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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다는 서신, 받았습니다
평안했습니다

아침이 너무 오래 저 홀로 깊은
동구까지 느리게 걸어갔습니다
앞강은 겨울이 짙어 단식처럼 수척하고
가슴뼈를 잔잔히 여미고 있습니다

마르고 맑고 먼 빛들이 와서 한데
어룽거립니다
당신의 부재가 억새를 흔들고
당신의 부재가 억새를 일으켜 세우며
강심으로 차게 미끄러져 갔습니다

이대로도 좋은데, 이대로도 좋은
나의 평안을
당신의 평안이 흔들어
한 겹 살얼음이 깔립니다

아득한 수면 위로
깨뜨릴 수 없는 금이 새로 납니다
물밑으로 흘러왔다
물 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
흰 푸른 가슴뼈에
탁본하듯
         
[이영광- 탁본]

 

 

출처 : (c)객석 1997년 11월

제목 : [해외화제] 새롭게 밝혀지는 자클린느 뒤 프레의 사생활 - 전경원

 

(치료와 교육목적으로 이곳에 가져왔으며 상업적 이용이 아님/ 저작권은 전경원과 객석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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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재능이 파멸시킨 불행한 여자


최근 영국에서는 자클린느 뒤 프레의 언니와 남동생이 발간한 뒤

프레에 대한 회고록 ‘우리 가족 속에 있던 천재’(A Genius in the

Family)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일간지 ‘더 타임스’에 1주일간

요약분이 연재되기도 한 이 회고록에서 힐러리 뒤 프레와 피어스 뒤

프레는 천재적인 재능이 한 명의 여자와 그 가족들을 파멸로 이끌어간

과정과 함께 결코 행복하지 못했던 자클린느 뒤 프레와 다니엘

바렌보임의 결혼생활을 고통스럽게 기억해 내고 있다


해외화제/10주기 맞아 새롭게 밝혀지는 자클린느 뒤 프레의 사생활


1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천재적 재능의 첼리스트, 자클린느 뒤

프레의 일생은 최근 교통사고로 사망한 영국의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그것과 흡사하게 닮아 있다. 영국인 특유의 금발과 수줍은 듯 밝은

표정을 가진 이 두 여자는 스물 남짓의 젊은 나이에 언론의 스포트이트

속으로 화려하게 등장해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다 뜻하지 않게

때이른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각기 음악성과 아름다움이라는 드문

재능의 소유자였던 이 두 여자의 개인적인 삶은 비슷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불행했다.


영국에서 부동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다이애나의 전기

‘다이애나, 그녀의 진실’은 그녀가 다섯 번이나 자살을 기도할 만큼

괴로운 결혼생활을 견뎌야 했음을 폭로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발간된

자클린느 뒤 프레에 대한 가족의 회고록 ‘우리 가족 속에 있던

천재’는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영국에서 다이애나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첼리스트 자클린느 뒤 프레의 불행했던 인생과 그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낱낱이 되살려놓고 있다.


특히 그녀의 언니인 힐러리 뒤 프레의 기억은 너무도 세밀해서 읽는

사람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영국의 한 지방에서 음악교사로 일하고

있는 힐러리는 어린 시절의 자클린느와 나누었던 대화들부터 함께

음악을 공부하던 여동생의 센세이셔널한 데뷔를 보며 느껴야 했던

좌절감, 그리고 병의 징후를 보이는 자클린느를 회복시키려던 노력과

대화조차 불가능했던 자클린느의 마지막 투병생활들을 이 책에 기록해

놓았다.


책은 1987년 10월 자클린느의 장례식에 대한 힐러리의 기억에서부터

시작된다. “…재키는 월요일에 죽었고 그 이틀 후에 장례식이 있었다.

묘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재키에게 주기 위해 꺾어놓았던 꽃다발을 집의

테이블 위에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가까운 꽃가게로 달려갔다.

꽃가게로 가는 길에는 마치 화려한 담요로 덮은 것처럼 색색의

꽃다발들이 쌓여 있었다. ‘이 꽃들은 다 어디서 난 거죠?’ 꽃가게

주인은 대답했다. ‘오늘 여기서 굉장히 큰 장례식이 있어서요. 위대한

첼리스트 자클린느 뒤 프레가 죽었답니다. 주문이 너무 많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군요. 그런데 무슨 꽃을 찾으시지요?’


차가운 뺨으로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면서 떠듬떠듬 내가

원하는 꽃을 설명했다. 나는 분홍빛이 도는 크림색의 장미 다발을 사고

싶었다. 재키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었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지갑도 집에 두고 온 모양이었다. 주인은 꽃다발을 그냥 주었다.

고맙다는 말은 쉰 목소리로밖에 나오지 않았다…”


재키의 예언 ‘어른이 되면 난 전신마비에 걸릴거야’


힐러리는 장례식을 치른 후 자기 가족이 자클린느를 잊어버리기 위해

애썼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은 자클린느가 병상에 누워 있는

15년간 그녀를 잊어버리고 있다가 그녀가 사망한 후 다시금 ‘재키

어머니의 극성스러운 가르침이 그녀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결국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했다’라고 자클린느의 죽음을 가족의 탓으로 몰고 가는

여론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자클린느의 첫번째 스승은 그녀의 어머니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언제나 피아노를 치거나 손뼉으로 리듬을

맞추며 노래하고 있었다.” 힐러리는 자클린느의 시작을 이렇게

기억한다. “어느 날 재키는 어머니와 함께 라디오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듣고 있었다. 방송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악기 소리가 차례로

흘러나왔다. 첼로 소리가 들리자 재키는 ‘엄마, 저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고 싶어’라고 말했다…다섯 살이 되던 생일날 3/4 사이즈의 첼로를

받은 재키는 그 자리에서 악기의 D선을 활로 그어 제대로 된 소리를

냈다. 적당한 어린이용 교재를 찾지 못했던 어머니는 직접 그림과

악보를 그려가며 재키를 위한 교재를 만들었다. 매일 아침 재키는 눈을

뜨자마자 간밤에 어머니가 그려놓은 새로운 악보를 찾아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갔다…” 자클린느의 어머니는 다른 두 자녀들보다 훨씬 더

자클린느를 애지중지 보살폈다.


그러나 어떻게 자클린느의 가족을 ‘재키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라고 몰아세울 수 있을까. 자클린느는 19세에 이루어진 런던

데뷔 이후로 가족들과 거의 함께 지내지 못했으며 그 전에도 이미

‘천재’라는 이유로 나머지 가족들을 매우 힘들게 했다. “나와

피어스는 언제나 재키의 뒤에 있어야 했다. 재키가 깨어나지 않은

아침에는 다들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걸어다녔으며, 가족 중에 그

누구도 재키에게 ‘안돼’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천재였으니까.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은 다 당연시되었다.”


오히려 자클린느의 비극적인 발병과 요절은 타고난 운명이

아니었을까? 가공할 만한 그녀의 재능이 평범했던 그녀의 육체를

소진시켜 때이른 죽음으로 몰고 갔던 것이 아닐까? 힐러리는 세 살

아래의 동생 자클린느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한 가지 기억을

되살려냈다. “펄리에 있던 집의 정원 끝에는 오래된 사과나무가

있었고, 그 아래 나지막한 울타리가 그늘져 있었다. 그곳에서 나와

재키는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가 열두 살 때로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우리는 둘만의 장소인 울타리 밑에서 놀고 있었다. 갑자기

재키가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내가 비밀 하나 이야기해 줄까?’


‘뭔데?’


‘이거 엄마한테 말하면 안돼… 내가 어른이 되면 말이야, 난 아마

전신마비에 걸릴거야… 그럴 거 같아…’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서로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자클린느는 자신의 재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바렌보임과의 불화, 그리고 우울증


자클린느의 연주 활동은 1965년부터 1971년경까지, 불과 6년 정도에

그쳤다. 그녀는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다발성 경화증에 걸려 서서히

온몸이 마비되어갔다. 아직도 왜 자클린느가 이 병에 걸렸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언론에 공개된 그녀는 언제나

건강하고 쾌활하며 연주에서나 삶에서나 거침없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지휘자이며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불 같은 사랑에

빠져 하루 만에 유태교로 개종하고 7일 전쟁중인 이스라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자클린느의 남동생 피어스 뒤 프레는 자클린느가 바렌보임을 처음

가족에게 소개했던 때를 이렇게 기록했다.


“1967년 3월 마지막 날, 재키는 다니엘을 데리고 집으로 오겠다고

전화했다. 그녀가 오기 1주일 전부터 온 가족이 얼마나 많이 집을

청소했는지, 약속한 날에는 온 집안 구석구석 반짝거리지 않는 데가

하나도 없었다… 재키는 저녁 무렵에 보드카 한 병을 든 채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타났다. 그녀가 그런 옷을 입은 것을 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다니엘은 재키보다 훨씬 작았다. 마치 큰 누나가

막내동생의 손을 잡고 온 것 같았다. 거실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를 본

다니엘은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곧 우리 집은 아주

인상적인 음악으로 가득 찼다. 어머니는 흥분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그 멜로디를 따라 노래하고 있었다…”


이들의 결혼은 가히 세기의 결혼이라 할 만했다. 신문에는

바렌보임의 품에 안겨 파안대소하고 있거나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자클린느의 사진이 가끔 실렸다. 바렌보임은 한계를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가 이끄는 대로 자클린느는 승승장구했다. 연주회마다 대성황을

이루었고 언론의 평은 언제나 찬사 일색이었다.


과연 자클린느는 행복했을까? 힐러리는 “그렇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녀의 기억에 따르면, 언론에 등장하는 자클린느의 모습은 실제

그녀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솔직히 재키는 신문에 나오는

사진에서처럼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았다. 자클린느는 수줍고 때로

멍했으며 인터뷰하기 위해 기자를 만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힐러리는 대중매체에 공개된 생활이 주는 연속적인 긴장감과 함께

바렌보임과의 불화가 주는 스트레스가 자클린느의 발병에 한 원인을

제공했다고 믿고 있다. 다발성 경화증의 징후는 71년 말부터

나타났지만 그 2년 전부터 자클린느는 이미 진정제를 상용해야 하는

심각한 우울증 환자였다. 그녀는 도저히 바렌보임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했다. 바렌보임 역시 가끔 멍하니 앉아 있거나 보드카에 엉망으로

취해 버리는 그녀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다시 힐러리의 회고다.“71년 봄이었던 것 같다. 한밤중에 미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재키였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재키의 목소리는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흐느껴 울었다.

‘다니엘이 날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고 해… 도와줘… 당장 와줘…’

아마 그녀가 진정제를 먹는 것을 다니엘이 발견한 것 같았다. 재키는

계속 지금 호텔로 와 자기를 데려가라고 횡설수설했다. 그러나 곧

다니엘이 전화를 뺏어 들었다. 그는 무척 화가 난 목소리로 왜

자기들의 결혼에 당신들이 간섭하느냐, 당신이 나나 의사보다 더

재키를 잘 아느냐고 소리쳤다. 나는 다니엘에게 결혼에 간섭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다만 지금 재키가 정상이 아니니 미국으로 가 재키의

얼굴만 보고 오겠다고 말했다. 전화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얼마 후에 자클린느는 혼자 도망치듯 영국으로 돌아와 힐러리의

집으로 왔다. 바렌보임과는 만나지도 전화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거의

바렌보임을 증오하고 있었고, 결혼생활은 완전히 끝장난 듯이 보였다.

우울증이 너무 심해 하루종일 큰 소리로 울 때도 많았다. 자클린느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힐러리 부부는 프랑스 해안가로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 여행은 처음에는 성공한 듯 보였다. 명랑해진

자클린느는 도버 해협을 건너며 배의 갑판 너머로 진정제 병을 던져

버렸다. 그러나 바렌보임이 프랑스로 건너오면서 그녀의 증세는 다시

악화되었다. 자클린느는 남편을 필사적으로 피했다. 그를 무서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결국 아무런 성과 없이 바렌보임이 떠난 후,

자클린느의 정신상태는 완전히 허물어졌다.


“괴로운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니 재키가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는 재키를 빨리 찾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남편이 재키를 언덕 뒤편에서 찾아냈다. 그녀는 발가벗은 채

올리브 나무 덤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멍하니 눈을 뜬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재키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재키가 자신의 삶에 걸려

있는 무거운 부담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녀는 정말 미쳐 버릴 게

틀림없었다.”


“안돼, 팔이 안 움직여…”


언론은 자클린느 뒤 프레가 과도한 연주일정으로 인한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있으며, 72년까지 공식적인 연주를 중단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그 기간 동안 자클린느는 애쉬만스워드에 있는 힐러리

부부의 농장에 머물렀다. 어릴 때부터 자클린느는 가족이란 무한정

사랑을 베푸는 존재로만 알고 있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이 16개월

가량의 요양기간 동안 그녀가 힐러리에게 입힌 괴로움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힐러리는 이 기간 동안 매일매일 뒤바뀌는 그녀의 기분과 요구를

들어주면서 “차라리 재키를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그러던 중, 자클린느는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의 짐과 함께 사라졌고 힐러리는 그녀가 바렌보임과

화해했으며 무대에도 복귀했다는 사실을 신문을 통해 알았다.


“재키는 다시 다니엘의 시계추 같은 스케줄에 맞추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연주회와 늦은 저녁식사, 호텔과 여행. 이 모든 것들이

그녀가 “견딜 수 없어”라고 소리치며 울던 것들이 아니었던가. 과연

재키가 또다시 이 생활을 버틸 수 있을까…”


73년 2월에 자클린느의 공식적인 재기 콘서트가 영국 최대의

연주회장인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렸다. 연주곡은 엘가의 첼로

협주곡이었고 지휘는 주빈 메타가 맡았다. 객석에 앉아 있던 힐러리는

그녀의 연주를 지켜보며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분명히 감지했다.


“…재키는 첼로를 높이 들고 뛰는 듯한 걸음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환호성과 휘파람이 온 홀 안을 울렸다. 무대에 선 재키는 무척 밝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정적 속에서 연주를 시작한 재키는 곧 깊은 집중력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녀가 머리를 뒤로 젖히면서 활을 긋자 강렬한

영혼의 울림이 홀 안을 꿰뚫었다… 그러나 첫 두 소절 이후 재키의

연주는 서서히 느려졌다. 예상치 못하고 있던 오케스트라는 재키의

연주를 조금 앞서나갔다.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메타는

오케스트라의 템포를 느리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의 팔이 마치

오케스트라를 잡아당기듯이 움직였다. 청중은 거의 재키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2악장 무렵에 이르러 나는 알 수 있었다.

재키의 연주에는 과거의 그녀를 가득 채웠던 자발적인 즐거움이

사라지고 없었다. 무대의 재키는 순교자처럼 괴롭게 한 소절 한 소절을

연주해 나가고 있었다… 그날 밤의 연주는 무척이나 길고 힘들었다.

마침내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재키는 웃음으로

온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자신에게 환호하는, 그러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청중들 앞에 서 있었다…”


얼마 후 자클린느는 힐러리 부부를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힐러리의

남편에게 소금통을 건네주던 자클린느의 팔이 갑자기 식탁 중간에서

구부러졌다. ‘흠, 재키, 형부가 식탁 한가운데에 앉아 있단 말이니?”

나는 농담을 하다 재키의 파래진 얼굴을 보았다. 신음 같은 한 마디가

재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안돼, 팔이 안 움직여…”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낯선 병명을 진단받은 자클린느는 치료를

위해 뉴욕으로 건너갔다.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해도 그녀는 그럭저럭

혼자 걸어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피어스가 뉴욕에서 만난

자클린느의 모습은 참담했다.


‘“의사들이 내가 죽을 거라고 했어.” 재키는 울면서 말했다. “난

이제 걸을 수도 없어. 그 사람들이 죽기 전에 먼저 정신이상이

온다고도 했어. 난 이미 미쳤는지도 몰라.” 재키는 이미 죽음의

문턱에 와 있었다. 워낙 건강했기 때문에 병세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재키를 휠체어에 태우고

재활훈련센터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명의 환자들이 걷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마이크에서 금속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새로 온 환자는 두번째 테이블에 가서 막대를 잡고 걷기 훈련을

시작하세요.’ 재키는 묵묵히 막대를 잡고 둔하게 다리를 움직였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그 광경을 지켜볼 수 없었다. 나는 재키를 다시

휠체어에 태워 병실로 돌아와 버렸다. 누구보다도 더 대단한 재능을

가진, 언제나 빛 속에 서 있던 내 누나를 그런 인정머리 없는 목소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게 할 수는 없었다.”


72년 10월부터 87년 10월까지, 자클린느는 15년 동안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서서히 죽음을 향해 흘러갔다. 긴 세월 동안 그녀는 거의

세상으로부터 잊혀졌다. 그동안 그녀를 돌본 사람은 힐러리와 몇몇

친구들뿐이었다.


“87년 들어 재키는 완전히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눈을 뜰 수가

없어 기구로 눈꺼풀을 벌려놓아야만 했다. 내가 병실에 들어가면

재키는 ‘안녕, 힐러리’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목에서는

그르륵거리는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의 팔이

허공에서 흔들렸다. 내 어깨를 만지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팔을 잡아

내 어깨에 둘러주었다. ‘재키, 다니엘은 가끔 오니?’ 재키는

그르륵거리는 소리를 냈다. 무언가를 경멸할 때 내는 소리였다. ‘그럼,

그 사람 가족들 중에서는 오는 사람이 있니?’ 그녀의 목에서 다시 한

번 같은 소리가 났다.”


87년 10월 중순, 자클린느는 폐렴에 걸렸다. 19일에 의사는 최후의

순간이 왔다고 말했다. 바람이 몹시 거세게 불던 날이었다. 자클린느의

의식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힐러리와 피어스가 그녀의 곁에 있었다. 정오가 조금 지날 무렵,

연락을 받은 바렌보임이 파리에서 급히 날아왔다. 그즈음 바렌보임은

파리에서 피아니스트인 헬레나 바쉬키로바와 살고 있었다. 힐러리는

‘갑자기 100년은 더 나이들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고 그동안 그를

원망했던 자신을 자책했다. 바렌보임이 지켜보는 가운데 천재적 재능과

자신의 나머지 모든 것을 바꾸어야 했던 불행한 여자는 숨을 거두었다.


힐러리는 바렌보임을 두둔하며 자기 가족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정리한 이 책을 끝내고 있다. 힐러리가 지켜본 그는 분명히 자기

방식대로 자클린느를 사랑했다. 다만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기에는

둘의 성격이 너무 달랐던 것이다. “95년 가을에 런던에 온 다니엘을

오랜만에 만났다. 재키가 죽은 후 처음으로 우리는 그녀에 대해서

편안하게 이야기했다. 다니엘은 말했다. “난 항상 재키의 음악에 대한

재능과 능력에 감탄하곤 했지요. 연주할 때는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소리를 냈고 첼로라는 악기의 한계 너머까지 갔었어요. 아마

첼로 입장에서도 재키 같은 연주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을걸요.”

우리는 함께 웃었다.


‘다니엘, 재키가 그리워요?’


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아주 많이요… 난 아직도 런던에 오면 이곳에서 재키와 연주하던

생각이 나서 즐거워요.’


‘그애 무덤에 가보았나요?’


‘아니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무덤 같은 데는 안 가요.

어머니 무덤에도 가본 적이 없어요.’”


전원경/‘객석’ 런던 통신원

(저작권은 전원경에게 있음)

만일 당신이 인간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싶거든, 그 누군가를 잘 알고 싶다면.....그가 웃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그의 웃음이 친절하고 후하다면, 그는 선한 사람이다.  -도스토엡스키
정호승 -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그리움 만나
얼씨구나 부둥켜앉고 웃어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영어연극부 테스피스를 창단하고 공연한지 어느 새 9년이 되었다.   옛 팜플렛 표지들을  올려본다.  흑백이라 좀 아쉽지만...  교육 대학원(조기영어교육전공) 연극도 어느새 4회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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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었다.
저 발은 이 땅 위를 떠나 서 있다.
땅 위를 딛고 있는 발이 아니다.
하늘로 날아 올라가고 있는가?  하늘에 매달려 있는가?

고통은 우리를 이미 이 세상 너머로 데려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초월일까? 
서러운 부유일까?


 그림:(c)bhlee



나로 인해 그대가 아플까 해서
나는 그대를 떠났습니다
내 사랑이 그대에게 짐이 될까 해서
나는 사랑으로부터 떠났습니다.

그리우면 울었지요
들개처럼 밤길을 헤매 다니다,
그대 냄새를 좇아 킁킁거리다 길바닥에 쓰러져
그대로 잠이 든 적도 있었지요. 가슴이 아팠고,
목이 메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대는
가만 계세요. 나만 아파하겠습니다.

사랑이란 이처럼 나를 가두는 일인가요.
그대 곁에 가고 싶은 나를
철창 속 차디찬 방에 가두는 일인가요.
아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풀었다 가두는 이 마음 감옥이여.

마음의 감옥 - 이정하

오래 고통 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지는 해의 힘없는 햇빛 한 가닥에도
날카로운 풀잎이 땅에 처지는 것을

그 살에 묻히는 소리 없는 괴로움을
제 입술로 핥아주는 가녀린 풀잎

오래 고통 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토록 피해 다녔던 치욕이 뻑뻑한,
뻑뻑한 사랑이었음을

소리 없이 돌아온 부끄러운 이들의 손을 잡고
맞대인 이마에서 이는 따스한 불,

오래 고통받는 이여 네 가슴의 얼마간을
나는 덥힐 수 있으리라

[오래 고통 받는 사람은 - 이성복]

늦가을- 김사인

그 여자 고달픈 사랑이 아파 나는 우네
불혹을 넘어
손마디는 굵어지고
근심에 지쳐 얼굴도 무너졌네

사랑은
늦가을 스산한 어스름으로
밤나무 밑에 숨어기다리는 것
술 취한 무리에 섞여 언제나
사내는 비틀비틀 지나가는 것
젖어드는 오한 다잡아 안고
그 걸음 저만치 좇아 주춤주춤
흰고무신을 옮겨보는 것

적막천지
한밤중에 깨어 앉아
그 여자 머리를 감네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흐른 불 아래
제 손만 가만가만 만져보네

꽃동네를 만드신 오웅진 신부가 수녀들에게 하신 말이란다.

"거지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돈과 먹을 것이 없는 사람?   잘 곳이  없는 사람?

받을 줄만 알 고 줄 줄 모르는 사람, 그게 바로 거지란다."

글쓰기/문학치료 (2007 여름) 워크샵 후기

1. 저널치료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된 점.


학회에서도 글쓰기 치료라는 이름으로 분과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곳곳에서 글쓰기 치료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를 하지만 이번 기회에 저널이 무엇인지 저널쓰기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저널은 일기와 같다고 하신 교수님의 말씀에 공감하면서 그냥 [저널치료](학지사) 책을 봤을 때 가졌던 저널에 대한 생각이 직접 국내에서 유일한 "공인저널치료사"인 교수님의 가이드를 따라 방법을 경험하고 나니 몸으로 체득된다. 그냥 책을 봤을 때는 저널쓰기가 어차피 글쓰기 구나 생각하면서 글을 쓸라면 이런 방법들이 있구나라고 방법적인 면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직접 경험해 보니 저널쓰기의 여러 방법이 단지 도구일 뿐 진짜 중요한건 어떻게 진실되게 지금, 현재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접 경험해보는 거랑 책만 읽은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저널쓰기 방법을 활용하고 싶은 사람은 꼭 [저널치료] 전문가의 지도를 경험해보고 활용하기를 권하고 싶다.


2. 상담이 아니라고 하셨지만 문학적으로 표현된 심리학 용어들


처음 만남에서 교수님은 자신은 심리학자가 아니고 심리치료를 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나 워크샵을 들으면서 교수임이 표현하시는 용어는 문학적으로 달리 표현된 깊이 있는 심리학적 용어들이었다.(그렇다고 내가 심리학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는 아니다) 그것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과 연륜을 가진 사람만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깊이의 언어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왠지 상담이나 심리치료라고 하면 거부감을 먼저 느끼는 우리네 정서에 비추어 볼 때 저널쓰기는 부담이 없으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치료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교수님은 끝까지 심리나 상담치료는 아니라고 하셨지만). 그것은 문학치료라는 다학문적인 상담치료를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없이 첫 걸음을 딛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3. 다양한 매체 활용의 놀라움 (문학치료와 글쓰기치료의 접목)


단순한 글쓰기치료가 아니라 무엇보다  교수님이 사용하시는 독특한 방법인 문학치료와 글쓰기치료가 접목된 방법과 다양한 형식의 텍스트를 가진 문학적 매체들이 놀랍다. 그림, 영화, 시, 글, 등 자료의 방대함과 그 자료를 구하기 위해 그동안 준비하셨을 교수님도 존경스럽다. 때로 독서치료를 진행을 하다보면 몇 가지 힘든 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내담자들이 책을 읽을 시간이 없거나 책읽기를 별로 안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널쓰기에서 사용하는 영화의 한 부분, 그림, 책의 한 문구, 시들은 매우 공감되면서도 자료를 처음부터 모두 봐야한다는 부담감을 갖지 않게 하여 좋았다. 독서자료를 활용 할 때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에 대해 여러 가지 방법을 배운 기회가 되었다. 또한 다양한 글쓰기 방법들도 재밌다. 방법이 새로운 건 아니지만 그것들이 저널쓰기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접목되는지를 알게 되었고 글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나 마인드 맵 등 자신이 쓴다는 것은 심각하게 느끼지 않도록 하는 쉬운 방법들이 글쓰기에 응용되어서 좋다.  



4.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바뀜


워크샵시간에도 말 한 적이 있는 데 나는 오래전에 일기 쓰는 것을 그만 둔 적이 있다. 왠지 글쓰기가 가지고 있던 무게감이 나를 진정으로 쓰지 못 하게 만든 것 같다. 글은 자기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나타내는 거라고 하지만 나의 글쓰기는 무의식을 의식의 검열로 검열하여 쓴 것 같았다. 정말 글을 아무 생각 없이 한번 쓸 때 끊지 않고 다시 읽어보지도 않고 써 보는 것, 그것은 아직도 얄팍한 의식의 끝을 잡고 나의 글을 검열하는 나에게 처음에는힘든 일이었지만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써 보고 나중에 다시 의식적으로 다시 읽어본 후에 써보는 후기 또한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진정한 저널 쓰기 방법이 잘 알려져서 글을 쓴다고 하면 거부감과 부담감이 먼저 드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도구로써 글쓰기를 애용하기를 바란다. 진정 부담 없는 무의식의 표현이 저널쓰기이다. 


 

저널치료를 접하고 나서 나의 변화


이 글을 쓰기 위해 저널치료 숙제로 낸 나의 글을 다시 꺼내 읽어보았다. 다시 읽어보니 새롭다. 어떤 글은 내가 왜 그 때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생각이 안 나는 것도 있고 변하지 않는 생각도 있다. 자기가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고 후기를 쓰는 것은 후기에 후기를 계속 써서 끝이 없을 것 같다. 나의 시간에 따른 생각의 변화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아빠에 대해 글을 썼었다. 되도록 솔직하게 쓸려고 했다. 한번 썼다고 해서 그 감정이 다  라진 것은 아니지만 한번 써 보자 머릿속에서 맴돌던 묵직한 무게감이 좀 준 것 같다. 뭐랄까? 계속 나의 화두인 것처럼 따라다니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첫 발을 내딛었다고나 할까?


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써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 나의 무의식이 어찌 변해가는지도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단지 지금은 책상에 앉아 컴퓨터에 앉아 무언가를 하엔 불편한 몸이 되어서 나중에 몸이 좀 편해지면 시작해야겠다. 이제 글쓰기에 대한 부담이 줄었으니 몸이 가벼워지다면 더욱 쉽게 시작할 것이다.  막연히 언젠가 해야지 하던 것이 아닌 진짜로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하고 싶은 작업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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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문학치료와 저널치료에 대한 나의 생각

뭐든 경험을 하고 나면 바로 후기를 쓰는 것이 가장 신선하고 새롭다. 시간이 좀 지났고 또한 출산이라는 인생의 아주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는 나는 온통 신경이 그 쪽에 가 있는 관계로 그 때 느꼈던 신선함을 다 전달하지 못 할까 생각이 든다. 그래도 기억을 되살려 저널치료에 대한 내 생각을 간단히 써 보았다.

*이 글은 집중 문학/저널치료 워크샵 (4일 8회, 2007년 7월)에 참석했던 한 참여자(청소년상담사 BS선생님)가 보내주신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벌거벗은 나뭇가지에
까치둥지 하나,
벗은 몸
훔쳐본 것 같아
마음 쓸쓸하다

 

[양수리 - 윤길영]

[해외 건강토픽]천식-관절염 치료에 글쓰기 큰도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드는 생각이나 느낌을 글로 쓰면 건강이 좋아진다
는 연구결과가 "미국의학회지" 4월호에 실렸다.

미국 노스다코다주립대 심리학과 죠수아 스미스박사(연구당시 뉴욕주립
대교수)는 천식환자 70명과 관절염환자 56명을 대상으로 느낌이나 생각을
글로 적도록 한 결과 환자의 50%에서 상태가 좋아졌으며 매일 하루 스케
줄을 적도록 한 경우 24%에서 상태가 호전됐다고 발표.

스미스박사는 "천식환자는 2주 뒤부터 건강이 좋아졌으며 관절염 환자
의 경우 4개월 뒤 약간 좋아졌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그
는 "누구나 글을 쓰면 심장박동수를 줄고 혈압이 내려가며 면역기능이
강화된다는 다른 연구결과도 있다"고 소개.


from medcity.com 1999-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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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베이커의 연구에서도 글쓰기가 천식과 관절염 치료에 가장 많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의 문학치료모임에서는  아토피 피부염과 여드름,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는 증상, 불면증, 숨쉬기가 답답한 경우, 심지어 얼굴의 주름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은 소규모 모임에서 나온 개별적인 사례이며 대규모 실험을 통해 나타난 통계자료가 아니어서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많이 보고 되는 변화는 역시 관계의 치료, 분노치료, 자존감 회복이었으며 자아발견, 창의적 자아 발견이었다.

photo by bhlee(c)2004



우리는 탐험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탐험의 끝은 바로
우리가 출발했던 그 지점으로 돌아오는 일
그리고 그 곳을 처음으로 알게 되는 것.
(T.S. 엘리엇- 4개의 사중주)

We shall not cease from exploration
And the end of all our exploring
Will be to arrive where we started
And know the place for the first time.
(T.S. Eliot -Little Gidding-FQ)







미로. 어쩌면 결국 우리의 시작에 끝이 있고 끝에 시작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시작과 끝은 처음의 시작과 끝이 더이상 아니다.

 

바울이 실라와 함께 감옥에 갇혀 찬송을 하였을 때 옥문이 열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찬송이 가져온 기적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든 찬송할 수 있다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이때 "기적"은 무엇입니까? 옥문이 열리는 게 기적이 아닙니다. 때로는 스테반처럼 야고보처럼 고스라니 순교당할 수 있습니다.

기적은 그 억울하고 알 수 없는 고통 중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며 반항하고 회의에 빠져야 마땅할 상황에서 "찬송"을 할 수 있는 힘, 그 믿음이 기적인 것이 아닙니까? 우리 속에 행하시는 주님의 기적은 바로 그것입니다. 뜻이 있으면 옥문이 열릴 것이고 뜻이 있으면 순교를 당할것이 아닙니까?

바울의 찬송은 옥문이 열리기를 간구하거나 기대한 찬송이 아니었습니다. 옥문이 열리자 죄수를 다 놓쳤다고 당할 일이 두려워 간수는 자결을 하려합니다. 그때 바울이 우리가 여기 있다며 그를 말렸습니다.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또 그가 할일을 했습니다. "주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간수와 가족이 모두 믿고 간수는 그의 매맞은 상처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 기적은 바울을 탈출시킨게 아니라 한 가정을 구원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주님이 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이보다 더 한 일도 할 수 있거니와 그런 나를 믿는가? 베드로가 흥분하여 예수님을 결박해 가려는 로마병사에게 칼을 휘둘렀을 때 그가 병사의 잘린 귀를 도로 붙여주시며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까? (그 기적을 행하시면서 왜 자신은 무력하게 매를 맞고 수치를 당하고 끔직한 고통을 당하시는 것입니까? 그가 세상에 온 이유를 완성하시려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을 줄 아느냐... "

바울이 자신의 이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인생의 상황들을 "믿음"으로 받았을 때 주님은 바울이 사는 이유를 하나하나 성취해 나가셨습니다. '내가 저를 통하여 내 뜻을 이루리라' 하셨던 다윗이 실수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수없이 넘어지고 또 시험에 들고 하였습니다만 주님은 그를 만들어 가셨고 그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결코 나를 포기할 수 없는 그 사랑으로 내 속에서 시작하신 "착한일--선한 그 뜻"을 다 이루시기 까지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연금당한 (물론 지하감옥에서 나왔습니다) 5년동안 그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로마의 정치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정치인,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었던 그 사람들로 인해 결국 로마가 후일 기독교 국가가 되게 됨을 바울은 모르고 숱한 고난 끝에 순교를 당합니다. 그는 가장 큰 실패자였지만 동시에 성공자였습니다.

이러한 모순을 수용하는 눈--그것이 생의 아이러니를 깨닫는 눈입니다. 생의 아이러니는 우리에게 이중시각을 줍니다. 즉 우리가 겪는 사건을 인간의 눈으로 볼 뿐 아니라 동시에 영원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영원의 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영혼의 눈"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눈입니다. 이런 '보이지 않는 약속을 믿는' 믿음의 눈은 우리를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 되는 축복을 줍니다.

바울의 선언을 보십시오. 가장 많은 고통을 당한 그가 "범사에 감사하라"합니다. "항상 기뻐하라"합니다. 이런 아이러니는 성경에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큰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이 남긴 잠언은 "헛되고 헛되니 모든게 헛되다"입니다. 세상에 새것이 없더라. 내가 지혜마저 구해보았으나 그도 헛되다...

당신이 그렇데 포기하고 싶고 버리고 싶어하는 '세상'은 그만큼 속하고 싶어하는 그래서 자꾸 더 상처입는 세상이 아닙니까? 내가 관심없다고 자꾸 밀어내는 것은 사실은 상처받기 두려워 관심없다 먼저 밀쳐내며 돌아서서 혼자 아파하는 것아닙니까? 맞습니다. 세상은 참으로 무관심합니다. 참으로 냉혹하게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부축이고는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참으로 참으로 외로운 곳입니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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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우연히 가롯유다에 대한 한구절을 읽다가 다시 머리를 끄덕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가 예수를 판 것을 후회하고 스스로 뉘우치고는 유대인들에게 가서 내가 무고한 피를 팔고 죄를 범했다며 예수 판 값으로 받은 은 30량을 돌려주려하자 그들이 말하지요.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마태27) 참 무서운 말입니다. 네가 그 죄값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악한 행위를" 부추기고는 책임은 져주지 않는 세상... 우리는 그 세상을 쫓아가느라 지칩니다. 그것 세상이 준 보상은 은돈 30입니다. 다시 돌아가서... 그렇게 버리고 싶은 그런 세상을 버리는 길은 하나입니다. 세상에 살되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마지막 절을 보십시오)

다시 말하거니와 세상은 그런 곳입니다. 하지만 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내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도 악을 행하는 자들도 모두가 가해자이기 전에 피해자(불완전함이야말로 실존적 죄를 가르키는 말이라 생각합니다.)임을 이해하고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 잘못이 아닙니다. 내가당하는 모든일에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세상이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를 용서하고 상대를 용서하고 용납하는 큰 자가 되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사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들은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예수님이 고난받으시기전 제자들을 위한 긴긴 기도에 있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나(분명 고통을 인정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곧 너희의 믿음이라(요한 1서)

진정 진정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우리를 아무곳에도 이르게하지 못할 허망한 생각 대신 진리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때 진리는 예수님 자체입니다. 그 말씀을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인격체"인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내가 곧 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우리의 영혼과 생각이 양식으로 삼지 않으면 안되기에 자신을 떡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이유도 그때문입니다.

당신은 정말 계속 자신을 그 아픔속에 방치하고 싶은건가요? 정말 낫고 싶기는 한 것입니까? 아프지 않을까봐 두려운건 아닌가요? 진리속에서 아픔이 진정한 생산적인 아픔인 것을 알지 않나요? 그렇지 않은 아픔은 나를 어느곳에도 데려가주지 못합니다. 퇴행과 허망한 챗바퀴, 두려움과 끝없는 도피밖에 없습니다.

용감히 뒤돌아 서서 뛰어 나오길 바랍니다. 그 흐름에서 표류하지 말고 날아 올라 자유를 얻기 바랍니다. 더 이상 당신의 아픔을 바라보는 일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아픈 당신을 보느라면 너무 내가 아픕니다


그리움이 홍시처럼
익어가는 시간입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병을 안고
복사꽃처럼 웃기엔 가슴이 서늘해지는
일요일 오후입니다.

( 작가 미상)

오래전 어디선가에서 가져온 시구절인데 작가 이름을 모르겠다.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 (릴케- '두이노의 비가' 에서)



[가엾은 내 손 -  최종천]

나의 손은 눈이 멀었다
망치를 쥐어잡기보다는
부드러운 무엇을 원한다
강요된 노동에 완고해지며
대책 없이 늙어가는 손
감각의 입구였던 열개의 손가락은
자판 위를 누비며
회색의 언어들을 쏟아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주던
손의 시력은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있다
열개의 손가락에서 노동은 시들어버렸다
열개의 열려 있는 입을 나는 주체할 수가 없다
모든 필요를 만들어내던 손
인간의 유일한 실재인 노동보다
입에서 쏟아지는 허구가 힘이 되고 권력이 된다니
나의 손은 이제
실재의 아무것도 만들지 않으며
허구조작에 전념하고 있다
나는 노동을 잃어버리고
허구가 되어간다
상징이 되어간다


가을은 눈의 季節- 김현승

이맘때가 되면
당신의 눈은 나의 마음,
아니, 생각하는 나의 마음보다
더 깊은 당신의 눈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落葉들은 떨어져 뿌리에 돌아가고,
당신의 눈은 세상에도 순수한 言語로 변합니다.

이맘때가 되면
내가 당신에게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가을 하늘만큼이나 멀리멀리 당신을 떠나는 것입니다.
떠나서 생각하고,
그 눈을 나의 영혼 안에 간직하여 두는 것입니다.

落葉들이 지는 날 가장 슬픈 것은
우리들 심령에는 가장 아름다운 것...... .

2007. 1. 7.

 

 

 

 

 

 

Kay's poetry salon에 갈때 만들어서 가져갔던 선물. Kay는 유난히 사과를 좋아했다.
사과에 피넛버터를 발라서 점심으로 먹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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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난 기형도의 시를 번역해서 소개했고 나의 시를 읽었다.
Christmas Memory
- by Bh Lee

We did not believe in God or
the Savior baby Christ that time
but we thought vaguely that we had to be
part of the celebration.
My sister and I cut seven paper colors
to make various string ornaments.
We hung them around the walls and ceilings.
We had no Christmas trees;
We could not afford to buy beautiful Greeting Cards,
but we enjoyed every moment of relishing the Christmas spirit
making Christmas cards in an abandoned chilly little room
though we have not many friends to send them all.
The room was the whole wide world for us at Christmas
dreaming of white downy warm snow falling down
covering our shivering bodies like blankets.
We were pre-matured to expect a Santa
coming down from the chimney,
yet we still used to grope the pillows secretly
while we feinted to sleep, in vain.

However, the winter was always colder than our fantasy;
The chilly little abandoned room was too big for us
to decorate and cover up
with our little paper rainbow trinke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