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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독서치료 강의 후기

 

..달이:

저녁반 이봉희 선생님의 수업은 실재 적용보다는 이론이 중심이었어요.

물론 학생들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에 그쪽 방향으로 수업이 진행되었죠.

문학치료에 대해서 더욱 많이 생각해 보는 계기였습니다.

 

이봉희 선생님과 나눈 글쓰기 치료는 새로운 문학치료적인 방법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정말, 시간이 더 많이 할애가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싶을 정도로 4시간이 빨리도 지나갔네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어하시는 선생님의 열정이 느껴져서 더욱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제 마음속에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긴 말씀은... "걸리버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소인국에 살고 있는 걸리버가 되면... 화살이 날아와도 상처가 나고 아플지언정 죽지 않을 것이고,

눈앞에 높은 산이 있어도 다리 벌려서 훌~쩍 넘어 버리면 그만이니까요.

또한 "내 안의 어린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였습니다.

어느덧 겉멋이 들어서 시니컬하게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좋은 줄 알았고,

작은 것에 감동하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 유치한 모습인 줄 착각하고 살았더라고요.

 

독서치료사를 꿈꾸는 우리 모두가 먼저 걸리버가 되어 의연하고 지혜롭게 문제를 바라봐야겠습니다. ^^

..미
: 저도 -걸리버가 되라-는 말에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07.05.1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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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e: 2007.05.16 00:09

 

제일 먼저 그림을 사용한 글쓰기와 그림을 통해 감정을 이끌어 내시던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림이 다 마음에 들었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어요.

그리고 실습으로 난화를 하고 선생님들마다 돌아가며 나눔을 했는데 그림 속에서 찾아낸 것이, 그리고 그것을 통한 글쓰기가 선생님들 한 분 한 분을 깊이있게 건드리고 문제를 생각나게 하고 감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이 저는 참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단순한 선그리기와 글쓰기에 이렇게 큰 힘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문학치료를 통해 천식과 관절염이 나았다는 것, 그리고 오랫동안 막혔던 관계가 열리고 몇 십년 동안 대화가 단절되어 있던 관계에 대화가 열리고 했다는 경험담을 들으면서 문학의 힘을 느낄 수 있었고 심리학적 이론 없이도 문학 통해,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이 치유된다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글쓰기치료가 상담자에게도 비밀을 굳이 털어놓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무도 모르게 스스로 하는 활동이 치유를 가져온다는 것이 자아방어가 강하고 노출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 특히 청소년층에게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된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이전에 만났던 거짓말하고 자기노출을 꺼리는 아이가 생각나면서 정말 청소년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꼭 적용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화와 같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앞으로도 혼자서 사용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꼭 복잡한 이론에 기초하지 않고도, 아름다운 그림, 음악, 글을 통해 치유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자 큰 위로가 되었고 앞으로 삶 속에서 이러한 문학과 예술을 많이 접하고 제 자신을 풍요롭게 가꾸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고해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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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독서치료학회에서 5월 14일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던 최OK입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저한테는 큰 신선한 충격이 들어와 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책만 사놓고 읽지 않고 있었는데 지금 글쓰기치료, 저널치료 책을 읽으며, 조금씩 내안의 나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교수님가지고 계신 자료의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또한 체계적으로 교수님의 강의를 받고 싶은데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도움을 청합니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도 있어서, 나중에 시간이 날 때 교수님께 도움을 청하려 하다가 안되겠다 싶어 메일로 제 마음을 보냅니다. 교수님의 강의나 자료의 도움을 간절히 바랍니다.

나이를 잊고 사시는 단아한 모습을 6월을 시작하는 오늘로 부터 영원토록 지켜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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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오늘 아침 일찍부터 강의가 있다고 하셨는데 어제 늦게 끝나셔서 아침에 일어날 때 힘드셨지요?

어제 '글쓰기치료' 강의를 들은 학생이에요.

교수님의 귀한 말씀들 다시 한번 새겨보았습니다.

에리히 프롬의 말도 좋았고, [죽은시인의 사회]도 좋았고, 기억하고 싶은 말들이 참 많았어요.

시간이 되면 교수님 강의 더 듣고 싶지만 직장에 다니고 있는터라 차후에 기회가 되기를 바랄 수 밖에 없네요.

교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많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 모두들 흡족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 방에서 '백곰딜레마' 내용을 보려고 하니까 비밀번호를 입력하라고 하네요.

허락해 주신다면 저도 들어가 보고 싶은데 방법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교수님께서 어렵게 공부하고 체험하신 것들이 잘 풀려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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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독서치료학회  문학과 독서치료 시간에 교수님 강의를 들었던 KH원입니다

저널치료 책을 사서 읽으면서 직접 글도 써보고, 친구에게도 이 방법을 권해주기도 했었죠

 

그런데 글쓰기치료의 강력한 힘을 믿고 계신 교수님을 직접 뵈니까

머리로만 이해했던 것들이 가슴으로 온몸으로 느껴졌어요

 

강의 듣는 동안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관절이 쑤시기도 하고 머리에 두통까지

내안의 어떤 메세지가 몸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기억 잊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했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너무 늦지는 않게 그 의미를 차근차근 알아가도록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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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제 밤 수업 받고 글 올렸던 LHJ입니다. 수업내용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남편과 같이 하면서 천안 수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수요일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가을 학기에도 혹시 문학치료 수업이 그곳에서 있을 예정인가요? 아니면 서울에서도 혹시 수업이 있을 예정이라면, 꼭 받아보고 싶습니다. 제 자신이 자라면서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상황'에서 그저 일기처럼 풀어헤쳐 놓았었는데 그런 것들을 이제 좀더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써 내려가면서도 어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다음은 도대체 뭔데? 어찌해야 하는데"에서 걸려 넘어져서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제라도 늦다는 생각을 저버리고 머릿속 헝클어진 마음들을 수습하고 싶네요. 저는 44세의 주부에 중3, 초등6,초등2학년의 세 아이를 두고 있는 '분발하고 싶은' 어미입니다. 꼭 다음에 만나뵐 것을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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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편히 들어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대학로 독서치료 수업을 들은 이HJ라고 합니다.

오늘 돌아오면서 정말 멀미가 났습니다. 아니, 정확한 표현으로는 구토가 일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모든 문학이론과 시, 소설, 영화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고, 그것들을 모두 토해버리고 싶었습니다.

모두 버리고 다시 담고 싶었습니다. 교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지금도 머릿속을 울립니다.

지금도 도저히 잠을 이룰 길이 없어 복잡한 마음 속에서도 이 방에 들어왔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마음만 달래고 나가겠습니다.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무엇보다도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우리를 향한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밤이 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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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J

교수님 월요일 오전 서울에서 수업 받았던 천안의 SYJ입니다.

글쓰기의 효과를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직 여운이 있어요.  만나서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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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

오늘 문득 떠오른 생각인데 무심히 넘길 일인가...해서요.어제 남편에게 시어머니에 대한 부담감을 이야기하다가 '정말 사랑스러운 어머니라니까!'라는 말이 툭 나왔습니다. 농담삼아 한 말이긴 했지만, 빈정거리거나 반어적인 표현을 한건 아니었는데. 그런 표현을 했다는게 저도 의외였습니다. 농담으로도 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는데.

저의 시어머니는...저를 많이 울게 한 분이지요. '나를 저렇게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하는 것을 알려준 장본인이고(흑..) 직접적으로 말씀은 안하셔도 온 몸으로 '넌 예의도 없고, 성격을 개조해야해' 하는 메세지를 마구 풍기셨구요. 요즘은 '손자들이 성품 좋은 제 아빠는 안 닮고 엄마를 닮아서 걱정이야' 하는 메세지까지...

그런데 어제 그 말을 하는 순간 문득 어머님이 귀엽게(?) 느껴졌답니다. 70이 다 돼가시도록 관심받고 싶어하시고, 남에게 칭찬 듣고 싶어하고, 자랑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가지고 계시다는게요. 정말 이해할 수없는, 그보다 이해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제가 조금 마음에 여유가 생긴걸까요? 막상 또 얼굴을 대하면 어떨진 모르겠지만 제가 조금 담담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좀 용감해진 것 같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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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글이다. 내 개인 홈페이지에서 HS학생(지금은 유학중. 아기아빠이며 전도사님이다.)과 주고 받았던 글.

2003년 9월 15일
"발가벗은 한 그루 가을 나무의 용기와 겸허로
밤새도록 밤비처럼 처절한 기도로 울 수 있게 하소서" (유안진)

hs가 다녀갔다. 온 단 말도 없이  조심스런 노크소리와 함께.
자기에게 이 가을 필요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 글을 적은 책 한권을 내밀었다.

반가운 손님은 그 자체가 큰 선물이다. 예기치 못한 기쁨. 어느 시린 봄날 아침 아직 다 떠나지도 않은 겨울을 이기고 고개내민 파란 싹을 만나는 기쁨처럼 가슴이 훈훈해진다.

삶의 고달픈 여정에도 항상 길가에는 의자모양 돌이, 누운 고목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 쉬어가라고.  감사한 일이다.

쌓인 일들과  두번 다시 쳐다보기도 싫은 교정원고 앞에서 봄볕에 녹는 겨울 눈처럼 졸다가 불현듯 깨어나 hs가 주고 간 책을 들쳐본다. 내 졸음은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한 내 육신의 소리없는 반항임을 알기에.  어쩌면 하나같이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쓸수 있을까? 어떻게 이들은 온실에 비친 햇살같은 따뜻함을 황야 한복판에서 일궈내어 도란도란 여성스럽게 들려줄 수 있을까?  질투심 섞인 부러움에 이번엔 또 다른 졸음이 날 마비시킨다.

난 아직 입원중이다.
내게 세상은 거대한 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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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9. 16. by HS

세상은 거대한 병원... 어떤 병원인가요?
한 때, 세상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건 한눈에 보기에도 결벽증과 약간의 정신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만한 한 아주머니를 보며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에 대한 더러움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우리 눈에 결벽증 환자처럼 보이는 저 아주머니가 정상일지 모른다고,
미친 세상에 우리 모두가 미쳤기 때문에 그 더러움을 모른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나도 미쳤기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거라고...

그 때 저는 창조주란 없다고, 있어도 떠나겠다고, 벌을 내리려면 내려보시라고 반항하던,
그리고 점점 염세적으로 생각이 번지던,
그래서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던 때였습니다.
죽음이란 결국 정상인이 미친 세상에서 택하는 마지막 탈출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 그러나 저는 그 때에 이미 벌을 받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벌을 받는다는 것은 때로는 축복입니다.
옛 선지자들이 그토록 외치던 "돌이키라"는  명령에 귀를 기울일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형벌인지도 모른채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은 그 얼마나 큰 형벌인지요.

너무나 감사하게도 저는 형벌을 받고 있는 상태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 때에 "돌이키라"는 명령을 깊이 생각했으며,
그리고 지금의 제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언제든지 어두움을 택할 수 있는 유약한 존재임에는 틀림없겠지요.

이런 말씀은 드리지 못했지만,
비젼이 확고부동해야 한다는 말에 대해 동의는 하면서도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때처럼 염세적인 생각은 아닙니다만,
때로는 '세상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란 생각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것에 대해 나 자신은 확신을 하고 있지만,
어쩌면 신의 존재를 있다 없다 논하는 것 자체가 인간이 할 일이 아니지 않는가 싶어(다만 믿을 뿐이라는 뜻에서)
불가지론에 매력을 느끼기도 합니다.
위험한 생각인가요?

세상은 거대한 병원이라는 글귀가
지난날의 저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를 또 생각하게 합니다.

"발가벗은 한 그루 가을 나무의 용기와 겸허로 밤새도록 밤비처럼 처절한 기도로 울 수 있게 하소서"

진정 제게 필요한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 드렸던가요?
어릴 때 선생님이나, 대학에 와서 교수님이나,
그 앞에 서면 너무나 어렵고 불편한 생각만 들었었다는 것을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선생님은 많이 다르네요.
불편한 마음이 전혀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지금까지 제가 만난 다른 선생님이나 교수님들과는 많이 아니 전혀 달라요.
감사합니다.
늘 거기 계셔서 들어주시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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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RE to HS
9. 17.

어둠은  밝음을 사모하기에 인식되는 어둠입니다
애통함은  나의 연약함에 대한 끊임없는 깨어있음으로 인한 절망입니다.
세상의 온갖 아픔을 바라보기에, 그들의 시기 질투 욕망 외로움 갈증 두려움 대인기피 과대망상 피해의식 맹목적인 사랑 우매함 판단과 지혜의 눈이 먼 안과질환 이기심 착각... 모든 것이 다 그들의 '아픔'이기에 그것을 바라보는 슬픔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쁜 사람입니다. 기어이 환희와  밝음과 따스한 웃음 뒤에 다시 찾아올 어둠을 너무 또렷이 찾아내고야 맙니다.  누군가의 밝음이 딛고 선 발밑에 눌린 어둠을 또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가변성과 무상함을 알면서 나도 이 땅위에 중력의 법칙 속에 얽메어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바울처럼 말합니다. 내가 둘 사이에 끼었으니... 나의 원하는 바는 이곳을 떠나는 것...이지만 만일 내가 이 곳에 존재할 이유가 있어서 존재한다면, --너희에게 유익하다면-- 이곳에 있는 것이 내게 옳다는 것이지요. 그게 사나 죽으나 의미있고 유익하다는 거지요.  세상이 병원이라는 말은 나를 제외시킨 비판적인 말이 아닙니다.  나를 포함한 인간들의 "아픔"--악함이라는 궁극적인 병, 죄(허물)라는 깊은 병에서 스스로를  치유할 길 없는 그 사실을 바라보는 슬픔을 이야기 합니다. 누가 감히 아, 기쁘다 주님이 그래서 내 대신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기쁩니다. 정말 기뻐요. 불가능이 없어요. 주님만 믿으면... 이라고 용사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절대 나는 배반하지 않아요. 죽기까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확신했던 베드로처럼요?   우리도 주를 배반했던 베드로처럼 기껏해야 이렇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고백할 뿐이지 않은가요?  

"네가 이 모든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지 주께서 아시나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감히 맹세하듯이 큰소리 칠 수 없어요. 난 언제 또 당신을 부인할 지 몰라요. 언제 또 세상과 타협하거나 외로움에 몸을 떨며 모든 걸 포기해 버리고 싶어지거나, 나태해져서 세상을 포기한듯 우울해 질지 몰라요. 언제또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저주하거나 내 알량한 선악의 판단으로 남을 정죄하며 미워할지 모릅니다. 언제 또 당신을 외면한 채 골방에서 혼자 쓰러져 꼼짝도 않고 생을 낭비할지 모릅니다.  오직 당신만이 지금 고백하는 이 사랑이 진심임을 아시며 동시에 그 "진심"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도 아십니다.  내 고통이 무서워 그 진심을 언제 가치없는 것인양  부인할지도 아십니다. 내 진심은 그렇게 거짓으로 어느순간 변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금 할 수 있는 대답은 그리도 여전히  '사랑합니다....'입니다.  당신만이 나의 진심을 아십니다...

병들지 않는 사람이 없기에 아무도 대적할 수 없어서 --사실은 미운데, 저러면 안되는 데 하고 화가 나는데--내 속에서 늘 싸웁니다. 이것도 나의 무기력함에 대한 교묘한 합리화이면 어쩌나하고 갈등합니다.

또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맘 깊이 상처를 안고 병을 앓고 살아가는 것을 보는 아픔이 너무 큽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기에. 내가 해주고 싶어도 그 도움이 그들에게는 무의미하기에.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지고 가는 십자가 중 가장 힘겨운 것은, 아니 가장 먼저  져야 할 십자가는 세상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연약함과 별볼일 없음과 절망을 안고도 등에 지고도 포기하지 않고 날마다의 길을 또 무겁게 무겁게 발자국을 떼며 조금씩 가는 것이지요.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갖는 것은,  내 속에 없는 그 무엇을 믿음으로 나를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한 각오가 없이는 난 언제 또 쉽사리 넘어져 버릴지 모릅니다.  난 나쁜 사람입니다.  그런 각오 없이는 하루에도 열번도 더 분통을 터뜨리거나 나를 미워하거나 남을 비난할지 모릅니다.  항상 환자복을 입고, 때로는 병든 몸위에 가장 깨끗한 의사의  가운을 입고 나와 남을 대면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대면하는 사람들은 모두 연약한 환자들( 나처럼) 이니까요.  사랑스럽지 않기에 오히려 더 큰 사랑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이 바로 나이며 우리모두이니까요.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두들 어딘가 아파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진정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해본 사람은  상대가 앓고 있는 병이 눈에 보일 것입니다.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용어를 좀 쓰자면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 더 "제도화된" "학습된" 용어를 쓰자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아,  이 놀라운 두렵고 떨리는 엄청난 말을 사람들은 구구단 외듯이, 군번 외듯이 외워서  나의 존재이류라 소리높여 외치지요.--는 것이 무엇인가 아주 쬐끔이라도 매일 생각하며 산다면 )  매일아니라도 어쩌다라도 진지히 생각하며 산다면 내가 병들어 있으며 치유받아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무능력이 바로 병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사랑할 수 없고 의로울 수 없는 우리를 그것이 가능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는 것 아닌가요. 이 병든 영혼으로는 사랑은 불가능하니까요.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랑을 받는 일도 못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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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바빠서 그 후 그의 편지에 답장도 못하고, 소식을 주고 받은 지도 한참 되었다.

언젠가 내가 인천으로 특강을 가면서 버스 멀미로 거의 몸을 가눌 수 없었던 적이 있었지.
그때 용케 강의는 끝내고 HS에게 도움을 청했었다.  다시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갈 수 없을 듯해서.
그리고 그의 차를 타고 서울로 오면서  중간 중간,  하다못해 고속도로에서도 갓길에 세우고 토할 것도 없는

빈 속에서 초록색 물을 토하며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가 했던 말, 교수님도 정말 힘드시고...... 가족들도 힘드시겠어요.....  그 말이 내게 비수처럼 꽂혔던 기억도 난다.

 

그는 지금 미국에서 목사님으로 목회하고 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미 예전에 그랬었듯이............



You needed me, Sung by Anne Murray

내가 눈물 흘렸을 때 당신이 닦아 주었고

내가 혼동 중에 방황할 때 당신은 내 의심을 씻어주었습니다.

내 영혼을 팔았지만 당신이 내게 되찾아 주었고

날 높이 올려 존귀함 주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내가 필요했습니다.


당신은 내게 다시 홀로 설 힘을 주었고

내 혼자 힘으로 세상과 맞설 수 있게 해주었고

날 높이 올려 존중해 주니 너무 높아 영원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필요했어요,
당신은 내가 필요했어요.

바로 당신이라는 게 믿을 수가 없어요, 그게 사실이라는 게,

나 당신이 필요했는데 당신이 바로 거기 있었습니다.

난 당신을 떠나지 않아요, 내가 왜 바보같이 떠나겠어요?

마침내 진정으로 나를 염려해주는 그런 사람 찾았는데.


내가 추울 때 당신은 내 손 잡아주었고

길을 잃었을 때 날 집으로 데려다 주었고

막다른 길목에 몰렸을 때 내게 희망을 주었으며

나의 거짓도 진실로 다시 바꾸어 주었습니다

날 친구라고 부르기까지 하면서.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에요.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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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가사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힘들고 지치고 넘어지고 외로운 것은 나였는데... 그런 내게 "당신이"  다가와 손 내밀어주었는데, 내가 그렇게 절실히 바라고 필요로 하던  "당신"이었는데...  오히려 "당신이 나를 필요로 했었다(You needed me)"고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린 말하죠. '난 당신없인 안돼.'
그거 아세요?  부모님도 나 없인 안되는 것을요.  밤낮 속썩이고 실망만 시키는 연약한 내가 부모님을 필요로 하는 줄 알았는데 뭐든 다 하실 수 있는 어른인 부모님이 바로 날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심바에게 고백하던 아버지의 고백을 기억하세요?  그 누구도 감히 대적하지 못할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동물의 왕인 아버지 사자가 '오늘 두려워서 죽는 줄 알았다.'고  "사랑하는 널 잃을까봐 두려웠다고" 고백하는 것을..  )

하나님도 우리 없인 안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아십니까? '난 네가 필요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이때 피곤, 곤비는 영어로 sick and tired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지쳐서 진력이 난다는 뜻입니다. 실망하고 포기하고 싶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주님은 내게 피곤해하지 않으십니다.  나도 자꾸 나에게 실망하고 지쳐가는데 그래서 자존감도 용기도 희망도 다 사그라져 그저 누워버리고 싶은데  주님은 아니랍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나보다도 더 잘 이미 "나의 불가능성과 나의 나약함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 대신 내 안에서 그의 일 (착한일, 선한일, 나를 주님 닮아가게 키우는 구원의 완성-빌립보서)을 시작하시고 이루어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자여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나의 가는 길이 이렇게 캄캄하고, 외롭고, 고단하고 힘들어도 주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어제의 나와 하나도 달라진 거 없는 것처럼  또 실패를 반복하는데 주님은 나를 붙들고 계시다 합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어디 곁에 있다는 말인가 하고 대뜸 반발심이 일지 않습니까?

시편 23편에서의 고백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쉴만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며...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害)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여호와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심이라.

가만히 보십시오.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에 그가 탄탄대로로 걸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쉴 만한 물가로 인도받는 그 길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valley of the shadow of death)"입니다.  그런데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죽을 것 같이 힘든 그늘진 골짜기에서 그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바로 "害(해)" 이기 때문이며 그 해로 부터 보호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해란 손해보고 세상에서 실패하고 외면당하는 것이 아니라 Evil, 즉 악을 말합니다.  내가 악으로 부터 보호받는 것 이것이 "부족함이 없는 삶" 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도달할 쉴만한 물가, 평화를 의미합니다.  이 비밀을 깨달아 안 사람들은 인생길에서 피곤하고 곤비하고 넘어지고 자빠지되 여호와의 지팡이(인도)와 막대기(보호)로 인해 독수리처럼 날개치는 존재인 것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바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패자 같고 이름없는 존재이며 외톨이인 우리가 가진 "그럼에도"의 권리와 승리와 힘의 "비밀"입니다.  세상과 나의 삶과 나를 새롭게 보는 눈입니다.

나의 귀한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강하다는 게 무엇인줄 아느냐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이것이 바로 그 친구가 말한 웃을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신음소리까지 다 듣고 알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힘이되는 지요.  그런데 그 누군가가 나보다 더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침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다. (이사야 40)

네가 얼마나 사랑스런 데. 네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
 
우선 일기에 네가 가장 힘든 일에 대해서 맘 놓고 다 털어놓아봐.  널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봐.  물론 보내지 않는 너만 보는 편지야.  네 맘속에 있는 분노와 미움과 그사람의 맘에 들지 않는 점, 그리고 네게 상처주는 말과 행동, 사건들을 모두 다 털어놓고 그 사람에게 화를 내.  욕을 해도 되고 네 손이 가는 대로 맘 껏 다 털어놓으렴.  분노는 부끄러운게 아니야.  네 화가 다 풀릴때까지 2-3일 아니면 4일간 편지를 써봐.  편지를 쓰고는 버려도 돼.  이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 울고 불고 화를 내면서 종이에다 다 쏟아내.  이건 절대 보내는 편지나 남에게 보여주는 글이 아니니까 맘껏 욕도 하고 화를 내.
그리고 선생님에게 다시 편지 주렴.  다른 글쓰기 방법을 또 가르쳐줄게.우선 네가 널 사랑해주어야해. 알았지? 
세상은 그 누구도 남에게 관심이 없단다.  내가 날 아끼고 위로해주고 용기주고 다독거려주어야 해.  내가 스스로에게 떳떳하다면 당당하렴.  네가 스스로를 사랑해야 남들앞에서도 네가 당당할 수 있어.  네가 스스로 주눅이 들어 있으면 남들이 널 사랑해도 네가 그걸 느끼지 못하고 자꾸 오해하게 돼.  널 무시한다고 고약한 착각을 하기도 하고.  거울을 보고 스스로에게 늘 말을 하렴.  넌 예쁘고 멋진 아이야.  넌 다 잘할 수 있어 하고.  그리고 주님께 늘 기도해.  지혜를 달라고.  네가 못하는 일도 네 안의 주님의 지혜가 널 인도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직장에서 네 친구를 한 사람 사귀어두려고 해봐.  누군가 대화할 수 있는 사람.  물론 쉽지 않아.  하지만 너무 많은 기대는 하지말고 같이 점심먹고 가끔 퇴근하고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친구.  물론 네 맘을 털어놓는 친구가 되는 걸 기대할 수 없을 수도 있어.  그 친구의 맘을 들어주는 일부터 시작해봐.  남에게 널 알아주길 기대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모두 자신들이 아프고 힘들어 할 뿐 남에게는 관심이 없어. 그리고는 자신들만 사랑받고 인정받고 위로받고 싶어하는 게 인간들이야.  슬프게도....  그러니까 직장에선 그렇게 많은 기대를 하면 안 돼.   일하는 곳이니까.   네 친구가 되게 하려면 노력해야 해. 

 

좀 힘들겠지만 용기가 나면 그 사람에게 웃어봐.  그건 일종의 "역할극"이라고 생각해.  네가 그 사회에서 해야하는 너의 "역할"을 하는 거야. 무대 위에서 하듯이. 화장을 하듯이. 그리고 가끔 그 사람 책상 위에 쵸콜렛이라도 하나 가져다 놓아봐.  이건 참 힘드는 일이지만 이상하게 어떨 땐 내가 그런 행동을 (의지적으로, 용기내어) 하고 나면 그런 맘이 따라올  때도 있어.   (이건 지금 당장은 어려워.  보내지 않는 편지쓰기를 한 후 혹시 용기가 나면 해봐.)  어쩌면  의외로 그 사람 네게 상처준 일이 있는 지 조차 기억도 못할거야.  즉 네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이 그런 거야.  기억해. 인간들이 다 그런거야.누구나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기억도 못한단다.  때로는 나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줄때가 있단다. 누구나 그래.  인간은 그렇게 불완전하고 나약하단다. 그냥 각자 몸에 자신들만의 냄새를 가지고 살 듯 자신들의 뾰죽한 가시, 울퉁불퉁한 혹... 들을 품고 살면서 서로 스쳐갈 때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못된 냄새를 풍겨 불쾌하게 하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  내게서도 나는 모르는 냄새가 날수도 있고 뽀죽한 가시가 남을 긇을 수도 있는데 각자는 자신의 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거야.   그러면서 서로 부딛치고 상처입고 차차 뽀죽한 부분들이 닳고 .... 그렇게 성숙해 가는 거야. 때로 내가 냄새가 있다는 걸 깨닫는 사람들은 열심히 몸을 씻고(인격을 가다듬고, 인내하는 법과 용서하는 법과 자제하는 법을 배우고) 때로 향수를 뿌려 타인을 배려하기도 하고 감추고 남앞에 나가기도 해.  그러니까 겁먹지마.  네 잘못이 아니니까.  그사람 성격이 그런거야.   가시나무도 있고 향기로운 꽃도 있고 그런 숲이 우리가 사는 곳이니까.      이곳에 있는 학생들의 글(치료모임이야기)을 읽어봐.  그애들도 첨엔 많이 힘들어 했었어.꼭 내 말대로 그렇게 해봐. 그리고 작은 일기장이나 노트 하나 준비해서 가지고 다니면서 직장에서도 그런 일 있으면 화장실 같은 데 가거나 점심시간에 카페 같은 데 가서 맘껏 분노를 터뜨리는 글을 써봐.   억울함. 분노, 미움은 간직하면 점점 널 힘들게 해.  그런 것들이 우리 속에 혹으로, 가시로, 향기롭지 못한 냄새로 남을 수도 있는 거야.  그 그 가시가 나 자신을 병들게 하는 거야. 남을 상처주기 이전에 우선 나부터 망가지게 한단다.  그러니까 분노, 슬픔, 억울함, 원한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그때 그때 그 에너지들을 분출해버려야해.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법으로 말이야.)   털어버려야 해. 알았지?선생님도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하게 사는게 아니란다.  우선 육체적으로도 늘 힘들어.  어제 밤에도 내내 앓고 결국엔 두통이 너무 심해서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어 새벽에 일어났다가 네 글을 보았네....  그래도 또 학교 갈 준비해야 하지.  사는게 다 그런거야.  서글프게도.  시간이 없어서 급히 썼어.  언제라도 힘들면  편지해.오늘도 힘내. 널 위해 기도할게.