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gall-Adam et Eve chass du Paradis (used here for therapeutic/educational purposes only)


















"야훼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셨다."

아담에게 내것이 다 네것이라 하면서 에덴의 모든 것을 다 허락하셨는데
아담은 생명나무를 버리고 그 자신이 누구인지를 망각한 채 사과나무를 택하였다.

아담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누기 위해  만든 세상, 바로 그 에덴에서 아담을 내쫓고
화염검으로 울타리를 치시고 생명나무를 지키시려던 하나님의 심정이 어떤 것이었을까? 

후회...
신도 후회하셨다.
주님에게도 사랑은 참으로 고통스런 일이었다.
그리고 그 고통과 사랑의 극치가 "십자가"였다.


























Chagall-la crucifixion blanche1938

| 2007.06.25 13:49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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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부터 피나게 아프던 목감기. 의사가 월요일날 다시 오라며 우선 목감기 약만  제일 순하고 부작용없는 것을 주었는데 장에 탈이 생겨서 말이 아니다.. 게다가 이젠 코감기에 기침까지 한 바탕씩 혼을 흔든다. 아침 일찍 출근하느라 병원도 가지 못했는데.

먼 곳의 한 친구 선생에게 용건이 있어 전화를 했더니 내 목소리를 듣고 대뜸 하는 말,
"선생님이 전에 그러셨잖아요. 감기와 마음의 병은 아플만큼 아파야 낫는 병이라구. 약이 없다구요. 약이 없어요.. 병원가지 마세요."

그래.
감기도, 마음의 아픔도
면역이 없는 병은 치료약이 없다.

그저 아플만큼, 아픔이 다하도록 아프는 수밖에는

--
그곳엔 수선화... 그외 뭐 이런 저런 봄꽃들이 피었단다.  좀 전에 Mrs. Patch 방에서 노란 수선화를 보고 가슴이 뭉클했는데.. 내 방에도 화분하나 있으면 좋겠다.

남들이 너무 포근하다는,  이야기 거리로 가득찼다는 내 방엔 어떤 의미로는 죽은 것들만 있다.
죽은 활자들, 뉴욕의 우리 딸과 한개썩 나눠 가진 인형, 마네와 칼로의 인형, 사람이 살지 않는 집 모형들, 편지, 사진,...모두가 내가 이름 불러주고 숨을 넣어주어 살아나게 하지 않으면 그저 하나의 사물일 뿐인 것들이다.

내가 손짓하지 않아도, 내가 숨을 넣어 말걸지 않아도 스스로 생명이 진행중인  화분의 꽃이 그립다.
노란 수선화가 그립다.
오밀조밀 그랑코에를 큰 화분에 잔뜩 심어 놓고 싶다.
조금있으면 보라색 제비꽃이 강의실 옆 화단에 피어나겠지..

봄.. 내가 부르지 않아도 어김없이 오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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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cape at Saintes Maries de la Mer -Van Gogh

 



자연 속 폭풍우의 드라마, 인생의 괴로움의 드라마, 이것이 내게는 가장 완벽한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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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바다는 이렇게 광활한데
나의 배는 너무나 작고 위태합니다."(K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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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pper- Chair Car  (only for educational 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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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무지무지 좋아하는 화가에요.

창. 그리고 집/방(내부)과 밖. 창은 거의 대부분 안에서 밖, 닫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를 향한 통로인데 호퍼의 그림은 거의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는 형태를 가지고 있어요. 히치콕의 <이창>에서 처럼 말에요. 제가 좋아하는 테마 중 하나인 눈, 카메라, 창, 프레임, 등을 생각하게 하는. 아, 그리고 그 창에 부풀어 흔들리는 커튼이 나오는 그림.. 그 커튼은 숨결처럼 유일하게 정지된 곳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묘한 빛과 그림자..

진공관 처럼 공존하는 고독... 악 소리 지르게 외로운 거리...

예전에는 고흐의 그림 하나만 멍하니 보면서 밤을 샌 소녀시절이 있었는데 언젠가 부터는 호퍼만 만나면 온몸이 반응을 보이는 듯 공감하고 좋아합니다.

지난번 영국의 자칭 quality vandal이라는 Banksy가 호퍼의 Night Hawks의 그림을 그 견고한 숨막히는 창을 의자를 집어던진 그림으로 패로디 한 것이 생각납니다. 하하. 통쾌하게 느낀 것은 호퍼의 그림에 대한 패로디가 통쾌해서라기보다 그의 그림이 주는 메시지와 느낌에 대한, 그 고통스런 진실에 대한 카타르시스적 웃음이었는지 모른다는 생각했었어요.

이 그림도 기차안의 풍경을 그린 것인데 마치 출구없는 콘크리트 벽으로 된 내부처럼 보입니다.  제단처럼 종교적인 분위기마저 느껴지는...  사람들이 없는 텅빈 내부가 아니건만 작은 벽을 쌓고 완강히 단절을 고집하는 의자들처럼 저 승객들은 서로에게 관심도 소통도 없군요.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색감들이 외로움과 단절을 더 '환히' 느끼도록 해줍니다.

T | 2008.02.04 17:3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지난 여름.. 제가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어요.... 10시가 넘은 밤이었는데... 열대야때문에 너무 더워 무조건 집밖으로 나왔더래요...그 사람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려고 서울 시내의 한 버스에 목적없이 탑승을 하고..털털털 웃으며 저와 통화를 했답니다... 저도... 그 마음을 알 수 있을 듯 했어요.... 사람많은 지하철, 사람많은 커피숍에 앉아있는 기분... 책을 읽기에도, 잡생각을 하기에도, 그림을 그리기에도, 끄적끄적 몇자 생각거리들을 적어보기에도 좋은 그 장소.... 참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지만, 혼자있는 그 특이한 장소.... 가끔은, 내게 관심없는 그들이지만 그래도 그들의 존재가 참 고마운 날이 있어요... 내가 안심하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그 장소거든요..... 뭐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지만...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면서도 혼자 있으면 뭔가 불안한 ...그런 내 마음을 꼭 알고 내 옆에 그냥 있어 주는 것 같은 그들이 고마울 때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그림을 봐도 답답하거나 외롭다고 느껴지지 않나봐요..... 사람들은 제게, '커피숍에서 커피마실 돈으로 집 한 채는 사겠다....' 말 할 정도로 자주.... 혼자 들어가서 라테 한 잔을 하면서 무언가를 해요... 처음에는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구나'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비싼 커피를 늘 절반씩 남기는 걸요.... 그리고... 날마다 커피숍에 들어갈 때마다 사람들의 말이 생각나요... 거의 매일 지불되는 이 커피값으로....남들은 차라리 맛있는 밥을 사먹겠다느니... 모아서 뭘 반듯하게 사는게 낫겠다느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데 나는 왜 커피도 남겨가면서 거의 매일 한 번씩 이 곳에 가려는 걸까.. 잠시 생각했어요... 그리고는 문득... 어느날엔가 결정을 했어요... 내가 왜 이곳에 이렇게 가고 싶은 건가, 왜 이곳이 편하게 느껴지는가를 먼저 생각하자고.. 그 이상한 허한 마음을 달래기 전까지는 이 행동을 문제 삼지 말자고...... 가서 늘 그림을 그리죠... 요즘 시작된 새로운 그림.... 전에는 내가 못 할 것 같았던 그 그림들.... 글도 써요.... 내 마음에서 말하고 싶은 것들..... 뭐든.... 그리고 라테는 조금씩 식어서 반밖에는 못 마시지만 이 곳에 들어오는 데 드는 모든 시간, 비용, 모든 것들에 과감해졌어요... 나를 위한 것들이니까.... 그리고 혼자 있을 때 느끼지 못하는 편안함을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내게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서 느끼고 있는 것을 발견해요.... 참 밝은 줄 알았는데... 뭐.. 여전히 지금도 많은 친구들이 내게 있고, 그들도 나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지만.... 요즘 저는 그게 내 모습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그리움도 많고 옛 기억에 왠지 가슴이 시리는 사람이에요... 사람들은 (겉으로)밝은 제게 있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성격이 신비하다고 해요... 그래서 그것이 제 독특한 성격인줄 알았어요... 다들 특이하다고 좋아하는 뭔가를 내가 가졌나보다 생각했죠.... 하지만....아니었네요.... 그 만큼 몰래 외로웠네요.... 그 많은 친구들 사이에서 왜 나는 외로웠던 걸까요.... 내게 관심도 없는 그 사람들에게 그들의 존재를 고마워 할 정도로.......
NAPTKOREA | 2008.02.04 18:21 | PERMALINK | EDIT/DEL
그래요. 공감가는 말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고독감은 덜하죠. 누군가 곁에 있으니까. 그러면서 또 익명의 그들 속에서 안전함을 느끼죠. 아무도 내게 "시선"을 주고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니까.

이게 바로 우리 맘이죠. ㅡ함께 "그리고" 홀로ㅡ 이고 싶은 마음. 가장 안전한...

호퍼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든 아마 ㅡ 함께 "그러나" 홀로ㅡ 인 현대인의 삶이었나 봐요.

그러나와 그리고의 조화.. 이것이 우리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균형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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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객석 1997년 11월

제목 : [해외화제] 새롭게 밝혀지는 자클린느 뒤 프레의 사생활 - 전경원

 

(치료와 교육목적으로 이곳에 가져왔으며 상업적 이용이 아님/ 저작권은 전경원과 객석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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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재능이 파멸시킨 불행한 여자


최근 영국에서는 자클린느 뒤 프레의 언니와 남동생이 발간한 뒤

프레에 대한 회고록 ‘우리 가족 속에 있던 천재’(A Genius in the

Family)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일간지 ‘더 타임스’에 1주일간

요약분이 연재되기도 한 이 회고록에서 힐러리 뒤 프레와 피어스 뒤

프레는 천재적인 재능이 한 명의 여자와 그 가족들을 파멸로 이끌어간

과정과 함께 결코 행복하지 못했던 자클린느 뒤 프레와 다니엘

바렌보임의 결혼생활을 고통스럽게 기억해 내고 있다


해외화제/10주기 맞아 새롭게 밝혀지는 자클린느 뒤 프레의 사생활


1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천재적 재능의 첼리스트, 자클린느 뒤

프레의 일생은 최근 교통사고로 사망한 영국의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그것과 흡사하게 닮아 있다. 영국인 특유의 금발과 수줍은 듯 밝은

표정을 가진 이 두 여자는 스물 남짓의 젊은 나이에 언론의 스포트이트

속으로 화려하게 등장해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다 뜻하지 않게

때이른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각기 음악성과 아름다움이라는 드문

재능의 소유자였던 이 두 여자의 개인적인 삶은 비슷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불행했다.


영국에서 부동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다이애나의 전기

‘다이애나, 그녀의 진실’은 그녀가 다섯 번이나 자살을 기도할 만큼

괴로운 결혼생활을 견뎌야 했음을 폭로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발간된

자클린느 뒤 프레에 대한 가족의 회고록 ‘우리 가족 속에 있던

천재’는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영국에서 다이애나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첼리스트 자클린느 뒤 프레의 불행했던 인생과 그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낱낱이 되살려놓고 있다.


특히 그녀의 언니인 힐러리 뒤 프레의 기억은 너무도 세밀해서 읽는

사람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영국의 한 지방에서 음악교사로 일하고

있는 힐러리는 어린 시절의 자클린느와 나누었던 대화들부터 함께

음악을 공부하던 여동생의 센세이셔널한 데뷔를 보며 느껴야 했던

좌절감, 그리고 병의 징후를 보이는 자클린느를 회복시키려던 노력과

대화조차 불가능했던 자클린느의 마지막 투병생활들을 이 책에 기록해

놓았다.


책은 1987년 10월 자클린느의 장례식에 대한 힐러리의 기억에서부터

시작된다. “…재키는 월요일에 죽었고 그 이틀 후에 장례식이 있었다.

묘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재키에게 주기 위해 꺾어놓았던 꽃다발을 집의

테이블 위에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가까운 꽃가게로 달려갔다.

꽃가게로 가는 길에는 마치 화려한 담요로 덮은 것처럼 색색의

꽃다발들이 쌓여 있었다. ‘이 꽃들은 다 어디서 난 거죠?’ 꽃가게

주인은 대답했다. ‘오늘 여기서 굉장히 큰 장례식이 있어서요. 위대한

첼리스트 자클린느 뒤 프레가 죽었답니다. 주문이 너무 많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군요. 그런데 무슨 꽃을 찾으시지요?’


차가운 뺨으로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면서 떠듬떠듬 내가

원하는 꽃을 설명했다. 나는 분홍빛이 도는 크림색의 장미 다발을 사고

싶었다. 재키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었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지갑도 집에 두고 온 모양이었다. 주인은 꽃다발을 그냥 주었다.

고맙다는 말은 쉰 목소리로밖에 나오지 않았다…”


재키의 예언 ‘어른이 되면 난 전신마비에 걸릴거야’


힐러리는 장례식을 치른 후 자기 가족이 자클린느를 잊어버리기 위해

애썼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은 자클린느가 병상에 누워 있는

15년간 그녀를 잊어버리고 있다가 그녀가 사망한 후 다시금 ‘재키

어머니의 극성스러운 가르침이 그녀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결국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했다’라고 자클린느의 죽음을 가족의 탓으로 몰고 가는

여론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자클린느의 첫번째 스승은 그녀의 어머니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언제나 피아노를 치거나 손뼉으로 리듬을

맞추며 노래하고 있었다.” 힐러리는 자클린느의 시작을 이렇게

기억한다. “어느 날 재키는 어머니와 함께 라디오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듣고 있었다. 방송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악기 소리가 차례로

흘러나왔다. 첼로 소리가 들리자 재키는 ‘엄마, 저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고 싶어’라고 말했다…다섯 살이 되던 생일날 3/4 사이즈의 첼로를

받은 재키는 그 자리에서 악기의 D선을 활로 그어 제대로 된 소리를

냈다. 적당한 어린이용 교재를 찾지 못했던 어머니는 직접 그림과

악보를 그려가며 재키를 위한 교재를 만들었다. 매일 아침 재키는 눈을

뜨자마자 간밤에 어머니가 그려놓은 새로운 악보를 찾아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갔다…” 자클린느의 어머니는 다른 두 자녀들보다 훨씬 더

자클린느를 애지중지 보살폈다.


그러나 어떻게 자클린느의 가족을 ‘재키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라고 몰아세울 수 있을까. 자클린느는 19세에 이루어진 런던

데뷔 이후로 가족들과 거의 함께 지내지 못했으며 그 전에도 이미

‘천재’라는 이유로 나머지 가족들을 매우 힘들게 했다. “나와

피어스는 언제나 재키의 뒤에 있어야 했다. 재키가 깨어나지 않은

아침에는 다들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걸어다녔으며, 가족 중에 그

누구도 재키에게 ‘안돼’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천재였으니까.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은 다 당연시되었다.”


오히려 자클린느의 비극적인 발병과 요절은 타고난 운명이

아니었을까? 가공할 만한 그녀의 재능이 평범했던 그녀의 육체를

소진시켜 때이른 죽음으로 몰고 갔던 것이 아닐까? 힐러리는 세 살

아래의 동생 자클린느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한 가지 기억을

되살려냈다. “펄리에 있던 집의 정원 끝에는 오래된 사과나무가

있었고, 그 아래 나지막한 울타리가 그늘져 있었다. 그곳에서 나와

재키는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가 열두 살 때로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우리는 둘만의 장소인 울타리 밑에서 놀고 있었다. 갑자기

재키가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내가 비밀 하나 이야기해 줄까?’


‘뭔데?’


‘이거 엄마한테 말하면 안돼… 내가 어른이 되면 말이야, 난 아마

전신마비에 걸릴거야… 그럴 거 같아…’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서로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자클린느는 자신의 재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바렌보임과의 불화, 그리고 우울증


자클린느의 연주 활동은 1965년부터 1971년경까지, 불과 6년 정도에

그쳤다. 그녀는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다발성 경화증에 걸려 서서히

온몸이 마비되어갔다. 아직도 왜 자클린느가 이 병에 걸렸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언론에 공개된 그녀는 언제나

건강하고 쾌활하며 연주에서나 삶에서나 거침없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지휘자이며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불 같은 사랑에

빠져 하루 만에 유태교로 개종하고 7일 전쟁중인 이스라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자클린느의 남동생 피어스 뒤 프레는 자클린느가 바렌보임을 처음

가족에게 소개했던 때를 이렇게 기록했다.


“1967년 3월 마지막 날, 재키는 다니엘을 데리고 집으로 오겠다고

전화했다. 그녀가 오기 1주일 전부터 온 가족이 얼마나 많이 집을

청소했는지, 약속한 날에는 온 집안 구석구석 반짝거리지 않는 데가

하나도 없었다… 재키는 저녁 무렵에 보드카 한 병을 든 채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타났다. 그녀가 그런 옷을 입은 것을 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다니엘은 재키보다 훨씬 작았다. 마치 큰 누나가

막내동생의 손을 잡고 온 것 같았다. 거실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를 본

다니엘은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곧 우리 집은 아주

인상적인 음악으로 가득 찼다. 어머니는 흥분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그 멜로디를 따라 노래하고 있었다…”


이들의 결혼은 가히 세기의 결혼이라 할 만했다. 신문에는

바렌보임의 품에 안겨 파안대소하고 있거나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자클린느의 사진이 가끔 실렸다. 바렌보임은 한계를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가 이끄는 대로 자클린느는 승승장구했다. 연주회마다 대성황을

이루었고 언론의 평은 언제나 찬사 일색이었다.


과연 자클린느는 행복했을까? 힐러리는 “그렇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녀의 기억에 따르면, 언론에 등장하는 자클린느의 모습은 실제

그녀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솔직히 재키는 신문에 나오는

사진에서처럼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았다. 자클린느는 수줍고 때로

멍했으며 인터뷰하기 위해 기자를 만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힐러리는 대중매체에 공개된 생활이 주는 연속적인 긴장감과 함께

바렌보임과의 불화가 주는 스트레스가 자클린느의 발병에 한 원인을

제공했다고 믿고 있다. 다발성 경화증의 징후는 71년 말부터

나타났지만 그 2년 전부터 자클린느는 이미 진정제를 상용해야 하는

심각한 우울증 환자였다. 그녀는 도저히 바렌보임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했다. 바렌보임 역시 가끔 멍하니 앉아 있거나 보드카에 엉망으로

취해 버리는 그녀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다시 힐러리의 회고다.“71년 봄이었던 것 같다. 한밤중에 미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재키였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재키의 목소리는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흐느껴 울었다.

‘다니엘이 날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고 해… 도와줘… 당장 와줘…’

아마 그녀가 진정제를 먹는 것을 다니엘이 발견한 것 같았다. 재키는

계속 지금 호텔로 와 자기를 데려가라고 횡설수설했다. 그러나 곧

다니엘이 전화를 뺏어 들었다. 그는 무척 화가 난 목소리로 왜

자기들의 결혼에 당신들이 간섭하느냐, 당신이 나나 의사보다 더

재키를 잘 아느냐고 소리쳤다. 나는 다니엘에게 결혼에 간섭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다만 지금 재키가 정상이 아니니 미국으로 가 재키의

얼굴만 보고 오겠다고 말했다. 전화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얼마 후에 자클린느는 혼자 도망치듯 영국으로 돌아와 힐러리의

집으로 왔다. 바렌보임과는 만나지도 전화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거의

바렌보임을 증오하고 있었고, 결혼생활은 완전히 끝장난 듯이 보였다.

우울증이 너무 심해 하루종일 큰 소리로 울 때도 많았다. 자클린느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힐러리 부부는 프랑스 해안가로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 여행은 처음에는 성공한 듯 보였다. 명랑해진

자클린느는 도버 해협을 건너며 배의 갑판 너머로 진정제 병을 던져

버렸다. 그러나 바렌보임이 프랑스로 건너오면서 그녀의 증세는 다시

악화되었다. 자클린느는 남편을 필사적으로 피했다. 그를 무서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결국 아무런 성과 없이 바렌보임이 떠난 후,

자클린느의 정신상태는 완전히 허물어졌다.


“괴로운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니 재키가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는 재키를 빨리 찾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남편이 재키를 언덕 뒤편에서 찾아냈다. 그녀는 발가벗은 채

올리브 나무 덤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멍하니 눈을 뜬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재키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재키가 자신의 삶에 걸려

있는 무거운 부담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녀는 정말 미쳐 버릴 게

틀림없었다.”


“안돼, 팔이 안 움직여…”


언론은 자클린느 뒤 프레가 과도한 연주일정으로 인한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있으며, 72년까지 공식적인 연주를 중단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그 기간 동안 자클린느는 애쉬만스워드에 있는 힐러리

부부의 농장에 머물렀다. 어릴 때부터 자클린느는 가족이란 무한정

사랑을 베푸는 존재로만 알고 있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이 16개월

가량의 요양기간 동안 그녀가 힐러리에게 입힌 괴로움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힐러리는 이 기간 동안 매일매일 뒤바뀌는 그녀의 기분과 요구를

들어주면서 “차라리 재키를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그러던 중, 자클린느는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의 짐과 함께 사라졌고 힐러리는 그녀가 바렌보임과

화해했으며 무대에도 복귀했다는 사실을 신문을 통해 알았다.


“재키는 다시 다니엘의 시계추 같은 스케줄에 맞추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연주회와 늦은 저녁식사, 호텔과 여행. 이 모든 것들이

그녀가 “견딜 수 없어”라고 소리치며 울던 것들이 아니었던가. 과연

재키가 또다시 이 생활을 버틸 수 있을까…”


73년 2월에 자클린느의 공식적인 재기 콘서트가 영국 최대의

연주회장인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렸다. 연주곡은 엘가의 첼로

협주곡이었고 지휘는 주빈 메타가 맡았다. 객석에 앉아 있던 힐러리는

그녀의 연주를 지켜보며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분명히 감지했다.


“…재키는 첼로를 높이 들고 뛰는 듯한 걸음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환호성과 휘파람이 온 홀 안을 울렸다. 무대에 선 재키는 무척 밝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정적 속에서 연주를 시작한 재키는 곧 깊은 집중력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녀가 머리를 뒤로 젖히면서 활을 긋자 강렬한

영혼의 울림이 홀 안을 꿰뚫었다… 그러나 첫 두 소절 이후 재키의

연주는 서서히 느려졌다. 예상치 못하고 있던 오케스트라는 재키의

연주를 조금 앞서나갔다.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메타는

오케스트라의 템포를 느리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의 팔이 마치

오케스트라를 잡아당기듯이 움직였다. 청중은 거의 재키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2악장 무렵에 이르러 나는 알 수 있었다.

재키의 연주에는 과거의 그녀를 가득 채웠던 자발적인 즐거움이

사라지고 없었다. 무대의 재키는 순교자처럼 괴롭게 한 소절 한 소절을

연주해 나가고 있었다… 그날 밤의 연주는 무척이나 길고 힘들었다.

마침내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재키는 웃음으로

온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자신에게 환호하는, 그러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청중들 앞에 서 있었다…”


얼마 후 자클린느는 힐러리 부부를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힐러리의

남편에게 소금통을 건네주던 자클린느의 팔이 갑자기 식탁 중간에서

구부러졌다. ‘흠, 재키, 형부가 식탁 한가운데에 앉아 있단 말이니?”

나는 농담을 하다 재키의 파래진 얼굴을 보았다. 신음 같은 한 마디가

재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안돼, 팔이 안 움직여…”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낯선 병명을 진단받은 자클린느는 치료를

위해 뉴욕으로 건너갔다.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해도 그녀는 그럭저럭

혼자 걸어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피어스가 뉴욕에서 만난

자클린느의 모습은 참담했다.


‘“의사들이 내가 죽을 거라고 했어.” 재키는 울면서 말했다. “난

이제 걸을 수도 없어. 그 사람들이 죽기 전에 먼저 정신이상이

온다고도 했어. 난 이미 미쳤는지도 몰라.” 재키는 이미 죽음의

문턱에 와 있었다. 워낙 건강했기 때문에 병세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재키를 휠체어에 태우고

재활훈련센터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명의 환자들이 걷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마이크에서 금속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새로 온 환자는 두번째 테이블에 가서 막대를 잡고 걷기 훈련을

시작하세요.’ 재키는 묵묵히 막대를 잡고 둔하게 다리를 움직였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그 광경을 지켜볼 수 없었다. 나는 재키를 다시

휠체어에 태워 병실로 돌아와 버렸다. 누구보다도 더 대단한 재능을

가진, 언제나 빛 속에 서 있던 내 누나를 그런 인정머리 없는 목소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게 할 수는 없었다.”


72년 10월부터 87년 10월까지, 자클린느는 15년 동안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서서히 죽음을 향해 흘러갔다. 긴 세월 동안 그녀는 거의

세상으로부터 잊혀졌다. 그동안 그녀를 돌본 사람은 힐러리와 몇몇

친구들뿐이었다.


“87년 들어 재키는 완전히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눈을 뜰 수가

없어 기구로 눈꺼풀을 벌려놓아야만 했다. 내가 병실에 들어가면

재키는 ‘안녕, 힐러리’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목에서는

그르륵거리는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의 팔이

허공에서 흔들렸다. 내 어깨를 만지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팔을 잡아

내 어깨에 둘러주었다. ‘재키, 다니엘은 가끔 오니?’ 재키는

그르륵거리는 소리를 냈다. 무언가를 경멸할 때 내는 소리였다. ‘그럼,

그 사람 가족들 중에서는 오는 사람이 있니?’ 그녀의 목에서 다시 한

번 같은 소리가 났다.”


87년 10월 중순, 자클린느는 폐렴에 걸렸다. 19일에 의사는 최후의

순간이 왔다고 말했다. 바람이 몹시 거세게 불던 날이었다. 자클린느의

의식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힐러리와 피어스가 그녀의 곁에 있었다. 정오가 조금 지날 무렵,

연락을 받은 바렌보임이 파리에서 급히 날아왔다. 그즈음 바렌보임은

파리에서 피아니스트인 헬레나 바쉬키로바와 살고 있었다. 힐러리는

‘갑자기 100년은 더 나이들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고 그동안 그를

원망했던 자신을 자책했다. 바렌보임이 지켜보는 가운데 천재적 재능과

자신의 나머지 모든 것을 바꾸어야 했던 불행한 여자는 숨을 거두었다.


힐러리는 바렌보임을 두둔하며 자기 가족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정리한 이 책을 끝내고 있다. 힐러리가 지켜본 그는 분명히 자기

방식대로 자클린느를 사랑했다. 다만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기에는

둘의 성격이 너무 달랐던 것이다. “95년 가을에 런던에 온 다니엘을

오랜만에 만났다. 재키가 죽은 후 처음으로 우리는 그녀에 대해서

편안하게 이야기했다. 다니엘은 말했다. “난 항상 재키의 음악에 대한

재능과 능력에 감탄하곤 했지요. 연주할 때는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소리를 냈고 첼로라는 악기의 한계 너머까지 갔었어요. 아마

첼로 입장에서도 재키 같은 연주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을걸요.”

우리는 함께 웃었다.


‘다니엘, 재키가 그리워요?’


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아주 많이요… 난 아직도 런던에 오면 이곳에서 재키와 연주하던

생각이 나서 즐거워요.’


‘그애 무덤에 가보았나요?’


‘아니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무덤 같은 데는 안 가요.

어머니 무덤에도 가본 적이 없어요.’”


전원경/‘객석’ 런던 통신원

(저작권은 전원경에게 있음)

NAPTKOREA | 2008.01.13 22: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뒤 프레는 병으로 쓰러져 휠체어에 앉아 보내던 시절 이렇게 고백했다. -- “첼로는 외로운 악기다. 다른 악기나 지휘자가 있는 오케스트라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첼로로 음악을 완성시키기 위해선 음악적으로 강한 유대를 가진 보조자가 필요하다. 나는 운이 좋아 다니엘을 만났고, 그의 도움으로 연주하고 싶었던 곡을 거의 다 음반에 담을 수 있었다.”

"박제가 된 천재"라는 말은 너무 잔인하고 처절한 말이지만 그녀를 대변하는 정확한 말인지 모른다.그녀는 두 다리, 양팔 그리고 몸 전체의 균형을 잃었고, 눈은 사물이 두 개로 보일 정도로 악화되어서 책도 읽을 수가 없었다. 전화의 다이얼을 돌리는 일도, 돌아눕는 일도 불가능했다. 심지어 1975년 이후로는 눈물을 흘릴 수도 없게 되었다. 남편 바렌보임을 비롯하여 사람들은 바쁘다거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뒤 프레에게 연락하는 횟수를 줄였고 차츰 아무도 찾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뒤 프레의 전기 작가 캐롤 이스턴은 읽기도 말하기도 힘들게 된 말년의 뒤 프레는 자신이 연주한 엘가의 협주곡을 틀어놓고 멍하게 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들을 때마다 몸이 찟겨나가는 기분이 들어요.……눈물 조각처럼" 그러곤 고개를 떨구고서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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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당신이 인간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싶거든, 그 누군가를 잘 알고 싶다면.....그가 웃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그의 웃음이 친절하고 후하다면, 그는 선한 사람이다.  -도스토엡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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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연극부 테스피스를 창단하고 공연한지 어느 새 9년이 되었다.   옛 팜플렛 표지들을  올려본다.  흑백이라 좀 아쉽지만...  교육 대학원(조기영어교육전공) 연극도 어느새 4회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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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었다.
저 발은 이 땅 위를 떠나 서 있다.
땅 위를 딛고 있는 발이 아니다.
하늘로 날아 올라가고 있는가?  하늘에 매달려 있는가?

고통은 우리를 이미 이 세상 너머로 데려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초월일까? 
서러운 부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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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c)bhlee



나로 인해 그대가 아플까 해서
나는 그대를 떠났습니다
내 사랑이 그대에게 짐이 될까 해서
나는 사랑으로부터 떠났습니다.

그리우면 울었지요
들개처럼 밤길을 헤매 다니다,
그대 냄새를 좇아 킁킁거리다 길바닥에 쓰러져
그대로 잠이 든 적도 있었지요. 가슴이 아팠고,
목이 메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대는
가만 계세요. 나만 아파하겠습니다.

사랑이란 이처럼 나를 가두는 일인가요.
그대 곁에 가고 싶은 나를
철창 속 차디찬 방에 가두는 일인가요.
아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풀었다 가두는 이 마음 감옥이여.

마음의 감옥 - 이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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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고통 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지는 해의 힘없는 햇빛 한 가닥에도
날카로운 풀잎이 땅에 처지는 것을

그 살에 묻히는 소리 없는 괴로움을
제 입술로 핥아주는 가녀린 풀잎

오래 고통 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토록 피해 다녔던 치욕이 뻑뻑한,
뻑뻑한 사랑이었음을

소리 없이 돌아온 부끄러운 이들의 손을 잡고
맞대인 이마에서 이는 따스한 불,

오래 고통받는 이여 네 가슴의 얼마간을
나는 덥힐 수 있으리라

[오래 고통 받는 사람은 - 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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