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잎새 - 이봉희

 

내가 네게

이미 시들어

죽어버린 생명이라면

불가능한 현실이라면

차라리 가난한 화가의

마지막 잎새이고 싶다

견딜 눈서리 된바람에도

현실보다 강인한

생명을 나누는 죽음

그렇게 영영 지지 않는

아름다운 환상이고 싶다

(2003)

 

 

MP

 

 

소나무 숲길을 지나다

솔잎내 유독 강한 나무를 찾으니

등치에 깊은 상처를 가진 나무였네.

속내를 내보이는 소나무에서만

싱싱한 육신의 진정을 볼 수 있었네.

 

부서진 곳 가려주고 덮어주는 체액으로

뼈를 붙이고 살을 이어 치유하는지

지난날 피맺힌 사연의 나무들만

이름과 신분을 하나 감추지 않네.

나무가 나무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네.

 

나도 상처를 받기 전까지는

그림자에 몸 가리고 태연한 척 살았었네

소나무가 그 냄새만으로 우리에게 오듯

나도 낯선 피를 흘리고 나서야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네.

우리들의 두려움이 숲으로 돌아가네.

 

[상처4-마종기]

하현우 - 항가(巷歌)/Street Song

https://youtu.be/vjm46tGaUKk

 

오래된 편지를 들고서
이젠 여길 떠나려고 해

음 좋은 향기가
상상하던 나의 다른 모습들을
하나둘씩 그리고

음 바람 소리가
마음대로 자유롭게 흘러가
구름들을 길어내

밖에서 날 기다려왔던
준비된 시간은 별을 가리키고

얼마나 더 걸어가야만
그렇게 바라던 내가 될 수 있을까

달려가도 닿지 않는 그만큼만 허락한 지평선
닳아 버려 투명해진 신발 속에 머금은 지평선

오래된 기타를 들고서
이젠 길을 떠나려고 해

음 쬐는 태양이
어디든지 따라와서 건드리며
갈증마저 사르고

음 시원한 비가
누구 몰래 떨어트린 꽃씨들을
피어나게 적시네

밖에서 날 기다려왔던
준비된 시간은 별을 가리키고(저기로 가자고)

얼마나 더 걸어가야만
그렇게 바라던 내가 될 수 있을까

달려가도 닿지 않는 그만큼만 허락한 지평선
닳아 버려 투명해진 신발 속에 머금은 지평선

아직까지 찾고 있는
저 너머에
황금의 노래를

 

(작사/작곡/그림- 하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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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교육적 목적으로 이곳에서만 사용합니다.

오래 먼 숲을 헤쳐 온 피곤한
상처들은 모두 신음 소리를 낸다
산다는 것은 책임이라구.
바람이라구. 끝이 안 보이는 여정.
그래. 그래 이제 알아들을 것 같다
갑자기 다가서는 가는 바람의 허리.

- 마종기, "상처" 중에서

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 정호승

 

그동안 내가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나무가 되기를
더 이상 봄이 오지 않아도 의자마다 싱싱한 뿌리가 돋아
땅 속 깊이깊이 실뿌리를 내리기를


실뿌리에 매달린 눈물들은 모두 작은 미소가 되어
복사꽃처럼 환하게 땅속을 밝히기를

 

그동안 내가 살아오는 동안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플라타너스 잎새처럼 고요히 바람에 흔들리기를


더 이상 새들이 날아오지 않아도 높게 높게 가지를 뻗어
별들이 쉬어가는 숲이 되기를
쉬어가는 별마다 새가 되기를

 

나는 왜 당신의 가난한 의자가 되어주지 못하고
당신의 의자에만 앉으려고 허둥지둥 달려왔는지
나는 왜 당신의 의자 한 번 고쳐주지 못하고
부서진 의자를 다시 부수고 말았는지

 

산다는 것은 결국
낡은 의자 하나 차지하는 일이었을 뿐
작고 낡은 의자에 한 번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었을 뿐

퇴근길 인문학 특강 - 치유하는 영화읽기 (글쓰기문학치료)

 

퇴근길...오늘도 몸과 마음이 많이 피곤하셨죠?
수고많으셨습니다.

 

이번학기에도 여의도 성천 문화재단에서 [퇴근길 인문학] 특강을 합니다. 이번에는 영화를 활용한 문학치료입니다.

영화 평론과는 다른 방식의 영화읽기(강의)와 글쓰기(문학치료)를 통한 자기 성찰과 치유시간을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퇴근길 피곤한 몸과 마음을 달래는 술 한잔의 위로와는 또 다른 더욱 의미있고 치유가 되는 만남을 기대합니다.

 

5/23~6/20 매주 목요일 7:30-9:30 4주
여의도 성천문화회관(63빌딩 옆 라이프오피스텔 빌딩 1309호)

 

 

 

 

오늘 정말 우연히 다른 자료를 찾다가 10년 전 기록해 둔 (물론 비공개로) 이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지난 주 목요일 대학원 수업 간신히 하고 죽어라 앓았다. 
내 몸이 이제는 늘 먹는 간단한 진통제를 견디지 못해서 토하고 또 토하고.

이제야 기운이 나서 오늘까지 준다고 약속한 일을 하려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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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JSL
오늘 T. J. Shannon 의 그림 (1895)을 하나 보았습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에 걸린 거라 하네요.

엄마가  책을 읽어주고 두 딸이 듣고 있는. 엄마는 얼굴이 보이지 않은채 책에 몰두해 있고, -마치 거울을 보는 것 처럼 그 책은 그녀의 얼굴이 될까요, 선생님이 달아 논 그림 같진 않지만 얼굴이 보지 않는 - 첫째 딸인 이제 곧 사춘기에 들어갈 소녀는 엄마를 정말 사랑스러우면서도 거리를 두고 싶은 맘이 담긴 눈으로 쳐다보고 있더군요.

재미있던 것은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갈까 말까한 막내딸인데, 엄마의 목소리엔 관심없고 그림그리는 화가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더군요. 그 시선의 다름들. 그리고 마지막 시선이 화가, 즉 창조자를 쳐다보며, 다시 나, 관객을 쳐다보는.

그 눈들이 다 아름답고 슬프더라구요. 혹 선생님은 그 그림을 알까하여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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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8

 

JS에게

웅. 그 그림 정글이야기라는 거야.
Jungle Tales by J. J. Shannon (NY Metropolitan Museum of Art)

By James Jebusa Shannon - This file was donated to Wikimedia Commons as part of a project by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See the Image and Data Resources Open Access Policy, CC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7366376

 

왠지 쓸쓸한 가족 같다. 각자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소통하고 있지 않는 가족.

엄마는 무언가 해보려고 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엄마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큰 아이는 그런 엄마곁에 앉아 있지만 그녀는 엄마가 읽어주는 책의 내용에 관심이 없다. 그 아이의 시선은 엄마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 애를 쓰는 엄마를. 하지만 공감은 없다. 그 아이가 읽고 있는 것은 애를 쓰는 (헛되게) 엄마라는 사람, 또는 그 "역할극" 인지 모른다. 의무적으로 앉아 있는 듯하다. 그 시선이 참 묘하다... 그녀가 읽은 엄마는 어떤 것이었을까?

작은 아이도 그 책엔(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내용엔, 엄마의 퍼포먼스엔) 관심도 없다. 관객을 보고 있는 그녀는 허공을 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엄마의 노력(그녀가 자신의 상황에서 무언가 "역할"을 하기 위해 하는 연기와 퍼포먼스)이 슬퍼보인다... 어쩌면 엄마는 아이들을 다 물리치고 혼자 침대에 흩으러져 울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 아이들에게 해주어야 하는 "엄마"역에 얼굴을 가린채 최선다하고 있다. 표정을 알 수 없는 뒷모습의 엄마가 여러 해석이 가능하게 해준다.

엄마는 엄마대로 노력하고 '사랑'하고 있지만 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책을 읽어 주는 엄마는 아이들의 마음은 읽고 있을까?


왜 하필 제목이 '정글이야기'일까?  엄마가 읽어주는 책 제목은 아닐까?
삽화하나 없이 빼곡이 적인 글씨들로 가득한 책.  어른들의 책.  그래서 정글의 의미가 감추어진 책 (그리고 이 그림)이다. 그곳에서 말하는 정글 이야기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엄마는 세상이 정글 같다는 말을 해주고 싶은 것이었나? 살아가야할 세상을 알려주고 싶어서일까?

왜 아이들은 관심이 없는 것일까? 아직은 철몰라 계속 동화 같은 꿈을 꾸고 싶기에?

아니면 온갖 미지의 식물과 동물이 가득한 정글 이야기일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과 꿈을 말해주는?


화목함 속에 감추어진 단절...   어쩌면 거울처럼 남에게 비춰주는 연극
보이지 않는 엄마의 얼굴.....
그래서 더욱 우리에게 그 의미를 만들어내라고 우리를 쳐다보는 듯한 어린 딸아이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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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에게 '정글 이야기'를 읽어준다면 그 내용은 어떤 것일까?

내가 들려주는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표정은 각자 어떨까?

by Rene Magritte(used here for educational purposes only)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보냈고
  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강- 안도현

 

  

 

이별의 노래와 둘째 언니

 

1960년대 초에는 오늘날처럼 학생의 우상이 되는 연예인은 없었다. 노래를 부르는 10대 가수는 아예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듣는 노래는 가끔 오빠가 좋아하는 노래, “검푸른 저 산 넘어, 이슬이 석양빛에 소리 없이 사라져...(나중에야 그것이 영화 <셰인>의 주제가임을 알았다)“ 라든가 암으로 42살에 돌아가신, 살아 계셨다면 지금 70을 훨씬 넘기셨을 당시 영어 선생이던 멋쟁이 큰언니가 벚꽃 만발한 무심천 둑을 내 손을 잡고 거닐면서 불러주던 무언지 모를 영어노래들이 동요 말고 내가 아는 전부였다. 그 중에 내가 열심히 따라하던 ”새드 무비(Sad Movies)"는 언니가 친절히 그 노래의 내용을 다 설명해주기도 했지만 당시 우리나라 가수들이 영어와 섞어 불러서 어린아이에서 어른까지 히트시킨 노래였다.  

 

당시는 전등불을 시에서 일방적으로 켜주고 끄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밤마다 불이 '나가는' 시간이 통금처럼 정해져 있었다. 저녁 식사시간에 들어와서 11시인가 12시가 되면 불이 나갔다. 그래서 늘 어머니나 언니들은 불 나가기 전에 숙제하라고 종용을 하시곤 했었다. 불이 나가면 특히 밤이 긴 겨울이면 언니들과 촛불을 켜놓고 그림자놀이를 했다. 그러다가 한 이불 속에 동그랗게 둘러서 누우면 둘째 언니는 어김없이 어둠 속에서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다 큰 초등학생 동생들을 위해 자장가를 불러주었을 리는 없고 아마 말로 표현 못한 가슴속의 무엇인가를 어둠 속에서 노래로 대신했었던 것 같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산천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겨울은 가고 따스한 해가 웃으며 떠오고...” 한 시간정도 언니의 노래는 끝없이 이어졌다. 유난히 숨이 짧은 둘째 언니가 숨을 참아가며 어찌나 정성스럽게 부르는지, 그리고 그 노래가 어쩌면 하나같이 어두운 밤 혼자 문밖에서 울다 가버리는 겨울바람처럼 쓸쓸하게 들리던지 나는 숨소리도 못 내고 옆에 누워 듣다가는 잠이 들고 했었다.

 

그건 노래가 아니라 차라리 말 못할 하소연이었다. 그 언니가 “아름다운 꿈만을 가슴 깊이 안고서 외로이. 외로이 저 멀리 나는 가야지,....말없이 나는 가야지” 하고 부를 때면 정말 내일 아침이면 어디로 가버리려고 몰래 보따리라도 싸 놓은 게 아닌가, 은근히 걱정되어서 졸린 데도 자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할 것 같은 두려움과 사명감에 끙끙대다가 잠이 들곤 했었다. 그 언니는 결국 폐가 너무 나빠서 채 피지도 못한 20대 초반에 자신이 즐겨 부르던 노래, “산장의 여인”처럼 요양소로 떠나야 했었다.  

 

큰오빠가 언니를 면회하러 가면 언제나 내가 보내준 편지(그때 내가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을 거다.)를 보면서 울고 있었다고 말하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언니는 그 곳에서도 의사 몰래(결핵 환자는 크게 웃지도 못하게 했었다.) 밤이면 [노래]를 불렀을 것 같다. 그곳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을 또다시 같은 노래 가락들 속에 실어서 “말없이 나는 가야지” 하고 불렀을 건 만 같다. 언니의 노래는 어쩌면 내가 책 한 권 내지 않으면서도 혼자서 항상 무언가를 끄적이는 독백의 습관과 어쩌면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 그 언니가 너무 불쌍해서 학교 수업 중에도 혼자서 책 위에 눈물을 떨구며 소리없이 운 적도 많았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오해도 많이 받았었다. "어머머 쟤봐 울어...."라고 나를 보고 깔깔대던 아이들의 소리가 기억이 난다.

 

언니는 요양원에서 20살 대학초년생 때 폐하나를 떼어냈다. 평생 온갖 병을 다 겪고, 암도 이겨내고, 늘 숨이 차서 고생하며 살더니, 10년 전 수술을 하고 그 와중에 또 하나밖에 없는 폐가 폐렴에 걸려 회복의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몇 달간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서 견디더니 기적같이 고비를 넘겼었다. 의사도 포기했었기에 불사조라고 했다. 당시 무의식속에서 이 세상과 저세상을 오가며 겪는 영적인 싸움이 얼마나 무섭고 치열했던지 그 싸움을 할때는 몇일 사이에 완전 뼈와 가죽만 남기도 했었다. 그렇게 힘겹게 살아남았는데 너무 지쳤는지 그 다음 해인가 뜻밖에 알츠하이머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10년이 넘도록 치료를 받으며 그래도 잘 견디어왔다. 오랜 옛일은 나보다도 훨씬 더 총기있게 선명히 기억하는데 이제 점점 현재에서 뒷걸음질쳐가고 있다. 단기 기억이 눈에 띄게 나빠지는 요즘의 언니를 보며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아직은 통화도 하고 이것저것 안부도 묻지만 조마조마 불안하기만 하다. 이젠 통화 중에 언니가 기억 못해도 스트레스 줄까봐 그냥 다 받아주고 있다.

 

몸이 약해 무척 예민하긴 했지만 항상 잘 웃고 긍정적이고 깔끔하고 음식솜씨며 살림이 야무지던 언니. 치매걸린 시부모님 두 분을 집에서 다 보살피던 언니.형부도 오래 전 암으로 떠나가시고 자녀도 없이 저렇게 언니는 20살 어린나이 요양소에 홀로 남겨졌을 때처럼 혼자 과거 속에 남겨지는 것일까? 그런 날이 올까봐 문득문득 그런 이별아닌 이별이 두렵고 눈물이 난다.

 

약한 몸으로 자기 때문에 동생들 결핵 걸렸다고 미안해하던 언니. 책을 손에서 놓지 않던 언니. 서울에서 서울대 이대 경기고 다니던 큰오빠 언니 작은오빠 뒷바라지 다 해주던 언니. 그리 해맑게 자신을 위한 욕심 없이 정말 열심히 사셨는데 삶은 끝까지 언니에게 자비롭지 못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생은 그런 것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자주 느끼는 슬픔은 생이 그런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었다.

 

9/22/2010

 

 

( 그림에 있는 아이가 입었던 옷과 내가 즐겨입었던 티셔츠)

 

 

 

엄마, 어느새 또 5월 8일이 돌아왔어요. 매년 5월 8일만 잘해드리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하지만 엄마, 제가 엄마 사랑하는 거 아시죠? 매년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시”를 준비했어요.

엄마. 가만히 오른 손으로 왼손을 쥐어보세요. 전 혼자 있을 때 그렇게 해요. 꼭 엄마의 손이 제 손을 굳게 잡고 있는 듯해요.

눈을 떠 보았습니다
칠흙 같은 어둠의 늪 속에서
홀로 허우적거리는 저를 보았습니다.

어둠과 하나가 되어가는 절망을 느끼며
두려움에 나의 두 눈을
꼭 감았습니다.
“아, 이제는 끝이로구나”

다시 눈을 떴을 때
어둠의 늪을 지나 환한 빛을 향해
당당히 걷고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빛에 도달했을 때
저는 비로소 느꼈습니다.
제 뒤에 있던 당신을.

당신을 느끼기 위해
눈을 살며시 감아보았습니다
저를 붙들어 주었던
당신의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당신의 눈물로
제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신
당신은 저의 분수십니다.

당신은 제 호수의
분수대이십니다.

은빛 실을 내어
저에게 새로운 삶을 입히시는
당신은 저의 분수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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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딸아이가 어릴 때 어머니날 카드에 쓴 시.
엄마가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빈 집에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지....그래서 엄마 손 대신 자신의 손으로 다른 편 손을 잡아주며 엄마를 느껴보던 아이....

 

다 지난 까마득한 옛일인데 아직도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딸이 내게 보낸 수 많은 카드들 중 어머니날이면 잊지않고 다시 꺼내보는 카드 중 하나가 이 편지(시)이다.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피아노 학원들 다녀오거나, 유치원에서 집에 오는 길에 길가에 핀 작은 꽃이나 작은 돌, 또는 예쁜 작은 카드를 만들어 "써프라이즈!!!" 라고 말하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게 자랑스럽게 건네곤 했었다.

 

우리는 늘 서로에게 쪽지나 카드를 써주곤 했었지. 지금도 일년에 한 번 만났다 헤어질 때는 어딘가에 편지나 카드를 써서 서로에게 남기곤 한다. 언젠가 아이가 정말 힘들어 할때 내가 그냥 포스트 잇에 세상에서 네가 가장 예쁘고 아름답다고 적어 컴퓨터 모니터 앞에 붙어주었는데 일년 후 가 보니 그 낡은 포스트 잇을 그대로 붙여두고 있었다. 딸애가 유학을 떠나던 날 현관문에 붙여놓고 간 쪽지가 아직도 그곳에 붙어 있듯이.
우리에겐 정말 소중한 추억이 많다. 감사하게도.

 


엄마의 딸에게 보내는 글.

나의 생명, 나의 딸,
이젠 엄마보다 훌쩍 커버려서 한참 올려다 봐야 하는 우리 딸. 그래도 엄마는 지금도 늘 네 손을 잡듯이 나의 두 손을 모으고 널 위해 기도한단다. 잊지마,  우리에겐 우리의 손을 절대 놓지 않으시고 꼭 잡고 함께 가시는 주님이 계심을.

Do you remember all the pretty letters you gave to me from time to time?
Do you remember you used to prepare a "surprise" for me? -- a little nameless flower, a little card.... anything that said "I love you, Mom"

I knew those little gifts were not just saying"I love you, Mom".  I knew they were telling me that "I needed You.  I missed Mom  all day long."  and that you were  alone and lonely.

I AM sorry, Dearest.   I've never been much of a mother, I know.  However, YOU have been always with me as part of my life.

This is one of your letters you gave me when you were so little!
I miss you so much!

08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