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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별 - 신경림

나는 어려서 우리들이 하는 말이
별이 되는 꿈을 꾼 일이 있다.
들판에서 교실에서 장터거리에서
벌떼처럼 잉잉대는 우리들의 말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는 꿈을.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찬란한 별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어릴 때의 그 꿈이 얼마나 허황했던 가고.
아무렇게나 배앝는
쓰레기 같은 말들이 휴지조각 같은 말들이
욕심과 거짓으로 얼룩진 말들이
어떻게 아름다운 별들이 되겠는가.

하지만 다시 생각한다.
역시 그 꿈은 옳았다고.
착한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이
망설이고 겁먹고 비틀대면서 내놓는 말들이
괴로움 속에서 고통 속에서 내놓는 말들이
어찌 아름다운 별들이 안 되겠는가.

아무래도 오늘밤에는 꿈을 꿀 것 같다.
내 귀에 가슴에 마음속에
아름다운 별이 된
차고 단단한 말들만을 가득
주워 담는 꿈을.


12월 - 오세영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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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06

타오르는 책 - 남진우

 

그 옛날 난 타오르는 책을 읽었네
펼치는 순간 불이 붙어 읽어나가는 동안
재가 되어버리는 책을

행간을 따라 번져가는 불을 먹어치우는 글자들
내 눈길이 닿을 때마다 말들은 불길 속에서 곤두서고
갈기를 휘날리며 사라지곤 했네 검게 그을려
지워지는 문장 뒤로 다시 문장이 이어지고
다 읽고 나면 두 손엔
한 움큼의 재만 남을 뿐

놀라움으로 가득 찬 불놀이가 끝나고 나면
나는 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곤 했네

그 옛날 내가 읽은 모든 것은 불이었고
그 불 속에서 난 꿈꾸었네 불과 함께 타오르다 불과 함께
몰락하는 장엄한 일생을

이제 그 불은 어디에도 없지
단단한 표정의 책들이 반질반질한 표지를 자랑하며
내게 차가운 말만 건넨다네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읽어도 내 곁엔
태울 수 없어 타오르지 않는 책만 차곡차곡 쌓여가네

식어버린 죽은 말들로 가득 찬 감옥에 갇혀
나 잃어버린 불을 꿈꾸네

 

나 일어나 이제 가리라, 이니스프리로 가리라.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집 하나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 가지리
그리고 꿀벌 소리 붕붕대는 그 숲 속에서 홀로 살아가리.

그 곳에서 나는 평화를 느끼리라, 천천히

아침의 장막으로부터 귀뚜리가 노래하는 곳에 이르기까지,
방울져 내려오는 평화를.

그 곳에선 한밤이 은은한 빛으로 가득하고,
한낮은 자주 빛으로 타오르리라,
그리고 저녁 즈음엔 가득한 홍방울새 나래소리.

나는 이제 일어나 가리라,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서 나지막이 찰랑대는 물결소리 항상 내게 들려오고 있으니,
찻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빛 보도 위에 서 있을 때면,
그 물결 소리 내 마음 깊숙이 들리네.

 

[이니스프리 호수 섬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동백 낙화  - 김상경

 

꽃은 떨어질 수록 누추하고, 찬란하다

선운사 뒷 담장 붉어 누운 그대는

갈 땅에서 더 눈물겹다

맺혀버린 그리움의 무게

알알이 뭉치고 포개져서 그런 것일까

오뉴월 솔바람 소리 귀 기울이다

말 못한 사연은 속으로 타들어가

동종소리 사리되었네

선운사 붉은 누이여!

가슴 저며 저며 누운 지금, 낙조보다 붉으니

외져 지나는 가슴 멍이 들어버렸소

 

해벽(海壁) - 문정희

 

눈물이 우리들 첫 숟갈의 밥이었던 것은 알지만

그것이 바다가 되어

지상을 칠 할하고도 반이나 덮어버린 것은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사람의 가슴마다 물결인 것은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저 많은 눈물을 누가 다 흘렸을까

한껏 차오르다 기어이 무너지는 낮과 밤

밀려가고 밀려오는

미친 술병들의 바다

거대하게 떠밀리는 언어의 물거품들

 

어느새 다 마시고 어디로 떠났을까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서한체(書翰體) · ∥  - 박두진

 

 

달아나다오, 달아나다오. 다시는 내가 너를 찾을 수 없게, 더 멀리 아주 멀리 달아나다오. 별에서 별엘 가듯 달아나다오.

내 앞에 있을수록 더욱 멀은 너, 내게서 멀을수록 더 가까운 너, 없음으로 더욱 있게 달아나다오. 있음으로 더욱 없게 달아나다오.

한밤에 저 서늘어운 푸른 달만큼, 한낮에 저 활활 끓는 금빛 해만큼, 너를 위해 내가 울릴 달빛 딩동댕, 나를 위해 네가 울릴 햇빛 딩동댕.

무량 영원 우릴 위해 열고 닫을 문, 닫힌 문을 열기 위해 달아나다오. 열린 문을 닫기 위해 달아나다오.

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photo by BongheeLee @Sata Fe
 

 


 

하루 종일 지친 몸으로만 떠돌다가
땅에 떨어져 죽지 못한
햇빛들은 줄지어 어디로 가는 걸까
웅성웅성 가장 근심스런 색깔로 西行(서행)하며
이미 어둠이 깔리는 燒却場(소각장)으로 몰려들어
몇 점 폐휴지로 타들어가는 오후 6시의 참혹한 刑量(형량)
단 한번 후회도 용서하지 않는 무서운 시간
바람은 긴 채찍을 휘둘러
살아서 빛나는 온갖 상징을 몰아내고 있다.
도시는 곧 활자들이 일제히 빠져 달아나
속도 없이 페이지를 펄럭이는 텅 빈 한 권 책이 되리라.
승부를 알 수 없는 하루와의 싸움에서
우리는 패배했을까. 오늘도 물어보는 사소한 물음은
그러나 우리의 일생을 텅텅 흔드는 것.
오후 6시의 소각장 위로 말없이
검은 연기가 우산처럼 펼쳐지고
이젠 우리들의 차례였다.
두렵지 않은가.
밤이면 그림자를 빼앗겨 누구나 아득한 혼자였다.
문득 거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공포
보여다오.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살아있는 그대여
오후 6시
우리들 이마에도 아, 붉은 노을이 떴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가지?
아직도 펄펄 살아 있는 우리는 이제 각자 어디로 가지?
(기형도-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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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펄펄 살아있는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지?"

  무심히 아름답다고 감탄하면서 매일같이 바라보는 노을로부터 가슴에 알 수 없는 아픔이 전해올 때 그 의미를 몰랐습니다.  노을이 불타는 오후, 소각장의 폐휴지처럼 타들어가는 남은 햇살들을 보면서 못 다 태운 채 가슴에 남겨진 나의 열정들이 아파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아직도 죽지 못해서 펄펄 살아있는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지.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성실히 살아내지 못한 밤이면 잠자리에 드는 것이 떳떳하지 못해서 졸면서도 일기장의 빈 종이를 들여다보곤 합니다. 그리고 내일은 폐휴지를 태우듯 부끄럽게 펄렁이는 하루를 마감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해봅니다. 아니, 내 생의 늦은 시간, 이제 정해진 시간을 마감할 때, 땅에 떨어져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채 남아 떠도는 젊은 시절의 열정이 줄지어, 줄지어 헤매는 일이 없도록, 아직도 펄펄 살아있을 때 나의 가야할 바르고 떳떳한 길을 가르쳐 달라고, 그곳으로 인도해 달라고 간절히 기원해봅니다. (bhlee)

바위- 신경림

 

바람이 한 곳에서만 불어온다

바람이 온통 한곳으로만 쏠려간다

사람들이 모두 한곳으로만 몰려간다

떼밀리고 엎어지면서 뒤질세라 달려간다

바위만이 어깨 내밀어 길을 내주고 있다

밟히고 차이면서 말없이 엎드려 있다

그 얼굴에 웃음이 서글프다 그

얼굴에 웃음이 아름답다

 

출처: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껌벅이다가 - 최정례

 

느닷없이 너 마주친다 해도
그게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할 것 같다
물건을 고르고
지갑 열고 계산을 치르고
잊은 게 없나 주머니 뒤적거리다
그곳을 떠나듯

가끔
손댈 수 없이
욱신거리면 진통제를 먹고
베개에 얼굴을 박고
잠들려고
잠들려고 그러다가

젖은 천장의 얼룩이 벽을 타고 번져와
무릎 삐걱거리고 기침 쿨럭이다가
왜 그럴까 왜 그럴까
도대체 왜 그래야 할까
헛손질만 하다가 말듯이

대접만한 모란이 소리 없이 피어나
순한 짐승의 눈처럼 꽃술 몇 번 껌벅이다가
떨어져 누운 날
언젠가도 꼭 이날 같았다는 생각
한다 해도
그게 언제인지 무엇인지 모르겠고

길모퉁이 무너지며 너
맞닥뜨린다 해도
쏟아뜨린 것 주워 담을 수 없어
도저히 돌이킬 수 없어
매일이 그렇듯이 그날도
껌벅거리다
주머니 뒤적거리다 그냥 자리를 떠났듯이

이렇게
바람 많이 부는 날은
당신이 보고 싶어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옆에 있는 나무들에게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가지를 뻗은 그리움이
자꾸자꾸 올라갑니다

저를 다스릴 힘도
당신이 주실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는
찬미의 말보다
침묵 속에도 불타는
당신의 그 눈길 하나가
나에겐 기도입니다
전 생애를 건 사랑입니다

[능소화연가 - 이해인]
중구난방이다.
한없이 외롭다.
입이 틀어막혔던 시대보다 더 외롭다.

모든 접속사들이 무의미하다.
논리의 관절들이 삐어버린
접속이 되지 않는 모든 접속사들의 허부적거림.
생존하는 유일한 논리의 관절은 자본뿐.

중구난방이다.
자기 함몰이다.
온 팔을 휘저으며 물 속 깊이 빨려 들어가면서
질러대는 비명 소리들로 세상은 가득차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없이 외롭다.
신앙촌 지나 해방촌 지나
희망촌 가는 길목에서.

최승자- 중구난방이다

갈대 - 천상병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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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 bought at a store in SantaFe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 이성복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개를 끌고 玉山에 갈 때
짝짝인 신발 벗어 들고 산을 오르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보았니 한 쪽 신발 벗어
하늘 높이 던지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들었니
인플레가 민들레처럼 피던 시절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 웃음소리

우우우, 어디에도 닿지 않는 길 갑자기 넓어지고
우우,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기억하니

오른손에 맞은 오른뺨이 왼뺨을 그리워하고
머뭇대던 왼손이 오른뺨을 서러워하던 시절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개를 끌고
玉山에 갈 때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 웃음소리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그리워하니 우리 함께
술에 밥 말아 먹어도 취하지 않던 시절을

photo by bhlee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정호승, "아버지의 나이" 중에서)

photo by bhlee(@SFO)

그리운 사람,
때로 너무 생각이 간절해져서 전화조차 버거웠다면 쓸쓸히 웃을까?
보고 싶어서 컴퓨터 자판 위에 놓인 손가락들을 본다
그런데
손가락들이 봉숭아보다 더 붉어서 아프다
그리운 사람
조금씩만 서로 미워하며 살자
눈엔 술을 담고 술엔 마음을 담기로
(여림)

다시 쓸쓸한 날에- 강윤후 

 

오전 열시의 햇살은 찬란하다. 무책임하게

행복을 쏟아내는 라디오의 수다에 나는

눈이 부셔 금세 어두워지고 하릴없이

화분에 물을 준다. 웬 벌레가 이렇게 많을까.

살충제라도 뿌려야겠어요, 어머니.

그러나 세상의 모든 주부들은 오전 열시에 행복하므로

엽서로 전화로 그 행복을 라디오에 낱낱이 고해 바치므로

등허리가 휜 어머니마저 귀를 뺏겨 즐거우시고

나는 버리지 않고 처박아둔 해진 구두를 꺼내

햇살 자글대는 뜨락에 쪼그리고 앉아 공연히

묵은 먼지나 턴다. 생각해보면 그대 잊는 일

담배보다 끊기 쉬울지 모르고

쑥뜸 떠 독기를 삭이듯 언제든 작심하여

그대 기억 모조리 지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새삼

약칠까지 하여 정성스레 광 낸 구두를 신자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 피노키오처럼 걸어본다.

탈수기에서 들어낸 빨랫감 하나하나

훌훌 털어 건조대에 널던 어머니

콧노래 흥얼대며 마당을 서성거리는 나를

일손 놓고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시고

슬며시 짜증이 난 나는 냉큼

구두를 벗어 쓰레기통에 내다버린다.

올곧게 세월을 견디는 그리움이 어디 있으랴.

쿵쾅거리며 마루를 지나

주방으로 가 커피 물을 끓이며 나는 이제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러나 얘야,

죽은 나무에는 벌레도 끼지 않는 법이란다.

어머니 젖은 걸레로 화분을 닦으시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살아갈 날들을 내다본다. 그래, 정녕 옹졸하게

메마른 날들을 살아가리라. 그리하여

아주 먼 어느 날 문득

그대 기억 도끼처럼

내 정수리에 내리찍으면

쪼개지리라

대쪽처럼 쪼개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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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리라.  옹졸하게 메마른 날들을 살아가리라. 
그러다
아주 먼 어느 날  문득 그대 기억 도끼처럼 내 정수리에 내리찍으면 쪼개지리라 대쪽처럼 쪼개지리라.


버려진 손- 길상호

공사장 인부가 벗어놓고 갔을
목장갑 한 켤레 상처가 터진 자리
촘촘했던 올이 풀려 그 生은 헐겁다
붉은 손바닥 굳은살처럼 박혀있던 고무도
햇살에 삭아 떨어지고 있는 오후,
터진 구멍 사이로 뭉툭한 손 있던
자리가 보인다 거기 이제 땀으로 찌든
체취만 누워 앓고 있으리라
그래도 장갑 두 손을 포개고서
각목의 거칠게 인 나무 비늘과
출렁이던 철근의 감촉을 기억한다
제 허리 허물어 집 올리던 사람,
모래처럼 흩어지던 날들을 모아
한 장 벽돌 올리던 그 사람 떠올리며
목장갑은 헐거운 생을 부여잡는다
도로변에 버려진 손 한 켤레 있다
내가 손놓았던 뜨거운 生이 거기
상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 있다

photos by bhlee (those pictures are here only for therapeutic purposes)

I celebrate myself, and sing myself
And what I assume, you shall assume
For every atom belonging to me as good belongs to you.
I loaf and invite my soul,
I learn and loafe at my ease observing a spear of summer grass
(Walt Whitman, excerpt from Song of Myself, Part 1)

나는 나를 찬미하고, 나를 노래하네
내가 젠체 뽑내는 것, 당신도 뽑낼 수 있어
내게 있는 작은 것 하나 하나  당신에게도 모두 있으니까.
나는 한가로이 빈둥거리며 내 영혼을 초대하네
뾰족한 여름 풀잎을 관찰하며 내 맘대로 배우고 빈둥거리지. (휘트만, "나의 노래" 중)
(trans.bh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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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도 쉴 권리가 있어....

내가 좋아하는 것,  산책.
햇살이 깔꼭 침 삼기는 순간처럼 사라지고 나면 그 어스름의 시간을 늘 못 견뎌했다.
그리움이 온몸에 아슬아슬하도록 넘쳐 고이는 시간...
나는 걷고 또 걸었다.
어느 모퉁이에선가 추억처럼 돌연 내 앞을 막고 기다리고 있을 그 무엇이, 그 누군가가,
아니 어쩌면 내 안에 숨은 '내'가 그리웠다.  

내가 좋아하는 것, (누구라도 그렇듯....) 잔디, 나무, 숲, 꽃,...
특히 이름조차 없는 풀섶의 작은 꽃들은 이 엉망인 시력에도 용케 잡힌다.
대학생 때는 저녁 해지고 나면 학교 구석 나만의 나무와 벤치가 있어서 그 그늘에 숨어서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앉아있곤 했었다.  혼자서 "에덴의 동쪽은 저물어 가는구나... " 청승맞게 노래도 불렀던 거 같다.^^ 그러다 달이라도 벙긋 떠오르면 온몸이 자연 속에 녹아 없어지는 것처럼 육체의 무게를 느낄 수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하루하루 레일 위의 인생. 이건 삶이 아니야...를 중얼거리며 하다못해 아파트 단지 내의 온갖 꽃들과 녹색그늘에라도 몸을 숨길 시간조차 없이 살아왔다.....

와 보니 아이가 그렇게 바삐 살고 있다.
어제는 모처럼 아이와 둘이서 분수대 벤치에 앉아 세상 어느 곳에서나 보일 벙긋 차 버린 달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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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낮 11시-12시
딸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