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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눈의 季節- 김현승

이맘때가 되면
당신의 눈은 나의 마음,
아니, 생각하는 나의 마음보다
더 깊은 당신의 눈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落葉들은 떨어져 뿌리에 돌아가고,
당신의 눈은 세상에도 순수한 言語로 변합니다.

이맘때가 되면
내가 당신에게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가을 하늘만큼이나 멀리멀리 당신을 떠나는 것입니다.
떠나서 생각하고,
그 눈을 나의 영혼 안에 간직하여 두는 것입니다.

落葉들이 지는 날 가장 슬픈 것은
우리들 심령에는 가장 아름다운 것...... .
음악 - 이성복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굳이 내가 살지
않아도 될 삶
누구의 것도 아닌 입술
거기 내 마른 입술을
가만히 포개어 본다

ch.27

이것은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그리고 가장 슬픈 풍경이다. 이것은 앞 페이지의 것과 같은 풍경이지만 여러분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 다시 한 번 그린 것이다. 어린 왕자가 지상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진 곳이 여기다.

이 그림을 자세히 잘 보아 두었다가 여러분이 언젠가 아프리카 사막을 여행할 때, 이와 똑같은 풍경을 꼭 알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혹시 그리로 지나가게 되거든 발걸음을 서두르지 말고 잠깐 별빛 밑에서 기다려 보길 간곡히 부탁한다! 그때 만일 한 어린아이가 여러분에게 다가와서 웃으면, 그리고 그의 머리칼이 금빛이면, 그리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으리라. 그러면 내게 친절을 베풀어 주길! 내가 이처럼 마냥 슬퍼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그애가 돌아왔다고 빨리 편지를 보내 주기를...... [어린왕자27장]
바다 1 -이성복

서러움이 내게 말 걸었지요
나는 아무 대답도 안 했어요
서러움이 날 따라왔어요
나는 달아나지 않고
그렇게 우리는 먼 길을 갔어요

눈앞을 가린 소나무 숲가에서
서러움이 숨고
한 순간 더 참고 나아가다
불현듯 나는 보았습니다

짙푸른 물굽이를 등지고
흰 물거품 입에 물고
서러움이, 서러움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엎어지고 무너지면서도 내게 손 흔들었습니다

There is a speciall providence in the fall of a sparrow.
If it be now, 'tis not to come; if it be not to come, it will
be now; if it be not now, yet it will come. The readiness is all.
(Hamlet V-ii)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데도 특별한 섭리가 있는 법이죠.
와야 할 때가 지금이라면 앞으로 오지 않을 것이요,
오지 않을 것이면 지금이 그 때인 것이요. 때가 지금이 아니라해도
언젠가 때가 오기는 할 것이니,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늘 준비가 되어있는 일이지요.
(『햄릿』 5막2장)

by Henri Matisse-La chute d'lcare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선천성 그리움 - 함민복]

The Sick Rose - William Blake



오 장미여, 너는 병들었다.
울부짓는 폭풍 속
어둔 밤을 날아다니는
보이지 않는 벌레가
진홍빛 기쁨이 있는
너의 침대를 발견하여
그의 어둡고 비밀스런 사랑이
너의 삶을 파괴하는구나.

Oh rose, thou art sick;
The invisible worm
That flies in the night
In the howling storm
has found out thy bed
Of crimson joy,
And his dark secret love
Does thy life destory.


(Blake는 시인이지만 화가이기도 하다. 그의 시에 자신의 삽화를 넣곤 했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 사온 그의 삽화가 있는 시집은 나의 소중한 보물이다.)

오래 먼 숲을 헤쳐 온 피곤한
상처들은 모두 신음 소리를 낸다
산다는 것은 책임이라구.
바람이라구. 끝이 안 보이는 여정.
그래. 그래 이제 알아들을 것 같다
갑자기 다가서는 가는 바람의 허리.

같이 있어도 같이 있지 않고
같이 없어도 같이 있는, 알지?
겨울 밤 언 강의 어둠 뒤로
숨었다가 나타나는 숲의 상처들.

그래서 이렇게 환하게 보이는 것인가.
지워 버릴 수 없는 그 해의 뜨거운 손
수분을 다 빼앗긴 눈밭의 시야.
부정의 단단한 껍질이 된
우리 변명은 잠 속에서
밤새 내리는 눈먼 폭설처럼
흐느끼며 피 흘리며 쌓이고 있다.


[상처 - 마종기]

 
검은 벽에 기대선 채로
해가 스무 번 바뀌었는데
내 기린(麒麟)은 영영 울지를 못한다.

그 가슴을 퉁 흔들고 간 노인(老人)의 손
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에 높이 앉았으려니
땅 우의 외롱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을라.

바깥은 거친 들 이리 떼만 몰려다니고
사람인 양 꾸민 잔나비떼들 쏘다니어
내 기린은 맘둘 곳 몸둘 곳 없어지다.

문 아주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 채
해가 또 한 번 바뀌거늘
이 밤도 내 기린은 맘 놓고 울들 못한다.

[거문고 - 김영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