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나사렛대학교 재활복지대학원 문학치료학과 제 2회 국제 문학치료 워크숍 KNU 2nd International Poetry Therapy Workshop
Hearing the Tongue of Wood: Poetry, Imagination & the Capacity of Happiness
초청강사: Dr. Alma Rolfs (시인, 전미문학치료학회 회장) 통역 및 진행: 이봉희교수(CAPF/CJF, 문학치료학과 교수)
일시: 2015. 11. 1.(일) 9:00-12:00 장소: 강남성모병원 성의회관 614호
주관: 나사렛대학교 대학원 문학치료학과 협조: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 -----------------------------
나사렛대학교 문학치료학과(대학원)는 미국의 국제문학치료협회(IFBPT/전 NFBPT)와 협약하에 그 기준에 따른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국공인문학치료사/저널치료사 교수가 문학치료와 저널치료를 교육하는 기관임. (참고 http://journaltherapy.org/3087)
나사렛대학교 재활복지대학원 문학치료전공은 지난 11월1일(일) 오전 9시부터 강남성모병원 성의회관에서 10여명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미국 NAPT(전미 문학 치료학회)회장인 알마 롤프스 박사(Dr. Alma Rolfs)를 초청하여 ‘Hearing the Tongue of Wood’라는 주제의 특강과 소그룹문학치료 실습워크숍을 가졌다.
알마 롤프스 박사는 “시적 상상력이 갖는 치유적 힘과 공감능력에 대해서 강의하고 치료워크숍을 시행하였다. 진행은 문학치료학과 이봉희 교수의 통역으로 이루어졌다. 롤프스교수는 대학원생들의 글쓰기와 수준 높은 그룹역동에 감동적인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지금까지 한 치료워크숍 중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하였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자화상 - 한하운(1949)
한 번도 웃어본 일이 없다 한 번도 울어본 일이 없다. 웃음도 울음도 아닌 슬픔 그러한 슬픔에 굳어버린 나의 얼굴. 도대체 웃음이란 얼마나 가볍게 스쳐가는 시장끼냐. 도대체 울음이란 얼마나 짓궂게 왔다가는 포만증飽滿症이냐. 한때 나의 푸른 이마 밑 검은 눈썹 언저리에 매워본 덧없음을 이어 오늘 꼭 가야 할 아무데도 없는 낯선 이 길머리에 쩔룸 쩔룸 다섯 자보다 좀더 큰 키로 나는 섰다. 어쩌면 나의 키가 끄으는 나의 그림자는 이렇게도 우득히 웬 땅을 덮는 것이냐. 지나는 거리마다 쇼윈도 유리창마다 얼른 얼른 내가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나의 얼굴.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바람 사나운 거리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지난 주 인사동에 모였다가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하모니즘으로 유명한 김흥수 화백(1919-2014)의 작고 1주기전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그의 강렬한 색채에 매료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수십점에 이르는 대작들을 맘 껏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
김흥수(1919-2014)의 작품 세계는 구상과 추상의 이질적인 요소 간 조화를 꾀하는 ‘하모니즘’으로 통한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17세의 나이로 제16회 조선미전전람회에 입선해 실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1955년 프랑스 유학을 통해 야수파, 입체파 등을 섭렵하며 다채로운 색채의 쓰임을 터득한다. 1967년부터 12년간 미국에 체류하며 교직과 창작활동을 병행했던 그는 귀국할 무렵인 1977년 하모니즘을 선언하며 예술가로서의 전환점을 맞는다. 하모니즘은 음양의 조화를 중시하는 동양사상이 모태다. 구상과 추상이 공존할 때, 즉 서로 상반되는 극과 극이 하나의 세계로 어우러질 때 화면이 비로소 온전해진다는 미술관을 담고 있다. 즉 화면에 대상은 객관적으로 재현하고, 정신은 추상으로써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생전에 43세의 나이차를 극복한 사제지간의 사랑과 결혼으로 작품 외적으로도 큰 관심을 받았다. 30년 세월을 함께 한 아내는 1년 6개월 먼저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국민일보 손영옥기자 글과 네이버 뉴스 정순민의 글을 참고하여 작성함) ------------------
김흥수는 88올림픽 때 초기 하모니즘 대표작품 16점이 당시 표구상의 화재로 인해 모두 불타버리는 사건을 겪었었다. 그 충격은 우리들은 짐작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는 그 일을 떠올리면 팔과 다리가 잘려 나간 것 같아 그 후로도 계속 악몽에 시달린다고 할 정도였다. (그 당시 우리에겐 김흥수의 그림이 한 점 있었고 김흥수화백이 자신의 그림을 찾는다는 말이 있었다. 어느날 슬그머니 그 그림은 없어졌다.... ) 전해지는 말로는 전화로 소식을 먼저 전해들었던 김흥수에게 표구상 사장님이 집문서를 들고 찾아갔으나 김 화백은 아파트가 떠나가라 “으으음!” 하는 동물울음 같은 괴성을 토해내고 그뿐이었다고 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할 수 없지. 다시 그려야지” 하면서 찻잔을 드시더란다. 물론 손해배상 같은 말은 입밖에도 내지 않았다고 한다. 마음에 계속 남아있는 그림들 중 몇 점만 찾아서 올려본다.
김흥수- 허세
음과 양
망부가
미의 심판
전쟁과 평화
올 여름엔 뉴욕을 못가서 허전했는데 김흥수전과 디올전으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독립을 향한 갈망은 의존하고자 하는 소망만큼 원초적이고 강렬하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photo by bhlee [더스트 인 더 윈드, 캔사스-최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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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전북대 한중문화사업단 초청 특강에 초대되어 갔었다. 중문과에 우리나라에서 정말 드믈게 서예과목이 있었다. 교수는 유명한 서예가 김병기 교수. 정말 많은 일을 하고 계신 교수님이다. 학생들에게 서예를 시키면 아이들의 마음이 정화되고 안정되고 치유되는 것을 느끼신다고.
한옥마을(이곳은 또 언제 다시 이야기 하기로 하고)과 여기저기 차로 데리고 다니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전주향교 마루에 앉아서는 낭낭한 목소리로 한시도 낭송해주시고..... 강암 서예관에도 가서 강암 송성용 선생의 서예를 감상했다. 교수님으로부터 한시의 의미와 작품 설명과 함께 들으니 그 분의 수묵화와 서예의 예술성을 조금이나마 더 잘 알수 있었다. 강암은 바람에 날리는 풍죽을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그 중에 마음에 남은 작품중 하나는 수묵화와 함께 쓴 한시, 풍죽(風竹)이다. 그 한시의 해석은...
풍죽(風竹)
미풍이 불어 올때면 빙그레 웃다가 바람이 드세질때면 불평소리를 내기도 하지 아직도 악기를 다루는 명인을 만나지 못해 할일 없이 커다란 음악소리를 안으로만 감추고 있구나.
(대나무가 장차 큰 악기가 될 수 있는 재목인데 아직 명인을 만나지 못해 그 음악소리를 표현 못하고 속으로 감추고 있다는 뜻)
강암이 쓴 일지암이라는 글(서예작품)이 또 마음에 남았다. 서예작품 옆에 초의선사가 머물던 일지암 사진도 있었다. 쓸쓸한 듯 보이는 아주 작은 암자. 시승(詩僧) 초의선사가 그의 시상(詩想)에 가지는 수많으나 새가 깃드는 가지는 오직 하나로, "나는 새는 한가지의 나무에만 있어도 편안하다."는 데에서 '일지암(一枝庵)'이라는 암자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강암의 글씨에서 '암'자는 마치 지붕아래 사람이 앉아 있는 듯이 보여서 그렇게 말했더니 그런 해석을 처음 들어봤다면서 보니 정말 그렇다고 김병기 교수님이 재미있어하셨다. 또 감동적인 것은 76세인가에 8시간동안 쉬지 않고 천자문을 쓰신 작품이었다. 정말 대단한 열정과 정신력과 에너지시다. 끝까지 글자가 흩어지지도 힘이 약해지지도 않으시고 한결 같이 쓰시다니. 교수님의 설명을 다 기억 못하는 게 아쉽다.
케이티엑스 역까지 태워주시고 기차시간 기다리기 무료할까봐 친절하게 또 곁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가셨다. 김일로라는 시인의 시를 들려주셨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일본 하이쿠 시를 언급하자 우리나라에도 그런 비슷한 영역을 개척한 유일한 시인이 있다면서 김일로를 소개해주셨다.
꽃씨 하나 얻으려고 일 년 그 꽃 보려고 다시 일 년 (김일로)
김일로가 쓴 시 중 또 가슴을 울린 시는
저 숨결 저 몸짓 풀 한포기 돌 하나였으면 좋을 것을
이것을 김일로는 또 한시로 옮겼다는데 그게 기막혔다. 一石一草人不及
정말 감사한 마음이 가득이다. 내가 중문과 교수님들과 대학원생을 놓고 무슨 강의를 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는 맘으로 갔는데 2시간 예정이던 것을 쉬는 시간도 없이3시간이 되도록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와서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게 이런 건가보다 싶다. 들고 가기 무겁다고 교수님께서 책과 도록 등을 보내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은 K교수님이 자신이 번역하신 중국 소설3권을 보내주셔서 참 감사히 받았다. 언젠가 다시 가고 싶다. 특히 땅거미 진 후 전주천 길도, 한옥마을도 걸어보고 구석구석 들어가보고 싶다.
--------------- "해남 두륜산 자락에 위치한 단촐한 암자 일지암은 초의 선사가 39세였던 1824년에 지어 40여 년간 기거한 한국 차 문화 중흥의 상징인 곳이다. 초의 선사는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등 당대의 명사, 시인, 예인들과 폭넓게 교류하면서 이곳에서 다서(茶書)의 고전인 『동다송』을 저술하고 『다신전』을 정리했다고 한다. 『동다송』은 차의 효능과 산지에 따른 품질, 만들고 마시는 법 등을 적은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차에 관한 책이며 동다(東茶), 즉 우리나라 차에 대한 예찬을 담고 있다고 한다.(하지만 초의 선사 입적 후 일지암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현재의 일지암은 1970년대에 복원된 것이다.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네이버 지식백과]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오래된 농담- 천양희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here only for therapeutic and/or educational purposes/ 음악은 이곳에서만 교육/치유적 목적으로만 사용됨.
스테판의 곡 해석을 조금이라도 더 잘 느낄 수 있게 늘 듣는 귀에 익은 유명한 곡을 그의 연주로 한 번 들어본다. 쇼팽의 녹턴 C샤프 단조 (Stefan Pi Jackiw 스테판 피 재키브는 유럽에서 '천재'라는 극찬을 받는 연주자. 피천득님의 손자이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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