서 문학치료를 알리기 시작했죠. 학교 수업으로도 벅찬 일정인데 먼 작은 지방도시나 늦은 밤 강의해야하는 곳까지 마다하지 않고 사명감으로 달려갔던 거 같아요. 취학 전 아동부터 무학독거노인들까지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그리고 언론인들의 클럽이나 로터리클럽부터 교정시설까지, 공무원, 교사, 대기업간부, 청소년, 부모, 상담사/치료사들, 도서관사서 등 수많은 분야의 사람들을 대상 연수프로그램이나 워크숍을 하고 있어요. 그 외 전국 5개 병원에서 암환자, 장기요양환자, 뇌병변환자 대상 글쓰기문학치료모임을 한 달 간 이끌었죠. 각종 라디오나 티비 등의 매체에 출연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제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제대로 된 문학치료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문학치료사를 개인적인 센터에서 단기간 몇 과목으로 자격증을 주는 것 말고 심리학/상담학 과목들과 함께 제대로 된 대학원 교육으로 치료사를 교육할 수 있는 커리를 갖춘 대학원을 만드는 게 제 꿈이었고 나사렛대학교 대학원에 국내 유일의 단일 전공 (연계전공이 아닌) 문학치료학과를 개설하게 되었어요. 또한 예술치료사로서의 활동범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61살의 나이에 상담심리대학원에 입학하여서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학교 학생상담센터에서 많은 경험과 배움을 얻었죠. 그 사이 전문서적이 아닌 일반인을 위한 저서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카페]가 문화관광부선정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고요. 현재 대학원에서 정통 문학치료를 한국에 알리기 위해 열심히 미래 문학치료사를 교육하고 있습니다. (2020년 현재 정년퇴임 후 대학원에서 명예교수로 교육을 계속하면서 이제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에서 문학치료사 교육과 수련과정을 운영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문학치료적 방법이 학생들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자세히 듣고 싶어요. 이미 설명한대로 문학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했죠.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를 보면 우편배달부가 네루다(페루의 세계적인 시인)에게 시는 시인이 아니라 읽는 독자의 것이라고 말하죠. 일차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만일 오늘 이 문학작품을 읽고 그 의미를 어떠어떠하게 느꼈다면 그 작품을 지금 내게 그런 의미인 거예요. 그런데 같은 작품(시, 소설, 영화, 일기, 노랫말 등)이 일 년 뒤에 전혀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면 그 시점에서 그 작품은 내게 그런 의미인거요. “좋은 시는 내가 성장함에 따라 함께 성장한다”라는 말처럼 말이죠.
특히 글쓰기는 (수업 중에는 개인의 경험과 느낌을 써오는 감상문 과제) 자신의 내면의 아픔이나 고통과 스트레스를 털어놓고 정화하는 아주 중요한 치료적 역할을 하죠. 그러나 배출만 한다고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죠. 문학은 공감을 해주거든요. “나는 고통 받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아니, 어쩌면 아무도 모르게 독백하고 있는)나에게 문학은 “너만 그런 게 아냐. 나도 그래(you are not alone)”라고 말해주죠. 게다가 저는 학생들이 개인적인 감상문을 써올 때에 그 과제에 무슨 말을 썼든지 열심히 공감하거나 긍정적 칭찬을 해줄 곳을 찾아서 댓글을 달아주었어요. 보고서 양이 많고, 수업도 여러 과목인데 그것들을 매주 다 읽고 대답을 해줘야하니 정말 너무나 힘든 일이지만 그게 학생들에게 정말 큰 힘이 된 거 같아요. 학생들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공감 받고 존중받는 체험이니까요. 내담자가 무슨 말을 하든지 일차적으로 상담자가 들어주고 공감해줄 때 치유가 시작되잖아요. 그런 활동들을 제가 10년 넘게 교실에서 했는데 학생들이 계속 변해가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아가기 시작했어요. 자존감이 높아지고 집중력, 학업성적도 오르죠. 친구나 부모와의 갈등 해결에 도움이 되면서 관계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도 결혼해서 학부형이 된 제자들이 찾아와 수업 중 함께 읽은 이야기, 영화, 등 수업 내용을 다 기억하고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변했고 성장했는지 부모가 되어보니 더 실감한다고 해서 제가 더 감동을 받았어요.
문학수업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학부 학과 과목 중에 문학/저널치료를 통한 감정치료와 관계문제를 다루는 과목도 개설했는데 학생들에게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지난 주 스승의 날에도 졸업생이 편지에서 그 수업에서 받은 도움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소극적이고 자존감이 낮던 자신이 이제는 직장생활에서 자신의 의견을 떳떳이 주장하고 또한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게 놀랍다면서요.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결코 순조롭지 않았어요. 학생들은 처음엔 시험보기 쉽게 판서해서 정리해주는 수업에 익숙해있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정서와 접촉하게 하며 토론하고 발표하는 저의 문학수업방식이 낯설어서 훨씬 힘겨워하죠. 저는 제 문학 수업이 지식을 (더구나 이제는 정보나 지식은 인터넷으로 즉각 접할 수 있는데) 전달하는 것이 주 목적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위에서 말 한대로 지식이 머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경험으로 느끼는 살아있는 전인적 교육이 되도록 부족하지만 늘 노력하고 있어요. 한 학기 수업 후 학생들이 단순히 영문학지식 혹은 문학치료에 대한 학문적 지식이 늘었다기 보다는 자신이 성장했다, 자기 자신과 친구, 가족,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느낀다면 제 수업을 잘 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도 그런 말이고요. 그리고 그런 경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해도 전과 다르게 더 깊은 의미를 읽어내는 능력이 생기죠.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삶을 읽는 힘과 문학을 읽는 힘과 치유의 힘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요.
>>문학치료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문학치료란 무엇인가요? 간단히 말하면 심리치료의 한 분야로 치료적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치료사와 내담자(참여자)사이의 상호작용에 문학과 글쓰기라는 언어의 힘을 활용하는 방법이죠. 문학치료에서 말하는 문학은 교실에서처럼 문학이 가진 예술적 의미나 해석, 교훈적 주제나 책을 통한 교육(인성교육이라 할지라도)과 무관해요. 독서토론이나 독서코칭과는 다른 심리치료의 영역입니다.
문학, 특히 시는 그 상징성과 이미지 때문에 내담자의 마음속에 있는 해결되지 못한 문제나 감정, 고통, 상처, 스트레스 등을 이끌어내는 ‘촉매’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 힘을 가진 작품을 선정하는 것이 문학치료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죠. 특히 말로 하는 상담과 달리 글쓰기/저널치료를 적극 활용하는데 글이 갖는 독특한 치료적 힘은 의학영역에서도 인정되고 있습니다. 글쓰기문학치료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 치료워크숍에서 체험에 보는 것이에요.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꼭 한번 제대로 자격을 갖춘 치료사의 워크숍에 참여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소장으로 계시는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는 문제해결과 치유, 성장을 위해 문학(시와 영화 등 문자활용 매체)과 글쓰기를 활용하는 심리치료인 [문학치료]와 [저널치료]를 위한 학문적 연구(저술, 논문, 워크숍, 강의) 및 치료활동을 목적으로하는 연구소에요. 문학과 글쓰기의 힘을 통해 상처 입은 마음의 치료, 심리적 외상 치료, 관계의 치료, 부적응치료, 스트레스 해소/치유, 그리고 열등감, 불안, 강박, 분노, 우울, 낮은 자존감 같은 등 여러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감추어진 내면의 참자기를 찾아 실현시킴으로서 잠재력과 창의력 개발로 질 높고 풍성하며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저는 글쓰기치료와 문학치료 전문가로서 뿐 아니라 상담심리사로서 집단문학치료 뿐 아니라 개인상담도 하고 있어요.
연구소활동으로는 2004년 이후 지난 15년간 12권의 역저서와 수많은 문학치료 논문들을 써서 문학치료를 전하고 교육하고 있습니다. 구체적 활동으로는 취학전 아동 창의적 글쓰기치료, 중고등학생 대상 문학치료, 인터넷중독 초중생치료, 취약계층독거노인을 위한 문학치료/회고록쓰기, 학교폭력 관련 학생들 치료, 학부모 교육, 교사대상 연수, 공무원 간부연수, 기업체 간부문학치료, 남산클럽, 로터리클럽, 교정시설, 도서관, 전국 5개 병원에서 암환자, 장기요양환자, 뇌병변환자대상 글쓰기문학치료모임, 인문학특강, 각종 학회활동, 라디오나 티비 등의 매체에 출연. 그 외 각종 매체에 기고문과 칼럼으로 대중들에게도 글쓰기문학치료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국공인문학치료전문가(CPT)이며 공인저널치료전문가(CJT)/저널치료수퍼바이저입니다. 또한 국내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애덤스의 [저널치료Ⓡ]기법을 교육할 수 있는 공인자격증(CIJTTS)소지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치료사로서의 비전 치료자이든 아니든 사는 건 "나 자신이 되어가는" 끊임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끊임없는 여정이죠. 그 여정의 선택은 내가 어떻게 살지에 대한 각자의 가치관과 철학에 따른 “선택”에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내 길만이 옳은 것도 아니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제가 하는 일이 하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제 한계를 인식하고 늘 스스로를 성찰하며 공부해야하죠. 모든 결정에 현실적 이익보다는 이것이 나를 성장시키는 것인지를 생각 하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성장을 통해 타인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며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뒤늦은 나이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어려운 유학의 길을 떠났을 때도, 나이 50이 넘어서 문학치료를 공부하러 미국에 갔을 때도, 60세 초반에 또다시 새로운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자격증을 취득한 것도 그 모두 현실적 성공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채우고 성장하고자 하는 내면의 자아실현에 대한 열망이 가장 큰 동기부여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자기실현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 단 한 사람에게라도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하겠다고 늘 소망합니다. 직업적으로도 늘 끊임없이 배우고, 진솔하게 느끼고, 삶의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자신을 성찰하고 성장하며 "문학치료사 되어가기"를 꾸준히 계속하는 일. 이게 저의 비전입니다.
그리고 제 전문분야에 대한 꿈도 있죠. 모든 이론은 충분한 시간 동안의 실제 경험으로 검증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섣부르게 책을 내고 싶지 않았어요. 15년의 강의와 다양한 글쓰기문학치료경험을 바탕으로 문학치료의 이론와 실제에 대한 책을 쓸 때가 된 거 같아요. 사실 제가 정말 쓰고 싶은 책은 전문서적이 아니라 다른 책이지만 더 늦기 전에 전문서적을 내야할 사명감을 느낍니다.
그 외에는 미국처럼 전국의 문학치료 관련의 각 센터, 연구소 등을 모아 교육체계나 자격증의 통일을 이루는 하나의 협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모두 정말 많은데 제 건강문제와 시간이 허락해줄지 모르겠습니다. 남은 내 삶의 시간이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본인의 비전을 위해서 노력하는 점 모든 직업이 다 나름 힘들지만 치료사/상담사의 일은 특히 정서적으로 소진이 정말 많이 되는 직업이에요. 따라서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또한 저는 오해를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내담자에게 또한 학생들에게서도 상처를 받기도 하고요 휘청거리기도 하고, 오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따라서 정서적 지지를 얻도록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여행도 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들-- 문학, 음악, 미술, 영화--을 더 많이 즐기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서적 소진이나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해 저도 매일 시를 읽고 글쓰기를 합니다. 좋아하는 고전음악을 듣고 또 여행도 가고 미술관도 자주 가고 (서로 바쁘지만) 마음이 통하는 가족과 대화를 자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동안 많은 일을 하느라 신체적 건강을 돌보기 힘든 삶을 살아왔었기 때문에 지친 몸을 위해서 요즘은 수면관리, 제대로 식사하기, 운동 등으로 좀 더 건강관리에 힘쓰려고 노력합니다.
>>치료사의 커리에서 다음 단계로 밟을 수 있는 일들이 있다면? 교육자가 될 수 있겠죠. 사실 문학치료를 가르칠 수 있는 공인된 수퍼바이저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가 너무 부족합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어디서 취득한 자격증인지도 모르는 치료사나 전문가라는 명칭을 스스로 사용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문학치료사의 자질 글쓰기문학치료사로서의 전문적 지식과 공감능력.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받아야 함. 상담심리사의 윤리규정을 따르고 그 기준에 맞아야함. 언제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수퍼바이저가 있어야 함. 자신의 한계를 늘 알고 있어야 하며 또한 문학치료사이므로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적 소양을 갖추어야함. 그리고 문학치료사이므로 무엇보다 다양한 문학적 자원이 풍부해야함. 늘 끊임없이 '치료사가 되어가기'를 노력해야하며 항상 공부하고,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하며 성장과 성숙을 위해 노력해야 함.
>>문학치료사가 되기 위한 커리어패스 -문학수업이 필수 선수과목 -상담심리학 관련 수업들 (예: 상담 및 심리치료, 이상심리. 발달심리, 집단역동, 심리검사 등등) -대학원에서 문학치료관련 전공 이론과 실습, 동료실습, 실습지도(수퍼비전) -문학치료 체험 필수(자신의 문제해결과 실습을 통한 실제공부) -기본 2년이상 440시간 이상의 이론 수업 및 수련과정(소정의 수퍼비전 포함) 필수적으로 이수 -자격증 취득(문학치료사/facilitator) -상담사 자격증이나 의료/건강관련 공인자격취득자, 또는 의사의 경우 추가 수련시간을 통해 문학치료전문가(therapist)가 됨.
>>대한민국에서 '치료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상담문화, 치료문화가 보편화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상담이나 심리치료, 문학치료를 포함한 예술치료가 건강보험의 대상이 되지 못함). 특히 공인된 자격증에 대한 기준이 통일되지 않아서 무엇보다 정통적인 이론과 실습 그리고 수퍼비전을 통한 훈련과정을 거치지 않고 개개인이 스스로를 치료사, 또는 전문가라고 칭하면서 자격증을 주는 민간기관도 많습니다. 반드시 어떤 기관에서 어떤 사람을 수퍼바이저로 두고 치료사나 전문가자격증, 그리고 수퍼바이저 자격을 얻었는지 확인해야합니다.
>>학생들에게 문학치료사로서 한마디 해주신다면? 1. 청소년기 학생들은 정체성 혼돈을 겪는 시기입니다. 내 감정이 통제가 되기도 힘들고 아무도 내 진짜 마음을 공감해주는 것 같지 않고 참 외롭죠. 자신에게 진정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을 소통할 수 없는 때 인간은 가장 외롭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과도한 경쟁과 쉴 틈 없는 학업스케줄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분노, 무기력, 불안, 수치심, 우울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글쓰기문학치료사로서 저는 힘겨운 성장의 시기에 있는 학생들에게 저널(journal/일기)쓰기를 적극 권합니다. 요즘은 휴대폰으로도 얼마든지 비밀문서를 작성할 수 있어요. 따라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선생님이나 부모,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분노나 억울함, 슬픔. 외로움, 수치심 등 일상에서 느끼는 버거운 감정이 있을 때, 무엇보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비밀이 있을 때 안전한 비밀일기장에 토해내듯 하고 싶은 말 실컷 다 털어놓기를 바랍니다. 저널(일기)는 아무 비난도 비판도 없이, 또한 반박이나 충고 없이 내 이야기를 그 무슨 내용이든, 그리고 언제든, 들어주고 비밀을 간직해주는 가장 믿을만한 친구이며 상담사입니다. 비밀로 글을 보관하기 어렵다면 일기장에 다 쏟아 낸 후 찢어버리거나 컴퓨터에서 쓴 일기(문서)를 지워버리면 됩니다.
2. 문학작품을 많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동서양 고전 문학을 읽으시길 권합니다. 공부를 위한 독서가 아니라 문학과 마음을 나누는 즐거운 독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시를 가까이 하시길 적극 권합니다. 한 미국시인의 말대로 문학/시는 우리가 어떤 외롭고 고통스런 거리에 홀로 서있든 누군가는 그 길을 먼저 걸어갔고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공감 받는 치유적 힘과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주죠.
3.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우리는 실패와 실수를 통해 성장합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경우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남의 인정에 목마르기 보다는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시간들이 여러분의 생에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되기를 기원드립니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상처는 천천히 녹여낸다 - 과거의 상처
누구나 가슴 속에 쓸어도 쓸어도 치워지지 않는 굳어버린 덩어리 하나쯤 떠안고 살아갑니다. 이미 죽은 색깔을 하고 있는 과거의 덩어리이지만, 없다고 외면하고 잊었다고 눈 감아도 문만 열면 꼭 발끝에 차이는 돌부리처럼 가슴 안에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억지로 쓸어버리려 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공동주택 밖의 계단을 비질하는데 안 쓸리는 작은 덩어리 죽은 나뭇잎 색깔의 알 수 없는 덩어리 이 꼼꼼한 비질에도 떨어지지 않는
지금 안 쓸리는 것은 지금 쓸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장맛비가 한 차례 다녀간 뒤에 굳은 그것은 저절로 풀릴지 모릅니다 죽은 색깔의 그것은 빠져나갈지 모릅니다
(......)
사는 동안 쓸렸으면 더 좋았을 계단 밖에 나와 앉은 꼼짝 않는 덩어리 - 이진명 <지금 안 쓸리는 것은> 중에서
때로는 환상도 위로가 된다 문학치료 시간에 각자에게 그 ‘덩어리’가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다음은 그때의 답변 중 일부입니다.
“내 안에 안 쓸리는 것은 하소연이다. 제발 내 말을 들어주고 내 말에 지지해달라고 애걸하는 것이다. 그것은 엄마의 하소연을 닮았다. 9년간 지속된 나의 직장 동료인 B의 하소연을 닮았다. 이들과 나의 하소연의 공통점은 자기주장이 없고, 자기 색깔이 없고,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한 삶인데, 본인은 한이 많아서 자신들이 양육해주어야 할 어린 사람에게 투덜거리는 공통점이 있다. 내가 희생자였는데, 가해자로 살고 있다.”
“시에서는 ‘계단 밖에 나와 앉은 꼼짝 않은 덩어리’라 했지만 난 그 덩어리를 바로 ‘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나도 모르게 ‘나는 계단 밖이 아니라 아직 계단 안에 있는 덩어리인 것 같다’라고 글을 쓰고 있어서 놀랐다. 내가 덩어리였던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뭉쳐온 것이다. 그 누구에 의해서도 아니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온 것이다. 이제는 그 덩어리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갇힌 내가 아니라 밖으로 나가고 싶다. 이제는 조금씩 그 덩어리를 밀어내고 싶다.”
‘덩어리’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보면 사람마다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옵니다. 누구는 살면서 쓸어도 쓸어도 사라지지 않는 그 덩어리가 ‘하소연’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어느새 가슴 속 그 응어리를 길고 긴 글로 실컷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덩어리가 분노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주 작은 일에도 분노가 치밀어 올라 무척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그 덩어리가 자기 자신임을 발견하고는 왜 단단한 덩어리 속에 자신이 갇혔는지를 성찰했습니다. 상처가 아물 때는 딱지가 생깁니다. 상처는 그 딱지가 떨어져야 낫습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불편하다고 억지로 딱지를 떼어냈다가 상처에서 다시 피가 나던 기억,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딱지 아래 새로운 살이 돋아나야만 딱지는 저절로 떨어집니다. 그러니 지금 쓸리지 않는 덩어리가 아직은 아프더라도 그 또한 내게 필요한 추억일 수 있습니다. 아직은 그거라도 붙잡아야 내가 살 수 있는 환상일 수 있습니다. 환상이라도 마음을 붙여야 살 수 있는 게 사람이니까요. 가끔 환상은 고통스런 현실을 견디게 해줍니다. 다만 잠시일 뿐이지만 말입니다.
상처는 천천히 조금씩 녹여내야 한다 얼마 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다시 보다가 그만 눈물이 났습니다. 젊어서도 이미 몇 번이나 본 영화였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전에 볼 때와 전혀 다른 장면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남부가 전쟁에서 패하고 스칼렛은 그 화염 속 전쟁터에서 천신만고 끝에 자신이 평생 짝사랑하는 애슐리의 부인 멜라니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녀는 힘들 때마다 마음속으로, 마치 기도처럼 애슐리를 부르면서 견딥니다. 그와 한 단 하나의 약속 때문입니다. “스칼렛, 나의 부인 멜라니를 지켜줘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현실과 대결하는 스칼렛의 용기는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스칼렛은 애슐리가 자신을 사랑하는 줄만 알고 그 사랑을 구원의 약속처럼 의지하며 온갖 어려움을 견딥니다. 결국 뒤늦게야 그것이 환상이었음을 깨닫지요. 환상에 매달린 그녀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은 맞지만 그녀에게 그 환상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그 고난을 견딜 수 있었을까요. 그런 스칼렛을 보면서 환상일지라도 사랑의 힘이 필요하고, 결국 그것에 매달려 살아야 하는 게 인간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던 것입니다(물론 스칼렛은 그 환상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놓치고 말지요). 제자 중 한 사람은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외도한 남편과 그것을 감싸고도는 시어머니 사이에서 고통 받다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이혼을 했습니다. 이후 그 제자는 다시 좋은 사람과 선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이유로 상대는 마음을 접고 떠났습니다. 그때 제자가 했던 말이 가슴에 남아 나를 아프게 했습니다. “선생님, 요즘 저는 그 사람이라도 그리워하는 힘으로 살고 있어요. 저와는 인연도 아니고 사랑할 만큼 사귄 것도 아니지만 환상이라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으면 지금 상황이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요.” 물론 지금 그녀는 더 이상 그 환상에 기대어 살지 않습니다. 자신의 갈 길을 용감히 가고 있지요. 환상은 현실을 견딜 수 없는 인간들이 잠시 쉬어가는 섬일 뿐입니다. 다만 그 환상을 현실과 혼동할 때 또 다른 상처를 만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또 다른 병이 드는 것과 같습니다.
슬퍼하는 것을 허락하기 상처는 그 깊이와 크기마다 새살이 나는데도, 그 굳은 딱지가 풀어지는데도 각기 다른 시간이 걸립니다. 그 덩어리가 무엇이든 간에 쏟아지는 장맛비에 응어리가 풀려 떠내려가듯 그렇게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는 상처의 딱지가 채 굳기도 전에, 그리고 상처에서 새 살이 돋기도 전에 이내 그 딱지를 뜯어내버리고 싶어 합니다. 없던 일처럼 억지로 잊으려는 것이지요. 차라리 그 굳은 아픔과 기억을 용감히 끌어안고 조금씩 녹여내야 합니다. 그 아픔을 녹여내는 ‘장맛비’는 고통 속에 갇힌 ‘나’를 끌어안고 함께 울어주는 스스로의 따뜻한 연민과 무조건적인 사랑의 눈물일는지도 모릅니다. 슬픔은 곧 치유의 감정입니다. 브래드쇼는 만일 슬퍼하는 걸 허락받는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치유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통의 분출과 표현은 그것이 분노의 외침이든, 장맛비 같은 통곡이든 부끄러운 것도 나약함의 표시도 아닙니다. 그것은 곧 ‘내가 살아나기 위한’ 절실한 무엇입니다. 눈물이 죽은 이를 살려내거나 과거를 되돌려놓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과거와 함께 죽어 있는, 살아남았으나 죽은 자처럼 굳은 덩어리가 되어 있는 나를 녹여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살아날지 모릅니다. 가슴 한구석에 돌부리처럼 남아 있는 단단한 덩어리와 그 속에 갇혀 혼자 두려워하고 있는 ‘과거의 나’를 보듬으며 이렇게 말해주세요.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그리고 장맛비 같은 눈물로 흠뻑 다독여 녹여주세요. --출처: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카페]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왜 나는 아프다고 말하지 못할까? - 상처의 대물림
영화 <다크나이트>를 보면 악의 상징인 조커가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과 같은 고통을 당하면 그 누구라도 자신과 같은 악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고자합니다. 시민들의 희망인 고담시의 정의로운 검사 하비덴트는 그런 조커에게 희생되고 맙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서 조커와 똑같은 악의 화신이 되는 것이지요. 영화에서 보여주는 하비덴트의 이중적인 얼굴, 즉 반은 손상되기 이전의 온전한 모습, 나머지 반은 화상을 입고 괴물로 변한 얼굴은, 조커가 원하던 대로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고 만 안타까운(그러나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 건강의 중요성이 일깨워지면서 상담과 치료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의료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야뿐 아니라 자가치료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특히 미술, 음악, 연극 등의 예술치료에 이어 문학치료와 글쓰기치료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지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왜 이런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나는 아프지 않은데, 치료 따위가 왜 필요하냐는 것이지요.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자연스럽게 관계의 문제로 고통 받는 경험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피할 수 없는 이 고통스런 관계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발견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은 악하기 이전에 심히 병들었다는 것을, 가해자는 가해자가 되기 이전에 먼저 피해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그렇게밖에 살아남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저 사람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고 말합니다. 참 슬픈 말입니다. 이 말에는 그냥 거짓말을 쉽게 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저 사람은 거짓이 생존의 수단(밥)이라는 뜻이며,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달리 살아가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그도 가해자이기 이전에 하비덴트처럼(그리고 조커처럼) 피해자인 것입니다. 가해자의 뒤에는 반드시 또 다른 가해자(특히 어린 시절의 가정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악의 승리는 상대의 파멸 혹은 선의 파멸이 아니라 상대를 또 다른 악으로 만든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나는 ‘흡혈귀론’이라고 말합니다. 흡혈귀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단순히 누군가를 죽게 하지 않습니다. 흡혈귀는 자기에게 물린자를 또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켜야만 살 수 있는 상태, 즉 자신과 똑같은 또 하나의 악을 만들고야 맙니다. 이렇게 악은 대물림되듯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그는 괴물과 싸웠으나 괴물이 되지 않았다”는 니체의 말은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이 병들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병을 전염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성복 시인의 말했듯이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 점占치는 노인과 교통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 이성복, <그날> 중에서
나보다 더 약한 상대를 희생자로 삼는다. 어떤 부모도 자신의 질병을 자녀에게 대물림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독감에 걸렸을 때 자녀 앞에서 대놓고 재채기를 하거나 기침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부모도 자녀의 입에 일부러 담배연기를 일부러 불어넣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독감 균보다, 담배연기보다 더 치명적인 파괴적 언어의 독을 아이들 앞에서 재채기처럼, 담배연기처럼 마구 쏟아내고 뿜어냅니다. 내가 들었던 더없이 끔찍한 그 말들을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고스란히 그 누군가에게 다시 퍼부어댑니다. 내가 가장 싫어했던 부모의 잔소리나 비난을 무의식중에 나의 자녀에게 똑같이 반복하는 경우는 아주 흔한 일입니다. 우리는 내가 받았던 유형과 무형의 폭력을 그 누구에겐가 다시 휘두릅니다. 이때 그 누군가는 나에게 다시 복수할 힘이 없는 안전한 상대, 즉 나보다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녀보다 더 연약한 존재들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악은 무엇보다 부모에게서 (사실은 우리가 누구보다 먼저 보호해주어야 할) 자녀에게로 대물림됩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복수의 대상을 찾지 못한 경우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복수를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찌른 칼을 뽑아서 다시 내가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입니다. 이는 곧 우울증이 되고 자존감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폴 리쾨르(Paul Ricoeur)는 “돌출된 악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악”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나만의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나를 병들게 한 그 불행이 그대로 그 누군가에게 대물림되기 때문입니다. 치료받지 못한 희생자인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가해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건강해져야 한다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정신분열증에 걸린 어머니가 자주 발작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예고 없이 발작을 일으키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아이는 매번 공포에 질렸지만 아무에게서도 어머니의 그런 행동에 대해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소년은 자라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아주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두려워하는 어린 딸의 모습을 보며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이건 꾸며낸 이야기야. 아빠가 곁에 있잖아”라고 위로해주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정말 딸을 보호해주는 다정한 아버지일까요? 그는 “자기 아이의 두려움을 교묘하게 조종하면서 자신이 강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라고 심리학자 엘리스 밀러(Alice Miller)는 말합니다. 그의 의식적인 소망은 자신에게 박탈되었던 것, 즉 보호와 위로, 공포에 대한 설명을 딸아이에게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아버지가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전해준 것은 바로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두려움과 재난의 예측 그리고 대답을 듣지 못한 질문의 대물림이었습니다.
“왜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이토록 두렵게 하는 거지?”
그래서 우리에게 치료가 필요한 것입니다. 부모 자신이 먼저 과거 속 고통의 거미줄을 거두어내고, 자신과 자신의 행복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도록 건강하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나는 불행하면서 자녀에게 행복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가 먼저 행복하면 자녀는 자연히 행복해집니다. 나의 고통을 가장 사랑하는 자녀와 가족, 또는 그 누군가 무고한 사람에게 반복해서 악을 전파하는 불행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는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당신의 정원에서 악마를 쫓아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악마를 당신 아들의 정원에서 다시 발견할 것입니다.”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료 카페>(생각속의 집) 중에서 저작권이 있으므로 정확한 출처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음.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못난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 존재의 가치 (c)이봉희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난 당신 없인 안 돼.” 오로지 부모에게만 의지해야 하는 어린아이도 온 마음으로 ‘난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없으면 안 돼요’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혹시 알고 있나요? 부모님도 나 없인 안 된다는 것을. 아직 약하고 부족한 내가 일방적으로 부모님을 필요로 한다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부모님은 나 없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부모님도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가슴 벅차던 어린 날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나요? 밤낮 없이 속만 썩이고 실망시키는 말썽꾸러기,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것도 없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그것이 바로 부모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앤 머레이(Anne Murray)의 <당신은 내가 필요했어요/You Needed Me>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에 나오는 가사가 좀 이상합니다. 힘들고 지치고 넘어지고 외로운 것은 나였습니다. 그런 내게 ‘당신이’ 다가와서 손을 내밀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절실히 당신을 원하고 필요로 한 사람은 바로 나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당신이 나를 필요로 했었다’고 노래합니다.
내가 추울 때 당신은 내 손을 잡아주었고 길을 잃었을 때 날 집으로 데려다주었고 막다른 길목에 몰렸을 때 내게 희망을 주었으며 나의 거짓도 진실로 다시 바꾸어주었습니다. 날 친구라고 부르기까지 하면서.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예요.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예요. - 앤 머레이,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예요> 중에서
조건 있는 사랑에는 감동이 없다 어린 시절 흔히 듣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여러 개의 아름다운 인형 중에서 하나의 인형을 유독 아꼈습니다. 항상 자기 품에 꼭 끌어안고 다닐 정도였지요. 그런데 그 인형은 여러 개 중 가장 못생기고 팔도 한쪽이 떨어져나간 낡고 초라한 인형이었습니다. 누군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가야, 왜 그 못생긴 인형을 그렇게 꼬옥 품고 다녀?” 그러자 아이가 말했습니다. “다른 인형은 예쁘니까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지만 이 인형은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좋아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우리의 관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조건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스러워야 한다는 것, 즉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야 사랑을 받는다는 조건입니다. 하지만 사랑에도 자격이 있다면 얼마나 사랑이 힘들어질까요? 진정한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조건이 있는 사랑에는 감동도 없습니다. 사랑은 내가 사랑스럽지 못할 때 먼저 나에게 다가옵니다. 못난이 인형을 사랑한 어린아이처럼 말입니다. 내가 감히 사랑한다고 말도 못하는 그때 나를 먼저 사랑해줍니다. 사랑은 그렇게 항상 나보다 ‘먼저’인 것입니다.
“너를 잃을까봐 겁이 났단다” 영화 <라이언 킹>에서 아버지 무파사는 어린 사자 심바에게 넘어가서는 안 될 경계를 지어줍니다. 하지만 심바는 아버지의 경고를 거역하고 코끼리 무덤에 갔다가 하이에나들에게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합니다. 그 순간 아버지가 나타나 심바를 구하지요. 무파사는 훈계하고자 심바를 부릅니다. 심하게 벌을 받을 줄 알고 겁에 질려 아버지에게 다가간 심바는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자기도 아버지처럼 용감해지고 싶었다고, 아버지처럼 아무것도 무서운 게 없고 겁낼 것이 없는 사자가 되고 싶었다고……. 그러자 무파사는 어린 심바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오늘 두렵고 겁이 났단다.... 너를 잃을까봐!”
그 순간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은 심바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심바는 아버지의 품에서 말합니다. “우린 친구죠, 그렇죠?”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동물의 왕인 아버지도 나를 잃을까봐 두려워한다니, 심바는 얼마나 감동을 받았을까요. 그것이 사랑입니다. 나의 행동과 상관없이, 조건 없이 ‘나’를 귀하게 여기고 받아주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한 어린아이가 집으로 막 뛰어 들어오며 엄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엄마! 하나님도 우리 없인 못사신대.” 그렇습니다. 신도 우리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니까요. 하나님은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셔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분이라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이때 피곤과 곤비는 영어로 ‘sick and tired’라고 표현합니다. 하도 반복적으로 겪다보니 지쳐서 진력이 난다는 뜻입니다. 상대에게 실망해서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피곤해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자꾸만 나에게 실망하고 지쳐 가는데, 그래서 자존감도 용기도 희망도 다 사그라지고, 자꾸 눈치도 보여서 그만 포기해버리고 싶은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괜찮다고, 내가 사랑하는 자녀니까 눈치보지 말라고. 나는 지치지 않는다고.... 오래오래 참고 기다린다고,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왜 그럴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나의 불가능성과 나약함을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내 모습을 그대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혼자 해보겠다고 우쭐대는 어린 자녀의 연약함을 알면서도 그대로 사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아이는 분명 성장할 테니까요. 오늘도 나는 어제의 나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이 여전히 실패를 반복하는데도, 내가 필요로 하기 전에 이미 당신이 내가 필요하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나의 신음 소리까지 다 듣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위로인지요. 실망하지도 지치지도 않고 (나도 지쳐버린) 나를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힘인지요. 그 누군가가 나보다 더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큰 용기를 주는지요. 그러므로 이제 브레히트의 말처럼 ‘정신을 차리고’ 나의 길을 갑니다. 나를 필요로 한다고 고백하는, 사실은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말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Morgens und abends zu lesen>
(c)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중에서 --------------
[I am confident]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carry it on to completion until the day of Christ Jesus. - Philippians 1:6
----------------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동안(童顔), 그리고 마스크
또 다른 극의 인물을 통해 피란델로는 늙음은 “인간의 차원으로 축소시킨 고통스런 시간”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당신은 모를 겁니다. 늙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거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느끼는 그 쓰라린 경험을. 기억력이 사라짐에 대한 놀라움보다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슬픔이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때의 경험을. 늙은 육체 속에 젊고 뜨거운 심장을 느낄 때의 그 외설적인 수치심을 당신은 모릅니다."(『내가 다른 사람일 때』) 육체는 형상입니다. 그러나 그 형상은 무엇이든 삼키는 굶주린 시간의 눈 아래서 변하는 형상입니다. 시간을 멈추기 위해, 정지하기 위해, 피란델로의 인물들은 마스크를 씁니다. 마스크'의 역할연기를 통해 그들의 부끄러운 '얼굴'을 가려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작가의 주인공들은 서글픈 피에로처럼 그로테스크해보입니다. ......... 진정한 동안(童顔)은 마음의 순수함과 따뜻함을 유지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시기와 질투, 허세로 가득한 자기기만의 마스크를 쓴 얼굴이 아무리 주름이 없다한들 “어리고 아름답다”고 여겨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나의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날로 새롭다(젊어진다)’고 말한 바울의 당당함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남들이 보지 않는 나만의 거울 앞에 설 때, 아니, 나 자신의 환상의 거울도 아닌 나의 참 얼굴을 비추는 거울 앞에 설 때, 그 때 그 거울에 비칠 내 후패하지 않은 “얼굴”을 위해 오늘도 깨끗하게 세수하고 단장하고 싶습니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