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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ture by bhlee

 

<물속의 사막- 기형도>

 

밤 세시, 길 밖으로 모두 흘러간다 나는 금지된다
장마비 빈 빌딩에 퍼붓는다
물 위를 읽을 수 없는 문장들이 지나가고
나는 더 이상 인기척을 내지 않는다

유리창, 푸른 옥수수잎 흘러내린다
무정한 옥수수나무...... 나는 천천히 발음해본다
석탄가루를 뒤집어쓴 흰 개는
그해 장마통에 집을 버렸다

비닐집, 비에 잠겼던 흙탕마다
잎들은 각오한 듯 무성했지만
의심이 많은 자의 침묵은 아무것도 통과하지 못한다
밤 도시의 환한 빌딩은 차디차다

장마비, 아버지 얼굴 떠내려오신다
유리창에 잠시 붙어 입을 벌린다
나는 헛것을 살았다, 살아서 헛것이었다
우수수 아버지 지워진다, 빗줄기와 몸을 바꾼다

아버지, 비에 묻는다 내 단단한 각오들은 어디로 갔을까?
번들거리는 검은 유리창, 와이셔츠 흰 빛은 터진다
미친 듯이 소리친다, 빌딩 속은 악몽조차 젖지 못한다
물들은 집을 버렸다! 내 눈 속에는 물들이 살지 않는다

10222006

 

(c)sgm2013

 

[밤편지 - 김남조]

 

편지를 쓰게 해다오.

이날의 할말을 마치고

늙도록 거르지 않는

독백의 연습도 마친다음

날마다 한 구절씩

깊은 밤에 편지를 쓰게 해다오

밤기도에 이슬 내리는 적멸을,

촛불에 풀리는 나직이 습한 樂曲들을

겨울 枕上(침상)에 적시이게 해다오

새벽을 낳으면서 죽어가는 밤들을

가슴저려 가슴저려 사랑하게 해다오

 

세월이 깊을수록

삶의 달갑고 절실함도 더해

 젊어선 가슴으로 소리내고

이 시절 골수에서 말하게 되는 걸

고쳐 못 쓸 유언처럼

기록하게 해다오 

 

날마다 사랑함은

날마다 죽는 일임을

이 또한 적어 두게 해다오

눈오는 날엔 눈밭에 섞여

바람 부는 날엔 바람결에 실려

땅 끝까지 돌아서 오는

영혼의 밤 외출도

후련히 털어놓게 해다오

 

어느 날 밤은

나의 편지도 끝 날이 되겠거니

가장 먼 별 하나의 빛남으로

종지부를 찍게 해다오

 

시월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 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旅程)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3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 한 탓이리.

6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 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황동규, “시월(十月)” 중에서>

 

<사는 기쁨-황동규 >

 

1

​오디오 둘러메고 한강 남북으로 이사 다니며

개나 고양이 곁에 두지 않고

칠십대 중반까지 과히 외롭지 않게 살았으니

그간 소홀했던 옛 음악이나 몰아 들으며

결리는 허리엔 파스 붙이고

수박씨처럼 붉은 외로움 속에 박혀 살자.

라고 마음먹고

남은 삶을 달랠 수는 없을까?

2

사는 건물을 바꾸지 않고는 바꿀 수 없는 바램이 있다.

40년 가까이 아파트만 몇 차례 옮겨 다니며

'나의 집'으로 가는 징검다리거니 생각했다.

마지막 디딤돌에서 발을 떼면

마련한 집의 담을 헐고

마당 절반엔 꽃을 심자.

야생화 밟지 마라 표지 세워논 현충원 산책길엔 도통 없는

노루귀 돌단풍 은방울꽃

그래, 몰운대(沒雲臺)에서 눈 크게 뜨고 만난 은방울꽃

카잔차키스 묘소에 열심히 살고 있던 부겐벨리아

루비보다 더 예쁜 루비들을 키우는 노박덩굴을 심자

겨자씨 비유의 어머니 겨자도 찾아 심자.

나머지 반은 심지 않아도 제물에 이사 와 자리 잡는 풀과

민박 왔다 눌러 앉는 이름 모를 꽃들에게 내주자.

개미와 메뚜기 그리고 호기심 많은 새들이 들르고 벌레들도 섞여 살겠지.

그래, 느낌 서로 주고 받을 마당이 있고

귀 힘 아주 빠지기 전 오디오 볼륨 제대로 올려줄 집이 주어진다면!

오크통에 30년, 책상 구석에 30년, 세상 잊고 산 위스키 앞 세워

와인과 막걸리와 칵테일을 모아 친구들을 불러

먼저 가버린 자들도 번호 살아있다면 문자를 보내

파티를 열자, 바램은 아직 유효하다

3

유효할까?

파티 다음 날, 종일 속도 마하 0으로 움직이는 텅 빈 맛이

몸에 버틸 힘을 줄까?

가을 들어 처음으로 은행잎이 비행 연습을 시작하는 저녁

동향한 창밖으로

건너편 언덕 아파트의 모든 창들이 일제히 황금향으로 피어난다.

대가(代價)없이 자신을 태우는 황금의 절창들!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는

한 해 가운데 이 한때가 가장 마음에 든다.

'가장'이라는 말에는 지금까지라는 뜻이 숨어있고,

다음은 텅 빔?

조금 전 건물 입구에서

시들고 있는 꽃에게 안부를 물었다.

코끝에 맴돌자마자 사라지는 향기로

꽃은 답했다. 텅 빔?

바램의 속내가 가짐인가 텅 빔인가?

햇빛 스러지며 한 자락씩 황금에서 어둠으로 바뀌는 창들이

차례로 물음을 던진다.

4

그간 군(郡)에서 주차장 집어 넣고

매점과 화장실 내고 길 펴고 넓혀

오르내리는 맛을 한껏 줄인 몰운대.

발걸음 멈추게 하던 제비꽃 달개비들 사라지고,

숨었다 들키던 은방울꽃 자취 감추고

미끄러워 마음 잡아주던 바윗길은 보이지 않고

올라보면, 시야 가득 차 오는 비닐하우스들

뜬구름도 뜨지 않고

아, '몰운대'에서 풀려난 몰운대!

그 언저리에 집 한 칸 마련해

강원도에서 차를 몰다 덜 살고 싶을 때면 슬그머니 들러

낮에는 대에 올라 다른 아무 데도 눈 주지 않고

밤에는 모깃불 피워 놓고 모기 침 쿡쿡 맞으며

답답함에서 풀려나리라던 긴 긴 꿈에서

이젠 새삼 놓여 나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는가?

영영 놓여나지 못하게 되었는가?

5

바위 틈에 발톱 박고 서 있는 나무 다섯 그루

바로 뒤에 야트막한 초막

비어있다.

그 뒤로 흐르는지 안 흐르는지 말없이 넓게 펼쳐진 물,

물 건너 그림자 하나 없이 커다랗고 깨끗한 산,

원나라 화가 예찬(倪瓚)의 한없이 맑고 적적한 산수는

은둔 신호만 켜지면 모든 것 놔두고 들어가

신선인 듯 가볍게 거닐고 싶었던 곳.

오늘 그의 그림 다시 들여다보니

사람들도 짐승들도 그냥 들여다보기만 했을 뿐

멧새 하나 날지 않는다

들어오려면 그림자도 놔두고 오라?

읽던 책 그대로 놔두고 휴대폰은 둔 데 잊어버리고

백주(白酒)한 병 치고 들어가

물가에 뵈지 않게 숨겨논 배를 풀어 천천히 노를 저을까?

건너편을 겨냥했으나 산이 통째로 너무도 크고 맑아

무심결에 조금 더 무심해져서

느낌과 꿈을 부려놓고 그냥 떠돌까?

바람이 인다. 갑자기 구름떼들이 이리저리 몰려 다니고

여기저기 물기둥들이 솟아 상체를 흔들고

얼음처럼 투명한 해가 불타며 하늘 한가운데로 굴러 나온다.

바위에 발톱 박은 나무들이 불길처럼 너울대자

부리 날카론 새들이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몰려 든다.

느낌과 상상력을 비우고 마감하라는 삶의 끄트머리가

어찌 사납지 않으랴!

예찬이여, 아픔과 그리움을 부려놓는 게 신선의 길이라면

그 길에 한참 못 미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간간이 들리는 곳에서 말을 더듬는다

벗어나려다 벗어나려다 못 벗어난

벌레 문 자국같이 조그맣고 가려운 이 사는 기쁨.

용서하시게.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은 대개 공격적이기 쉽습니다. 말투나 행동에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어서(배려 받지 못하고 자랐으므로) 나쁜 의도가 없는데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곤 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은 전혀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또 스스로 상처를 입습니다. “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까?”하며 이유를 모른 채 아파합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인식하지 못하다보니, 자신 때문에 불편해하는 사람에게 또다시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실 선인장 꽃처럼 여린 살을 가졌습니다. 다만 살아남기 위해서 가시를 달고 사는 것이지요. 그것이 자신을 보호할 유일한 생존법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시로 남들에게 상처를 주는 줄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 카페 『내 마음을 만지다』 중에서 

투병 중 2 - BHLee 

 

나는 갑자기 하이얀 침대에 누워

아프고 싶습니다.

맘 놓고 죄스럼 없이

아프고 싶습니다.

하이얀 침대에서 아픈 것은

당당한 일입니다.

 

나는 지금 막, 당장,

하이얀 침대에 쓰러져

실컷 아프고 싶습니다.

하얀 병원 밖 알록달록한 세상에서

하루하루 감쪽같이 앓는 건

참 많이 쓸쓸한 일입니다.

 

끝도 없는 병원 밖

긴 긴 담 길을 걷노라면 가끔

울컥 눈물이 납니다.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경계선에서

감쪽같이 앓지 않는 건

참 많이 사무치게 쓸쓸한 일입니다.

 

04 MP

매미 울음 끝에 -박재삼

  막바지 뙤약볕 속
  한창 매미 울음은
  한여름 무더위를 그 절정까지 올려놓고는
  이렇게 다시 조용할 수 있는가,
  지금은 아무 기척도 없이
  정적(靜寂)의 소리인 듯 쟁쟁쟁
  천지가 하는 별의별
  희한한 그늘의 소리에
  멍청히 빨려들게 하구나.

  사랑도 어쩌면
  그와 같은 것인가
  소나기처럼 숨이 차게
  정수리부터 목물로 들이 붓더니
  얼마 후에는
  그것이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맑은 구름만 눈이 부시게
  하늘 위에 펼치기만 하노니.

   - [울음이 타는 가을 강] (1987, 미래사)

얼마 전 산에 같이 간 20년 넘는 사랑하는 제자가 말했다.
“신기해요. 선생님은 어떻게 죽어가는 꽃이 눈에 띄세요? 그런 사람 선생님 밖에 없을 거예요. 호호호...”
내가 초록초록으로 온 세상이 물든 속에서 숨어있는 죽어가는 꽃과 나뭇잎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일이 생각났다. 화창한 봄날, 사방에 눈이 부시도록 꽃망울이 터져 나오던 날, 몇몇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러 갔었다. (물론 나는 사진을 어떻게 잘 찍는 것인지 배우지 못했다.) 신기하기도 하지. 온갖 아름다운 빛깔로 세상을 덮은 꽃들 틈에서 그때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은 그 화려한 생명의 탄성 속에 가만히 묻혀있던 침묵이었다. 죽은 나무, 죽은 꽃들이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 죽은 꽃들의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마음이 가는 대로 그냥 그 꽃들을 열심히 찍었다. 그때 (엄청 그림 잘 그리는) 화가인 내 친구가 말했다. 참 이상하다면서. 야, 누가 그런 어두운 사진을 좋아하겠니? 왜 이 아름다운 봄에 그런 사진을 찍어? 누가 그런 사진을 벽에 걸어놓고 싶겠어..
그 친구는 언젠가 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샤갈의 그림을 이야기하자 (하얀색의 "비데부스크를 넘어서"라는 그림) 그때도 뜻밖이라고 말했다. "너가 어떤 그림을 고를지 무척 궁금했는데 뜻밖이네." 색채의 마술사 샤갈의 그림 중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 어찌 그것 하나일까. 다만 그때는 그 그림이 가장 내 가슴에 울림을 주고 있었다. 그 비스듬한 귀향과 노스탤지어에 때문에. (후에 정말 뜻밖에 세상을 떠난 그가 고통 속에서 남긴 마지막 그림도 역시 더욱 밝고 열정이 가득한 아름다운 색감의 그림이어서 나를 더욱 감동시켰다.)
그 친구 말이 맞다. 지극 당연한 말이다.
나도 봄이 되면 꽃들 속에서 환하게 살아나는 내 몸과 마음을 생생하게 체험하니까. 맞는 말이다. 초록으로 우거진 숲에서 뜨거운 열정의 계절을, 지금을, 현재를 맘껏 누리고 취해야지 왜 곧 찾아올 긴긴 가을과 겨울을 미리 기억하려 하는 것일까. 이상할 수밖에.
그런데 분명한 것은 내가 발견하는 그 죽은 잎이나 꽃은 여름을 잊는다던가, 현재를 누리지 못한다던가 하는 마음과는 무관한 것이다. 어둠을 기억하지 않는 빛의 감사가 있을까? 죽음을 망각한 삶의 감사와 환희가 있을까? 그리고 그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여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죽어서도 누군가에게 베풀고 있다는 것을 늘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명 속에 소외된 죽음과 희생을 기억하는 것, 웃음 뒤에 숨겨진 아픔을 기억해주고 알아주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생명을, 꽃을, 초록을, 삶의 봄과 여름을 감사하며 누리는 나의 방식이라면 이상한 것일까?

기쁨과 희망은 의지의 문제다

- 긍정적 의지

 

 

우리는 기쁨이나 희망, 감사나 사랑 등을 모두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감정입니다. 하지만 감정 이상의 것이기도 합니다. 만약 기쁨이 마냥 샘솟듯 솟아나오는 감정일 뿐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자주 당황하게 될까요? 기뻐할 일보다 좌절하고 낙담할 일이 훨씬 더 많으니 말입니다. 기쁨은 순간일 뿐이고 슬픔은 영원히 마르지 않고 흐르는 강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시인 하진은 슬픔을 인생에서 유일하게 영원히 살아 있는 물줄기라고 말했을까요.

만일 사랑이 단지 가슴을 두근두근 설레게 하거나 상대를 애틋하게 느끼게 하는 감정일 뿐이라면, 사랑은 얼마나 덧없이 짧은 사건일까요. , 감사하는 마음이 단지 그 조건과 이유가 있을 때만 우러나오는 감정일 뿐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감사할 일이 적어질까요. 그 감사의 조건은 또 얼마나 주관적이며 이기적일까요. 브레히트가 경험했듯이 때로 운이 좋았다고 감사하던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질 수도 있고, 그 감사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로지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던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Ich, der Überlebende>

 

기쁨과 희망은 단순한 감정 이상의 힘겨운 노력

 

오래전, 힘든 시간을 보내던 딸아이는 한 가닥이라도 좋으니 희망의 빛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엄마, 오늘 친구가 내게 생일선물로 뭐 갖고 싶은지 물었어. 그래서 내가 희망이 있다는 증거 한 가지라도 갖고 싶다고 말했어.”

그러자 아이의 친구가 말했다고 합니다.

가끔 내가 희망이 없어지고 삶에 대해 회의적일 때마다 난 네 안에서 희망을 보고 힘이 나곤 해. 그렇게 가끔은 네 안의 하나님이 나를 안아주시더라.”

딸아이가 다시 내게 말했습니다.

엄마, 누군가가 나처럼 회의와 절망 속에 있으면서도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돼.

 

기쁨이나 감사, 희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상의 힘겨운 노력이자 의지이며 지혜입니다 "모든 지혜는 두 마디로 요약된다. 기다림과 희망이다"라는 A. 뒤마(Duma)의 말이 기억납니다. 생태주의 작가 바버라 킹솔버(Barbara Kingsolver)는 최악의 날들에 절망의 잿빛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찬란한 사물"을 골똘히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때 바라본 찬란한 사물은 빨간 제라늄 꽃이었고, 노란 원피스를 입은 어린 딸이었으며 초승달과 광활한 밤하늘이었습니다.

 

내가 다시 삶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나는 그것들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마치 뇌졸중 환자가 움직이지 못하는 몸의 기능을 회복하려고 두뇌의 새로운 부분을 훈련시키듯이 나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에게 기쁨을 가르쳤다. (킹솔버투손의 만조에서)

 

그는 절망에서 벗어나 다시 삶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복적으로자신에게 기쁨을 가르쳤습니다.’ 킹솔버는 이것을 마치 마비된 두뇌의 새로운 부분을 훈련시키는 것과 같았다고 말합니다. 이보다 더 정확한 비유가 있을까요? 릴케는 우리 슬픔의 대부분은 마비된 순간들이라고 했습니다. 절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상병 시인의 새처럼, 절망한 사람들은 더 이상 감정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마비된 상태입니다.

 

저 새는 날지 않고 울지 않고

내내 움직일 줄 모른다.

상처가 매우 깊은 모양이다.

- 천상병, <3> 중에서

 

이처럼 절망한 사람들은 절망의 심연 속에 가라앉아 움직이지 못합니다. 심연이란 말은 독일어로 압그룬트(Abgrund)’, 즉 존재의 기반을 잃어버린, 또는 삶의 이유를 상실한 것을 의미합니다. 내 삶이 그 어디에도 없는 부재중이라고 여겨지는 것, 이것이 바로 절망입니다. 그래서 여림 시인의 말대로 지금 나의 삶은 부재중이오니 희망을 알려주시면 어디로든 곧장 달려가겠습니다라고 호소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신에게 기뻐하는 법을 가르치기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작가 빅터 프랭클이 유태인 포로수용소 아우슈비츠에 있었을 때입니다. 한 작곡가가 희망에 찬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달 후면 모든 게 끝날 거야. 꿈을 꿨는데 다음 달 330일에 독일군이 항복했거든." 하지만 330일이 되어도 모든 것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러자 시름시름 앓던 작곡가는 그만 바로 다음 날인 1945331일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지요.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9454, 히틀러는 자살을 하고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는 그 일로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수감자들을 보면서 누구보다 체력이 뛰어나고 민첩하게 살아가는 요령을 터득한 사람들이 가장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놀랍게도 겉보기에는 나약하고 어수룩해 보여도 붉은 노을의 장엄함과 동료의 흥얼거리는 노래 소리, 들꽃 같은 아주 작은 것에 감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도 병든 동료에게 자신의 음식을 기꺼이 나눠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어떤 최악의 조건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의지와 노력으로 절망의 심연에서 마비되기를 거부하고, 자신에게 기뻐하는 법을 가르치고 훈련한 인간 영혼의 승리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찾은 삶의 의미와 희망은 생의 작은 것에서 찬란함을 찾아내어 감탄하는 따뜻한 감성과 강한 긍정적 의지에 있었습니다. 이처럼 외부 환경과 상관없이 스스로 삶의 의미와 살아갈 이유를 부여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를 프랭클은 최후의 자유라고 말합니다.

 

감사와 기쁨, 희망과 사랑을 느낄 수 없다고 절망할 때, 그것들이 자연스런 감정 이상의 의지이자 노력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과 안개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그 한가운데서 포기하지 않고 기뻐하는 능력을 나 자신에게 가르치겠습니다. 그것이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는 눈을 기르는 일처럼, 내 작은 손바닥에 무한을 담는 것처럼 놀랍고 멋진 일임을 기억하고자 노력하고 싶습니다- 반복적으로!

 

(c)이봉희 / 출처: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 카페/ 생각속의 집]

여름날 저녁 - 심재휘
 
내가 그 여름을 떠나면서
여름은 언제나 헛된 저녁이었다
저물녘이면 헐렁한 반바지에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아무렇게나 자란
풀들의 길을 따라
내일을 희롱하며 내가 걷고 있었다 그럴 때면
바람이 터진 기억의 솔기를 자꾸 꿰매며
나를 밀어내는 탓인지 그 때의 들풀 냄새가
나는 듯 할뿐이어서 더욱 손을 내저어 보는데
그럴수록 멀찍이 물러서는
냇물과 산그늘이 있었고
다만 저녁의 푸른 집들만 도드라져서
손 앞에서 잡힐 것만 같았다 여름날 저녁
세상의 모든 윤곽선들은 반듯하였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오늘의 일과를 마치며
집으로 돌아가는 간선도로의 질주 아래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추억의 박제가
또 산산이 깨어져 있었다

Chuck Mangione - Feels So Good with vocals by Don Potter

Album '70 Miles Young' 2003 ( Here only for therapeutic and/or educational purposes.)

 

https://youtu.be/kIgw3Byk_BY

 

Chuck Mangione의 가슴에 파고드는 트럼펫 연주를 Don Potter가 노래를 하는 이 곡을 참 좋아했었다.
 
There's no place for me to hide
로 시작하는 Don Potter의 첫 음성이
내 가슴을 흔들었지.
 
There’s no place for me to hide
the thoughts of all the times I've cried
and felt this pain that I have known
because I needed just to hear that special something.....
Your name is music to my heart....
 
우리 모두에게는 어딘가 숨을 곳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편히 내려놓을 수 있는 곳.
 
김용택 시인이 말하듯
"어디 울 곳"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어도 필요한 안전지대.
 
내 가슴에 음악이 되어 들리는 이름들을 떠올려본다—
나에게 안전한 숨을 곳이 되어준 이름
내가 생을 마치는 날 내 곁에 음악으로 남을 이름
 
어스름이 내려오는 저녁 시간엔
트럼펫 소리가 참 잘 어울린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다.
역시 좋다..

바다와 나비 - 김기림(1939)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오늘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 이 프로그램은 아이 양육을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지만, 어느새 내가 상처입었던 그 방식으로 아이를 대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절망하는 양육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 아이를 양육하는 양육자에게 도움이 되고 양육자 자신도 치유받는 글쓰기치료 실습이 포함됩니다.
(실습 중 쓰는 글을 비밀이 보장됩니다.)
❍ 프로그램 내용: 1)당신 모습 그대로 오십시오   2)내면 가족, 내면 아이    3)엄마의 기대가 나를 아프게 해요
❍ 프로그램 내용은 참여자 분들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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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정말 삶에서 가장 놀라운 축복중 하나입니다. 축복인 이유는 당연히 그 놀라운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함께하는 기적 같은 시간들 때문이지요. 어떤 것도 당연한 것이 없는 힘겹고도 아름다운 생명의 성장을 바라보는 경이로움 때문입니다.

(반드시 어린 자녀를 둔 부모가 아니어도 됩니다. 남들이 외면한 내면의 나도 내가 가장 먼저 양육해야 하는 아이이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가 축복인 이유는 부모가 진정한 사랑, 가장 순수하고 힘겨운 사랑을 배우는 놀라운 과정이기 때문에 축복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느 누군가를 위해서 그렇게 오래 고통받고(인내하고), 온유하고, 무례히 행하지 않고, 기꺼이 나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랑을 해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경우라도 포기하지 않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소망하며, 모든 것을 견디는, 그래서 그 과정에서 부모 자신이 놀라운 성장을 이루는 여정이기에 가장 감사한 축복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양육을 위해서 많이 공부하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지적으로 안다고 해도 많은 분들이 어느새 내가 자란 방식으로 (상처 입었던 그 방식으로) 아이를 대하고 있는 자신을 만나고 소스라치게 절망하게 되지요. 어느 날 내 슬픔과 아픔을 가장 사랑하는 어린 아이에게 대물림하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어느새 아이 속에서 상처 입은 나의 모습을 만나게 되는 절망을 경험하기도 하지요.
 
왜 머리로는 아는데 안 될까요.... 이 워크숍은 이 질문에서 시작하겠습니다.

먼 곳이 생겨난다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며 먼 곳이 생겨난다
  ㅡ문태준

 

 

@NewYork

<그대 가까이 2 - 이성복>
          
자꾸만 발꿈치를 들어 보아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때로 기다림이 길어지면
원망하는 생각이 들어요
까마득한 하늘에 새털구름이
떠가고 무슨 노래를 불러
당신의 귓가에 닿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만나지 않았으니
헤어질 리 없고 헤어지지
않았어도 손 잡을 수 없으니
이렇게 기다림이 깊어지면
원망하는 생각이 늘어납니다

고독을 위한 의자 - 이해인

  홀로 있는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나 속의 나를
  조용히 들여다 볼 수 있으므로
  여럿 속에 있을 땐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무게를
  고독 속에 헤아려 볼 수 있으므로
  내가 해야 할 일
  안 해야 할 일 분별하며
  내밀한 양심의 소리에
  더 깊이 귀 기울일 수 있으므로

  그래,
  혼자 있는 시간이야 말로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
  여럿 속의 삶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
  고독 속에
  나를 길들이는 시간이다.

    -( [꽃삽]/샘터사2003)

벚꽃 지는 날에 - 김승동

  가끔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고
  그래서 더 알 수 없는 눈물이
  푸른 하늘에 글썽일 때가 있다.

  살아간다는 것이
  바람으로 벽을 세우는 만큼이나
  무의미하고
  물결은 늘 내 알량한 의지의 바깥으로만
  흘러간다는 것을 알 때가 있다.

  세상이 너무 커서
  세상 밖에서 살 때가 있다.

  그래도 기차표를 사듯 날마다
  손을 내밀고 거스름돈을 받고
  계산을 하고 살아가지만
  오늘도 저 큰 세상 안에서
  바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나는 없다.

  누구를 향한 그리움마저도 떠나
  텅 빈 오늘
  짧은 속눈썹에 어리는 물기는
  아마 저 벚나무 아래 쏟아지는
  눈부시게 하얀 꽃잎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2003년 시집 <외로움을 훔치다> (문화창작)
ㅡㅡㅡㅡㅡㅡㅡㅡ

photo by bhlee 

 

모란 터져버린 "찬란한 슬픔의 봄" -   5월이다.  

 

아파트 화단에 며칠 전 모란이 함박웃음처럼 화알짝 피었었다. 어제저녁 일부러 카메라를 가져갔지만 벌써 시들어가고 있었다.

모란꽃을 보면 내 맘에 살아계신 엄마가 생각난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엔 아주 큰 꽃밭이 있었다. 뒷마당 비스듬히 경사지게 만든 꽃밭에는 키 작은 채송화부터 맨드라미, 해당화, 모란, 샐비어, 칸나, 매화, 온갖 색깔의 장미, 사철나무, 무궁화, 찔레, 수국,.. 등등, 참 많은 꽃나무들이 (그리고 대추나무도) 있었다. 나는 언니 오빠가 모두 학교 가고 혼자 남은 오후, 쨍하게 깨질 듯한 정적 속에서, 그리고 현기증 나게 환한 햇살아래서 항상 꽃밭에서 놀았던 것 같다.  바닥에 뚜욱뚜욱 떨어진 꽃잎들을 주워서 돌로 찧어 혼자서 일인 몇 역을 하면서 소꿉놀이도 하고....  엄마를 찾아 부엌으로 가면 커다란 무쇠 솥들이 돌부처처럼 가부좌를 틀고 주르륵 앉아있고 그 아래 불 꺼진 아궁이는 오후의 정적만큼이나 거대한 암흑의 입을 벌리고 나를 삼킬 듯 쳐다보았다.  평소 따뜻하던 부엌은 나른하고 외로운 오후의 정적 속에서는 항상 그렇게 두려움을 주는 장소였다.  엄마는 늘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계셨고 나는 참 외로웠다.

서울로 이사 오면서 유달리 꽃을 좋아하셨던 엄마는 모란꽃을 꽃밭에서 파서 싣고 오셨다.  서울에서도 몇 차례 이사를 갈 때마다 잘 견디어오던 모란을 어머니는 오빠가 마침내 아파트로 집을 바꿀 때 집 화단에서 우리 집 아파트 화단으로 옮겨주셨다.  못내 남의 손에 그 사연과 역사가 담긴 모란을 넘기고 싶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마침 우리 아파트가 1층에 있었기에 거실 바로 앞 화단에 그 모란을 심어주셨다.  엄마의 모란은 오랜 세월 죽지도 않고 참 감사하게도 봄마다 자줏빛 짙은 웃음을 벙실벙실 성실하게도 피워 올렸다.... 그리고 우리가 또 이사하면서 엄마의 모란은 그만  이제 남의 집 베란다 앞에 남겨지게 되었다.  가끔 그 아파트단지에 사는 언니를 방문할 때면 나는 일부러 내가 살았던 동엘 가본다.  베란다 앞 화단에 모란이 잘 있는지 보고 싶어서.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모란은 내 기분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것이지만 전과는 달라보였다.  그래도 아직은 건강히 살아남아 몇 개의 짙은 색 꽃을 피우고 있었다. 올봄엔 가보지 못했다.  사실 두렵다. 그 모란이 어느 날 웃음꽃을 거두게 되는 것을 보는 게...

새벽에 어렴풋이 눈을 뜨면 엄마는 항상 라디오에서 새벽의 명상 프로그램을 듣고 계셨다. 잠결에 들려오던 음악은 타이스의 명상곡과 생상의 백조였다.  그 많은 일과 중에서 늘 책을 읽으시던 어머니.  나이 들어, 앉아서 졸고 계시는 어머니께 '엄마, 누워 자..' 하면 얼른 '아니다..' 하시고 다시 무언가 하시던 어머니.. "잠자는 시간은 죽은 거 한 가지인 데....." 하시며 살아 있는 시간들을 아끼시던 엄마. 

 

엊그제 동네에서 모란을 보았을 때,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가 잠든 공원묘원은 봄이 되면 꽃이 유달리 아름다운 곳이라고, 그래서 자기는 봄에 늘 공원묘원으로 놀러 가서 다른 사람들이 하필 묘지로 봄나들이를 가는지 이상하게 생각한다던 Mrs. Patch의 말이 생각난다.  난 마음과 달리 엄마의 묘소에 혼자서 찾아가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그립다고 말하는 게 참  염치없고 죄스럽다. (얼마 전 딸과 사위와 함께 엄마와 아버지, 오빠가 잠든 그곳을 찾아뵈었을 때 우리 마음처럼 안개비가 내렸었지... 아이는 그만 눈물을 터뜨렸지...)

 

어김없이 5/8일은 찾아오는데 나는 엄마를 찾아뵐 수 없다.  엄마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친정이 이제 없다.

엄마.. 정말.. 죄송해요. 치매 병원에 계실 때도, 그렇게 그곳에 홀로 남겨지는 게 싫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으신 분이 우리만 가면 집에 데려다 달라고 아기처럼 애교를 부리며 보채셨는데....  다른 사람 다 몰라봐도 그리 사랑하셨던 우리 딸이 가면 유난히 좋아하셨던 엄마.  일부러 곡기를 스스로 끊으신 엄마....  그때도 나는 내 고통에 함몰되어 허우적거리느라 자주 찾아뵙지도 않았다.  참 모질고 이기적인 나쁜 딸이었다. 인간은 얼마나 모질고 이기적인가.   내가 엄마 그립다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

 

후회란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한 것인지....

사람들은 꼭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되어야 후회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란 안전 하다. 책임이 따르지 않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때에야 후회하는지 모른다.
그렇게 인간은 이기적이다. 

용서를 해 줄 이 이미 사라진 후에야 허공에 대고 용서를 구하는 이 이기심.


부끄러운 나의 사랑은 늘 그렇게 한 발 늦고야 만다.... (20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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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1.

올해는 어느 때보다 일찍 찾아온 봄 때문에 모란도 일찍 피었다 진 거 같다.
지난달 삼성서울병원에 갔다가 오면서 엄마의 모란을 보러 정말 오랜만에 예전 살던 "그 집" 앞 화단에 가보았다. 
고맙게도 두 주전 들렀을 때 꽃망울만 보여주던 모란이 그 사이에 활짝 피었다.  그리고 전보다 더 풍성해진 꽃나무!!! 

엄마 본 듯 반갑고 고마워서 가서 다시 한 번 고맙다고, 잘했다고, 이쁘다고... 말 걸어주고 돌아왔다. 
벌써 15년 전 이곳으로 옮겨 심은 (실은 55년전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올 때  옮겨 온) 꽃나무가

몇 번의 이사를 견디고 저렇게 잘 살아주다니... 
뿌리가 더 깊이 넓게 가지를 쳐서 새가족을 이루며 이렇게 잘 살아주다니... 대견하고 고마웠다. 


오빠에게 모란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오빠가 내 맘을 알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오빠도 같은 마음이었던지 (그곳 관리소의 동의를 얻고) 나와 함께 몇 뿌리 캐서 가져오려고 그곳엘 갔었다. 
그런데 어찌 뿌리가 깊이 내려 뻗었든지 허리가 무척 좋지 않은 일흔 중반 오빠와 손관절염으로 불편한 내게는 역부족이었다. 아쉽지만  다음에 장비를 더 준비해서 와야겠다며  그냥 돌아왔었다. 

 

그런데 어제 지난주 올케언니의 도움으로 몇 뿌리 어렵게 어렵게 파서 가져왔다고, 잘 키워서 자라면 나에게도 주겠다고 전화가 왔다. 
반갑고, 고맙고...   부디 잘 자라주기를 바란다!!!  하늘나라에서 엄마도 기뻐하실 것 같다. 그러셨으면 좋겠다. 
미국으로 가져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거야말로 꿈같은 소망일 뿐이지...... 

봄 과수원으로 오세요
석류꽃 만발한 곳, 햇살과 포도주와 연인들이 있어요.
당신이 혹 안 오신다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당신이 혹 오신다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루미/ 이봉희 역)

 

photo fr gardening books-Virginia Woolf's garden
(used here only for therapeutic purp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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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 본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꼽으라면 당연히 모네의 정원 지베르니를 빼 놓을 수 없겠지만... 그보다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티니 컬리지의 정원이 더 먼저 떠오른다.

그곳은 "아, 좋다"라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고요함과 숙연함을 느끼게 하던 공간으로 내 가슴에 남아있다. 아무도 없는 어둑한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안개처럼 어둠이 내리는 그곳에서 같이 수업 듣던 일본에서 온 학생(선생)과 함께 아무 말 없이 한 동안 앉아 있다가 온 기억이 난다. 휴식과 사색의 공간!  의미 없는 소음에 지친 요즘, 그리고 나도 그런 의미 없는 말을 하고 있는 요즘,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도!

 

그런데 시인은 말한다.
이 가슴 벅찬 아름다움이 당신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니 당신이 있다면 또 이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말이 없어도 좋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더욱 그리운 계절이다.

 



나는 금세 바보 같은 울보로 변할 참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아담이 작전을 바꾸었다.


"창밖을 봐, 제제. 날씨가 아주 멋지잖아. 하늘이 무척 푸르고 구름은 마치 어린 양 떼들 같아. 모든 것이 네가, 가슴 속에서 노래하던 작은 새를 놓아주던 바로 그날 같아."

아담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저 태양을 봐. 제제. 하느님의 태양이야. 하느님의 가장 아름다운 꽃.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씨앗들을 싹트게 해주는 그 태양이야......하느님의 태양이 저렇게 아름다우니 다른 태양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나는 깜짝 놀랐다.


"다른 태양이라니, 아담? 나는 그 자체로도 엄청나게 큰, 저 태양만 알고 있는데." 

 

 

"지금 저것보다 더 큰 다른 태양을 말하고 있는 거야. 모든 사람의 가슴에서 솟아오른 태양 말이야. 우리들의 희망의 태양. 우리의 꿈을 뜨겁게 달구기 위해 우리가 가슴속에서 달구고 있는 태양 말이야."
나는 감탄했다.


"아담, 너 시인이구나?"

 

"아냐. 그저 너보다 조금 먼저 내 태양의 중요성을 알았을 뿐이라구."

 

"'나의' 태양?"

 

"제제. 네 태양은 슬퍼, 비 대신에 눈물로 가려진 태양. 아직 자신의 모든 능력과 힘을 발견하지 못한 태양. 아직 자신의 모든 삶을 아름답게 만들지 못한 태양. 조금 피곤하고 나약한 태양이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별것 아니야. 그저 원하기만 하면 돼. 삶의 아름다운 음악들이 들어오도록 마음의 창을 열어야 해. 따뜻한 정이 가득한 순간들을 노래하는 시 말이야....제제, 무엇보다도 넌 삶이 아름답다는 걸 배워야 해. 그리고 우리가 지금 가슴속에 달구고 있는 태양이, 하느님께서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더 풍요롭게 하려고 우리에게 내려주신 것임을 깨달아야 해."


(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2: 햇빛사냥] )

 

  09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