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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너희가 하늘을 나는 걸 봤단다.

바람에 실려

소중한 것 하나만 지닌 채

훨훨 길을 떠나는 모습이

마냥 기쁘게만 보였단다.

 

사람에게도 꼭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하잘것없는 것들을 모두 버리고 나면 나도

하늘 높이 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단다.

 

호시노 토미히로 - <민들레> 중에서

 

051414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ㅡㅡ

흩날리는 꽃비를 흠뻑 맞으며 마냥 행복에 젖은 하루였다.

언제나 이맘때면 이형기의 시가 가슴을 울리곤 했었다.

찬란한 설렘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끼며 낙화속 '소풍'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스름길,

오늘은 나도 모르는 새, 맘 한구석에서 “물보면 흐르고 별보면 또렷한 마음은 어이면 늙으뇨.” 라는 영랑의 시 구절이 함께 따라 나와 혼자 웃었다. 조금은 쓸쓸히...낙화속을 걸으며 마냥 기쁘다가도 느끼는 묘한 마음이 이것이었나?

만물은 흔들리면서 - 오규원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 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별을 낳는 것은 밤만이 아니다.
우리의 가슴에도 별이 뜬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슴도 밤이다.
그러나 우리의 가슴에 별이 뜨지 않는 날도 있다.
별이 뜨지 않는 어두운 밤이 있듯
우리가 우리의 가슴에 별을 띄우려면 조그마한 것이라도 꿈꾸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다른 것을 조용히 그리고 되도록 까맣게 지워야 한다.
그래야 별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러므로 별이 뜨는 가슴이란 떠오르는 별을 위하여 다른 것들을 잘 지워버린 세계이다.
떠오르는 별을 별이라 부르면서 잘 반짝이게 닦는 마음-이게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랑이 많은 마음일수록 별을 닦고 또 닦아 그닦는 일과
검정으로 까맣게 된 가슴이다.
그러므로 그 가슴 앞에서는 조금이라도 광채를 가진 사람이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므로 사랑은 남을 반짝이게 하는 가슴이다.
사랑으로 가득찬 곳에서는 언제나 별들이 떠있다.
낮에는 태양이 떠오르고 밤에는 별들이 가득하다.
그러므로 그곳에서는 누구나 반짝임을 꿈꾸고 또 꿈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가득찬 가슴에 투망을 하면 언제나
별들이 그물 가득 걸린다

[작은 별에 고독의 잔을 마신다- 오규원]

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1879~1944)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어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1926년 시집 <임의 침묵> (회동서관)

photo by bhlee

 


목련을 습관적으로 좋아한 적이 있었다.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
삶을 채 살아보기도 전에 나는
삶의 허무을 키웠다
목련나무 줄기는 뿌리로 부터 꽃물을 밀어올리고
나는 또 서러운 눈물을 땅에 심었다
그래서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나는 버릴 수 있었지만
차마 나를 버리진 못했다

목련이 필 때쯤이면
내 병은 습관적으로 깊어지고
꿈에서 마저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흰 새의 날개들이 나무를 떠나듯
그렇게 목련의 흰 꽃잎들이
내 마음을 지나 땅에 묻힐 때
삶이 허무한 것을 진작에 알았지만
나는 등을 돌리고 서서
푸르른 하늘에 또 눈물을 심었다

[목련 -류시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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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채 살아보기도 전에 나도 삶의 허무를 키웠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열정을 다 해 산다고 삶이 허무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뜨거운 열정의 불꽃 한가운데에는
타지 않는 차가운 파란 허무가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을
나도 일찍부터 알았다.

 

어쩌면
그 허무가 나를 지켜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 욕심에서 자유롭도록....

(032415)

 


 

나무는 - 류시화

 

나무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 가지와 뿌리는 은밀히 만나고
눈을 감지 않아도
그 머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

 

나무는
서로의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누가 와서 흔들지 않아도
그 그리움은 저의 잎을 흔들고
몸이 아프지 않아도
그 생각은 서로에게 향해 있다

나무는
저 혼자 서 있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세상의 모든 새들이 날아와 나무에 앉을 때
그 빛과
그 어둠으로
저 혼자 깊어지기 위해 나무는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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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我有一卷經(아유일권경}
  不因紙墨成(불인지묵성)
  展開無一字(전개무일자)
  常放大光明(상방대광명)

  나에게 한 권의 경전이 있는데
  그것은 종이나 활자로 된 게 아니다
  펼쳐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네

 

 (서산대사의 운수단가사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함)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거미- 김수영]

[별, 이별- 마종기]

 

열매를 다 털어낸 늙은 나무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다.
시든 나무 그늘도 떠날 준비를 하고
가지 사이 거미도 거미줄을 걷어들일 즈음,
우울한 부나비 한 마리 날개 접고
새들이 날아간 석양 쪽을 바라본다.

잠시 잠들었었나, 잠시 죽었었나
모든 사연이 휘발한 땅이 그새 문 닫고
피곤에 눌려 커다란 밤 장막을 내린다.
아. 그러나, 우리는 손해본 게 아니었구나.
청명 밤하늘의 이 별들, 무수한 환희들!
헤어진 별 옆에서 새로 만난 별이 웃고
집 떠난 밝은 유성은 잠시 발 멈추고
죽어가는 나무에게 가볍게 입맞춤한다.

갑자기 나무 주위에 환한 꽃향기 넘치고
누군가 만 개의 새 별들을 하늘에 뿌렸다.
어디선가 고맙다, 고맙다는 메아리 울리고------.

                         

오늘을 위한 기도

오늘 하루의 숲속에서
제가 원치 않아도
어느새 돋아나는 우울의 이끼,
욕심의 곰팡이, 교만의 넝쿨들이
참으로 두렵습니다.

그러하오나 주님,
이러한 제 자신에 대해서도
너무 쉽게 절망하지 말고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어가는
끗끗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게 하소서.

어제의 열매이며
내일의 씨앗인 오늘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때는
어느날 닥칠 저의 죽음을
미리 연습해 보는 겸허함으로
조용히 눈을 감게 하소서.

'모든 것에 감사했습니다'

                               -이해인

어느 영혼이기에 아직도 가지 않고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느냐. 네 얼마나 세상을 축복하였길래 밤새 그 외로운 천형을 견디며 매달려 있느냐. 푸른 간유리 같은 대기 속에서 지친 별들 서둘러 제 빛을 끌어모으고 고단한 달도 야윈 낫의 형상으로 공중 빈 밭에 힘없이 걸려있다.

아느냐, 내 일찍이 나를 떠나보냈던 꿈의 짐들로 하여 모든 응시들을 힘겨워하고 높고 험한 언덕들을 피해 삶을 지나다녔더니, 놀라워라. 가장 무서운 방향을 택하여 제 스스로 힘을 겨누는 그대, 기쁨을 숨긴 공포여, 단단한 확신의 즙액이여.

보아라, 쉬운 믿음은 얼마나 평안한 산책과도 같은 것이냐. 어차피 우리 모두 허물어지면 그뿐, 건너가야 할 세상 모두 가라앉으면 비로소 온갖 근심들 사라질 것을. 그러나 내 어찌 모를것인가. 내 생 뒤에도 남아있을 망가진 꿈들, 환멸의 구름들, 그 불안한 발자국 소리에 괴로워할 나의 죽음들.

오오, 모순이여, 오르기 위하여 떨어지는 그대. 어느 영혼이기에 이 밤 새이도록 끝없는 기다림의 직립으로 매달린 꿈의 뼈가 되어있는가. 곧 이어 몹쓸 어둠이 걷히면 떠날 것이냐. 한때 너를 이루었던 검고 투명한 물의 날개로 떠오르려는가. 나 또한 얼마만큼 오래 냉각된 꿈속을 뒤척여야 진실로 즐거운 액체가 되어 내 생을 적실 것인가. 공중에는 빛나는 달의 귀 하나 걸려 고요히 세상을 엿듣고 있다. 오오, 네 어찌 죽음을 비웃을 것이냐 삶을 버려둘 것이냐, 너 사나운 영혼이여! 고드름이여

기형도 -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노 잃은 나룻배 - 한영기

때로는 나아가고
때로는 되돌아가고
때로는 멈추고 싶지만
노 잃은 나룻배
나에겐
부질없는 바람일 뿐.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물결 흐름 따라
그저 힘없이 떠내려가야만 한다.

이 무능력함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부디 내 가는 그곳이
지나온 곳보다 나은 곳이길
기도하는 것 뿐.

E. Hopper-NY Office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다가
나는 알게 되었지
이미 네가
투명인간이 되어
곁에 서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불어 기다리기로 한다

[성북역 - 강윤후]

 

[이 가을에]

 

아직도 너를 사랑해서 슬프다

          

-나태주

술 한 잔 - 정호승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가을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 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 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때 - 도종환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당신은 말없이 제게 오십니다.
차라리 당신에게서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또 그렇게 말없이 제게 오십니다.
남들은 그리움을 형체도 없는 것이라 하지만
제게는 그리움도 살아있는 것이어서
목마름으로 애타게 물 한잔을 찾듯
목마르게 당신이 그리운 밤이 있습니다.
절반은 꿈에서 당신을 만나고
절반은 깨어서 당신을 그리며
나뭇잎이 썩어서 거름이 되는 긴 겨울동안
밤마다 내 마음도 썩어서 그리움을 키웁니다.
당신 향한 내 마음 내 안에서 물고기처럼 살아 펄펄 뛰는데
당신은 언제쯤 온몸 가득 물이 되어 오십니까
서로 다 가져갈 수 없는 몸과 마음이
언제쯤 물에 녹듯 녹아서 하나되어 만납니까
차라리 잊어야 하리라 마음을 다지며 쓸쓸히 자리를 펴고 누우면
살에 닿는 손길처럼 당신은 제게 오십니다.
삼 백 예순 밤이 지나고 또 지나도
꿈 아니고는 만날 수 없어
차라리 당신 곁을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바람처럼 제게로 불어오십니다

 

used here only for therapeutic and/or educational purposes

수련-정호승

 

물은 꽃의 눈물인가

꽃은 물의 눈물인가

물은 꽃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고

꽃은 물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다

새는 나뭇가지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고

눈물은 인간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