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638건
넌 참 이상해... | 2023.08.15
기쁨과 희망은 감정 이상의 힘겨운 노력 | 2023.08.15 여름날 저녁 - 심재휘 | 2023.07.25 Chuck Mangione, Feels So Good/ feat Don Potter 5 | 2023.07.18 바다와 나비 - 김기림 | 2023.06.15 내 안의 아이를 만나다: 방아다리문학도서관 워크숍 | 2023.06.12 그대 가까이2 -이성복 | 2023.05.23 고독을 위한 의자 - 이해인 | 2023.05.21 벚꽃 지는 날에 | 2023.05.11 나의 가족(1) 엄마와 모란- "찬란한 슬픔의 봄" 4 | 2023.05.01 봄 과수원으로 오세요 - 루미 | 2023.03.15 햇빛 사냥 4 | 2023.03.13 새- 마종기 3 | 2023.03.12 3월의 기도 - 남정림 | 2023.03.04 천장호에서 - 나희덕 | 2023.02.13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1 | 2023.02.08 박수근과 나목들 | 2023.02.08 나는 내 편이 되기로 했다: 이혼 후 치유와 성장을 위한 집단글쓰기문학상담 | 2023.01.08 행복 2 - 김용택 | 2023.01.01 행복3- 김용택 | 2023.01.01
얼마 전 산에 같이 간 20년 넘는 사랑하는 제자가 말했다.
“신기해요. 선생님은 어떻게 죽어가는 꽃이 눈에 띄세요? 그런 사람 선생님 밖에 없을 거예요. 호호호...”
내가 초록초록으로 온 세상이 물든 속에서 숨어있는 죽어가는 꽃과 나뭇잎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일이 생각났다. 화창한 봄날, 사방에 눈이 부시도록 꽃망울이 터져 나오던 날, 몇몇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러 갔었다. (물론 나는 사진을 어떻게 잘 찍는 것인지 배우지 못했다.) 신기하기도 하지. 온갖 아름다운 빛깔로 세상을 덮은 꽃들 틈에서 그때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은 그 화려한 생명의 탄성 속에 가만히 묻혀있던 침묵이었다. 죽은 나무, 죽은 꽃들이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 죽은 꽃들의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마음이 가는 대로 그냥 그 꽃들을 열심히 찍었다. 그때 (엄청 그림 잘 그리는) 화가인 내 친구가 말했다. 참 이상하다면서. 야, 누가 그런 어두운 사진을 좋아하겠니? 왜 이 아름다운 봄에 그런 사진을 찍어? 누가 그런 사진을 벽에 걸어놓고 싶겠어..
그 친구는 언젠가 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샤갈의 그림을 이야기하자 (하얀색의 "비데부스크를 넘어서"라는 그림) 그때도 뜻밖이라고 말했다. "너가 어떤 그림을 고를지 무척 궁금했는데 뜻밖이네." 색채의 마술사 샤갈의 그림 중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 어찌 그것 하나일까. 다만 그때는 그 그림이 가장 내 가슴에 울림을 주고 있었다. 그 비스듬한 귀향과 노스탤지어에 때문에. (후에 정말 뜻밖에 세상을 떠난 그가 고통 속에서 남긴 마지막 그림도 역시 더욱 밝고 열정이 가득한 아름다운 색감의 그림이어서 나를 더욱 감동시켰다.)
그 친구 말이 맞다. 지극 당연한 말이다.
나도 봄이 되면 꽃들 속에서 환하게 살아나는 내 몸과 마음을 생생하게 체험하니까. 맞는 말이다. 초록으로 우거진 숲에서 뜨거운 열정의 계절을, 지금을, 현재를 맘껏 누리고 취해야지 왜 곧 찾아올 긴긴 가을과 겨울을 미리 기억하려 하는 것일까. 이상할 수밖에.
그런데 분명한 것은 내가 발견하는 그 죽은 잎이나 꽃은 여름을 잊는다던가, 현재를 누리지 못한다던가 하는 마음과는 무관한 것이다. 어둠을 기억하지 않는 빛의 감사가 있을까? 죽음을 망각한 삶의 감사와 환희가 있을까? 그리고 그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여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죽어서도 누군가에게 베풀고 있다는 것을 늘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명 속에 소외된 죽음과 희생을 기억하는 것, 웃음 뒤에 숨겨진 아픔을 기억해주고 알아주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생명을, 꽃을, 초록을, 삶의 봄과 여름을 감사하며 누리는 나의 방식이라면 이상한 것일까?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기쁨과 희망은 의지의 문제다 - 긍정적 의지
우리는 기쁨이나 희망, 감사나 사랑 등을 모두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감정입니다. 하지만 감정 이상의 것이기도 합니다. 만약 기쁨이 마냥 샘솟듯 솟아나오는 감정일 뿐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자주 당황하게 될까요? 기뻐할 일보다 좌절하고 낙담할 일이 훨씬 더 많으니 말입니다. 기쁨은 순간일 뿐이고 슬픔은 영원히 마르지 않고 흐르는 강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시인 하진은 슬픔을 “인생에서 유일하게 영원히 살아 있는 물줄기”라고 말했을까요. 만일 사랑이 단지 가슴을 두근두근 설레게 하거나 상대를 애틋하게 느끼게 하는 감정일 뿐이라면, 사랑은 얼마나 덧없이 짧은 사건일까요. 또, 감사하는 마음이 단지 그 조건과 이유가 있을 때만 우러나오는 감정일 뿐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감사할 일이 적어질까요. 그 감사의 조건은 또 얼마나 주관적이며 이기적일까요. 브레히트가 경험했듯이 때로 운이 좋았다고 감사하던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질 수도 있고, 그 감사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로지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던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Ich, der Überlebende>
기쁨과 희망은 단순한 감정 이상의 힘겨운 노력
오래전, 힘든 시간을 보내던 딸아이는 한 가닥이라도 좋으니 희망의 빛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엄마, 오늘 친구가 내게 생일선물로 뭐 갖고 싶은지 물었어. 그래서 내가 희망이 있다는 증거 한 가지라도 갖고 싶다고 말했어.” 그러자 아이의 친구가 말했다고 합니다. “가끔 내가 희망이 없어지고 삶에 대해 회의적일 때마다 난 네 안에서 희망을 보고 힘이 나곤 해. 그렇게 가끔은 네 안의 하나님이 나를 안아주시더라.” 딸아이가 다시 내게 말했습니다. 엄마, 누군가가 나처럼 회의와 절망 속에 있으면서도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돼.
기쁨이나 감사, 희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상의 힘겨운 노력이자 의지이며 지혜입니다. "모든 지혜는 두 마디로 요약된다. 기다림과 희망이다"라는 A. 뒤마(Duma)의 말이 기억납니다. 생태주의 작가 바버라 킹솔버(Barbara Kingsolver)는 최악의 날들에 절망의 잿빛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찬란한 사물"을 골똘히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때 바라본 찬란한 사물은 빨간 제라늄 꽃이었고, 노란 원피스를 입은 어린 딸이었으며 초승달과 광활한 밤하늘이었습니다.
내가 다시 삶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나는 그것들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마치 뇌졸중 환자가 움직이지 못하는 몸의 기능을 회복하려고 두뇌의 새로운 부분을 훈련시키듯이 나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에게 기쁨을 가르쳤다. (킹솔버《투손의 만조》에서)
그는 절망에서 벗어나 다시 삶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자신에게 ‘기쁨을 가르쳤습니다.’ 킹솔버는 이것을 마치 마비된 두뇌의 새로운 부분을 훈련시키는 것과 같았다고 말합니다. 이보다 더 정확한 비유가 있을까요? 릴케는 우리 슬픔의 대부분은 마비된 순간들이라고 했습니다. 절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상병 시인의 새처럼, 절망한 사람들은 더 이상 감정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마비된 상태입니다.
저 새는 날지 않고 울지 않고 내내 움직일 줄 모른다. 상처가 매우 깊은 모양이다. - 천상병, <새 3> 중에서
이처럼 절망한 사람들은 절망의 심연 속에 가라앉아 움직이지 못합니다. 심연이란 말은 독일어로 ‘압그룬트(Abgrund)’, 즉 존재의 기반을 잃어버린, 또는 삶의 이유를 상실한 것을 의미합니다. 내 삶이 그 어디에도 없는 부재중이라고 여겨지는 것, 이것이 바로 절망입니다. 그래서 여림 시인의 말대로 “지금 나의 삶은 부재중이오니 희망을 알려주시면 어디로든 곧장 달려가겠습니다”라고 호소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신에게 기뻐하는 법을 가르치기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작가 빅터 프랭클이 유태인 포로수용소 아우슈비츠에 있었을 때입니다. 한 작곡가가 희망에 찬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달 후면 모든 게 끝날 거야. 꿈을 꿨는데 다음 달 3월 30일에 독일군이 항복했거든." 하지만 3월 30일이 되어도 모든 것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러자 시름시름 앓던 작곡가는 그만 바로 다음 날인 1945년 3월 31일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지요.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945년 4월, 히틀러는 자살을 하고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는 그 일로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수감자들을 보면서 누구보다 체력이 뛰어나고 민첩하게 살아가는 요령을 터득한 사람들이 가장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놀랍게도 겉보기에는 나약하고 어수룩해 보여도 붉은 노을의 장엄함과 동료의 흥얼거리는 노래 소리, 들꽃 같은 아주 작은 것에 감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도 병든 동료에게 자신의 음식을 기꺼이 나눠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어떤 최악의 조건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의지와 노력으로 절망의 심연에서 마비되기를 거부하고, 자신에게 기뻐하는 법을 가르치고 훈련한 인간 영혼의 승리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찾은 삶의 의미와 희망은 생의 작은 것에서 찬란함을 찾아내어 감탄하는 따뜻한 감성과 강한 긍정적 의지에 있었습니다. 이처럼 외부 환경과 상관없이 스스로 삶의 의미와 살아갈 이유를 부여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를 프랭클은 “최후의 자유”라고 말합니다.
감사와 기쁨, 희망과 사랑을 느낄 수 없다고 절망할 때, 그것들이 자연스런 감정 이상의 의지이자 노력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과 안개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그 한가운데서 포기하지 않고 기뻐하는 능력을 나 자신에게 가르치겠습니다. 그것이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는 눈을 기르는 일처럼, 내 작은 손바닥에 무한을 담는 것처럼 놀랍고 멋진 일임을 기억하고자 노력하고 싶습니다- 반복적으로!
(c)이봉희 / 출처: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 카페/ 생각속의 집]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여름날 저녁 - 심재휘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Chuck Mangione - Feels So Good with vocals by Don Potter Album '70 Miles Young' 2003 ( Here only for therapeutic and/or educational purposes.)
Chuck Mangione의 가슴에 파고드는 트럼펫 연주를 Don Potter가 노래를 하는 이 곡을 참 좋아했었다.
There's no place for me to hide
로 시작하는 Don Potter의 첫 음성이
내 가슴을 흔들었지.
There’s no place for me to hide
the thoughts of all the times I've cried
and felt this pain that I have known
because I needed just to hear that special something.....
Your name is music to my heart....
우리 모두에게는 어딘가 숨을 곳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편히 내려놓을 수 있는 곳.
김용택 시인이 말하듯
"어디 울 곳"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어도 필요한 안전지대.
내 가슴에 음악이 되어 들리는 이름들을 떠올려본다—
나에게 안전한 숨을 곳이 되어준 이름
내가 생을 마치는 날 내 곁에 음악으로 남을 이름
어스름이 내려오는 저녁 시간엔
트럼펫 소리가 참 잘 어울린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다.
역시 좋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바다와 나비 - 김기림(1939)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 아이를 양육하는 양육자에게 도움이 되고 양육자 자신도 치유받는 글쓰기치료 실습이 포함됩니다. (반드시 어린 자녀를 둔 부모가 아니어도 됩니다. 남들이 외면한 내면의 나도 내가 가장 먼저 양육해야 하는 아이이니까요.)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그대 가까이 2 - 이성복>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고독을 위한 의자 - 이해인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벚꽃 지는 날에 - 김승동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photo by bhlee
모란 터져버린 "찬란한 슬픔의 봄" - 5월이다.
아파트 화단에 며칠 전 모란이 함박웃음처럼 화알짝 피었었다. 어제저녁 일부러 카메라를 가져갔지만 벌써 시들어가고 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엔 아주 큰 꽃밭이 있었다. 뒷마당 비스듬히 경사지게 만든 꽃밭에는 키 작은 채송화부터 맨드라미, 해당화, 모란, 샐비어, 칸나, 매화, 온갖 색깔의 장미, 사철나무, 무궁화, 찔레, 수국,.. 등등, 참 많은 꽃나무들이 (그리고 대추나무도) 있었다. 나는 언니 오빠가 모두 학교 가고 혼자 남은 오후, 쨍하게 깨질 듯한 정적 속에서, 그리고 현기증 나게 환한 햇살아래서 항상 꽃밭에서 놀았던 것 같다. 바닥에 뚜욱뚜욱 떨어진 꽃잎들을 주워서 돌로 찧어 혼자서 일인 몇 역을 하면서 소꿉놀이도 하고.... 엄마를 찾아 부엌으로 가면 커다란 무쇠 솥들이 돌부처처럼 가부좌를 틀고 주르륵 앉아있고 그 아래 불 꺼진 아궁이는 오후의 정적만큼이나 거대한 암흑의 입을 벌리고 나를 삼킬 듯 쳐다보았다. 평소 따뜻하던 부엌은 나른하고 외로운 오후의 정적 속에서는 항상 그렇게 두려움을 주는 장소였다. 엄마는 늘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계셨고 나는 참 외로웠다.
엊그제 동네에서 모란을 보았을 때,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가 잠든 공원묘원은 봄이 되면 꽃이 유달리 아름다운 곳이라고, 그래서 자기는 봄에 늘 공원묘원으로 놀러 가서 다른 사람들이 하필 묘지로 봄나들이를 가는지 이상하게 생각한다던 Mrs. Patch의 말이 생각난다. 난 마음과 달리 엄마의 묘소에 혼자서 찾아가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그립다고 말하는 게 참 염치없고 죄스럽다. (얼마 전 딸과 사위와 함께 엄마와 아버지, 오빠가 잠든 그곳을 찾아뵈었을 때 우리 마음처럼 안개비가 내렸었지... 아이는 그만 눈물을 터뜨렸지...)
어김없이 5/8일은 찾아오는데 나는 엄마를 찾아뵐 수 없다. 엄마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친정이 이제 없다. 엄마.. 정말.. 죄송해요. 치매 병원에 계실 때도, 그렇게 그곳에 홀로 남겨지는 게 싫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으신 분이 우리만 가면 집에 데려다 달라고 아기처럼 애교를 부리며 보채셨는데.... 다른 사람 다 몰라봐도 그리 사랑하셨던 우리 딸이 가면 유난히 좋아하셨던 엄마. 일부러 곡기를 스스로 끊으신 엄마.... 그때도 나는 내 고통에 함몰되어 허우적거리느라 자주 찾아뵙지도 않았다. 참 모질고 이기적인 나쁜 딸이었다. 인간은 얼마나 모질고 이기적인가. 내가 엄마 그립다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
후회란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한 것인지.... 사람들은 꼭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되어야 후회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때에야 후회하는지 모른다. 용서를 해 줄 이 이미 사라진 후에야 허공에 대고 용서를 구하는 이 이기심.
---------------------------- 2023.5.1. 올해는 어느 때보다 일찍 찾아온 봄 때문에 모란도 일찍 피었다 진 거 같다. 엄마 본 듯 반갑고 고마워서 가서 다시 한 번 고맙다고, 잘했다고, 이쁘다고... 말 걸어주고 돌아왔다. 몇 번의 이사를 견디고 저렇게 잘 살아주다니...
그런데 어제 지난주 올케언니의 도움으로 몇 뿌리 어렵게 어렵게 파서 가져왔다고, 잘 키워서 자라면 나에게도 주겠다고 전화가 왔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봄 과수원으로 오세요 (루미/ 이봉희 역)
photo fr gardening books-Virginia Woolf's garden ----
내가 가 본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꼽으라면 당연히 모네의 정원 지베르니를 빼 놓을 수 없겠지만... 그보다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티니 컬리지의 정원이 더 먼저 떠오른다. 그곳은 "아, 좋다"라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고요함과 숙연함을 느끼게 하던 공간으로 내 가슴에 남아있다. 아무도 없는 어둑한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안개처럼 어둠이 내리는 그곳에서 같이 수업 듣던 일본에서 온 학생(선생)과 함께 아무 말 없이 한 동안 앉아 있다가 온 기억이 난다. 휴식과 사색의 공간! 의미 없는 소음에 지친 요즘, 그리고 나도 그런 의미 없는 말을 하고 있는 요즘,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도!
그런데 시인은 말한다. 말이 없어도 좋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더욱 그리운 계절이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지금 저것보다 더 큰 다른 태양을 말하고 있는 거야. 모든 사람의 가슴에서 솟아오른 태양 말이야. 우리들의 희망의 태양. 우리의 꿈을 뜨겁게 달구기 위해 우리가 가슴속에서 달구고 있는 태양 말이야."
"아냐. 그저 너보다 조금 먼저 내 태양의 중요성을 알았을 뿐이라구."
"'나의' 태양?"
"제제. 네 태양은 슬퍼, 비 대신에 눈물로 가려진 태양. 아직 자신의 모든 능력과 힘을 발견하지 못한 태양. 아직 자신의 모든 삶을 아름답게 만들지 못한 태양. 조금 피곤하고 나약한 태양이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별것 아니야. 그저 원하기만 하면 돼. 삶의 아름다운 음악들이 들어오도록 마음의 창을 열어야 해. 따뜻한 정이 가득한 순간들을 노래하는 시 말이야....제제, 무엇보다도 넌 삶이 아름답다는 걸 배워야 해. 그리고 우리가 지금 가슴속에 달구고 있는 태양이, 하느님께서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더 풍요롭게 하려고 우리에게 내려주신 것임을 깨달아야 해."
090517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새 - 마종기>
비 오는 날에는, 알겠지만 창밖으로 늘 새들이 하는 말이 들리는 집이 참 감사하다.
새의 노래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고 했었지. 자신이 언어를 찾지 못한 이야기, 부인할 수 없는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카나리아 새는 노래하고 있다고. 갑자기 뚝! 기온이 떨어진 비 오는 날~ 새들의 어제와 다른 이야기를 듣는다. 사람사이에 이해하기보다 함께 느끼며 살고 싶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할 때,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3월의 기도 - 남정림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천장호에서 - 나희덕
----------------------- 너.. 아무것도 비추지 못하는 얼어붙은 호수. 한때 깊은 가슴에 품었던 빛도, 그림자도 상실한 채 꽁꽁 언 마음 깨뜨려볼 수 있을까 돌멩이를 던져본다. 자꾸자꾸 네 이름을 불러본다. 작은 돌맹이 하나에도, 아주 작은 부름 하나에도 부서지듯 포말선을 그리던 그 섬세하던 네 마음 네 굳어버린 차디찬 마음에 쩡쩡 부딪쳐 되돌아오는 그래도 불러보는 네 이름
너라고 외롭게 얼어버리고 싶었을까 지치지 않는다면 그리고 너도
(너는 누구일까.. 네 이름은 누구일까... 생각해 본다. 봄은 오겠지....)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박수근 - 나무와 여인
귀로- 박수근
박수근의 나목 - (c)2013이봉희
그 밑 허기지고 지친 여인들의 [귀가]길에 묵묵히 서 있는 나무는 그림 속에서 그 여인들의 삶을 대변해 주고 또 지켜주는 또 다른 인물이다. 고흐의 나무들처럼 달려가고 용솟음치고 몸부림치는 열정대신 그의 나무들은 희망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무채색으로 삶의 고단함을 끌어안고 자신의 이름 없는 존재의 몫을 다하는 그리고 묵묵히 견디는 인내 속에 담긴 희망을....
[나무와 여인]은 [귀가]와 달리 아침 풍경처럼 보인다. 아이를 업은 한 여인과 머리에 함지를 이고 장사를 나가는 여인. (c)2013. 2. 이봉희
박수근의 그림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만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었다. 박완서 외에도 많은 시인들이 그의 작품을 소재로 시나 글을 썼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2022.6. 동대문구 가족센터: 이혼 후 치유와 성장을 위한 집단 글쓰기문학치료
귀국할 때를 기다려주신 주관처, 특히 KJY선생님께 감사드린다. KJY선생님은 오래전 나의 집단문학치료모임에 참여하셨던 분으로 글쓰기치료로 논문을 쓰셨던 것을 기억한다. 그 후 이 모임을 계속하고 싶은 분들이 연락을 주셔서 다시 4회를 만났었다. 소그룹이 모이니 더 깊은 공감과 상호작용이 가능했다. 각자에게 적합한 글쓰기기법으로 글을 쓰시도록 권하니 더 많은 자신의 감정을 접촉과 표현을 하게 되었고, 공감과 눈물과 정서적 통찰, 그리고 깨달음과 희망을 얻게 된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아쉽게 다시 출국해야 해서 훗날을 기약하며 헤어지게 되었다. 모임이후에도 저널을 쓰시면서 스스로를 돌보실 힘을 얻으셨으리라 믿고 소망한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바람없이 눈이 내린다 이만큼 낮은 데로 가면 이만큼 행복하리
살며시 눈감고 그대 빈 마음 가장자리에 가만히 앉는 눈
곧 녹을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행복 3- 김용택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