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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re special.


You needed me, Sung by Anne Murray

내가 눈물 흘렸을 때 당신이 닦아 주었고

내가 혼동 중에 방황할 때 당신은 내 의심을 씻어주었습니다.

내 영혼을 팔았지만 당신이 내게 되찾아 주었고

날 높이 올려 존귀함 주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내가 필요했습니다.


당신은 내게 다시 홀로 설 힘을 주었고

내 혼자 힘으로 세상과 맞설 수 있게 해주었고

날 높이 올려 존중해 주니 너무 높아 영원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필요했어요,
당신은 내가 필요했어요.

바로 당신이라는 게 믿을 수가 없어요, 그게 사실이라는 게,

나 당신이 필요했는데 당신이 바로 거기 있었습니다.

난 당신을 떠나지 않아요, 내가 왜 바보같이 떠나겠어요?

마침내 진정으로 나를 염려해주는 그런 사람 찾았는데.


내가 추울 때 당신은 내 손 잡아주었고

길을 잃었을 때 날 집으로 데려다 주었고

막다른 길목에 몰렸을 때 내게 희망을 주었으며

나의 거짓도 진실로 다시 바꾸어 주었습니다

날 친구라고 부르기까지 하면서.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에요.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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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가사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힘들고 지치고 넘어지고 외로운 것은 나였는데... 그런 내게 "당신이"  다가와 손 내밀어주었는데, 내가 그렇게 절실히 바라고 필요로 하던  "당신"이었는데...  오히려 "당신이 나를 필요로 했었다(You needed me)"고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린 말하죠. '난 당신없인 안돼.'
그거 아세요?  부모님도 나 없인 안되는 것을요.  밤낮 속썩이고 실망만 시키는 연약한 내가 부모님을 필요로 하는 줄 알았는데 뭐든 다 하실 수 있는 어른인 부모님이 바로 날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심바에게 고백하던 아버지의 고백을 기억하세요?  그 누구도 감히 대적하지 못할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동물의 왕인 아버지 사자가 '오늘 두려워서 죽는 줄 알았다.'고  "사랑하는 널 잃을까봐 두려웠다고" 고백하는 것을..  )

하나님도 우리 없인 안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아십니까? '난 네가 필요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이때 피곤, 곤비는 영어로 sick and tired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지쳐서 진력이 난다는 뜻입니다. 실망하고 포기하고 싶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주님은 내게 피곤해하지 않으십니다.  나도 자꾸 나에게 실망하고 지쳐가는데 그래서 자존감도 용기도 희망도 다 사그라져 그저 누워버리고 싶은데  주님은 아니랍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나보다도 더 잘 이미 "나의 불가능성과 나의 나약함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 대신 내 안에서 그의 일 (착한일, 선한일, 나를 주님 닮아가게 키우는 구원의 완성-빌립보서)을 시작하시고 이루어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자여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나의 가는 길이 이렇게 캄캄하고, 외롭고, 고단하고 힘들어도 주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어제의 나와 하나도 달라진 거 없는 것처럼  또 실패를 반복하는데 주님은 나를 붙들고 계시다 합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어디 곁에 있다는 말인가 하고 대뜸 반발심이 일지 않습니까?

시편 23편에서의 고백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쉴만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며...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害)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여호와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심이라.

가만히 보십시오.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에 그가 탄탄대로로 걸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쉴 만한 물가로 인도받는 그 길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valley of the shadow of death)"입니다.  그런데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죽을 것 같이 힘든 그늘진 골짜기에서 그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바로 "害(해)" 이기 때문이며 그 해로 부터 보호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해란 손해보고 세상에서 실패하고 외면당하는 것이 아니라 Evil, 즉 악을 말합니다.  내가 악으로 부터 보호받는 것 이것이 "부족함이 없는 삶" 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도달할 쉴만한 물가, 평화를 의미합니다.  이 비밀을 깨달아 안 사람들은 인생길에서 피곤하고 곤비하고 넘어지고 자빠지되 여호와의 지팡이(인도)와 막대기(보호)로 인해 독수리처럼 날개치는 존재인 것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바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패자 같고 이름없는 존재이며 외톨이인 우리가 가진 "그럼에도"의 권리와 승리와 힘의 "비밀"입니다.  세상과 나의 삶과 나를 새롭게 보는 눈입니다.

나의 귀한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강하다는 게 무엇인줄 아느냐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이것이 바로 그 친구가 말한 웃을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신음소리까지 다 듣고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힘이되는 지요.  그런데 그 누군가가 나보다 더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침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다. (이사야 40)


오래 먼 숲을 헤쳐 온 피곤한
상처들은 모두 신음 소리를 낸다
산다는 것은 책임이라구.
바람이라구. 끝이 안 보이는 여정.
그래. 그래 이제 알아들을 것 같다
갑자기 다가서는 가는 바람의 허리.

같이 있어도 같이 있지 않고
같이 없어도 같이 있는, 알지?
겨울 밤 언 강의 어둠 뒤로
숨었다가 나타나는 숲의 상처들.

그래서 이렇게 환하게 보이는 것인가.
지워 버릴 수 없는 그 해의 뜨거운 손
수분을 다 빼앗긴 눈밭의 시야.
부정의 단단한 껍질이 된
우리 변명은 잠 속에서
밤새 내리는 눈먼 폭설처럼
흐느끼며 피 흘리며 쌓이고 있다.


[상처 - 마종기]

네가 얼마나 사랑스런 데. 네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
 
우선 일기에 네가 가장 힘든 일에 대해서 맘 놓고 다 털어놓아봐.  널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봐.  물론 보내지 않는 너만 보는 편지야.  네 맘속에 있는 분노와 미움과 그사람의 맘에 들지 않는 점, 그리고 네게 상처주는 말과 행동, 사건들을 모두 다 털어놓고 그 사람에게 화를 내.  욕을 해도 되고 네 손이 가는 대로 맘 껏 다 털어놓으렴.  분노는 부끄러운게 아니야.  네 화가 다 풀릴때까지 2-3일 아니면 4일간 편지를 써봐.  편지를 쓰고는 버려도 돼.  이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 울고 불고 화를 내면서 종이에다 다 쏟아내.  이건 절대 보내는 편지나 남에게 보여주는 글이 아니니까 맘껏 욕도 하고 화를 내.
그리고 선생님에게 다시 편지 주렴.  다른 글쓰기 방법을 또 가르쳐줄게.우선 네가 널 사랑해주어야해. 알았지? 
세상은 그 누구도 남에게 관심이 없단다.  내가 날 아끼고 위로해주고 용기주고 다독거려주어야 해.  내가 스스로에게 떳떳하다면 당당하렴.  네가 스스로를 사랑해야 남들앞에서도 네가 당당할 수 있어.  네가 스스로 주눅이 들어 있으면 남들이 널 사랑해도 네가 그걸 느끼지 못하고 자꾸 오해하게 돼.  널 무시한다고 고약한 착각을 하기도 하고.  거울을 보고 스스로에게 늘 말을 하렴.  넌 예쁘고 멋진 아이야.  넌 다 잘할 수 있어 하고.  그리고 주님께 늘 기도해.  지혜를 달라고.  네가 못하는 일도 네 안의 주님의 지혜가 널 인도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직장에서 네 친구를 한 사람 사귀어두려고 해봐.  누군가 대화할 수 있는 사람.  물론 쉽지 않아.  하지만 너무 많은 기대는 하지말고 같이 점심먹고 가끔 퇴근하고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친구.  물론 네 맘을 털어놓는 친구가 되는 걸 기대할 수 없을 수도 있어.  그 친구의 맘을 들어주는 일부터 시작해봐.  남에게 널 알아주길 기대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모두 자신들이 아프고 힘들어 할 뿐 남에게는 관심이 없어. 그리고는 자신들만 사랑받고 인정받고 위로받고 싶어하는 게 인간들이야.  슬프게도....  그러니까 직장에선 그렇게 많은 기대를 하면 안 돼.   일하는 곳이니까.   네 친구가 되게 하려면 노력해야 해. 

 

좀 힘들겠지만 용기가 나면 그 사람에게 웃어봐.  그건 일종의 "역할극"이라고 생각해.  네가 그 사회에서 해야하는 너의 "역할"을 하는 거야. 무대 위에서 하듯이. 화장을 하듯이. 그리고 가끔 그 사람 책상 위에 쵸콜렛이라도 하나 가져다 놓아봐.  이건 참 힘드는 일이지만 이상하게 어떨 땐 내가 그런 행동을 (의지적으로, 용기내어) 하고 나면 그런 맘이 따라올  때도 있어.   (이건 지금 당장은 어려워.  보내지 않는 편지쓰기를 한 후 혹시 용기가 나면 해봐.)  어쩌면  의외로 그 사람 네게 상처준 일이 있는 지 조차 기억도 못할거야.  즉 네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이 그런 거야.  기억해. 인간들이 다 그런거야.누구나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기억도 못한단다.  때로는 나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줄때가 있단다. 누구나 그래.  인간은 그렇게 불완전하고 나약하단다. 그냥 각자 몸에 자신들만의 냄새를 가지고 살 듯 자신들의 뾰죽한 가시, 울퉁불퉁한 혹... 들을 품고 살면서 서로 스쳐갈 때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못된 냄새를 풍겨 불쾌하게 하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  내게서도 나는 모르는 냄새가 날수도 있고 뽀죽한 가시가 남을 긇을 수도 있는데 각자는 자신의 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거야.   그러면서 서로 부딛치고 상처입고 차차 뽀죽한 부분들이 닳고 .... 그렇게 성숙해 가는 거야. 때로 내가 냄새가 있다는 걸 깨닫는 사람들은 열심히 몸을 씻고(인격을 가다듬고, 인내하는 법과 용서하는 법과 자제하는 법을 배우고) 때로 향수를 뿌려 타인을 배려하기도 하고 감추고 남앞에 나가기도 해.  그러니까 겁먹지마.  네 잘못이 아니니까.  그사람 성격이 그런거야.   가시나무도 있고 향기로운 꽃도 있고 그런 숲이 우리가 사는 곳이니까.      이곳에 있는 학생들의 글(치료모임이야기)을 읽어봐.  그애들도 첨엔 많이 힘들어 했었어.꼭 내 말대로 그렇게 해봐. 그리고 작은 일기장이나 노트 하나 준비해서 가지고 다니면서 직장에서도 그런 일 있으면 화장실 같은 데 가거나 점심시간에 카페 같은 데 가서 맘껏 분노를 터뜨리는 글을 써봐.   억울함. 분노, 미움은 간직하면 점점 널 힘들게 해.  그런 것들이 우리 속에 혹으로, 가시로, 향기롭지 못한 냄새로 남을 수도 있는 거야.  그 그 가시가 나 자신을 병들게 하는 거야. 남을 상처주기 이전에 우선 나부터 망가지게 한단다.  그러니까 분노, 슬픔, 억울함, 원한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그때 그때 그 에너지들을 분출해버려야해.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법으로 말이야.)   털어버려야 해. 알았지?선생님도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하게 사는게 아니란다.  우선 육체적으로도 늘 힘들어.  어제 밤에도 내내 앓고 결국엔 두통이 너무 심해서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어 새벽에 일어났다가 네 글을 보았네....  그래도 또 학교 갈 준비해야 하지.  사는게 다 그런거야.  서글프게도.  시간이 없어서 급히 썼어.  언제라도 힘들면  편지해.오늘도 힘내. 널 위해 기도할게.

 

Ain't No Mountain High 라는 이름도 시적인 상('산도 가로막지 못할' 활약상이라 할 수 있다)을 받은 Kay와 함께. 같이 공부하던 제인, 부르스, 그리고 Kay's team facilitator인  Joy 외에 teleconference 에서 목소리만 들었던 시카고에서 온 케이트와 수잔, 멜라  모두 만났다. 너무나 좋은 친구들.

그리고 공로상을 받은 Caryn과 함께.
Caryn은 영문학교수. 자신의 학교에 Transformative Language Art라는 학과를 창설하여 공로상을 받았다. Caryn의 세션에 참가해서 captured moment 식의 시를 썼었다. 대학교때 나의 연극에 장미꽃 23송이를 가지고 온 사건에 대해서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서...  어린왕자의 장미와 연결지어 시를 썼던거 같다. 그리고 발표했는데 그 후 지나갈 때 잘 모르는 얼굴들이 웃으며 다가와  아까 너의 시가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악수를 하고 칭찬을 해주어서 정말 당황했었다. 어디 있는지 한번 찾아봐야 겠다.  돌아와서는 또 학교일과 학교 행사들, 연극 공연들.. 그리고 남은 과제들을 쫓아 앞으로 나가느라고 너무 바빠서 그때 공부했던것들이 하나도 정리되지 못한 채 그대로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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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hleen Adams의 workshop. 

이 세션에서 내가 썼던 시를 회장인 Perie Longo(시인, 교수)가 듣고 추천하여 NAPT Museletter에 실리게 되었었다.  (이 사진은 다른 참여자가 찍은 것으로  케이 옆에 내가 있었는데  사진에 나는 나오지 않는다. )

내가 했던 세미나는 사진이 없다. 
나의 워크샵에 참석한 사람 8명 중 한명을 제외한 전원이 세미나/워크샵의 평가에 최고점수(most satisfying)를 주었고 한명은 very satisfying을 주었다. 모두 끝난 뒤 가지 않고 남아서 일일이 나를 포옹하면서 칭찬해주었다. 한명은 자신이 쓴 평가를 직접 보여주면서 자신은 일부러 일반대학이 아닌 특수 대안학교를 갔는데 만일 당신같은 교수가 있으면 당장 그 학교를 갔을 것이라면서 한국의 당신학교 학생들은 참 복받은 것이라고 최고의 격려를 해주었다.  또 다른 중학교 선생은 자신이 고민하던 문제의 치료를 받았다고 감사하다고 했고.  그 선생의 이름을 잊었는데..  다른 사진에 피리 비슷한 악기를 연주한 그분이다.  사실 난 나의 교육 신념에도 불구하고 늘 힘들었는데 이들의 반응에 정말 많은 용기를 얻고 돌아왔다. 

이 워크숍도 내가 미리 오래전에 준비한 대로 하지 않고 그 전날 새벽 2시부터 다시 준비한 내용으로 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다.. 나의 영어로 그렇게 실수하나 없이 강의와 치료 워크샵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2007 Portland Conf. 에서 하기로 한 나의 두번째 세미나발표가 두렵다. 늘 그렇듯..  그리고 늘 그렇듯 나는 또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Marie와 함께.  그리고 Joy, Shiela.  Shiela는 내 발표장소에 여러 시설들을 준비해주고
참 많이 도움을 주었던 대회준비위원이었는데 작년가을 NAPT일을 그만두었다.
오랜동안 보고 싶을 거다.

Kay의 trainee들 중 이번에 CPT자격증을 받는 사람들을 축하하기 위한 모임.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소중한 친구들. 나의 가장 귀한 친구 제인. 제인은 심리학전공 석사이다. 수잔. 멜라. 또 다른 수잔과 호텔에서 같이 방을 쓴, 그리고 수업을 같이 들었던 캐롤라인. 그리고 작지만 노르만디 엘리스(CPT)의 호탕한 웃는 모습이 사진에 보인다. 저녁에 food court에서 같이 보낸 친구들 중 제인 옆 스테파니는 내게 미로걷기의 의미를 가르쳐준 친구, 그리고  내 곁에는 영국에서 온 선생, 그 곁은 루마니아출신으로 지금은 미국에 와 지내고 있다. 이름은 듣고도 잊었다. 맨 아래 Richard는 초등학교 선생. Keeping the Pulse of Poerty in the Classroom이라는 그의 seminar에 내가 참석했었다.

이렇게 밝게 웃는 사람들의 가슴에 모두 다 예외없이 이런 저런 눈물단지들이 묻혀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수업을 해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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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Louis NAPT Conference.
내가 세미나 발표자로 참석했던 전미시/문학치료학회이다. 

사실 수업사진을 찍는 것은 삼가해야할 일이다. 모두들 조용히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끌어내야 하는 워크샵시간들인데 돌아다니면서 셔터를 누르는 일은 외국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더 폭넓게 배우고 느끼고 변화를 체험하고 싶어 미국 전역에서 직장휴가를 얻고 시간을 쪼개어 찾아와서 각 세션마다 수업료를 내고 듣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 몰입해야하는 세션 중 일어나서 이리저리 사진을 찍으면 무척 당혹스럽다.  내가 수업받은 학교에서는 교실 옆방에서 웃음이 자주 터지면서 소리가 들리자 곧 바로 학생들의 요청에 의해 방을 옮겼던 경우도 있다.  핸드폰소리가 연신터지는 우리나라 수업과는 다르며 치료세션은 아무리 웃음이 터지는 자유로운 분위기라도 여느 수업과는 좀 다르다.

여기 얼굴들은 나의 친구들이거나 케이를 멘토로하는 trainee들의 모임이다. Bruce  옆의 페리(Perie)는 교수이면서 시인. 이번에 회장이 되었다.  난 그녀의 시를 무척 좋아한다.  특히 Fishing with My Father, Grandma's Mirracle... 

페리는 나와 함께 케이 애덤스의 세션에 참여하였는데 그 세션에서 내가 썼던 시 "NAPT-Never Say Never Land"를 듣고 추천하여 NAPT Museletter에 실리게 되었었다. 그리고 내가 쓴 그녀의 시에 대한 FC을 읽고 너무나 좋아하면서 나에게 자신의 시집을 보내주었다.

John Fox(시인)는 지난번 학회장(하지만 NFBPT의 문학치료사 자격증 소유자는 아니다).  Leia(워싱턴에서 왔다), 그리고  Joy옆에 Linda도 나의 CPT 동창생(?)이다.  Joy(RPT)도 시인이다.  목걸이 이름표에 붙은 파란색은 처음 참석한 사람. 초록색은 세미나 발표자, 빨간색은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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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파티
리를 자기 가족으로 입양했다고 늘 말하는 Kay네. 

어머니와 동생 Cindy가 일부러 멀리서 와주었고 언니 Susie는 전화를 걸었다. 오늘 하필 교회사람들 모임이 있어서 오지 못했다고. 선물을 보내주겠다고 주소를 묻는다.  특히 Mrs. Adams는 아이를 너무나 예뻐해주신다. 꼭 다시 돌아오라고 한다.  Kay의 언니 Susie의 딸 Jessica가 8월 27일 날 Jeremie와 결혼한다고.  두 사람 너무 잘 어울렸는데. 그리고 아들 Jake는 이번에 Univ. of Colorado를 졸업했다.  모두 두고두고 그리울 거다. 우리가 덴버에서 가장 행복해 했던 시간들은 이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다.





Bringing Gifts

(a poem for Bonghee by Jane Pace)


You bring special meaning to the words

of the English language.


You bring life and awareness to

words I take for granted

and merely shrug away.


You bring carefully drafted thoughts

that take me below the written surface.


You bring heightened understanding

to the nuances of definitions

and stretch me to think and see anew.


You bring your intricate knowledge

of literature, poetry and poets

so I may know too.


You bring poems

from your vast emotional landscape.


You bring yourself fully

to the moment of self discovery

and reveal the dept of you heart.


I hope I have listened well

to the gifts you have brought me

dropping them like rose petals on my spirit.


I will miss you and your sweet daughter Erin.

And hope that we may meet again!

With deep affection for a wondrous and safe journey home.


Jane

June 18, 2005

 

그녀가 가져온 선물 (봉희를 위한 시) --제인 패이스

 

당신은 언어에 특별한 의미를 가져와줍니다
영어로 된 말에.

 

당신은 언어에 생명과 깨달음을 가져와줍니다

내가 당연시하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말들에.

 

당신은 세심하게 생각한 의견을 가져와주어

활자 아래 깊은 곳으로 나를 데려갑니다.

 

당신은 더 높은 차원의

언어의 미묘한 여러 의미에 대한 이해를 가져와주어

내가 새롭게 생각하고 볼 수 있게 이끕니다.

 

당신은 문학과 시와 시인에 대한

섬세한 지식을 가져와주어

나도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광활한 정서적 풍경으로부터

우리에게 시를 가져와주었습니다.

 

당신은 자신을 온전히 가져와주어

자기 발견의 순간을 만나고 마음 속 깊은 곳을 보여주었습니다.

 

나 소망하기는 당신이 가져와

내 영혼에 장미꽃 봉우리처럼 떨어뜨려 준

그 선물들에 귀 기울여 들었기를.

 

당신과 당신의 사랑스러운 딸이 그리울 겁니다.

그리고 다시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멋지고 안전한 여행이 되길

깊은 사랑으로 빌며.

 

제인

6/18/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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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이 이 시를 나를 위해서 지어왔다. 그리고  읽어주면서 목이 메였다. 

Pat도 BongHee 라는 시를 지어왔다. 그리고 나에게 한번 안아보자고 하면서 자기는 울고 싶은데 울음을 시작하면 제어가 안돼서 참아야 한다고 했다.


모두들 정성다한 선물과 나를 위한 시를 하나씩 가져와 읽어주었다. 

오늘 파티에서 나는 너무 감동을 받았다. 너무나 진심어린 마음들이 모인 곳이었다.

 

이곳은 나를 그저 "나"로 받아주고 사랑해준 유일한 곳이다. 

 

사랑스럽고 감사한 사람들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인간들의 모습을 본 것이 문학치료를  배운 것보다 더 잊지 못할 감사한 일이었다.


참 이상하지.........
왜 항상 외국인들이 나를 더 좋아할까???

WH-II, 그리고 3번째 term에 들은 JTTS 수업.

Vivianne과 Laura( Laura Fonda,말고 새로운 로라), Cara가 합류.

Donna Dible은 WH1에서, Lynn Calloway는 CPT에서 함께 했고 하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Jane Pace가 새로 시작 CPT와 DU 수업에 합류했었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수업중 메트리스에 내려앉아야 하는 친구. 

얼마전 이혼한 아픔을 안고 있는 친구. 그리고 희귀병에 걸린 가족이 있는 친구.  부모님이 유럽인이어서 어려서부터 이방인이라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았단다.  미국에서 태어났어도!!!!!!   내가 "once a foreigner, forever a foreigner"라고 하자 너무나 공감하면서 자신들은 내가 너무나 용감해 보인다고 한다.  글쎄.. 용기는 막다른 골목에선 누구에게나 생기는 것인데


내게 그렇게 잘해주던 시원시원한 친구 D(호스피스)가 이 수업후 더 이상 수업을 듣지 못하고 있다. 수업중에도 늘 걱정했었는데.. 원인 모를 편두통.  빛과 소리 등 모든 감각에 과민반응을 보이, 원인도 모르고 치료약도 없는 편두통으로 시달린다. 결국 지난달 시카고까지 두주일 걸려서 밤에만 차로 이동하는 여행을 하여 검사를 받고 돌아왔다. 얼마전 메일을 주고 받았는데(조금 차도가 있다고 해서) 무척 힘든가보다.  학회에 참석못하게 된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화목한 가정에 직장, 대학원 학위 2개.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인데. 세상은 그 누구도 고통에서 예외가  없다. 어느 장소 어느 마을엘 가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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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to the Self(JTTS)는 강좌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Kathleen Adams 가 개발한 저널치료기법으로 그의 저널치료센터에서 받은 지도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이 그의 기법을 가르칠 수 있도록 되어있다.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만이 합법적인 그녀의 저널치료기법을 "교육" 할 수 있는 교육기관인 연구소이며 애덤스의 [저널치료센터]의 한국지소이다.




writing and healing I-du graduate class

Writing and Healing-I


내가 O'Keefe를 좋아한다고 하자 Santa Fe의 잡지와 안내서를 가져다 주었던 친구, 약혼자가 갑자기 사고로 죽음을 당하자 저널테라피 하나만 바라보고 맨하탄에서 덴버로 날아 온, 내가 가장 좋아했던 친구 Hope(그녀는 한학기 듣고 그만 두었다. 안타깝게도)는 내게 멋진 달력을 선물했다.  Caroline, Jane, 그리고 Debbie, Bruce, Pat 외에는 이 수업 후 헤어져서 이름을 잊었다...  직업도 시인, 작가지망생, 컴퓨터 프로그래머, 선생, 간호사, 호스피스, 수도국엔지니어 등 다양하다.

 

(아이를 위해 함께 다시 가본 곳.
이 여행이 건축공학을 전공하던 아이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할 줄 그때는 몰랐었다.  이곳이 내가 살고 싶은 곳이다! 고 느낀 아이.
그리고 아이는 결국 그 꿈을 이루었고 뉴욕에서 다시 새로운 그래픽디자이너로의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  뉴욕에서 살고 있다. )
생명력과 매력으로 가득한 곳, 뉴욕.   떠나오자 마자 또 가고 싶은 곳. 지난번 여름에 갔을 때는 저 곳이 하이얀 양산아래 테이블이 늘어선 야외 식당이었는데.

ㄴA. 아이가 태어난 USC를 방문하러 간 곳.

BHHotel 야자나무둥지가 코끼리 발같다. 저 나무에 오르면 날 넓은 초원으로 데려가 줄까.

 


예전에는 문인들, 예술가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었다는 Soho거리의 카페 피가로. 유난히 카푸치노 커피가 맛있었다는 곳. 이 날은 미지근한 카푸치노 만큼, 입술에 느껴지는 미끈한 크림의 감촉처럼, 그리고  눅눅한 열기의 7월 초 밤공기처럼 쓸쓸하기만 했다.

벽에 붙어있는 사진속 방문객들 -그들은 지금 쯤 저 먼 나라에서 무얼할까. 이 세상에서 찾아보고자 열심히 토론하고 표현하던 그 무엇을, 평화와, 해답을 찾았을까?  아니면 그 모든 게 그저 한갖 꿈속의 꿈처럼 작은 일들이어서 다 잊고 있을까? 어린시절 장난감 하나에 울고 웃고 다투던 기억이 우리에게 그저 입가에 맴도는 미소거리 밖에 되지 않듯이?   아니면 아직도 이곳에서 이루지 못했던 무엇이 그리워 그 미련 버리지 못해  저 사진속에서 처럼 이곳에 그림자로 남아 맴돌고 있을까?

멀리서는 독립기념일 불꽃축제의 폭축 터지는 소리가 환상처럼 들려오고 나는 언제나처럼 이방인이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나그네.  늘 축제에서 조금쯤 비켜서 있거나, 영광이 다 사라진 뒷골목 추억의 카페에 죽은 자들의 환영과 함께 앉아있는. 나도 그저 또하나의 그림자, 환영에 지나지 않는 ..

7월 4일

 

김환기-봄의 소리1969(치료/교육목적으로 이곳에서만 사용되었음)

--나는 간혹, 수화 김환기의 별처럼 많은 점을 찍고 선을 긋는 행위가 별이 가득찬 어느 우주공간을 끝도 없이 유영하면서 지금도 반복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생전에 수화는 말했었다. "나는 외롭지 않다. 나는 별들과 함께 있기에…." 그의 이 말은 지금도 아직 유효한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이흥우 1993)

--김환기 선생의 봄의 소리는 1969년에 그린 뉴욕 시기의 대표작 중 한점이다. 수없이 빛나는 블루빛의 별들은 김환기 선생의 별들은그분의  마음속에 빛나는 별빛이다. 수많은 별빛이다. 그 수많은 꿈을 별빛에 담아 그린 이 작품을 떠올리며 화가들이 그린 꿈을 생각하는 하루, 감사하는 하루, 꿈을 이루는 성취하는 하루를 보내고자 한다. - 오정엽의 미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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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꿈을 담아내기 위해 무수히 많은 점을 찍어 나간 추상화가 김환기(1913∼1974년).
김환기가 뉴욕의 화실에서 끝도 없이 찍어간 점과 선 (쿠르티옹이 '청색의 소용돌이요, 입자들의 교향악'이라고도 말한), 무한히 반복되며 찍어지는 동양적인 필촉감의 점들과 그어지는 선, 그것은 모든 현상(萬象)이 하나의 유전인자 같은 최소한의 단위나, 궁극의 원리(동양의 性理學의 경우 道, 또는 理氣)로 환원된 것 같은 점과 혹은 선들이다. 그것을 그림이 그려가는 '광대한 파동으로써 전달되는 생명의 전율'이며, 그 생명은 '물과 불이 형제와도 같고 땅과 하늘이 양극의 힘으로 혼합되어 있던 때인 태초의 시간에 최초로 형성된 깊은 곳에서 감지한 생명'(장자크 레베크)이라고, 장자의 혼돈과 같은 말을 한 유럽 사람도 있다.

       

오늘 문득 예전에 큰 감동으로 읽은 서경식의 비공개 글을 내 블로그에서 찾아 읽고 김환기가 끝도 없이 찍어간 점과 선이 생각났다.

그는 고흐의 그림에서 그의 신체와 뗄 수 없이 연결된 관계를 본다. 그림이 그 몸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림에 최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투여해 점묘로 그린다든가 붓터치를 여려 겹으로 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신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서경식은 김환기의 그림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작품을 보면 엄청난 힘과 품이 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시간에 그린 그림과 달리 그가 ‘밭을 가는 것처럼’이라고 말한 것처럼 구불구불 굴곡을 만들며 그린 것입니다. 한 번의 ‘구불’마다 생명이 깎인다고 할까요, 깎인 생명이 캔버스 위에 쌓인다고 할까요. 그런 변화는 아를 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생레미 시대에 전면적으로 드러납니다. 죽음에 접근함과 동시에 드러나는 것이지요.
그림 속에 들어가는 것,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화가의 욕구이기도 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그림하고 관계를 맺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갖고 싶다는 욕구지요. 한 줄의 선으로 그리면 끝나버릴 것을 점으로 그린다면…….점을 찍다 보면 시간이 엄청 걸리거든요.
화가가 그림과 관계 맺는 시간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거라고들 합니다. 아웃사이더나 정신병자가 자주 점묘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감각적으로 말입니다. 그런 욕구가 있으면 그림 속에 들어가는 시간을 화면에 쌓아가는 방법을 만들어내게 마련입니다. 화면상에서의 효과도 있습니다만, 시간을 체험하고 싶다는 것이기도 합니다.”(317~319쪽) ㅡ 서경식/[고뇌의 원급법]

 

 

 

 

 
검은 벽에 기대선 채로
해가 스무 번 바뀌었는데
내 기린(麒麟)은 영영 울지를 못한다.

그 가슴을 퉁 흔들고 간 노인(老人)의 손
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에 높이 앉았으려니
땅 우의 외롱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을라.

바깥은 거친 들 이리 떼만 몰려다니고
사람인 양 꾸민 잔나비떼들 쏘다니어
내 기린은 맘둘 곳 몸둘 곳 없어지다.

문 아주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 채
해가 또 한 번 바뀌거늘
이 밤도 내 기린은 맘 놓고 울들 못한다.

[거문고 - 김영랑 ]

그림: (c)변시지

 

[빈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Copyright ⓒ2002 BongheeLee

[Abstract]  


Windows, Rooms and Peeping Toms in Cinemato-graphicum Mundi:
Hitchcock's Rear Window

by Bonghee Lee


The title of Alfred Hitchcock's film is Rear Window which is based on the short story, "It Had to be Murder". Windows are frequently used in films and arts as an image and an expression of the frustration of and the resulting desire for communication. More often than not windows represent a desire to escape from the present situation to the unknown, free world. However, Hitchcock's "window" is at the rear which is opened to the rear windows of the private lives of New York apartments, to the prison like frames of the residents. The first part of the essay surveys the various roles the 'window' plays in RW.


A window is meant for looking out of, not the reverse. In RW, Jeff's rear window is a voyeuristic instrument which is meant for looking through other windows into the rooms from outside. The view of the inside from the outside became a popular motif in the 20th century paintings among which Hitchcock's contemporary and an enthusiastic theater-goer Edward Hopper's paintings give most insight to understand RW as is pointed out by  Pallasmaa. Many of Hopper's paintings use the compositional device of an interior with a nude or half-dressed woman glimpsed through a window by an unseen viewer who looks in from outside. The impression conveyed from both Hopper and RW, however, is not one of prurient voyeurism but rather of loneliness and isolation. This sense of isolation comes partly from the inevitable distance and the psychological gulf between the eye(cinema spectators) and the object(cinema): visual activity is by nature a touch without a touch, a contact without a contact. Hitchcock both reverses the roles of and shifts the power of the surveillant and the surveilled once more when the object of Jeff's observation breaks out of the frame and attacks him. The study of the relation between the art(eye) and the object again is a popular motif in the paintings such as Velasquez's Cupido and Venus. The spectator's voyeuristic curiosity is stirred by the nude Venus sitting askance with her back, with Cupid holding up the mirror for her in front of her. However, it is instantly and unexpectedly attacked when the spectator meets Venus' eyes looking directly at him from the mirror. The fantasy about the safety of the observer is shattered as if a dinosaur virtually attacks spectators from out of the screen frame.


If each window is a screen and Jeff is a cinema spectator, then the lives in the rear window frames are the wish-fulfillment of Jeff and other voyeur, Lisa. 'Desire' is from the Latin, de-sidus(from the star), referring that it is essentially a longing for the unattainable. Another term for desire or longing is anxiety. The double nature of Jeff's desire for Lisa, i.e. craving and rejection(anxiety), can help understanding Jeff's projection of his wish-fulfillment on the screen(windows he is watching) through the dream-works of condensation and displacement: Lisa/Torso/Mrs. Thorwald. It is natural that only when Lisa 'enters' into Jeff's fantasy world, when all other enticements to get his heart fail, can she win and get the upper hand.


The second part of this essay examines the roles of the rooms in RW, and relates one of its roles, that of Peeping Tom, to other "race of Peeping Toms" in the movie including the dog that is killed because "it knew too much". Hitchcock proceeds to include the movie spectators in the race of Peeping Toms, which leads to the third and concluding part of the essay.


The third part surveys the idea of "the world is a stage and the life is a cinema and we are actors and actresses" in RW. Whether or not Hitchcock endorses the voyeurism of the race of Peeping Toms(both cinema and audience), one thing for sure is that life is "a group of little stories," a potential cinematic art. If cinema itself is represented desires of both scopophilia and exhibitionism, then life, too, is like a texture woven with the desires to be an audience and to be an actor. Both desires in essence are the expression of the need to escape from loneliness: the need to be cared for and encouraged, to be "a neighbor" to each other. This is the answer of Hitchcock to the question of "rear window ethics" which Jeff poses in the movie. After all, without a neighbor, all the great works of Hitchcock would nothing but a lonely pantomime of Miss Lonelyhearts who invites an invisible guest to her feast but to despair.


Copyright ⓒ2002 Bongh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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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세상'에서의 창과 방 그리고 엿보기: 히치콕의 <이창>

Windows, Rooms and Peeping Toms in Cinemato-graphicum Mundi: Rear Window  by Hitchcock


I. 창


울뤼치(Cornell Woolrich)의 소설 『살인이 틀림없어』(It Had to be Murder)를 기초한 히치콕의 영화는 제목이 <뒷 창문 (Rear Window)>이다. 창을 인간의 의사소통, 혹은 그 단절, 그로 인한 절망이나 그리움을 나타내는 언어로 사용한 영화의 장면은 무수히 많다. 위에 인용한 파스테르나크의 시는 그의 소설을 영화화한 <닥터 지바고>에서 비극적인 두 사람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흔히 <창>이라고 하면 닫힌 공간에서 열린 세계로 연결되는 통로라는 일차적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기에 창을 소재로 한 그림이나 시는 많은 경우 현재에서의 일탈과 변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그리움과 연결되어있다. 반면 닫힌 공간이 그의 세계의 전부인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거나, 의식이 죽어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열린 세계가 오히려 죽음을 뜻할 수도 있다. 이런 창 안 밖에 대한 인식의 대조적 차이는 영화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에서 뉴랜드와 메이의 인식의 차이를 보여주는데서 아주 명확히 드러나기도 한다. 숨막힐 듯한 안일과 위선과 규범의 감옥에서 창을 열고 넓은 세계를 바라보고 싶어하는 뉴랜드에게 메이는 말한다. "창문 좀 닫으세요. 그러다가 죽을 병(독감)에 걸리겠어요."그리고 뉴랜드는 문득 자기가 이미 죽음이라는 병에 걸려있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음에 걸린다고!" 그는 아내의 말을 되 뇌이다가 이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이미 그 병에 걸렸는걸. 나는 죽은 몸이지--난 몇 달째 몇 달째 죽은 채로 살고 있어.

"Catch my death!" he echoed; and he felt like adding: "But I've caught it already. I AM dead--I've been dead for months and months."



반면 히치콕의 창은 열린 세계로 향한 창이 아니라 집 뒤에 낸 창문이다.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사적이고 은밀한 욕망이나 삶, 심리적 내면의 세계, 또는 자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의미이다. 이 영화의 주된 시점인 사진기사 제프(L. B. Jesfferies: James Stewart)의 뒤 창문을 통해 보여지는 것은 마당을 둘러싼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아파트들의 뒷모습이며 숨막힐 듯한 닫힌 공간이다. 더구나 화면에는 그 각각의 아파트에서 밖으로 나가는 빌딩의 입구는 보여지지 않는다. 아파트 사이의 좁은 골목만이 유일한 통로이며 이곳을 통해 거리의 한 부분과 건너편 레스토랑을 보여줄 뿐이다. 제프의 창문을 통해 보여지는 아파트들 뒤의 창문들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사적 공간을 자신도 모르는 관찰자에게 노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감옥 중에 가장 가혹한 곳은 창이 없는 닫힌 공간일 것이다. 그러나 히치콕은 아이러닉하게도 마당을 중간에 두고 제프의 창에서 바라다 보이는 아주 넓게 열려있는 창이 난 7개의 아파트 방들을 푸코(Foucault)가 말하는 원형감옥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푸코는 『기율과 형벌』(Discipline and Punish: The Birth of the Prison)에서 "우리 사회는 관찰의 사회가 아니라 감시의 사회다... 우리가 사는 곳은 '원형극장'도 '무대 위'도 아니라 모든 것이 한 눈에 보이는 파노라마 기계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200) 푸코는 인간이 어떻게 제도적 통제와 과학적 탐구 그리고 행동실험의 대상으로 전락해 가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수단으로 벤담(Jeremy Bentham)의 원형감옥(망원렌즈로 죄수들이 모르게 모든 감옥 안을 감시하고 있는)을 이용하고 있다. 커다란 창문이 달린 감옥 아닌 감옥을 세트로 사용한 이 영화에서 히치콕은 감시와 감찰이라는 엿보기 행위의 이중성을 제프의 행위를 통해 탐구한다. 제프는 석고붕대를 하고 아파트에서 꼼짝없이 갇혀 지내다가 단순한 호기심에서 뒷 창문을 통해 건너편 아파트의 사람들의 창 너머 삶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차차 살인사건의 단서를 찾고 해결하기 위해 토월드(Lars Thorwald: Raymond Burr)를 감시하는 감시자로 변하게 된다. 이처럼 원래는 건물이나 집안에서 밖을 보기 위한 장치인 창은 히치콕에 의해서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관찰 또는 감시하는 장치로 그 의미가 전복된다. 그리고 이때 그 관찰되고 있는 대상은 자신의 행동 하나 하나가 밖에서부터 유심히 관찰/감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인물은 르네상스시대 이래 친숙한 그림의 소재(관찰의 대상/모델)가 되어왔으며 관찰자(미술가)는 항상 그 대상인 모델과 같은 공간 안에 (그 모델의 동의하에) 존재한다. 반면 밖에서 창을 통해 방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 시대의 유행이다. 히치콕과 동시대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에 나타난 뉴욕풍경은 창 밖에서 들여다본 창안의 모습들이 대부분이다. 1920-30년대 호퍼는 영화광이었다고 한다. 「야창(Night Windows)」(1928)을 비롯한 일련의 그림들에서 우리는 영화화면이나 극장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야창(Night Windows)」의 전경에 있는 외부로 난 유리창턱은 무대의 가장자리를 연상시키며 그 위로 마치 조명등 아래의 무대 장면처럼 방안의 광경이 보인다.(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