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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 이성복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개를 끌고 玉山에 갈 때
짝짝인 신발 벗어 들고 산을 오르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보았니 한 쪽 신발 벗어
하늘 높이 던지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들었니
인플레가 민들레처럼 피던 시절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 웃음소리

우우우, 어디에도 닿지 않는 길 갑자기 넓어지고
우우,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기억하니

오른손에 맞은 오른뺨이 왼뺨을 그리워하고
머뭇대던 왼손이 오른뺨을 서러워하던 시절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개를 끌고
玉山에 갈 때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 웃음소리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그리워하니 우리 함께
술에 밥 말아 먹어도 취하지 않던 시절을

photo by bhlee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정호승, "아버지의 나이" 중에서)

photo by bhlee(@SFO)

그리운 사람,
때로 너무 생각이 간절해져서 전화조차 버거웠다면 쓸쓸히 웃을까?
보고 싶어서 컴퓨터 자판 위에 놓인 손가락들을 본다
그런데
손가락들이 봉숭아보다 더 붉어서 아프다
그리운 사람
조금씩만 서로 미워하며 살자
눈엔 술을 담고 술엔 마음을 담기로
(여림)

다시 쓸쓸한 날에- 강윤후 

 

오전 열시의 햇살은 찬란하다. 무책임하게

행복을 쏟아내는 라디오의 수다에 나는

눈이 부셔 금세 어두워지고 하릴없이

화분에 물을 준다. 웬 벌레가 이렇게 많을까.

살충제라도 뿌려야겠어요, 어머니.

그러나 세상의 모든 주부들은 오전 열시에 행복하므로

엽서로 전화로 그 행복을 라디오에 낱낱이 고해 바치므로

등허리가 휜 어머니마저 귀를 뺏겨 즐거우시고

나는 버리지 않고 처박아둔 해진 구두를 꺼내

햇살 자글대는 뜨락에 쪼그리고 앉아 공연히

묵은 먼지나 턴다. 생각해보면 그대 잊는 일

담배보다 끊기 쉬울지 모르고

쑥뜸 떠 독기를 삭이듯 언제든 작심하여

그대 기억 모조리 지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새삼

약칠까지 하여 정성스레 광 낸 구두를 신자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 피노키오처럼 걸어본다.

탈수기에서 들어낸 빨랫감 하나하나

훌훌 털어 건조대에 널던 어머니

콧노래 흥얼대며 마당을 서성거리는 나를

일손 놓고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시고

슬며시 짜증이 난 나는 냉큼

구두를 벗어 쓰레기통에 내다버린다.

올곧게 세월을 견디는 그리움이 어디 있으랴.

쿵쾅거리며 마루를 지나

주방으로 가 커피 물을 끓이며 나는 이제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러나 얘야,

죽은 나무에는 벌레도 끼지 않는 법이란다.

어머니 젖은 걸레로 화분을 닦으시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살아갈 날들을 내다본다. 그래, 정녕 옹졸하게

메마른 날들을 살아가리라. 그리하여

아주 먼 어느 날 문득

그대 기억 도끼처럼

내 정수리에 내리찍으면

쪼개지리라

대쪽처럼 쪼개지리라.

 

- - -


이제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리라.  옹졸하게 메마른 날들을 살아가리라. 
그러다
아주 먼 어느 날  문득 그대 기억 도끼처럼 내 정수리에 내리찍으면 쪼개지리라 대쪽처럼 쪼개지리라.


버려진 손- 길상호

공사장 인부가 벗어놓고 갔을
목장갑 한 켤레 상처가 터진 자리
촘촘했던 올이 풀려 그 生은 헐겁다
붉은 손바닥 굳은살처럼 박혀있던 고무도
햇살에 삭아 떨어지고 있는 오후,
터진 구멍 사이로 뭉툭한 손 있던
자리가 보인다 거기 이제 땀으로 찌든
체취만 누워 앓고 있으리라
그래도 장갑 두 손을 포개고서
각목의 거칠게 인 나무 비늘과
출렁이던 철근의 감촉을 기억한다
제 허리 허물어 집 올리던 사람,
모래처럼 흩어지던 날들을 모아
한 장 벽돌 올리던 그 사람 떠올리며
목장갑은 헐거운 생을 부여잡는다
도로변에 버려진 손 한 켤레 있다
내가 손놓았던 뜨거운 生이 거기
상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 있다

photos by bhlee (those pictures are here only for therapeutic purposes)

I celebrate myself, and sing myself
And what I assume, you shall assume
For every atom belonging to me as good belongs to you.
I loaf and invite my soul,
I learn and loafe at my ease observing a spear of summer grass
(Walt Whitman, excerpt from Song of Myself, Part 1)

나는 나를 찬미하고, 나를 노래하네
내가 젠체 뽑내는 것, 당신도 뽑낼 수 있어
내게 있는 작은 것 하나 하나  당신에게도 모두 있으니까.
나는 한가로이 빈둥거리며 내 영혼을 초대하네
뾰족한 여름 풀잎을 관찰하며 내 맘대로 배우고 빈둥거리지. (휘트만, "나의 노래" 중)
(trans.bh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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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도 쉴 권리가 있어....

내가 좋아하는 것,  산책.
햇살이 깔꼭 침 삼기는 순간처럼 사라지고 나면 그 어스름의 시간을 늘 못 견뎌했다.
그리움이 온몸에 아슬아슬하도록 넘쳐 고이는 시간...
나는 걷고 또 걸었다.
어느 모퉁이에선가 추억처럼 돌연 내 앞을 막고 기다리고 있을 그 무엇이, 그 누군가가,
아니 어쩌면 내 안에 숨은 '내'가 그리웠다.  

내가 좋아하는 것, (누구라도 그렇듯....) 잔디, 나무, 숲, 꽃,...
특히 이름조차 없는 풀섶의 작은 꽃들은 이 엉망인 시력에도 용케 잡힌다.
대학생 때는 저녁 해지고 나면 학교 구석 나만의 나무와 벤치가 있어서 그 그늘에 숨어서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앉아있곤 했었다.  혼자서 "에덴의 동쪽은 저물어 가는구나... " 청승맞게 노래도 불렀던 거 같다.^^ 그러다 달이라도 벙긋 떠오르면 온몸이 자연 속에 녹아 없어지는 것처럼 육체의 무게를 느낄 수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하루하루 레일 위의 인생. 이건 삶이 아니야...를 중얼거리며 하다못해 아파트 단지 내의 온갖 꽃들과 녹색그늘에라도 몸을 숨길 시간조차 없이 살아왔다.....

와 보니 아이가 그렇게 바삐 살고 있다.
어제는 모처럼 아이와 둘이서 분수대 벤치에 앉아 세상 어느 곳에서나 보일 벙긋 차 버린 달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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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낮 11시-12시
딸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꽃시간- 정현종

시간의 물결을 보아라.
아침이다.
내일 아침이다.
오늘밤에
내일 아침을 마중 나가는
나의 물결은
푸르기도 하여, 오
그 파동으로
모든 날빛을 물들이니
마음이여
동트는 그곳이여.

심리치료사, 수필가, 시인, 그리고 문학치료사였던 Kenneth Paul Joshua Gorelick이 2년간 뇌종양으로 투쟁하다 지난달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인생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고, '삶의 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위한 길 중 하나로  심리학, 그리고 문학치료에 매료되었다던 그... 그의 명복을 빈다.


나는 옳은 삶을 살아왔다.
행동 하나하나 마다 더 생각하고 더 고민했다
......
나무들은 메마름과 더위에 고통받으며
이 기근 속에  아직도 불굴의 끈기로 매달려
저리 아름답게 서있구나
(뇌 종양 첫번째 수술후 그가 쓴 시)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하네- 박정대

나 집시처럼 떠돌다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길을 걸어왔는지
바람이 깍아놓은 먼지조각처럼
길 위에 망연히 서 있었네
내 가슴의 푸른 샘물 한 줌으로
그대 메마른 입술 축여주고 싶었지만
아, 나는 집시처럼 떠돌다
어느 먼 옛날 가슴을 잃어버렸네
가슴 속 푸른 샘물도
내 눈물의 길을 따라
바다로 가버렸다네
나는 이제 너무 낡은 기타 하나만을 가졌네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한다네
쏟아지는 햇살 아래서
기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면
가응 가응, 나의 기타는
추억의 고양이 소리를 낸다네
떨리는 그 소리의 가여운 밀물로
그대 몸의 먼지들 날려버릴 수만 있다면
이 먼지나는 길 위에서
그대는 한 잎의 푸른 음악으로
다시 돋아날 수도 있으련만
나 집시처럼 떠돌다 이제야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길을 홀로 걸어왔는지
지금 내 앞에 망연히 서 있네
서러운 악보처럼 펄럭이고 있네
막다른 곳에서- 오세영

그렇게 마냥 서 있었다.
한곳에
기다림의 막다른 곳에
걸어서 걸어서
이제 서 있어도
걷는 것이 된
그것을 나무라 할까,
그것을 꽃이라 할까,
산마루에 멍청히 서 있는 측백 혹은 소철 한 그루
걷다가 걷다가 지쳐
짓누르는 어깨의 세상 짐들을 부리고
너의 이름을 부리고
너를 부리고
마침내 막다른 그곳에 와서
나무는
세상을 늘어뜨린 제 그림자를 걷으려
스스로 꽃과 잎을 벗어버린 채
홀로 하늘을 진다.
산이 된다.
평안하다는 서신, 받았습니다
평안했습니다

아침이 너무 오래 저 홀로 깊은
동구까지 느리게 걸어갔습니다
앞강은 겨울이 짙어 단식처럼 수척하고
가슴뼈를 잔잔히 여미고 있습니다

마르고 맑고 먼 빛들이 와서 한데
어룽거립니다
당신의 부재가 억새를 흔들고
당신의 부재가 억새를 일으켜 세우며
강심으로 차게 미끄러져 갔습니다

이대로도 좋은데, 이대로도 좋은
나의 평안을
당신의 평안이 흔들어
한 겹 살얼음이 깔립니다

아득한 수면 위로
깨뜨릴 수 없는 금이 새로 납니다
물밑으로 흘러왔다
물 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
흰 푸른 가슴뼈에
탁본하듯
         
[이영광- 탁본]
만일 당신이 인간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싶거든, 그 누군가를 잘 알고 싶다면.....그가 웃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그의 웃음이 친절하고 후하다면, 그는 선한 사람이다.  -도스토엡스키
정호승 -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그리움 만나
얼씨구나 부둥켜앉고 웃어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그림:(c)bhlee



나로 인해 그대가 아플까 해서
나는 그대를 떠났습니다
내 사랑이 그대에게 짐이 될까 해서
나는 사랑으로부터 떠났습니다.

그리우면 울었지요
들개처럼 밤길을 헤매 다니다,
그대 냄새를 좇아 킁킁거리다 길바닥에 쓰러져
그대로 잠이 든 적도 있었지요. 가슴이 아팠고,
목이 메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대는
가만 계세요. 나만 아파하겠습니다.

사랑이란 이처럼 나를 가두는 일인가요.
그대 곁에 가고 싶은 나를
철창 속 차디찬 방에 가두는 일인가요.
아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풀었다 가두는 이 마음 감옥이여.

마음의 감옥 - 이정하

오래 고통 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지는 해의 힘없는 햇빛 한 가닥에도
날카로운 풀잎이 땅에 처지는 것을

그 살에 묻히는 소리 없는 괴로움을
제 입술로 핥아주는 가녀린 풀잎

오래 고통 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토록 피해 다녔던 치욕이 뻑뻑한,
뻑뻑한 사랑이었음을

소리 없이 돌아온 부끄러운 이들의 손을 잡고
맞대인 이마에서 이는 따스한 불,

오래 고통받는 이여 네 가슴의 얼마간을
나는 덥힐 수 있으리라

[오래 고통 받는 사람은 - 이성복]

늦가을- 김사인

그 여자 고달픈 사랑이 아파 나는 우네
불혹을 넘어
손마디는 굵어지고
근심에 지쳐 얼굴도 무너졌네

사랑은
늦가을 스산한 어스름으로
밤나무 밑에 숨어기다리는 것
술 취한 무리에 섞여 언제나
사내는 비틀비틀 지나가는 것
젖어드는 오한 다잡아 안고
그 걸음 저만치 좇아 주춤주춤
흰고무신을 옮겨보는 것

적막천지
한밤중에 깨어 앉아
그 여자 머리를 감네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흐른 불 아래
제 손만 가만가만 만져보네

꽃동네를 만드신 오웅진 신부가 수녀들에게 하신 말이란다.

"거지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돈과 먹을 것이 없는 사람?   잘 곳이  없는 사람?

받을 줄만 알 고 줄 줄 모르는 사람, 그게 바로 거지란다."

벌거벗은 나뭇가지에
까치둥지 하나,
벗은 몸
훔쳐본 것 같아
마음 쓸쓸하다

 

[양수리 - 윤길영]


그리움이 홍시처럼
익어가는 시간입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병을 안고
복사꽃처럼 웃기엔 가슴이 서늘해지는
일요일 오후입니다.

( 작가 미상)

오래전 어디선가에서 가져온 시구절인데 작가 이름을 모르겠다.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 (릴케- '두이노의 비가' 에서)



[가엾은 내 손 -  최종천]

나의 손은 눈이 멀었다
망치를 쥐어잡기보다는
부드러운 무엇을 원한다
강요된 노동에 완고해지며
대책 없이 늙어가는 손
감각의 입구였던 열개의 손가락은
자판 위를 누비며
회색의 언어들을 쏟아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주던
손의 시력은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있다
열개의 손가락에서 노동은 시들어버렸다
열개의 열려 있는 입을 나는 주체할 수가 없다
모든 필요를 만들어내던 손
인간의 유일한 실재인 노동보다
입에서 쏟아지는 허구가 힘이 되고 권력이 된다니
나의 손은 이제
실재의 아무것도 만들지 않으며
허구조작에 전념하고 있다
나는 노동을 잃어버리고
허구가 되어간다
상징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