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찾는 사람 - 박노해]

 

봄이 그리워
겨울 속을 걸었지요
웅크린 몸으로...
봄 길 찾아 걸었지요

 

꽃이 그리워
어둠 속을 걸었지요
사박사박 언 발로
꽃심 찾아 걸었지요

 

좋은 날이 그리워
상처 속을 걸었지요
가난한 마음으로
사람 찾아 걸었지요

 

 

(c)photo by Dr. Lee SYup(2019)

 

 

(c)Bruni Bruno-luna turca(here only for therapeutic and/or educational  purposes)



서로 사랑해야 할 일 찾아다니다가
어느 날 네 가슴에 핀 동백꽃을 보고
평생 동안 날아가 나는 울었다


[동박새 -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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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나이

으스러지도록
달을 안고 울고 있다
안개로 흩어지는 달
으스러지는

한 사나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경치를 찾아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데 있다.  - 마르셀 푸르스트

 

 

 

2020 새해가 되었다.
나의 새로운 한 해의 여정은 새로운 눈을 열리는 여정이 되기를.
따뜻한 눈, 포용하는 눈, 나의 나약함과 타인의 나약함을 모두 받아주는 친절한 눈

나약함과 상처 속에 감추어진 희망과 가능성을 찾아내는 눈

내가 시들어가는 꽃들, 헐벗은 겨우나무를 사랑하듯이 그런 마음을 사람들에서도 발견하는 눈

겉 모습 너머의 진실을 바라보는 눈과 동시에

그 진실이 추악할 때 맞서 싸우거나, 그럴 수 없는 일이면 용서하는 눈

어둠 속에서 빛을 바라보는 눈,
저 높은 곳에 소망을 두고 뚜벅뚜벅 길 없는 길을 찾아가는 믿음의 눈
눈물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눈물로 씻긴 후 더 맑아진 눈을 소망하기를

그런 여정이기를.

 

 

 

 

 

photos by bhlee @NYC121419 

 

한겨울 공원
한 쪽엔 계절을 잊은 봄 꽃, 
또 한 쪽엔 뒤늦게까지 서성이다 떠나가는 가을
모두 제 길을 잃은 것일까


땅에 누워서야

떠나간 잎들과
다시 하나가 되는
초겨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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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려 하기 보다 함께 느끼며 살고 싶었다.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 것일까?

 

 

한번 더
나를 헐어서
붉고 붉은 편지를 쓸까봐
차갑게
비웃는 바람이
내팽개친 들 또 어떠랴
눈부신 꿈 하나로
찬란하게
죽고만 싶어라

[낙엽 쌓인 길에서 - 유안진]

오늘도 삶을 생각하기보다
죽음을 먼저 생각하게 될까봐 두려워라

세상이 나를 버릴 때마다
세상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 나는

아침 햇살에 내 인생이 따뜻해질때까지
잠시 나그네새의 집에서 잠들기로 했다.

솔바람 소리 그친 뒤에도 살아가노라면
사랑도 패배할 때가 있는 법이다.

마른 잎새들 사이로 얼굴을 파묻고 내가 울던 날
싸리나무 사이로 어리던 너의 얼굴

이제는 비가 와도
마음이 젖지 않고

인생도 깊어지면
때때로 머물 곳도 필요하다

 


[쓸쓸한 편지 - 정호승] 

[ 얼룩에 대하여 - 장석남 ]

 

못 보던 얼룩이다 


한 사람의 생은 이렇게 쏟아져 얼룩을 만드는 거다


빙판 언덕길을 연탄을 배달하는 노인

팽이를 치며 코를 훔쳐대는 아이의 소매에

거룩을 느낄 때


수줍고 수줍은 저녁 한 자락씩 끌고 집으로 갈 때

千手千眼(천수천안)의 노을 든 구름장들 장엄하다

 

내 생을 쏟아서

몇 푼의 돈을 모으고

몇 다발의 사랑을 하고

새끼와 사랑과 꿈과 죄를 두고

적막에 스밀 때


얼룩이 남지 않도록

 

맑게

울어 얼굴에 얼룩을 만드는 이 없도록

맑게

노래를 부르다 가야 하리

photo by bhlee at Seattle(2007)  

 


어째서 무엇이 이렇게 내 안에서 캄캄한가
옅은 하늘빛 옥빛 바다의 몸을 내 눈길이 쓰다듬는데
어떻게 내 몸에서 작은 물결이 더 작은 물결을 깨우는가
어째서 아주 오래 살았는데 자꾸만 유치해지는가
펑퍼짐한 마당바위처럼 꿈쩍 않는 바다를 보며
나는 자꾸 욕하고 싶어진다
어째서 무엇이 이렇게 내 안에서 캄캄해만 가는가  [이성복]

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
마음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저물녘, 마음 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올랐다가
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
그 흘러내린 자리를
마음 사라진 자리로 삼고 싶다
내림 줄 쳐진 시간 본 적이 있는가

photo by bhlee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 천상병,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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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대학생 때 이후 산에 가지 못해서 잘 몰랐었다.

그런데 덴버에서 연구교수를 할 때 록키산과 그 근처 산을 자주 갔었다.
그때 정말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나무는 죽어서도 살아있다는 것에......  살아있는 아름다움이며 예술이라는 것에. 

처음 천상병의 시, <나무>를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의미를 알게 되었다.

꿈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의 생명력--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썩어버린 나무가 여전히 당당히 견디며 서 있는 아름다움.
마지막 순간 제 몸을 땅에 누이는 그 때 조차도 경이로운 예술품이라는 것을.
때로 거기서 녹색 싹을 틔우기도 하는 나무

나무는 쓰러져서도
말라 조각품이 되는 죽음이 비켜가는 아름다움이다.

 

photo by bh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