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림 아래로 - P. 첼란 까마귀 뒤덮힌 보리밭 물결. 어느 하늘의 푸르름인가? 아래인가? 위인가? 영혼에서 튕겨나온 때늦은 화살. 보다 강렬한 울림. 보다 가까운 타오름. 두 개의 세계. (출처: 고위공, <<문학과 미술의 만남>>)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photo by bhlee(@SFO)
그리운 사람, 때로 너무 생각이 간절해져서 전화조차 버거웠다면 쓸쓸히 웃을까? 보고 싶어서 컴퓨터 자판 위에 놓인 손가락들을 본다 그런데 손가락들이 봉숭아보다 더 붉어서 아프다 그리운 사람 조금씩만 서로 미워하며 살자 눈엔 술을 담고 술엔 마음을 담기로 (여림)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다시 쓸쓸한 날에- 강윤후
오전 열시의 햇살은 찬란하다. 무책임하게 행복을 쏟아내는 라디오의 수다에 나는 눈이 부셔 금세 어두워지고 하릴없이 화분에 물을 준다. 웬 벌레가 이렇게 많을까. 살충제라도 뿌려야겠어요, 어머니. 그러나 세상의 모든 주부들은 오전 열시에 행복하므로 엽서로 전화로 그 행복을 라디오에 낱낱이 고해 바치므로 등허리가 휜 어머니마저 귀를 뺏겨 즐거우시고 나는 버리지 않고 처박아둔 해진 구두를 꺼내 햇살 자글대는 뜨락에 쪼그리고 앉아 공연히 묵은 먼지나 턴다. 생각해보면 그대 잊는 일 담배보다 끊기 쉬울지 모르고 쑥뜸 떠 독기를 삭이듯 언제든 작심하여 그대 기억 모조리 지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새삼 약칠까지 하여 정성스레 광 낸 구두를 신자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 피노키오처럼 걸어본다. 탈수기에서 들어낸 빨랫감 하나하나 훌훌 털어 건조대에 널던 어머니 콧노래 흥얼대며 마당을 서성거리는 나를 일손 놓고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시고 슬며시 짜증이 난 나는 냉큼 구두를 벗어 쓰레기통에 내다버린다. 올곧게 세월을 견디는 그리움이 어디 있으랴. 쿵쾅거리며 마루를 지나 주방으로 가 커피 물을 끓이며 나는 이제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러나 얘야, 죽은 나무에는 벌레도 끼지 않는 법이란다. 어머니 젖은 걸레로 화분을 닦으시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살아갈 날들을 내다본다. 그래, 정녕 옹졸하게 메마른 날들을 살아가리라. 그리하여 아주 먼 어느 날 문득 그대 기억 도끼처럼 내 정수리에 내리찍으면 쪼개지리라 대쪽처럼 쪼개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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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손- 길상호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c)2008 bhlee (주 1회 총 10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주최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주관 문화관광부/국민체육공단후원 (c)all rights reserved.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아이들이 점점 깜직하고 놀라운 글을 쓴다. 아이들이 너무 이쁘다..^^
여기 소개된 시는 모두 넌센스 시짓기이다. 부디 혹시 부모나 어른, 선생이 읽으신다면 맞춤법이 틀렸네, 글씨가 왜 저래, 말이 안되는 이야기네... 등 이상한 말을 하지 말아주시길 바란다. 모두 초등학교 1학년. 많은 글중에 가장 자신이 누군지 드러나지 않는 것만 모았다. 아이들과 [비밀이에요... 글쓰기치료]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는 단서가 되는 것들은 지웠다. 사실은 마음에 감동이 되거나 찡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중고등생 10대 보다 아직 '학습된 사고방식'에 길들여지기 전의 아이들이라 너무나 글쓰기를 즐거워한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선생님 오늘은 글쓰기치료 안 해요? 너무 재미있어요"하는 아이들 때문에 방학도 없이 매주 진행하고 있다. 그래도 몇몇아이들은 자신이 하는 글쓰기, 그림그리기에 대해 '못한다... 못했다..' 등 여전히 어른들의 평가에 길들여져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마음이 안쓰럽다. 겨우 1학년인데...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2009년 한 일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제 1회, 대한문학치료학회 학술대회 및 창립총회 안내 - 일시: 2009년 12월 12일 (토) 09:30~ 18:00 + 학술대회 일정 등 록: 09:30~10:00 점심시간: 12:30~13:30 주제강연ll : 문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휴식: 16:45~17:00 창립총회:17:40~18:00 + 참가방법 * 참가비: 사전등록(12월9일까지) 대학생 25,000원/대학원 및 일반인 30,000원 +찾아오시는 길 한국교양교육학회/대학교양교육협의회 2009 추계학술대회 * 주제 : 학부교육 핵심역량 강화와 교양교육 * 일시 : 2009년 12월 11(금) 13:00 ~12일(토) 13:00 * 장소 : 경원대학교 국제어학원 국제홀 2009년 12월 11일 (금) ■ 13:00 ~ 13:30 :등록
■ 13:30 ~ 13:40 : 개회사 사회 : 권성호 (한양대) 박충연 한국교양교육학회장/강명구 대학교양교육협의회장 ■ 13:40 ~ 13:50 : 환영사 이길여 경원대학교 총장 ■ 13:50 ~ 14:30 :주제강연 1: 교양교육의 새로운 위상과 그 강화방책 손동현 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장 ■ 14:30 ~ 15:10 : 주제강연 2: “商工” 시대의 인문/교양교육 김진우 일리노이대학교 명예교수 ▶ 15:10 ~ 15:20 휴식 및 이동 기초교양교육의 제도적/행정적 지원체제 구축을 위한 심포지움 사회 : 김영세 (연세대) ■15:20~ 16:00 : 기초교양교육의 행정적 지원방안: 주요 거점대학 교양교육센터 구축방안발표 : 강명구 (서울대) ■ 16:00 ~ 17:30 : 기초교양교육의 행정지원체제 현황과 과제 가톨릭대학교, 경원대학교, 한동대학교(각 10분)의 발제 및 자유토론 ========================= 논문발표 Session 1 ========================== <국제화, 다문화 시대의 교양교육> ========================== 논문발표 Session 2 ========================= 사회 : 윤승준(단국대) ■ 15:20~15:50 : 학부교육에서 학습 및 행동윤리 정립을 위한 제안 -미국 대학사례 연구와 그 시사점을 중심으로- ■ 15:50~16:20 : 융합 교과목을 통한 교양 교육 심화의 한 방안 - 덕성여자대학교 <정서의 이해와 조절>을 예로 발표 : 정미숙(덕성여대)토론 : 임민호 (가천의대) ■ 16:20~16:50 : 교양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한 융합 교과목 개발 발표 : 홍병선(중앙대)토론 : 박명관 (동국대) ■ 16:50~17:20 : 교양교육으로서의 문학, 그 가치의 재평가: 문학치료를 중심으로 발표 : 이봉희 (나사렛대영어학과)토론 : 임호찬 (나사렛대심리재활학과) ▶ 17:20~ 17:30 종료 및 이동 ▶ 17:30~ 19:30 리셉션 (경원대학교 총장)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photo by bhlee 아이는 추수감사절에 태어났다. 추수감사절 저녁 친구 집에 가서 칠면조요리를 먹고 집에 돌아온 후, 새벽 3시부터 진통이 시작되었었다. 사실 예정일은 1주일 전이었는데 마침 남편의 시험기간이어서 간절히 기도했었다. 시험에 방해될까봐 부디 시험이 끝나고 출산하게 해달라고. 기도 덕인지 아가는 시험이 끝나는 날, 그리고 땡스기빙 연휴가 시작되는 목요일이 지나고 금요일 새벽에 내게 신호를 보내온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 같은 무려 27시간의 진통이 계속되었고 아기는 토요일 아침에 태어났다. 아무도 없는 낯선 외국 병원, 춥고 작은 창고 같은 회색빛 대기실, 차갑고 딱딱한 침대에 나는 덩그마니 홀로 남겨졌다. 남편은 어디론가 말없이 사라졌고 (아마 어디가서 자고 있었을거다) 간호사는 어쩌다 한 번씩 들여다보고는 not yet, 한마디 하고 돌아가고 나는 공포에 질려있었다. 수술하지 않아야 했기에.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자연분만을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수술을 할 경우 가난한 유학생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술비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 아가는 무사히 건강히 태어났다. 수업 사이사이 뛰어와 모유를 먹이고, 이유식도 그 흔한 거버가 아니라 일일이 다 만들어 먹이고, 아이는 엄마가 곁에 있어야 한다며 먼저 한국에 돌아가는 남편에게 아기를 함께 보내지 않았다. 나는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와 단 둘이 남아 석사 과정을 끝내야 했다. 아는 친척, 친지 하나 없는 그 곳에서.... 베이비씨터 비용도 아껴야 했기에 도서관이든 어디든 아이들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수업이 있는 날도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할 때가 있어서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학교에 가기도 했다. 잠을 재워놓고 대학원 세미나실 밖에 둔 채 (참 어쩌면 그렇게 철이 없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끔직하다.) 수업을 하다 중간에 나와 보니 아기가 사라졌다. 알지도 못하는 중국계 여학생이 위험하다고 데리고 간 것이었다. 어떻게 찾았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데리고 갈게 뭐람 교실을 열고 엄마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봐야지.) 난 지금도 그 시절의 어떤 일들이 하얗게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지워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는 침실 밖 거실의 책상에서 공부하는데 방에서 쿵하는 소리가 났다. 놀라 들어가 보니 아가가 안 보였다. 침대와 창 사이의 작은 공간에 굴러 떨어진 것이었다. 나는 밤새 쓰던 레포트를 막 끝내고 있던 중이었다. 놀라서 아이를 끌어안고 (그때까지 꼬박 밤을 새느라 세수도 못한 얼굴로) 레포트를 내러 학교로 뛰어갔었다. 한손에 아가를 안고 한손으로 레포트를 프루프리딩 하면서....(그때 남편은 어디 있었는지 기억이 통 나지 않는다. 아마 학교에서 수업 중이었을 거다. 어쩌면 학교 테니스장에서 친구들과 테니스를 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는 휴대폰이 있던 시절도 개인 피씨가 있던 시절도 아니고 매뉴얼 타자기를 쓰던 시절이었으니까.) 교수에게 소설 레포트를 내러 연구실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아가가 침대 밑으로 떨어졌어요...' 하고 말하며 나도 모르게 그 선생 앞에서 울어버렸던 거 같다. 그 젊은 남자 H교수는 웃으면서 아이들은 항상 침대에서 떨어진다고 걱정 말라고 하면서 나보고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한국 사람들이 있는 교회를 다녀보라고... 도움을 받아보라고 했던 거 같다. (솔직히 교회 갈 시간조차 없었다. 아니... 그 누군가와 만나서 한마디 잡담할 시간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을 감으면 그 순간 잠이 오니까 눈을 뜨고 기도하는 것 그것 뿐이었다. 지금도 나는 눈을 떠야 기도가 잘된다. 아이를 침대에 잠재우고 샤워를 하면 마치 샤워기의 물소리가 아이가 우는 소리 같아서 몇 번이고 물을 잠그고 귀를 기울여봐야 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었지만.... 그러다가 나중엔 그냥 아가를 유모차에 앉혀서 샤워부스 밖에 세워놓고 샤워를 했다. 아이는 한달에 20일 가량을 늘 열이 나고 아파서 밤새 공부를 하면서 아이를 욕조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열을 내려야 했다. 갈기갈기 찢어지는 엄마의 마음... 나도 어린시절 하도 자주 아파서 날마다 가위 눌리고 열이 떠나지 않아 커다란 사기 대접에 시커먼 한약을 먹다가 토하고 다시 먹던 기억이 있다. 늘 깨어보면 내 몸에 침을 놓고 있었고 그래서 그 한의사 할아버지를 ...놈이라며 욕을 하며 울던 기억이 나는데.. 그 앓으며 컸던 어릴 때는 깨닫지 못하던 것을 아이를 보면서 배웠다. 생명은 앓는 것이라는 것을. 아무리 사랑해도 대신 아파줄 수 없다는 것을. 인간인 내 혼자 힘으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것을. 아니, 나는 내 혼자 힘으로 사랑조차 온전히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깨닫는 그것--나의 사랑은 참으로 무력하다는 것을. 나는 오직 한 가지 마음 밖에 없었다. 어서 석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야 해. 우리 아가를 위해서.... 얼마나 오랜 동안 기다려 30이 넘어 겨우 시작한 공부(유학)이었던가. 하지만 나는 2년 안에 급히 석사를 따고 서둘러 돌아왔다. 그 설움을 (외국박사학위를 따지 못해서 겪는) 여태 겪고 있다. 언젠가 외국박사 2명과 함께 참가했던 마지막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는 그때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내 아이도 나의 인생이며 책임이므로. 그 일로 내가 오늘 면접에서 떨어질 것을 알아도 아마 내게 지금 똑같은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또 다시 내 꿈을 접고 아이를 위해서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아가는 내 무릎에서 내가 연필을 들면 연필을 뺏고 볼펜을 들면 볼펜을 빼앗았다. 불쌍한 아가. 그 좁은 기숙사 방에서 바로 엄마가 코앞에 보여도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책상(식탁) 밑에 담요를 깔아주고 누이면 잠이 들곤 했었다. 항상 무릎에 앉힌 채 타이프를 쳐야했다. 옹알이 한번 해주지 못하고 가장 중요한 어린 시절 2살까지 오직 들려준 건 엄마의 옹알이 대화 대신 클래식칼 뮤직 뿐이었다. (옹알이를 해주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머리가 좋았을 것을 나는 참 아이에게 어려모로 죄인이다.) 그래도 천사 같이 항상 눈만 마주쳐도 웃던 아가. 그 아가를 보면서 난 얼마나 감사기도를 했던지. “겁나게 착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던 아이. 애교가 어찌 많은지 외할머니의 간을 녹여버린 아이. 가끔 변해버린 내 모습, 옛 모습이 사라진 나의 인상..을 바라볼 때면 아이 생각이 난다. 아이가 한국에 올 때 공항에서 만나면 늘 안쓰럽고 서글퍼진다. 외로움과 싸우고, 공부하느라 지쳐서 투사처럼 강인해 보이는 얼굴에 가슴이 아려온다. 그건 엄마인 나만 느낄 수 있는 변화이다. 그러다 나와 있으면 며칠사이 금방 다시 소녀답고 애교가 넘치는 아이의 모습으로 변한다. 내가 아이의 남편이 될 사람, 나의 사위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다. 우리 아이가 가장 “그 아이답게” (아름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사람. 내 아이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해주는 사람. 아이에게 아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 그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혹시 자신이 아닌 남이 되어 살아가는 순간들이 있더라고 남편 앞에서 만은 안심하고 그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는 사람... 그게 가장 큰 행복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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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카메라에 담긴 몇 개의 사진을 올려봅니다. 다른 분들이 찍은 사진이 모아지는 대로 또 올리겠습니다. 혹시 여기 있는 사진이 필요하신 분은 말씀해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이 사진에는 없지만 한국리쿠르트 이정주 사장님, 인사만 하고 그림자처럼 사라지신 '치유하는 글쓰기'님, 그 외 많은 분야의 선생님들 (경북대, 충남대, 한림의대, 연세대,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동원대, 한북대, 강원대, 교원대, 총신대, 그리고 한국정신건강보건학회의 교수님 등), 독서치료 현장에서 저널치료를 활용하고 계신 분들, 문학치료에 관심이 있는 많은 분들 감사합니다. 일일히 편지드리지 못함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멀리 광주, 부산, 대구, 강원도, 충남에서 오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제게 가장 소중한 분들은 이 사진에는 없을 수 있지만 소리 없이 가슴으로 응답하며 말없이 글을 쓰시고 자신을 대면하는 힘겨운 일을 해주신 이름 없는 분들입니다. 저희는 바로 여러분들을 위해서 여기 있습니다. 케이와 저는 앞으로도 더 좋은 일과 프로그램을 위해 계속 의견을 주고 받으며 연구하고 개발하여 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저의 연구소 워크숍에서 다시 뵙기를 기대합니다. 문학과 글쓰기치료에 계속적인 관심과 따뜻한 열정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케이 애덤스/ 이봉희드림 010-8576-8673 journaltherap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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